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쓸모에 대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by 장혜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여기에 가만히 있어도 괜찮이 지고 싶다. 수술을 하고, 치료를 받고, 회복을 하면서도 마음은 쉬지 않았다.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방안을 서성이다가, 거실로 나와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 본다. 이따금씩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감각이 심장을 움켜쥔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엄마가 내내 당부하셨다.


" 천천히 해라. 너 몸 회복할 생각만 해"


수술 후, 집에서는 쉴 수 없을 것 같아, 요양병원 한 곳을 예약했는데, 입원 당일까지 아무런 안내 문자가 없었다.


" 저 오늘 입원하기로 한 장혜진인데요, "


"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언제 입원하기로 하셨어요?"


다시 이름을 말했지만, 수화기 너머에선 확인이 안 되는 듯했다.


"입원하려고 하는데, 뭘 준비해 가야 할지 몰라 전화드렸어요. 문자 좀 보내주세요."


좀 더 자연친화적인 곳으로 가고 싶었다. 식단이나 평가도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예약을 했다. 퇴원을 시켜주고, 동생은 업무가 많아 곧바로 회사에 복귀했다. 아버지도 근무 중이시고 혼자 요양병원으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택시를 타거나, 운전을 해도 부담 없는 거리였다.


전화를 끊고 나니, 괜스레 화딱지가 났다. 예약이 안되어 화가 난 건지, 아니면 요양병원 하나 데려다줄 사람 없어서 수술 다음날 혼자 병원으로 가야 하는 게 화가 나는 건지, 한사코 택시를 타고 가라는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심통을 부리며 차 키를 들고 나왔다.


용인 시내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진 꽤 먼 거리였다. 캐리어를 끌고 들어가 원무과에서 간단히 입원수속을 마쳤다. 어제 수술한 환자가 혼자 입원 수속을 하는 일이 많지는 않은지, 원무과 직원분은 자꾸 현관 쪽을

힐끔힐끔거렸다.


"같이 오신 분 없으세요?"


보호자와 함께 시설 안내를 하려고 기다린 모양이었다. 싱글맘인 내게는 너무도 흔한 일이어서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데, 나는 평소보다 더 씩씩한 척을 하고 있었다.


직원분과 함께 병실로 올라갔다. 2인실이지만, 다른 환자가 없어 혼자 쓸 수 있었다. 리조트식 요양병원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깔끔한 분위기였다. 커다란 창가에 침대가 있었고, 창 밖으로 높다란 숲이 보였다. 침대 옆, 작은 테이블에 뚜껑을 덮어놓은 식판이 놓여 있었는데, 5시부터 저녁이 나와서 도착하면 저녁을 못 먹을까 봐 방으로 미리 가져 두었다고 했다. 4층은 족욕실과 도서관이 있고, 창밖으로 보이는 산 아래에 황톳길이 있다며 언제든 이용해도 된다고 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실컷 넷플릭스를 보고, 책을 읽고, 아무 때나 잠을 자고 싶었다. 캐리어에서 준비해 온 책과 세면도구, 영양제를 꺼내 정리하고 사자 모양 캐릭터가 그려진 하늘색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식탁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넷플릭스를 틀어 놓고, 밥을 먹었다. 생선과 고기, 샐러드와 나물, 디저트로 구성된 식단이었다.


더위가 한창인 8월의 저녁, 별안간 내가 별세계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모든 것에서의 해방이었다. 숨 막히게 바쁘고 힘들었던 일상, 눈에 거슬리는 게 많아도 모른 척 넘어가야 하는 친정살이, 엄마로서의 의무감마저도 내려놓고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종합병원보다 자연스럽고 여유 있는 간호사들의 친절, 고요하게 건물을 감싸고 있는 숲 속의 고요함에 기분이 좋았다. 적막했지만, 외롭지도 우울하지도 쓸쓸하지도 않았다. 때때로 가족들과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전화나 문자가 왔고, 심심하면 언제든 넷플릭스에 빠질 수 있었다. 적당히 해야 할 것도 있었다.


7시면 아침 식사가 방으로 배달된다. 느지막이 일어나 유튜브나 TV를 켜고, 천천히 밥을 먹고 황톳길로 향했다. 황톳길에는 적당한 수분이 계속 공급되고 있었다. 맨발로 질퍽질퍽한 진흙을 밟으면 어린 시절, 냇가에서 놀던 기억이 났다. 황토가 발과 발톱을 물들이면, 수돗가에서 흙을 털어내고는 책 한 권을 들고 가 창밖을 보며 족욕을 했다. 커다란 통창 앞에서 파란 하늘을 보다가, 멀리 드문드문 차들이 오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내 옆으로 환우분이 오시면, 준비해 둔 책을 펼쳐 들었다. 자발적 고립이었다.


오후엔 물리치료나 수액 등 치료 스캐쥴이 있었다. 요양병원의 물리치료는 마사지와 도수치료를 혼합하여, 수술로 경직된 몸과 척주, 장기를 마사지로 풀어주었는데, 다른 사람이 내 몸 근처에만 와도 긴장을 많이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도 받고 나면 편안한지, 침대에 누워 스르르 잠이 들었다. 저녁식사가 오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밥을 먹고는, 테라스로 나갔다. 뜨끈뜨끈 달궈진 안락의자에 누워 노을이 지는 하늘을 보았다. 오랜만에 좋아하던 노래를 찾아 듣고, 숲 속에서 불어오는 여름바람을 즐겼다.



조금 평온함에 깨지는 일도 없지는 않았다. 공용공간에서 식사 때마다 나오는 누룽지와 숭늉을 담아 오는 일이 그랬다. 가끔 늦장을 부리면, 바닥이 드러나 있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신경이 쓰였다. 가끔은 공용공간에 환우님들이 모여 있었다. 시끌벅적한 웃으며 담소가 이어지곤 했다. 모두 암이야기뿐이었다.


암이야기 만으로 환우분들은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모두들 한두 개씩 사연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암을 발견했는지, 몇 기인 지, 무슨 암인지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참여하고 싶지 않았지만, 식수를 받아 방으로 들어가면서 등 뒤에서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지곤 했다.





점점 고요하고 평온한 별세계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넥플릭스의 볼거리가 줄어들고, 책을 다 읽어 버리고, 식판의 음식을 일주일 이상 비웠을 때쯤이었다.


스멀스멀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상념과 살아갈 날들에 대한 걱정이 엄습해 왔다. 먼저 비싼 요양병원비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예정된 일정보다 일찍 퇴원을 앞당기고 있는 내가 있었다.


그러다가 상념에 빠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릴 때부터 줄 곧 나는 혼란에 빠졌다. 도덕과 종교와 책과 선생님들, 모두 같은 말을 하는 듯 보였지만, 아무도 그렇게 살지 않았다.


스스로 초라한 삶에 의미라는 빛을 선사하고, 선하고 양심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답이라고 믿었던 그동안의 나, 그렇게 애를 쓰며 지켜왔던 모든 것을 별세계에서 바라보니, 어리석고 부끄럽기 그지없어 보였다. 내가 믿고 있던 것들, 맺었던 모든 관계들이 나를 아프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무엇을 좋아했을까?
내가 좋아한다고 믿었던 것들을 정말 나는 좋아했을까?





세 번째 암에 걸리고 나서는 진정으로 다르게 살고 싶었다. 좋아하는 것만 하고 싶었다. 오십이 다 되어 가는 나이에, 좋아하는 것을 찾아 생계로 연결할 순 없겠지만, 그래서 결국엔 그동안 생계를 이어오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게 뻔한 것이 내 인생일지라도,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날들'엔 나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퇴원을 하고, 방사선 치료도 끝났다. 하지만 이전처럼, 일상으로는 돌아가지는 못했다. 별세계는 완전히 사라졌고 몸에는 생소한 통증들이 생겨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날들'이 지속되고 있었지만, 무언갈 하지 않으면 괜찮을 수 없는 나를 발견해 갔다. 오직 '나의 쓸모'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시간들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때, 그동안 그렇게 지독히도 고집했던 분야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지는 것을 묵도해야만 했다. 나는 명상과 인문과 뇌과학, 영성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명상지도자 과정을 등록하거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매일 걷거나, 달리며 몸과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일요일저녁, 김주환 교수님의 유튜브 라이브 강의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지난 3월엔 교수님의 명상콘서트와 프로그램을 수료했다. 게다가 번아웃을 겪고 있으면서도 회사를 그만두기 전, '디지털사이버대학교 명상치료학과'에 신학기 등록까지 해 놓았으니 이 정도면 내가 좋아하는 분야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나에게 쉼이 주어진다면,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즐겁게 공부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분야에서 멀어진 나를 발견했다.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쓸모'를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한 착취이며 채찍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고, 잠들기 전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는 모든 건전한 행위, 그 뒤편의 나는 그저 나를 부려 먹기 위한 의도가 숨어 있었다. 좀 더 맑은 정신과 몸으로 더 많은 성과를 내고 싶었다. 나의 '쓸모'를 증명하고 싶었다. '암에 걸려도 여전히 쓸모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순수하게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한 적이 없던 나의 세상, 그 모든 것이 명료해져 가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관계들을 정리하고, 내게 묻고 또 물었다.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만 나를 찾아도 '타인의 쓸모'에 곧잘 허무하게 나를 던져 주곤 했었다. 마음속, 관계에 대한 불편을 상대를 위해서 애써 참는 것이 편했다. 결국, 관계의 민낯이 드러나도 착한 사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아프도록 생각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지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은 나를 사랑하고 싶다.



나에게 묻고 싶다.

'쓸모'가 없다고 느낄 때에도 넌 무얼 하고 싶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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