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덕질을 응원하는 엄마가 꿈이 되었다.
첫 콘서트를 다녀왔다.
워낙 어려운 티켓팅으로 유명했기에 괜히 도전했다 실망만 할 것 같은 비겁한 마음에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야근을 하다가 나도 한번 도전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인터파크 앱에 접속했고, 플로어는 아니었지만 2층 4열. 꽤 나쁘지 않은 자리였다. 하지만 왠지 여고생이 가득할 거 같은 아이돌 콘서트에 내가 가도 될까 하는 생각에 한참을 고민하다 큰 결심을 했다. 더 늦기 전에 ‘아주 나이스’를 같이 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의 최애 원우의 군입대가 얼마 남지 않았고 본격 군백기가 시작되기 전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았다. 아미인 회사 선배의 ‘군백기 이전 마지막 콘서트를 놓쳐서 지금도 후회한다’는 말이 나를 움직였다. 그리고 고민하던 그때 캐럿봉 온라인 품절이 풀렸고, 홀린 듯 캐럿봉을 주문한 나는 서른여섯에 첫 세븐틴 콘서트를 가는 캐럿이 되었다.
콘서트 가기 전부터 만반의 준비를 했다. 너무 아줌마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누군가에게 불청객처럼 느껴지기는 싫었다. 유튜브에서 콘서트 준비 영상도 찾아보고 캐럿봉에 티켓, 그리고 초코바까지 챙겨 출발했다.
콘서트장에 조금 일찍 도착해 주변을 돌아보며 콘서트 문화를 지켜보는 일은 재밌었다.
도착해서 처음 간 곳은 콘서트에서 온 캐럿들에게만 콘서트용 포토카드를 나눠주는 캐럿존이었다. 신분증과 티켓을 확인하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카드를 받았는데, 내가 받은 포토카드는 정한. 포카를 받고 나왔더니 캐럿존 앞에 포토카드 교환의 진풍경이 펼쳐진다. 원하는 멤버 포카를 받지 못해서 “민규 있어요. 정한 구해요. 호시 있어요. 도겸 구해요”를 외치는 캐럿들부터, 미니 화이트보드에 멤버별 숫자를 써서 교환을 찾아다니는 캐럿들, 원하는 멤버가 한 번에 나와서 돌고래 소리를 내는 캐럿들까지 캐럿존 앞에는 모든 희로애락이 다 있었다. 처음 보는 장면에 너무 놀랐던 건지 콘서트에 다녀온 후 한동안 환청처럼 "민규 있어요. 정한 구해요"가 귓가에 맴돌았었다. 그 어떤 교환도 가능하게 한다는 정한 포카를 가졌지만, 캐럿들의 포카 교환 문화에 함께할 용기가 없었던 나는 첫 콘서트에서의 첫 포토카드라는 데에 의의를 두고 정한 포카를 간직하기로 했다.
그렇게 포토카드를 받고 공연장으로 들어가기 전, 커다란 스타디움을 한 바퀴 돌았다. 삼삼오오 모인 캐럿들은 돗자리에 앉아 굿즈를 나눔 하고 있기도 했고, 슬로건을 판매하기도 했고, 응원봉과 포카를 들고 서로 인증샷을 찍어주기도 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캐럿들도 많았다. 실제로 공연장 안에서 내 주위에 앉은 분들 중 상당수가 중국에서 온 캐럿들이었다. 월드투어를 다니면서도 정작 내 나라에서는 공연을 하지 못하는 중국인 멤버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쉬울까 하는 생각 하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러 비행기를 타고 온 그들의 소중한 마음에 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또 한편으로는 차 타고 쉽게 공연장에 와서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싶었다.
원하는 멤버 포카 교환을 위해, 누가 더 높냐고 서로 물으며 깔깔 웃던 앳된 목소리의 친구들부터, 얼마 전 다녀온 g.o.d. 콘서트가 어땠는지 얘기하는 동년배로 추정되는 사람들도, 딸아이 손잡고 온 엄마까지 내가 이렇게 다양한 여성들을 한 공간에서 만난 적이 있었을까. 여중, 여고를 나왔지만 이렇게 한 번에 많은 여자들을 본 건 처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10대부터 40대까지 동아시아 여성 대통합을 세븐틴 콘서트에서 마주했다.
물론 여성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비록 내가 있던 구역에서 보지는 못했지만 공연을 보러 온 남성들도 있었을 테고, 그보다는 소중한 사람들 바래다주고, 데리러 온 분들이 많았다.
그중 공연 시작 전 우연히 듣게 된 아빠와 아들의 대화가 참 인상 깊었다.
-누나 안 먹는다 할걸?
-그래도 저녁때까지 어떻게 굶어. 안돼.
사운드체크에 딸을 들여보내고, 아들의 손을 끌고 김밥을 사러 가던 아빠의 따뜻함. 그리고 누나를 너무 잘 아는 동생. 딸이 좋아하는 것을 응원해 주고 또 딸이 혹시나 배고플까 김밥까지 사다 주는 다정한 아빠와 군말 없이 누나의 콘서트 나들이에 따라나선 동생이 함께하는 그 가족의 행복이 느껴져서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공연이 끝나고 그 많은 사람들이 퇴장하는 길. 카카오 T 셔틀을 예약해 두었던 나는 부지런히 집에 가야지라는 생각에 아주 나이스가 끝나자마자 밖으로 나왔는데, 거기서 또 처음 보는 광경이 펼쳐졌다. 딸을 데리러 온 수많은 부모님들이 딸 이름을 핸드폰에 써서 들고 계신 게 아닌가. 공연의 행복을 가득 안고 밖으로 나온 딸과 그 딸에게 "재밌었어?"라고 물어보며 안아주는 아빠. 공부는 안 하고 연예인 쫓아다니는 빠순이라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분위기에서 어린 시절 덕질을 했던 나는, 덕질이 하나의 문화생활로 인정받은 듯한 모습에 또 한 번 울컥했다. 물론 우리 엄마는 나의 첫 콘서트에도 함께 동행해 줬던 그 시대 흔치 않은 멋진 엄마였다.
물론 다정하기만 한 가족만 있었던 건 아니다.
- 왜 이제 나오는데.
- 끝나자마자 나온 거라니까.
- 뭐 끝나자마자 나와. 사람들 다 나오더만.
앵콜 도중 먼저 집으로 가기 위해 공연장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을 보고 공연이 끝났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딸이 연락이 되지 않자 불안했을 터이다. 사람들 많은 곳에서 혼내는 아빠에게 딸은 서운했을 테고. 나이를 먹어서인지, 엄마가 되어서인지... 딸을 혼내면서도 안도하는 아버지의 표정이 먼저 보였다. 핸드폰도 터지지 않고 몇 만 명이 한 번에 쏟아져 나오는 공연장에서 혹여나 딸과 엇갈릴까 얼마나 마음 졸이셨을까. 감정 표현이 투박한 부녀는 서로에게 화를 냈지만, 생각해 보면 일단 딸을 데리러 여기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딸을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 부녀도 집에 가는 길엔 콘서트의 행복이 어땠는지 얘기하며 집으로 돌아갔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작은 결심을 하나 했다. 내 아이가 커서 누군가의 팬이 된다면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기로. 콘서트 티켓팅도 같이 해주고, 콘서트 끝나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표정으로 공연장밖으로 나오는 아이를 꼭 안아 줘야지. 근데 우리 딸 커서 아이돌에 관심 없으면 왠지 서운할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