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공이 페스티벌이 되기까지
이 세상에 태어난 날. 생일.
어릴 때부터 생일을 참 좋아했다. 코로나 이전까지는 생일 주간이 되면 초등학교 친구, 대학동기, 동네친구 등등 다양한 모임을 만들어 생일파티를 했다. 실은 생일이라는 좋은 핑계로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게 좋았다. 언제부터인가 친구들은 한해의 절반 정도가 지나간 시점인 내 생일을 다 같이 모여야 하는 날로 인지했다. 내가 생일이라고 모여야 한다고 우기는 덕에 만나는 거라고 너스레를 떨긴 했지만, 생일이라고 시간과 마음을 내어주는 오랜 친구들이 참 고마웠다.
누군가가 태어난 날. 그 누군가가 태어난 것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해서 다 같이 모여 축하를 한다? 심지어 생일 주인공이 없는데도? 그러니까 이건 무한한 애정과 진심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 옛날, 굳이 아이돌 세대를 구분하자면 2세대의 어딘가쯤. 내 기억 속 최애의 생일은 '조공'이 폭발하던 날이어다. 생일이 되면 생일 조공 리스트가 떴다. 명품이 그렇게 비싼 건지, 아이돌에게 비싼 선물을 주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서로 개인적 친분이 없는 사이에도 그런 금액의 선물을 줄 수 있다는 것까지. 이 모든 걸 그 리스트 보고 처음 알았다.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어떤 아이돌은 이사를 하면 팬들이 가전을 다 사줬다더라 하는 소문까지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엔 '우리 오빠들이 1위를 많이 하고, 음반을 많이 팔아도 오빠들은 돈을 많이 벌지 못해. 회사가 다 가져가니까.'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노예계약이 이슈가 되기도 했고, 지금보다는 확실히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투명하지 못했던 건 사실이었던 듯하다. 그 시절 가수들이 유튜브에 나와 메가 히트곡들에 대해 얘기하며 음원정산을 한 번도 받은 적 없다고 말하는 것만 봐도 그 시절 얼마나 엔터산업이 체계가 없었는지 알 수 있다.
아무튼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그 시절 언니들은 총대라는 이름으로 생일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가수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조공'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오빠 잘 부탁드립니다'하는 의미의 도시락을 보내고, 케익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지금의 커피차와 비슷한 느낌인데, 그때 당시 유명한 도시락 가게들은 ‘인가 OOO 조공 도시락,’ ‘뮤뱅 OOO 조공 도시락‘ 과 같은 유명세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때도 '조공'이라는 말이 싫었다. 학교 다닐 때 배운 조공의 사전적 의미는 종속국이 종주국에 때를 맞추어 예물을 바치던 일이었다. ‘조공’이라는 말 자체가 아이돌과 팬의 관계를 절대적 갑과 을로 규정해 버리는 것 같아서 불편했다. 절대적 소비자는 나인데, 조공이라는 건 너무 나를 절대 을로, 구걸하는 소비자로 만들어버린달까. 좀 극단적인 사고이긴 했지만, 그때의 나는 그랬다.
20대 후반 즈음 상수나 연남동을 지나다 작은 카페 앞에 길게 줄 서있는 사람들을 보고,
'왜 누가온대?'
'그냥 그 사람 생일이라서 하는 생일카페래.'
'아니 그래서 누가 오는데?'
'아니 아무도 오지는 않고..'
'근데 왜 모여?'
라는 대화를 해본 적이 있다. 뭔가 10대 시절 느꼈던 조공에 대한 반감으로 생일카페라는 것도 비슷한 맥락의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돌판으로 돌아오고 나서 만난 생일카페는 단순한 조공과는 달랐다. 그 시절 생일카페 왜 하냐고 말했던 나 자신.. 반성한다.
최애의 생일을 맞아, 승관이가 조금 더 행복하길 바라고, 원우가 오늘 하루 더 많이 웃으면 된다는 그 마음이 얼마나 예쁜가. 아이를 낳고 난 후, 팬들의 그 사랑이 그저 철없는 빠순이의 것이라고 치부되기에는 너무 큰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사랑이, 그 마음이 너무 예쁘다. 호시의 생일날. 본가 근처에 걸린 현수막과 생일 광고를 보고 부모님이 너무 감사해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이 괜히 뭉클했다. 솔직히 말해서.. 무조건적인 사랑은 오직 자식에게만 가능하다. 근데 내 자식에게 나와 같은 사랑을 준다고? 이보다 더 감동적일 수 있을까?
그런데 여기서 하나 더 나아가, 생일카페라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최애의 생일에 최애의 사진과 굿즈로 가득한 카페를 꾸미고, 최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최애 얘기를 하는 생일카페.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그저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심지어 생일 당사자가 오지도 않는 생일 카페를 이렇게 정성스럽게 준비하다니. 생일카페에 대해 알게 될수록 나는 이 예쁜 사랑 방식에 조금 반성하고, 또 놀랐다. 생일 카페 컨셉을 정하고, 베뉴를 찾고, 정성껏 찍은 최애의 사진 중 카페에 전시할 사진을 선택하고, 최애에게 어울리는 디저트 메뉴를 고민하고, 함께 운영할 스탭을 찾고… 생일카페는 규모가 조금 작은 팝업스토어를 오픈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팝업스토어와 다른 것이 있다면, 이윤추구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 그저 좋아서 하는 거라는 것이다.
예전에 친구 몇 명이 모여 각자의 친구들을 초대에 파티를 열어본 적이 있다. 나름 꽤나 큰 규모의 루프탑을 빌려 얼리버드로 티켓도 판매했었는데. 놀거리를 찾는 친구들에게 꽤나 흥미를 끄는 일이 되어 백 명 남짓이 모이는 큰 파티가 되었었다. 파티에 온 친구들 대부분이 즐거워하며 또 언제 이런 파티를 하는 거냐고 했지만, 호스트는 두 번 다시 못할 일이었다. 어떤 사건/사고가 발생할지 모르는 이 큰 파티의 호스트였고,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음식이나 술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누군가 소외되지는 않는지. 손님이 친구들이었기에 호스트들의 허술함을 많이 이해해 주었음에도 그날의 파티는 너무 재미있었지만 너무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다시 하라고 한다면… 호스트는 못할 것 같다. 누가 이런 파티를 열어준다면 게스트로 참여하고 싶을 뿐. 그러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엄청나게 큰 사랑이 없다면 생일카페는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번엔 생일카페 방문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머글 시절 가장 먼저 했던 질문. “여기에 생일 주인공이 오지 않는데, 여기 왜 모이는 걸까?”
방문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생일카페를 여는 분들은 ‘판‘을 깔아주는 감사한 분들이다. 너무 행복한 최애가 태어난 날, 눈치 볼 것 없이 마음껏 최애 얘기를 할 수 있고, 못 봤던 최애의 사진도 볼 수 있고, 각 생일카페만의 시그니쳐 격인 특전들도 받을 수 있다. 생일카페는 단지 생일 주인공만 없을 뿐, 덕질 메이트들과 오프라인에서 함께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콘텐츠다. 이 정도면 세븐틴은 캐럿들에게 이용당하는 거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생일카페 문화를 즐기며, 팬덤의 결속력이 더 커지고 팬덤 속에 속해있다는 소속감은 더 높아져간다. 나는 이 생일카페 문화가 좋다. 마치 페스티벌 같다. 캐럿들에겐 멤버별로 13번의 페스티벌 기회가 생기는 셈이다. (생일이 같은 멤버가 둘이라, 2개 페스티벌이 같은 기간에 진행되는 게 아쉽긴 하지만)
내가 이미 탑급 반열에 오른 아이돌을 뒤늦게 좋아하게 된 거라, 다른 아이돌들에게는 여전히 내가 거부감을 느끼는 많은 문화들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몇몇 아이돌들의 문화를 찾아보니 많은 아이돌들이 생일에 선물을 받지 않은 분위기가 대세가 되고, 최애의 생일에 맞춰 생일 카페를 열거나, 광고를 하거나, 아니면 기부를 하는 일이 더 일반화된 것 같다. 물론 이 변화가 팬들 스스로 만들어낸 건 아니다. 몇 년 전 경쟁처럼 점점 과열된 선물들에 몇몇 소속사와 아티스트들이 먼저 더 이상 선물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일은 축하하고 싶었던 팬들의 마음이 모여 이렇게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냈다.
최애의 생일에 조공 리스트를 보면 불편함을 느끼고 반감을 느꼈던 나는 이제 최애의 생일이 하나의 페스티벌이 된 캐럿사회를 보며 생일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