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팔리지 않게 하겠다는 말에 대한 믿음
공연이 다가오자 데뷔 때부터 노래를 좀 더 많이 듣고 올걸 그랬나 싶은 작은 후회와 셋 리스트도 공연 내용도 하나도 모르는 월드투어 첫 공연을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본다는 설렘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리고 첫 공개될 신규 앨범의 타이틀 곡과 유닛곡에 대한 기대감까지. 모두 각자 한 장씩 티켓팅에 성공해 온 사람들이라 주변은 꽤 낯설었지만 마음은 모두가 같았다.
공연은 거대한 스위치 on/off 같은 느낌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모두 조금은 데면데면 off 상태였다가, 공연이 시작된 순간 모두 같은 부분에 함성을 지르고 따라 부르고 on이 되고, 캐럿 노래자랑에서는 다 같이 노래방에 온 느낌으로 즐기다가 멤버들의 소감 한마디 한마디에 울고 웃었다가… 아주 나이스와 함께 공연이 끝나고 환한 불이 켜지고, 스탭분의 퇴장 안내 방송이 나오는 순간 다시 모두가 off. 그리고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퇴장한다. 물론 공연장 밖으로 나가 삼삼오오 다시 만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고양에서 10시 가까이 되어서야 끝난 공연인 탓에 공연이 끝나고는 모두 빠르게 움직였다. 거대한 에너지의 on/off를 보고 나니 그 엄청난 에너지가 더 실감 났다.
콘서트 감상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애가 바뀌었다. 올프가 되었다. 그러니까 모두가 내 최애가 되었다는 얘기다. 물론 콘서트 도중 작은 화재 사고가 있었고, 그로 인해 플로어에 있던 관객들이 힘든 일도 있었던 무탈하지만은 않았던 공연이었지만, 공연 시간 동안만큼은 나에게 큰 행복을 준 공연이었다. 공연장 규모는 생각보다 컸고, 관객들은 많았고 화재로 인해 플로어 관객들이 힘들었다는 것도 콘서트가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2층의 우리는 그 시간 동안 정한이가 정말 왔는지, 저기 있는 게 정한이가 맞는지를 확인하느라 정신없었을 뿐…
내가 공연 시작 전 마음먹은 것 하나는 바로 '핸드폰을 들지 말자'였다. 티켓팅에 너무나 운 좋게 성공해서 온 공연이었기에 나에게 또 이런 기회가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이 공연을 온전히 집중해서 즐기고 싶었다. 바로 앞 줄에 흥 많은 두 분이 앉은 건 정말 행운이었다. 정말 몇몇을 제외하고는 공연장 내내 핸드폰으로 공연을 찍는 데 집중하는 사람들이 많아 핸드폰을 들고 있지 않는 내가 오히려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내가 앉은자리에서 무대 위 세븐틴은 잘 보이지 않았고, 무대 양옆의 대형 스크린을 보는데… 굳이 그 스크린을 핸드폰으로 찍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컸다. 하지만 공연말미 그들이 도롯코를 타고 우리 좌석 앞쪽으로 오는 순간… 나도 핸드폰을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그들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이걸 남기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그건 정말 엄청난 자제력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불과 2시간 전 왜 핸드폰을 드냐고 이해 못 했던 나 자신 반성한다.
하지만 난 다음 공연에 가게 되어도 핸드폰은 계속 들지 않을 예정이다. 내가 이 덕질을 시작한 건 온전히 나를 위해서 내가 행복한 것을 하기 위해서였다. 여전히 누군가는 이 나이에 무슨 덕질이냐고 하겠지만, 나에겐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기에, 다음 콘서트에서도 나는 그 순간을 최선을 다해 즐길 예정이다.
콘서트 전 새로운 앨범에 대한 정보들이 공개되면서 많은 팬들의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퓨쳐링을, 누군가는 컨셉을, 누군가는 소속사를, 누군가는 급기야 멤버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너무나 많은 창구를 통해 너무 쉽게 대중의 평가가 넘쳐나는 요즘. 팬덤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안에서 의견차이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정답이 없는 일에서 누가 맞는지 누가 틀렸는지 알 수 없으니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익명성을 띄는 소셜미디어 상에서 서로가 맞다고 주장하는 일에 표현은 점점더 거칠어지고 날것이 된다. 악플인지 애정을 담은 조언인지 알 수 없이 경계가 모호해지기도 한다. 또 팬이라는 이름으로 때론 악플보다 더 상처 주는 말을 쉽게 해버리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런 것들도 받아들이고 감내해야 하는 것이 아티스트의 무게라고, 더 나아서는 돈 버는 값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난 말들도 쏟아낸다. 하지만 이건 아무래도 너무 잔인하다.
나는 콘서트 말미의 우지의 말이 자꾸 마음에 쓰였다.
캐럿들이 쪽팔리지 않게 하겠다는 말.
나는 쪽팔리는 게 정말 싫다. 그래서 나의 최선을 위해 노력한다. 회사에서 월급루팡 소리 들으며 비아냥거리가 되는 선배이고 싶지도 않고, 얌체 같단 소리 듣는 후배이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쪽팔리지 않게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의 최선을 다한다. 콘서트 말미의 우지의 말에 저 사람, 나랑 결이 같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자기 이름을 걸고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 앞에서 쪽팔리지 않게 만들고 있다는 말을 한다는 것의 무게는 엄청나다. 경험상 쪽팔린 걸 모르는 사람들은 쪽팔리지 않게 하겠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쪽팔린 걸 몰라서 쪽팔리지 않게 하는 게 어떤 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앨범에 담기는 메시지가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대해서는 모른다. 업계종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구조에 대해서, 앨범이 제작되는 프로세스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산업이 거대해지고 고도화된 만큼 아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테고, 또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있을 것이다. 거대 자본과 대중예술이 결합된 전에 없던 이 기괴한 K-POP 산업 구조에서 자신을 지키는 일은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다.
현재의 K-POP 산업과 자기표현에 거침없는 팬덤.
하지만 그 모든 걸 다 떠나서 그 앨범을 만드는 메인 프로듀서이자 멤버로 그가 한 말은 나에게 진심으로 다가왔다.
LOVE, MONEY, FAME
사랑, 돈, 명예
모든 게 맞닿아있는 듯하지만, 또 늘 선택해야 하는 문제. 앨범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우지를 믿어주는 건 어떨까 하던 때가 있었다. 이 글을 처음 쓰던 때는 우지가 이 앨범에 대해 위버스에 글을 남기기 전이다. 그리고 작사작곡이 워낙 임팩트 있어서 그렇지... 우리 지훈이는 음색도 진짜 최고다! 나는 이제 우지가 무슨 말을 하던, 어떤 곡을 가지고 나오던 우선 믿어볼 생각이다. 우아해.
올프가 되었다고 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우지와 슈아의 음색에 반해버린 캐럿의 17 Right Here 후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