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11일 (Day + 142)
<CDT(5,000km 미국종단) Day + 142>
3주정도만 더 걸으면
끝이 보이지 않던 이 길도 끝나게된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흐르다니.
이래저래 생각이 더욱 많아지는 요즘이다.
Nobo(Northbound)에서
Sobo(Southbound)로
142일 전,
멕시코-미국 국경에서 출발해서 북쪽방향으로 쭉 걸어왔다.
하지만 3,500km정도를 걸은 뒤
갑자기 계획을 변경하게되었다.
북쪽이 벌써 눈이 많이 와서 입산이 통제된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눈때문에 이 길을 다 걷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민끝에, 가장 북쪽 구간으로 가서 그곳을 걷고, 거꾸로 방향을 바꿔 내려오기로 했다.
사실 조금 아쉬웠다.
남들처럼,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세워진 비석에서 이 길을 끝내고 싶었다.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오며
비석이 있는 그곳에 도착해서 기뻐할 내 모습을 항상 그려왔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고속도로 옆에 붙어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 최종 목적지가 되었다.
최종 목적지가 달라지면서
내 마음가짐도 조금 달라지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다.
비석이 세워진 그곳에 먼저 다녀온 뒤,
방향을 바꿔 남쪽을 향해 걷고있는 요즘.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예전이나 지금이나 간절함은 똑같았다.
어느새 그 작은 마을에 도착해 기뻐할 내 모습을 상상하며 걷고있었다.
목적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걷는 이 길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덕분에 깨달았다.
선명해진 모습들
지금까지 142일을 걸으면서
나는 나와 더 가까워졌고 내 감정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마음껏 기뻐하고, 행복해했고 때로는 마음껏 아쉬워하고, 힘들어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혼자 소리내서
눈물이 더 나오지 않을 때까지 펑펑 울어보기도 하고
나를 응원하고 다독이면서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릴 줄도 알게되었다.
나의 장점도, 단점도 더 분명하게 알게됐다.
그리고 나에게 솔직해진 나의 모든 모습을 더욱 아끼게됐다.
내가 좀 더 선명해진 느낌이다.
조금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억
왜 힘들었던 곳은
그만큼 더 오래 기억에 남고, 더 아름답게 기억에 남는걸까?
이제 3주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까
요즘, 지나온 길들이 더 많이 떠오른다.
더 오래 기억하고싶어서 억지로 그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진을 보면
그때 그곳을 걸었던 내 모습, 그때 그 상황, 내가 느꼈던 것들, 이 모든 것이 뒤섞여서 떠오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억이 흐려질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아쉬워진다.
이 감정들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싶은 것은 내 욕심일까?? :'(
어떤 날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었고
또 어떤 날은 숨이 차오르고 다리가 후들거려 한걸음 내딛기도 힘들었다.
그런 순간들을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하며
많은 생각에 잠긴다.
3주.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이 길의 끝이 보인다.
기분이 참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