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받아들이기 힘든 포토카드
십여 년 만에 아이돌 팬덤 문화를 다시 겪으면서 많은 변화를 느꼈지만, 그중의 최고는 바로 음반 구매의 목적이다. CD를 들으려고 사는 게 아니라는 것. 그도 그럴 것이 요즘 CD플레이어가 있는 집이 얼마나 될까. 앨범이 나오면 1번 트랙부터 한곡 한곡 아껴 듣던, 라디오에서 한곡 한곡 소개해주던 그 감성. 이미 그것은 너무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캐럿이 되고, 팬이라면 음반을 사야지!라는 생각으로 음반을 사려고 핫트랙스에 갔다가 뭘 사야 할지 몰라 한참을 서성이다 그냥 돌아왔던 경험이 있다. CD가 50장도 거뜬히 들어갈 것 같은 앨범부터 CD가 절대 들어있을 수 없는 카세트테이프만한 앨범까지 종류도 너무 다양한 데다가 같은 앨범의 버전이 너무 다양하고 가격대도 다양해서 검색 없이 간 나는 혼란에 빠졌더랬다. ‘OOO 새로 나온 앨범 주세요’하면 레코드점 아저씨가 브로마이드랑 같이 내어주던 음반 구매에 익숙했던 옛날 사람에게는 변한 음반 문화도 익숙해지기 너무 어려웠다.
집에 돌아와서 앨범의 종류를 공부하다, 앨범을 굳이 사야 할까..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같은 앨범이라도 포토 컨셉에 따라 두세 종류가 있는 건 기본이고, 유통처에 따라 특전이라 불리는 포토카드가 다르게 들어있기도 하고, CD 없이 위버스에서 앨범을 들을 수 있는 위버스 버전, 또 최애 멤버 한 명을 위한 캐럿버전까지. 결국 그 많은 종류의 음반들은 동일한 CD에 함께 들어있는 사진이나 굿즈. 더 솔직히는 '포토카드'가 다른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이 음반들에 대해 반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CD와 포토카드, 각종 굿즈들이 함께 들어있는 이 상품의 이름이 '음반'이 아니었다면 나의 반감이 덜했을지도 모른다. 랜덤 포토카드 패키지. 이런 이름이었다면 내가 원하는 포토카드를 갖기 위해 많은 구매를 하는구나 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제야 컴백을 앞두고 소셜 미디어에서 자주 보이던 글들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왜 팬들이 그렇게 많은 앨범을 사는지. 왜 앨범이 나오면 그렇게 분철을 모집하는지. 국내에서 발매, 유통되는 앨범을 왜 해외 앨범 판매 사이트까지 가서 사는지... 그리고 왜 포토카드만 빼고 버려진 앨범 더미 사진이 왜 문제였는지까지도 말이다. 음반 구매의 목적이 변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다.
누군가에겐 LP의 추억이 있겠지만, 나에게는 CD의 추억이 있다. CD를 CD플레이어에 넣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CD가 돌아가기 시작할 때 나는 그 쎄~쎄~ 하는 마찰음을 좋아했다. 갖고 싶은 모든 CD를 가질 수 없었던 그 시기, 친구가 산 보아의 Amazing Kiss 싱글 앨범과 내가 산 박정현의 You mean everything to me 앨범을 서로 교환해서 들었던 추억이 있다. 돌려주기 전까지 반복해서 들었던 그 노래들. CD를 돌려 듣고 또 듣고 그 기억이 참 행복했고 소중했었던 그때. 앨범을 여러 장 사기도 했었다. 구매 목적은 명확했다. 선물. 친구에게 영업하려면, 그러니까 덕메를 만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유튜브 뮤비를 바로 보여줄 수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곰플레이어로 뮤비를 볼 수 있는 방법도 있었지만, CD를 선물하는 건 좀 더 성의 있는 방법이었다. 본가엔 지금도 여전히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 모은 CD들이 가득하다.
그렇다면 왜 포토카드인지 고민해 보기로 했다. 먼저 판매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지드래곤의 usb 음반이 너무나도 충격이었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CD 플레이어가 없는데 음반은 소장가치라도 있어야 한다며 심미적으로 훌륭한 음반을 만든다는 샤이니 키까지. 이제 음반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부가가치가 있어야만 한다. 그게 포토카드가 되었던 가방이 되었든 와인잔 오브제가 되었든 말이다. 그중 가장 쉬운 길은 포토카드일 것이다. 멤버들의 사진만으로 가장 빠르게 구매를 유도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구매자, 즉 팬들에게는 왜 포토카드일까?
초등학교 때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팔던 1세대 아이돌의 사진. 내가 기억하는 포토카드는 과거의 것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온라인 세상에서 오피셜보다 더 멋진 고화질 사진들을 볼 수 있었고, 실물 사진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디지털을 맞이한 우리는 아날로그를 버렸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디지털 퍼스트 시대에는 아날로그가 각광받고 있다. 실은 아직 왜 팬들에게 포토카드가 중요한지... 그 이유를 찾지는 못했다. 아니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하다. 20년 전 덕메였던 친구와 포토카드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포토카드에 대한 소유욕이 없는 우리는 이 팬덤에서 절대 주류가 될 수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만큼 포토카드는 지금의 아이돌 팬덤을 관통하는 주류 문화다.
포토카드를 위한 CD 구매 반대론자였던 나는 첫 콘서트에 다녀와서 앨범을 샀다. 캐럿들이 쪽팔리지 않게 열심히 만든 앨범이라는 우지가 한 말이 떠올라서... 그들이 열심히 만들고 내가 음악앱을 통해 자주 듣는 그 음반을 내가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은 CD를 구매하는 것뿐이었다. 팬클럽 카드도 별도의 굿즈 구매를 하지 않으면 디지털로만 존재하고, 내가 그 곡을 얼마나 많이 듣고 좋아했는지도 사용하는 앱에 들어가야만 확인가능한 지금의 세상에서, 캐럿봉 말고... 내가 캐럿이라는 것을 증빙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실물 음반이었다. 그 이후 앨범이 나오면 한 장씩 구매한다. 나의 최애 포토카드가 나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과거 앨범 중에 내가 자주 듣는 곡이 있는 앨범도 구매했다. 내가 좋아했던 것을 실물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으로 말이다.
이제 컴백 시즌이 되면 앨범을 한 장씩 구매하지만, 나는 여전히 포토카드를 바꿔서 여러 가지 버전들을 만들어내는 앨범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굳이 CD일 필요는 없는 거다. 신규 앨범 컨셉의 랜덤 포토카드 패키지. 차라리 그 편이 좀 더 솔직하지 않을까.
음반이라는 이름의 랜덤 포토카드. 나도 언젠가 포토카드를 위해서 앨범을 사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