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부터 3월.
권고사직을 받아들인지 1일차.
새벽에 문득 눈이 떠져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권고사직을 받은 당일인 어제는 무슨 정신으로 흘러갔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지금은 잠을 푹 자고 난 이후라 그런지 어제보다는 머리가 맑은 것 같다.
어제는 정말 별의별 생각을 다 했었다. 이제 나 어떡하지, 그런 단순한 생각부터 시작해서 인생 망한 건가, 딴일 알아볼까, 온갖 부정적인 생각을 다 했다. 다음날 새벽인 지금이 되고 나서야 겨우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해진 것 같아서 한 달동안 나에게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나마 정리해 보려고 한다.
2월 중순, 나는 현재(라고 해도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회사의 최종 면접에 합격했고, 2월 말 입사를 앞두게 되었다. 올해는 내가 정말 가고 싶은 회사만 지원하고 나 스스로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자! 그렇게 다짐한지 2달만에 취직에 성공해버린 것이다. 2025년에 이 회사밖에 지원을 하지 않았는데 정말 뜻밖의 성과였다.
수습기간이 1개월밖에 되지 않는 이 회사는 변화하는 시장에서 발빠르게 움직이는 스타트업이었다. 줄곧 스타트업에 가고 싶었던 나는 이 회사가 내가 원하는 바를 완벽하게 이룰 수 있는 회사라고 생각했고, 입사한 이후에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내 능력과 의지가 받쳐주는 한, 내가 원하는 일들을 다 해 볼 수 있는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사실은 신입인 나의 열정을 자연스럽게 고양시켰다.
수습 기간동안의 나의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회사와 사용자들에게 빨리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에 입사 첫주에 PR을 올렸고, CTO님께 벌써 PR을 올렸냐며 칭찬을 받기도 했다. 그날은 돌아가는 길에 링크드인에서 '잘하는 신입의 기준은 입사 첫주 커밋 여부다'라는 실리콘밸리 재직자의 글을 읽으며 뿌듯해 하기도 했다.
한 달동안 나는 이런저런 버그들을 해결해나가며 하나의 프로젝트에 투입되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까지 재미있어 하는 류의 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사용자 전체한테 임팩트가 큰 작업이라 정말 성실하고 꼼꼼하게 작업했던 것 같다.
해당 프로젝트가 끝나기 일주일 전, 나의 수습도 종료되게 되었고 대표님과 수습 종료 미팅을 가지게 되었다. 나름의 성과를 이뤘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하도 채용 혹한기라서 솔직히 수습 후에 정규직 전환이 안 될 가능성도 아예 배제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부모님께도 정규직 수습이 아닌 인턴십이라고 거짓말을 했었다.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 글의 첫 번째 반전은, 수습 종료에서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은 게 아니라는 거다. 수습 종료 미팅은 성공적이었고, 나는 정상적으로 회사의 정규직이 되었다. 대표님과 지금까지 어떤 것들을 했고, 앞으로 어떤 걸 할 건지에 대한 대화를 나눴고, 미팅룸을 나오면서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구나, 그런 기대와 안심이 생겼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서 같이 사는 혈육에게 곧바로 이 사실을 전했고 축하를 받았다. 혈육은 아직 취직을 못한 상태라 걱정도 많아 보였는데, 그래도 이제 내가 돈을 버니까 생활비 걱정은 좀 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시름 놓았으니까 이제는 혈육의 멘탈을 내가 잘 챙겨주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기분 좋은 결심이었던 것 같다.
엄마한테도 정규직 전환 사실을 전했다. 매달 말일이 급여일이라 아직 제대로 월급을 받은 적은 없어서, 선물은 3월 31일에 사려고 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영화의 불행한 복선처럼 흘러갔다. 그날은 내가 권고사직을 받는 날이 되었으니까.
정규직 전환 후 열흘은, 기묘했다. 분명 설레고 기뻐야 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왠지 모를 불안감이 피어 올랐던 것 같다. 그 기간동안 2번의 전사 회의가 있었고, 대표님께서는 앞으로 경영 방식을 크게 바꾸겠다고 말씀하셨다. 솔직히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자신이 있는 방향은 아니었으나, 필요한 변화라고 생각해서 나는 수긍했던 것 같다. 그 방식에 적응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여러가지 공부도 많이 해 보고, 없던 지식도 쌓아가며 이 회사에 점점 녹아들었다. 정확히는 그러고 싶었다.
이 사이에 4명의 사람이 회사를 떠났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며칠 새에 일어난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게 권고사직인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대표님이 운영 방식을 바꾸겠다고 말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고, 자신과는 맞지 않다고 느끼신 팀원분들이 스스로 회사를 떠나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 중 한 분이 퇴사일 직전까지도 새로운 작업에 성공했다고 들떴었고, 다른 한 분이 잔업이 남았다며 야근을 하시던 것도, 그때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맡고 있던 프로젝트가 끝났다. 마감기한을 맞춰서 뿌듯한 와중에, 이제는 새로운 운영 방식에 맞춰 나도 신규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과 근데 대표님은 왜 요며칠 내 작업에 컨펌을 안 주시지? 많이 바쁘신가? 그런 불안감이 공존했다. 무의식 저편에는 설마 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기대와 안심이 더 클 수 있었던 이유는 수습 종료 미팅을 웃으면서 끝마치고 정규직이 된지 열흘도 안 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자를 거면 그때 잘랐겠지! 난 잘하고 있어." 이런 생각이 컸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다음주 월요일, 그러니까 바로 어제 대표님과 원온원 미팅이 잡혔다. 각 팀원이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지에 대한 전사 원온원 진행이 있을 거라고 전에 말씀을 하시기도 했어서, 당연히 그런 내용인 줄 알았다. 그래서 오전부터 부랴부랴 서비스와 조직의 문제 해결을 위한 문서를 작성했고, 그 결과 4개의 문제에 대한 문제 정의부터 솔루션, 목표, 구체화된 기능 및 리스크를 담은 문서를 완성할 수 있었다.
대표님이 계신 층까지 올라가면서도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잘 전달해드릴 수 있을까? 대표님께서 이런 질문을 하시면 어떻게 대답하지? 그런 안일한 생각들만 하고 있었다. 웃으면서 회의실에 들어갔고, 웃으면서 대표님과 인사를 나눴다. 앉아서 가벼운 아이스브레이킹을 할 때까지만 해도 웃고 있었던 것 같다.
반전이랄 것도 없지만, 이 뒤로 이어진 대표님의 이야기가 이 글의 두 번째 반전이다. 정규직 전환 열흘 만에 권고사직을 받은 것이다. 머리가 멍했다. 차게 식는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대표님께서는 전사 인원을 절반 넘게 줄일 예정이고, 나 같은 경우에는 정규직 전환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 특히 더 오래 고민했지만, 회사 사정상 여기까지만 함께하는 게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고, 그 이야기들은 내 머리와 귀로는 가 닿았지만, 내 마음에까지 와닿는 것들은 아니었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동안 진짜 실없는 생각부터 진짜 무거운 생각까지 전부 다 들었던 것 같다. 친구들한테 말했던 건 어떡하지. 아빠한테 취업 축하 전화를 받은 게 바로 어제인데. 엄마한테는 뭐라고 얘기해야 하지. 이미 친척들도 다 들었을 것 같은데... 아, 기후동행카드 연장하지 말걸. 입사 첫날에 입으려고 산 슬랙스 너무 비쌌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사지 말걸 그랬네. 취직해서 사이드 프로젝트 그만둬야 할 때 팀원들 앞에서 미안해서 울었던 것도 갑자기 창피해지네. 팀원한테 취업 축하 선물로 올리브영 기프티콘 받았던 것도 미안해서 어떡해! 아, 취업 안 될 줄 알고 졸업유예 했던 거 후회했는데 하길 잘했다. 다행인 일도 있긴 있네, 아... 좀 더 잘할 걸 그랬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겠어서 주저했던 일들 다 해 볼걸. 좀 더 많이 배우고 좀 더 많이 해 볼걸 그랬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이렇게 될 줄 알 수가 없었겠지만...
생각은 돌고 돌아 바로 1시간 전 점심 시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회사에서 가장 온화해 보이시던 동료분과 처음으로 제대로 이야기 해 보는 날이었다. 동료분은 대표님이 겉으로는 차분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각보다 래디컬한 분이라고 하셨다. 그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바로 한 시간 뒤에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던 것 같다.
대표님께서는 약간의 절차가 끝나면 이제 퇴근해도 좋다는 이야길 해주셨다. 그 말을 듣고 회의실을 나갈 때 습관처럼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는데, 순간 너무 바보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권고사직 받아놓고 뭐가 감사해? 너 바보냐?' 스스로한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오고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PR을 올렸다. 지금까지의 작업물들이었다. 그리고 슬랙에서 내가 마무리할 것들은 없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제서야 조금 눈물이 나서 화장실로 재빨리 달려갔다. 문 손잡이를 잡자 여느 때처럼 정전기가 났다. 매번 정전기가 나는 손잡이라, 새로운 취미로 뜨개질을 배워서 덮개를 만들어볼까? 그런 생각도 했었는데. 회사 공간 하나하나에서 팀과 회사를 위해 했던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게 너무 괴로워서 빨리 사무실을 나오고 싶었다.
운영 담당자님과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고 사직서를 작성했다. 알게 모르게 의지하던 분이라 대면했을 때 더 눈물이 났지만, 이분이 잘못하신 것도 아닌데 내가 울면 너무 마음의 짐을 지게 해드리는 것 같아서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았다. 내가 자리로 돌아가 장비를 초기화 하는 동안 옆방에 계시던 한 분이 또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오셨다. 오늘로 두 명째였다. 내가 세 번째고, 정황상 내 옆자리분이 네 번째인 것 같았다. 오늘만 4명이 권고사직을 당한 것이다.
근데 여기서 내가 갑자기... 머리가 조금 이상해졌다. 뭔가 머리가 상황을 따라가질 못했던 것 같다. 오전에 한 분이 나가셨고, 방금 한 분이 또 나가셨다. 이제 나도 나간다고 말해야 되는데 이 줄줄이 소세지가 뭔가 너무 어이없고 황당해서 갑자기 눈물이 들어가고 웃음이 났다. '이걸 어떻게 말하지? 남아 있는 분들 진짜 어이없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문자 그대로 어이가 없어서 장비를 초기화하고 이제 나가야 되는데 너무 뻘쭘한 기분이 들었다(ㅋㅋㅋㅋ)
그래도 언제까지고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대뜸 퇴근할 때처럼 "저 먼저 가 보겠습니다..." 라고 말했고, 반반차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시간이었지만 다들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셨다. 이러는 와중에도 무슨 시트콤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웃음이 났다. 친하게 지내던 동료분이 "이거 몰카인가요???"라고 했을 때는 웃다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사수님도 웃었고 다른 동료분도 웃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나갈 때는 다들 웃을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집 가는 지하철은 그냥 희노애락 그 자체였다. 웃었다가 화났다가 울었다가 아무 생각 없었다가의 반복이었다. 슬슬 현실감이 들었고 이제 다시 면접 보러 다닐 생각을 하니까 눈앞이 깜깜했다. 집에 가자 혈육이 왜 이렇게 일찍 왔냐며 깜짝 놀랐고 사정을 설명하며 엉엉 울었다. 꼭 말해야 될 필요가 있는 사람들한테도 미리 이야기했고 위로를 받으며 엉엉 울었다. 독기 가득하게 권고사직 받은 당일, 노트북을 켜서 포트폴리오를 수정했는데 원본 파일을 찾지 못해서도 울고, 노트북 화면이 자꾸 버벅거려서도 울고, 그냥 코가 헐 때까지 눈물을 흘리고 닦았다.
의외로 악몽은 꾸지 않았지만 평소 일어나는 시간보다 1시간 30분이나 일찍 눈이 떠져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사실 아직도 현실감이 없는 상태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만우절 전날에 말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까?(ㅋㅋㅋㅋ) 아무튼... 이 사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마인드 컨트롤을 해 보자면, 취직을 하고 권고사직을 당해서 이렇게 크게 느껴지는 거지, 사실 안 했어도 지금까지 똑같이 취준 중일 텐데 왜 이렇게 늦었다는 생각이 드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늦었으면 뭐 어쩔 텐가? 취직 안 할 것도 아니고... 그냥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 한번 외쳐주고 갈 길 가는 수밖엔 없는 것 같다.
앞으로는 좀 더 쉽게 생각해 보려고 한다. 항상 무겁게 생각하면 잘 안 되고, 가볍게 생각하면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던 것처럼. 그래도 이 기회에 날 아껴주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많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기회가 아니었으면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한 달 간의 시간에서 배움이 있었다면 내 안에 남기고, 후회가 있었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더 생각해야겠다. 나라도 나를 믿어주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전국의 취준생들(나 포함) 화이팅!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