욱하는 성질머리, 화가 나면 무엇인가를 집어던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 그러다가 화가 머리끝까지 솟을 땐 폭력으로 번지기도 하는 사람. 드문 일이 긴 하지만.
동그란 얼굴에 구릿빛 피부, 짙은 쌍꺼풀이 있으며 입가에 수박씨 만한 보조개들이 여러 개 흩어져 있다. 선량한 미소와 목소리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누군가를 공격할만한 구석이라고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사람들은 그가 법 없이도 살 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것은 그 자신에게 조차도 자신의 결백을 드러내는 무기 같은 것이었다. 그런 그가 누군가와 다투기라도 한다면, 적어도 도덕적인 범위에서 자연스레 면피될 수 있었다. 특히 내게는, 내 삶에는 절대적인 진리 같은 것이었다.
내 아버지에 대해서 말해보려고 한다. 하필 최근에 내가 믿었던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생겼기 때문에 저절로 아버지가 내 삶의 전반에 걸쳐 맹목적으로 새겨 놓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아버지가 물건을 집어던졌다. 언젠가 내가 전남편에게 그랬던 것처럼...
얼마 전, 아버지는 15년이나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다. 이틀에 한 번꼴로 퇴근하시던 아버지는 가족들과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우리도 그런 아버지를 자주 보게 되었다. 함께 있는 것이 온전히 편하지만 않았던 관계였다. 그 민낯이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아버지의 실직은 소리 없는 변화를 몰고 오고 있었다.
어느 새벽 소변이 마려워 나갔더니 아버지가 식탁에 앉아 계셨다. 숨쉬기가 불편하시다며 심근경색 응급약을 혀밑에 넣고는 침을 삼키고 계셨다. 혹시나 싶어 찾은 응급실, 온종일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원인은 '스트레스'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엄마는 평소처럼 아버지를 대했지만, 아버지에겐 달갑지 않았다. 그것은 부부로 살아낸 둘만의 경험을 통한 무의식적인 반응이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예민하게 두 분의 상태를 위기로 느끼며 일종의 애를 쓰고 있었다.
나이 들었다고 해서 상처에 무딘 것은 아니었고, 상처는 또 다른 감각 하나를열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자동차 보험 갱신' 같은 사소한 일이 사건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나는 마일리지 환급을 위한 자동차 주행거리 사진을 등록해 달라는 아버지의 요청에 카카오톡 링크를 열었다. 이미 주행거리 링크는 만료되었고, 갱신 할인용 블랙박스 사진 링크가 실행이 되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주행거리 등록용 링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 말은 듣지도 않은 채 막무가내로 말을 가로막았다. 보험사 쪽에서 링크를 보내준다고 했는데 무슨 소리냐며 특유의 고집스러운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마음에서 울컥 감정이 치솟았지만, 참을성 있는 태도를 갖기 위해서 아버지에게 해당 링크를 열어 보여 주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블랙박스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으니 주행거리 사진을 올리라며 막무가내였다. 잠시 아버지와 나 사이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그 순간 이 언쟁이 무의미함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는 없었다. 내 안의 만만치 않은 고집이 아버지와 대립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 아니, 아빠는 왜 아무것도 아닌 것 가지고 화를 내?? 알았어! 그냥 등록하면 되잖아 "
" 너는 무슨 말투가 그 모양이냐!!! "
짜증스럽게 내뱉은 내 말에 아버지는 꾹꾹 눌러온 무언가를 강렬하게 터트리기 시작했다. 손에 들려 있던 스마트폰이 저편으로 날아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연이어 소파 위에 놓여있던 작은 물건도 날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버지는 놀란 토끼눈이 되어 다 쉬어 버린 늙은 성대로 분노를 뿜어 냈다. 가슴을 베인 듯 아팠다. 늙어가는 남자의 처절한 몸부림, 나는 그것을 속절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필 그 순간 엄마가 집으로 들어오면서 내 편을 들면서 분노를 증폭시켰다. 그리고 꾹꾹 참아 왔던 분노의 정체가 드러나고 말았다.
"지 어미나 자식이나 어찌 그리 똑같은지! 회사도 사람을 나이 들었다고 무시하고 말이야, 운전도 못 하게 하고, 늙으면 죽는 거 빼고는 방법이 없네!!"
왜 아버지는 나에게 분노를 퍼붓고 있을까. 나는 조금 짜증을 내긴 했지만, 아버지의 보험갱신을 도와준 것뿐이다. 당신의 분노가 내 말투로 인한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죄인이 되고 말았다.
얼마 전 하늘이와 티셔츠를 구입하기 위해 아웃렛에 갔다. 언제나처럼 야외 행사매장부터 들렀다. 가성비 좋은 물건을 얻을까 하는 마음에 매대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무언가 딱딱한 것이 세차게 오른쪽 귀를 때렸다. 짤막한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드니 한남성이 티셔츠를 입은 후였다. 셔츠를 입으려 팔을 올렸다가 내리 가다 팔꿈치가 내 귀를 가격한 것이다. 남성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행에게 티셔츠를 입은 모습을 평가받기 위해 바빴다.
'이보세요! 그쪽이 지금 티셔츠를 입다가 내 귀를 때렸는데 알고 계세요? 지금 엄청나게 아프거든요!!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괜찮냐고 묻는 딸아이의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하고 있었다.
"어, 괜찮아. 저 사람이 옷 입는데 엄마가 귀를 갖다 대서"
딸아이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저 아저씨가 엄마 귀를 쳤잖아. 귀가 빨개."
"저 사람도 엄마가 있는 줄 모르고 옷을 입었고, 엄마도 저 사람이 옷을 입는 줄 모르고 거기에 있었으니까
이건 사고 같은 거야."
욱신거리는 통증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상대를 돌려세울 용기도 없었다.
"엄마, 그래도 미안하다고 해야지. 아이들도 모르고 누군가를 아프게 했으면 미안하다고 해"
"근데 저 사람은 엄마 귀를 자기가 쳤는지 모르는 것 같아. 엄마가 애들도 아니고 사과하라고 말하기가 좀 그래"
"저 아저씨가 엄마가 아! 하고 소리쳤을 때 뒤돌아 봤어."
"...."
'이보세요. 그쪽이 모르고 한 일이지만, 내 귀를 아프게 했으니 사과 부탁합니다'라고 말하는 게 맞을까, 잠시 생각해 봤지만, 어쩐지 우습고 경우에 따라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런 사소해 보이는 많은 일로 경찰이 출동을 하기도 한다.
찝찝한 마음으로 뒤돌아 섰다. '내가 저 사람 팔꿈치에 귀를 갖다 댔다고?'언제나 그렇듯이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은 내 뒤에서 옷을 갈아입다가 팔꿈치로 친 사람이 아니었다. 귀의 통증은 사라졌지만, 마음의 공기는 오염되고 있었다. 그것은 나와 아버지 사이에 있는 것과도 비슷하다.
"아빠는 나한테만 그래. 아빠는 아무도 안 때렸는데 나만 때렸어. 언니랑 정영이가 그랬으면 아빠는 그러지 않았을 거야. 분명 나한테만 그랬어."
중학교 때 서태지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잔뜩 기대하며 TV앞에 앉아 있었다. 일이 일찍 끝나셨는지 아버지가 들어오셔서는 채널을 바꾸셨다. 나는 곧 서태지가 나올 거라며 강렬히 대항했고, 그 순간 뺨 위로 아버지의 손이 세차게 내려앉았다. 충격이었다. 아버지에게 맞게 될 줄은 몰랐다. 엄마한테는 아무리 맞아도 이런 충격은 아니었다. 엄마는 다른 형제들도 때렸으니까. 가끔은 아들, 아들, 하면서 그렇게 이뻐하는 남동생도 때렸다.
그런데 아버지는 나만 때렸다. 나만 때렸다는 것, 그러면 문제가 커지는 것이다. 동생이 주행거리 사진 등록을 해주다가 삐딱한 말투로 말했더라도 스마트폰을 던질 만큼 아버지가 분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맹목적으로 사랑했다. 그를 공감했다. 그의 말이 진리였다. 생존을 위한 선택이자, 사랑이었다. 엄마는 허구한 날 돈타령에 화가 나있었다. 아버지는 가끔 욱할 때만 빼고는 안전했고, 가끔은 유머도있었다. 유약한 내 세상에서 아버지는 절대자였다. 아버지가 엄마의 험담을 늘어놓을 때면 기분이 좋았다. 가끔은 엄마의 더러운 성질머리(아버지의 표현)를 꺾어버릴 때에도 내색할 수 없었지만, 알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나는 아버지를 닮아갔다. 아버지의 옳고 그름을 기준을, 삶의 태도를, 그것들은 곧 나의 것이 됐다. 닮아간다는 사실도 잊은 채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느꼈다. 그런데 그것은 본질에서 한참 멀어지는 것이었다.
그동안 내 삶의 관건은 엄마의 구박으로 인한 결핍인 줄로만 알았다. 생존을 위한 사랑의 부작용도 더만만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