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 살아내기 위한 노력

by 혜현

대학원에서 평범하게 수업을 듣던 어느 날이었다. 전공 관련 수업이 아니라 (교수님께 죄송하지만) 강의실 뒤쪽에 앉아 급한 논문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심장 뛰는 소리가 콩닥콩닥 들렸다. 그러더니 점점 빨라지면서 더 크게 쿵덕쿵덕 들리기 시작했다.


어? 내 심장 소리인가?



갑자기 호흡이 빨라졌다. 빠르게 뛰는 심장 박동 소리와 함께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얼른 밖으로 나가 강의실 앞에 있던 길쭉한 의자에 한참을 누워있었다. 누워있으니 호흡은 안정을 찾았지만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뭐지?' 갑자기 왜 숨이 안 쉬어지지? 놀란 마음을 부여잡고 다시 강의실에 들어왔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 수업 시간은 무사히 지나갔다.


그리고 며칠 뒤, 주말에 본가에 다녀왔다가 일요일 저녁 기숙사에 돌아와 대문의 번호키를 누르려는데 멈칫했다. 비밀번호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하려고 해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애꿎은 번호만 잔뜩 누르다가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비밀 번호가 도대체 뭐지? 나 혹시 치매인가..?


비밀번호를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치매라 생각해 '젊은 치매'를 키워드로 한참을 검색해 보며 울다가 결국 사감 선생님의 도움으로 방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내가 심한 우울증과 공황장애 증상이 있다는 것을. 서울을 오가며 대학원 수업을 받고 연구실로 돌아와 밤을 새워 실험하고 분석하는 일을 수 년동안 지속했다. 늘 긴장했고,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상한 증상들이 하나둘씩 일어나도 내 병을 자각하지 못했다. 그냥 스트레스를 받아 잠시 몸이 이상해지고 기억이 깜빡깜빡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 날엔 문득 '이제 많이 살았다. 그만 죽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번뜩 뇌리를 지나갔다. 처음으로 죽음이 공포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무서웠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그때의 나는 공부도 대인관계도 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교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도 편안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나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지고 일도 대신해 주며 나를 끝까지 끌고 가려는 몇몇 분들의 도움이 있어 그 후로도 몇 년 동안이나 대학원 생활을 지속했다. 그리고 그렇게 특별할 것도 없는 어느 순간에 도망치듯 대학원을 뛰쳐나왔다.


그때를 살아내기 위해 나는 스스로를 부단히 도 괴롭혔다. 내가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아 공부가 어렵고, 비위를 맞추지 못하고 상황판단이 서툴러 교수와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았다고 생각했다.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몰아붙이며 그 시간을 견뎠다. 모든 상황을 내 탓으로 돌리며 반성했다. 매 순간 모든 분노의 화살을 스스로에게 쏘아붙이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도망침'과 '자멸'뿐이었다. 학습된 무기력과 지독한 우울은 나를 '자멸'의 길로 이끌었지만 정말이지 다행인 건, 내가 나를 파괴하는 것이 아닌 '도망침'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겨우 네가 살아내기 위해 한 노력이 '도망침'이냐며 비웃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 선택으로 난 지옥을 벗어났고 현재를 살고 있다. 내 현재의 삶이 과연 '박사로서의 나'보다 훨씬 낫느냐고 물어본다면 사실 잘 모르겠다. 난 '박사'가 되지 못했고 결국 그 삶을 살아내지 못했으니 더욱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나는 '나'를 지켜냈고, '도망침'의 끝에는 그래도 그 나름의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현재는 그리 암울하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만 두길 너무 잘했어, 너무 행복해요'도 아니다. 다만


포기하고 도망치면 인생이 망하는 줄 알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네.


앞으로 나의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먼 훗날 지금의 결정들을 후회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도망침'을 통해 내 '숨'을 지켰고 그럭저럭 현재를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낭떠러지에 섰을 때 그 자리에 주저앉아 좌절하고 끝없이 떨어지는 절벽을 바라보며 삶의 의지를 꺾는다. 이 길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흘러버린 시간에 대한 보상심리, 그곳에 쏟아버린 내 지난 노력과 커리어 그리고 나의 생계. 이런 모든 걱정과 고민들이 뒤엉켜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결국 막다른 선택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냥 용기가 없어 돌아 나왔다. 낭떠러지 위에서 한없이 밑을 내려 보다 무서움에 뒷걸음질 치며 그 자리를 떠났다. 도망친 곳에 낙원이 있지는 않았다. 다만 도망침이 내 인생의 끝은 아니었다. 나에게 올 새로운 인생이 설레고 기대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보다 최악을 아닐 거란 믿음으로, 그래도 나는 나를 지켰다는 고마움으로 또 하루를 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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