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쁜 의사가 이 글을 봤으면 좋겠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눈물이 후드득 쏟아졌다. 여름날, 예고 없이 쏟아지는 빗방울처럼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눈물을 참아낼 방도가 없었다. 곁에선 엄마가 눈치를 살폈다.
"아니, 저 의사 처음부터 진짜 별로였는데, 진짜... 하..."
처음부터 의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자리암'은 암도 아니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했다. 여러 태도에서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술 이후, 타 병원에서는 기본적으로 들었던 사항들—예를 들면 유전자 검사 결과라든지, 최종 조직검사 결과 여부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주치의와의 진료는 가장 궁금한 질문을 짜내어 듣고 서둘러 나왔다.
1년 전쯤이었나? 갑자기 혈액 검사에서 CK 수치가 기준치 이상으로 높게 나왔다. 이 수치는 근육이 손상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세포 밖으로 빠져나와 혈액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수치라고 한다. 그러니까 과도한 운동을 했거나, 평소보다 강도 높은 근육을 쓰는 일을 했을 때 올라간다. 하지만 나는 쉬고 있을 때도 기준치의 몇 배 이상의 수치가 올라갔고, 이에 대해서는 누구 하나 속 시원히 답 해 주지 않았다. 수술 후, 첫 진료에서 의사는 내게 그 수치를 언급했다. 성의라곤 없는 그가 언급을 한 것을 보면 눈에 띄게 높은 것이다.
"선생님, 제가 1년 전부터 갑자기 그 수치가 계속 오르는데 왜 그럴까요?"
"운동을 많이 하나 보지."
"아뇨, 요즘은 진짜 아무것도 못하고 쉬고 있거든요."
"그럼 난 모르지. 다음 환자 있어서."
'그럼 난 모르죠'라니!
냉랭한 말투에 수치심 같은 게 일었다. 그는 늘 그런 식이 었다. 진료를 빨리 끝내기를 종용하는 느낌이었다. '제자리암'을 암 취급 안 하는 것이라면, 의사의 그런 태도가 세 번째 암을 발견한 충격에서 완충 작용을 하기도 했으므로
게의치는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일주일 전, 첫 정기검진으로 혈액 검사와 MRI를 받고, 결과를 확인하러 간 것뿐이었다. 별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담당 의사에게 "괜찮다"는 말만 듣고 나올 작정이었다. 그런데 의사는 내게 평소보다 좀 더 길게 말을 이어갔다. 그는 MRI 상에서 가슴뼈에 무언가 관찰되었다고 말했다. '뼈'라고 하니, 두 달 전 정형외과에서 촬영한 전척추 MRI 결과가 생각났다.
"선생님, 제가 두 달 전에 정형외과에서 전척추 MRI를 찍었는데요."
"가슴뼈요. 척추가 아니라."어느 뼈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었는데, 그는 말을 자르듯 막아섰다. 사실, 이 말을 시작으로 정형외과에서 주치의가 꼭 문의하라던 MRI 결과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괜찮다"는 말만 듣고 나갈 작정이었기에 굳이 꺼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뼈'라는 단어에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아니, 선생님 제가 MRI를 찍었는데요, 방사선이 척추에 닿아 뼈의 조직이 변형되고 골수가 지방조직으로 바뀌..."
이번에도 그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싸늘하게 말을 막았다.
"누가 그래요?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요?"
"...... 정형외과에서 검사했는데, 선생님이 대학병원 방사선 종양학과에 자문까지 해서 받은 결과예요."
"대학병원?! 어디????"
의사가 답답한 듯 쏘아붙였다. 그 통에 머리가 하얘져 말까지 버벅댔다.
"...... 자료를 가지고... 올 걸 그랬나요?"
"아니, 됐고요, 대학병원 의사들도 돌팔이 많아. 아니, 척추에는 방사선이 닿을 수가 없다니까 그러네!"
그는 더 이상 그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말을 끊었다.
"선생님. 작년 9월에 방사선 치료 끝나고 갑자기 10월부터 이상한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팔다리가 저릿하고 통증이 점점 심해졌어요. 온 몸이 너무 불편해서.... "
그는 분명 AI의 결과를 들이대거나 '카더라' 통신을 극혐 하고, 환자가 토를 다는 걸 싫어하는 전형적인 꼰대 의사일 게 분명했다. 애초에 내가 다른 병원을 찾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하면, 쌀쌀맞은 의사의 태도를 반전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을 뒤엎었다.
"그게, 그 통증이 아닐 수도 있지."
"그게, 그 통증이 아닐 수도 있지."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그렇다면, 이게 유방암 뼈 전이에 의한 통증일 수도 있다는 말인가? 가슴뼈에 뭐가 보인다는 의미가 바로 이거였나?
나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그럼 뼈에 전이가 됐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세요?"
"제자리암은 전이가 될 수 없으니 아니고, 7년 전에 침윤암이 있었잖아. 3년 전에도 갑상선암이었고. 전이됐으면 거기서 됐겠지."
의사가 고개를 돌려 차트를 살피며 말했다. 어딘가에 새로 생겨난 사마귀나 점에 대해 얘기하듯, 그의 말투와 눈빛 어디에서도 환자에 대한 측은지심이나 배려 같은 것은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불과 몇 달 전 '제자리암' 진단을 받고, 본인 입으로 암도 아니라는 수술을 받았던 환자였다.
누군가에게는 엄마이고 자식일 수도 있는 한 사람이 갑자기 4기 암 환자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그의 말 한마디에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환자가 얼마나 많은 두려움에 떨게 될지 따위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어제까지 나는 앞으로 무얼 먹고살지 궁리하고 있었다. 방사선 치료의 후유증이라는 불편함과 암이 재발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어도, 다시 사회에 나가야 할 명분이 더 컸다. 나는 중학생 딸을 둔 가장이고, 쉬고 있어도 내내 생계에 대한 걱정을 끊어낼 수 없었다. 청구서 요금을 내고, 이사한 집의 월세를 내고, 건강을 위해 신선한 식재료를 구입하면서도 문득문득 올라오는 불안을 막을 수 없었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구직 사이트를 뒤적여야 할 때면, 영영 사회에서 불필요한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오래 머무를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 모든 시간조차 내게 더는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속삭임은 어제까지의 고민들을 말끔히 사라지게 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어리석은지, 세 번이나 암을 겪고도 여전히 같은 삶과 시름하고 있었다.
어느덧 봄은 찬란히 문 앞에 와 있었다. 집 앞 편의점 곁에 그림처럼 선 벚꽃나무가 세상을 향해 꽃망울을 터뜨렸다. 봄이 내린 하늘은 파랗기만 했다. 우두커니 서서 꽃들을 바라보았다.
병원에 다녀온 뒤로 조금 더 부지런해졌다. 길어지는 휴식이 달가울 수만은 없는 현실에 자주 무기력해졌었는데, 그날 이후로는 무기력해질 수 없었다. 그렇다고 삶에 대한 대단한 열정이 솟아나지도 않았다.
수술 이후에는 주머니 사정을 생각지도 않고 여행길에 올라 소리 없는 무기력과 싸웠다. 이젠 그 어떤 것으로도 숨길 수 없는 두려움과 슬픔이 그 안에 있었다. 새벽녘에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어 울었다. 딸아이가 잠들어 있는 방 쪽에서 아이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아, 딸아이가 고요히 잠들어 있는 그 새벽이 시리도록 소중했다.
의사를 생각하면 화가 났다. 특별히 나에게만 그런 태도일 리 없음을 알면서도, 그가 나에게만, 나의 어떤 면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고 있을 거로 생각하다가 지인들의 전화에 나를 진료한 의사가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인지를 증명하고 동의를 구했다.
그는 왜 다른 의사들처럼"혹시나 해서 해보는 검사니 결과가 나와봐야 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라고 말해주지 않았을까? 그 메마른 태도가 나를 들끓게 했다.
내 목숨을, 그 생명이 지탱해 온 삶을 하찮게 여기는 것만 같았다. 생존을 위협당해 발끝을 물어뜯어 버리려고 달려드는 쥐처럼 날뛰고 싶었다.
이튿날, 카카오톡으로 요청한 의무기록사본이 발급되었다는 알림이 왔다. 의사가 무심히 바라보던 모니터, 그 안에 MRI 검사 결과지가 있었다. 제미나이를 통해 결과지를 해석했다. 그리고 상황에 대하여 냉정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발견된 증상: 복장뼈 부위에 약 3mm 크기의 병변이 관찰되었다. 의사의 판단(Indeterminate): 현재의 MRI 영상만으로는 이 병변이 암이 전이된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염증이나 양성 종양인지 확실히 구별하기 어렵다.
일단, 의사의 '뇌피셜'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피검사의 관련 수치도 안정적이었다. '암성 통증'의 주요 증상은 통증이 시작되면 점점 더 심하고 깊어지고 밤에 심해진다고 했다. 반면에, 나는 지난 2월 정형외과를 방문했을 때보다 통증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지난 2월 촬영한 전척추 MRI에서 종양이 발견되지 않았다. 만약, 복장뼈에 있는 3mm의 병변이 암세포라 하더라도 초기 전이였다. 암 4기는 생존율이 급격히 떨어지지만, 뼈전이 단독일 경우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종합적으로 분석해 볼 때, 지금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게 분명했다.
나는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3주간의 시간 동안, 두려움을 선택하지 않기로 했다. 그 보다 내 안의 나와, 나의 삶, 오늘 하루, 그리고, 신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었다.
더는 슬프지 않았다. 평안이 내 안에 있었다. 이따금씩 두려움이 엄습해 왔지만, 타협하지 않을 수 있었다. 불안이 틈타려고 할 때면, 그 틈으로 당연히 떠오른다고 여기던 아침의 태양이, 한낮의 햇살이, 오늘이라는 하루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