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다시 아이돌판으로 돌아왔다
한 번 덕후는 영원한 덕후라는 말이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경우엔 딱 맞는 말이다.
난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SS501 그러니까 동슈501과 함께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세대다. 데뷔 전 리얼리티 다큐가 아이돌 데뷔 기본 패키지이던 시절, 데뷔일을 기다리며 열렬히 좋아했고, 음악방송 1위를 했을 때의 그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스무살이 되고 대학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음주, 연애 등이 그때의 오빠들의 자리를 대신했다. 그렇게 내 아이돌 덕질 라이프는 끝이난 줄 알았다. 물론 모든 덕질이 끝이 난 건 아니었다. 한땐 일본 소설에 빠져 수업만 끝나면 도서관 일본 소설 섹션에서 살던 시절도 있었고, 요리에 빠져 온갖 식재료와 레시피를 모으던 때도, 드라마 작가에 빠져 같은 드라마를 스무 번 가까이 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 나이에 갑자기 캐럿이라고?
나는 스스로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아이를 낳고 난 이후, 나의 덕질 대상은 줄곧 나의 아이였고, 아이를 스스로 살아낼 수 있는 사람으로 잘 키우는 게 나의 인생의 큰 목표였다. 물론 이 목표는 지금도 변함이 없고, 나의 최애는 나의 아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한 아이의 엄마가 아닌, 13년 차 직장인이 아닌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일이 넘쳐나던 시기… 어느 날 번아웃이 왔다. 어디에서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스스로를 괴롭혔다. 그러니까 지금의 나의 덕질은 시작은 현실도피였다. 쉽지 않은 워킹맘 라이프에서 나의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인스타그램의 무수히 많은 공구용 육아 용품과 ‘내 아이가 최고’ 피드와 ‘엄마가 이 정도도 안 해준다고요? 엄마 맞아요?’식의 화법에서 도망쳐야 했다. 그래서 나는 인스타그램을 끊어보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앞으로 많은 날들을 ‘내가 이것도 못해주는 엄마라니’라는 자책과 패배감 속에서 살 것만 같았다. 나는 아이에게 부족하지 않은 엄마이고 싶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행복한 엄마이고 싶었다.
인스타그램은 삭제했지만 어떤 플랫폼을 선택해도 모든 알고리즘은 내가 서른여섯 워킹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완벽한 현실도피를 위해 지금의 나와 전혀 상관없는 콘텐츠를 보고 싶어서 새로운 유튜브 계정을 만들었다. 직장인도 아이 엄마도 아닌 그냥 서른여섯의 내가 생각 없이 웃을 수 있을만한 콘텐츠를 보고 싶었다. 현실도피 끝에 우연히 만난 첫 콘텐츠가 나나투어였다. 나나투어 클립이 나를 큐빅으로 만들었고, 새로운 유튜브 알고리즘은 나를 출장십오야, 고잉세븐틴으로 이끌었다. 대체로 행복했지만 때론 버거운 하루를 만날 때면 잠들기 전 세븐틴 콘텐츠를 봤다. 모든 덕질이 그러하듯 나도 처음엔 입덕부정기를 겪었고, 그렇게 짧은 큐빅생활 후 나는 내가 캐럿이 되었다.
처음엔 내가 지금 덕질을 한다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고, 어색함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돌 팬덤 문화에서 내 나이는 주류가 아니었고, 다른 글에서 다루겠지만 현재의 아이돌 팬덤 문화를 관통하는 포토카드에 큰 관심이 없던 나로서는 내가 캐럿이 맞는가라는 정체성 혼란이 왔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세븐틴의 음악을 좋아하고, 무대를 좋아하고, 또 세븐틴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나는 캐럿이 맞았다. 그들을 좋아하는 방식이 주류가 아니라고 해서,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다고 해서 캐럿이 아닌 건 아니었다. 나는 나의 덕질에 좀 더 자신감이 있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서 하는 덕질에서 주위의 눈치를 보고, 내가 어떻게 보일지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캐럿이 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나는 다시 인스타그램을 다운로드하였다. 세상이 세상인지라 인스타그램으로 서로 안부를 확인하는 지인들이 많았고, 또 지금 세대의 소셜 미디어는 또 하나의 사회생활이라 아쉬운 점이 더 많기도 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 무지성 육아용품 공구 공격에 쉬이 흔들리지 않는다. 나 스스로 조금 더 단단해졌달까. 육아 고민이 생길 때면 육아 선배에게 질문을 하거나, 전문가의 육아 강의를 참고하곤 한다. 아무도 공격하진 않았지만 나 스스로 공격이라 느꼈던 그 많은 정보들 속에서 나를 보호하는 방법을 찾았다.
우리 딸이 접한 인생 첫 가요는 음악의 신이고 차를 타고 이동할 때면 쿵치팍치 쿵쿵치팍치를 곧잘 따라 부른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서 선생님에게 우리 엄마는 세븐틴을 좋아해요라고 말하고, 콘서트에 갈 땐 남편과 아이가 콘서트장까지 데려다준다. 나는 이제 이 덕질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 방식대로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은 내가, 다시 스스로를 잘 아는 나로 돌아온 것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