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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인 hyein May 02. 2023

기록은 대단하지만 대단한 것이 아니다

기록하는 삶

순신의 난중일기, 안네의 일기, 파브르의 곤충기, 사마천의 사기,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콜럼버스의 항해록, 하멜의 하멜포류기, 박지원의 열하일기,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 이는 위대한 사람이 남긴 기록일까? 기록했기 때문에 위대한 사람이 된 것일까?  - 윤소정의 생각 中


 아주 긴 시간을 한 곳에 차근차근 기록하신 분들을 보면 동경을 하게 되는 요즘, 기록을 열심히 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다니게 된다.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보다 어떻게 했길래 오래 기록할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말이다. 나의 기록을 시작 하기 위한 레퍼런스 수집이었다. 어차피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무슨 레퍼런스가 필요하냐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난 그리 꾸준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편이라 지속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기록 선배들에게 기록의 마음을 배우고 싶었다. 모두의 시작은 나와 같았을까하는 마음에 오래된 기록들에 더 눈길이 가고, 그게 또 모두들 비슷한 시간을 견뎌오는구나 하는 위안이 되었다.


 좋은 삶은 어떤 삶인지 생각하고 하루하루 그저 살아내는 생존을 위한 삶이 아닌 꼭꼭 씹고 음미하는 삶을 살리라 다짐한 후 제일 먼저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기록이었다. 어제보다 오늘의 나는 스스로를 얼마나 소중히 대해 주었고 얼마나 성장했는지 스스로 깨닫기 위해서도 기록하는 것을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기록이라는 게 참 쉽지 않은 것이 막상 쓰려고 보니 복잡한 것이었다. 하루에 일어나는 일은 너무 많고 그것을 카테고리로 엮을 것인지, 아니면 그냥 그저 다 써 내려갈 것인지, 그때그때 느낀 감정을 쓸 것인지, 그것을 어디에 쓸 것인지, 사진을 넣을 것인지 말 것인지 하는 너무 많은 선택지 앞에 우왕좌왕하기도 했다.

  

 매일 기록을 하는 사람일수록 멋진 문체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긴 글도 쉽게 쓰는 비법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기록의 고수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화려함, 엄청난 아이디어가 아닌 나만의 방식으로 시작하여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록하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록을 시작할 때 백지의 상태는 누구나 같다는 것. 그러니까 기록하는 비법은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나의 이야기를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다. 그 기록이 훗날 대단한 포트폴리오나 대단한 책이 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평생의 기록이 한 권의 책이 되기도 하고 3일간의 여행이 한 권의 책이 되기도 한다. 영감 노트를 기록하시는 마케터 숭님은 자신의 영감을 건드리는 모든 것을 인스타그램으로 기록하고 10년 동안 글을 써왔다던 윤소정 님은 자신의 생각을 한 달에 한번 1권의 뉴스레터와 전자책으로 엮으신다. 제이노트님은 생각을 요약과 시각화를 통해 기록하신다. 스토리 앤 지북 앤 필름의 마르코 님은 독립출판이라는 기록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책 속에 기록으로 남고 있다. 이렇게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기록을 이어가고있다.


나는 어떻게 기록을 이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답은 일단 어디든 남기는 것이었다. 나는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여러 일을 한꺼번에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다양한 곳에 그날의 기분에 맞춰 글을 쓰기로 했다. 이렇게 책이 되었으면 하는 글들은 브런치에, 일에 관한 회고는 일스타그램(@hyein.off)에, 사소한 기억들은 일상스타그램(@from.hye.in)에, 출판의 기록은 베터에 남기기도 한다. 기록이 분산 되어 효율적이지 못한 것 같지만 내 기록은 효율보다 내가 모아보기 좋은 방식을 택했다. 노트의 인덱스를 붙이는 것 처럼 말이다.


 기록을 꾸준히 하기 시작하다보니 결국 기록은 대단하지만 대단하게 쓰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써야 하는 부담감에 좀처럼 쓰기 어려운 대단하고 화려한 글보다 차곡차곡 쌓아가는 실수 많은 서툰 기록이 결국은 더 대단한 기록이 되기 때문이다. 막 올린 퍼즐 한 조각으로는 전체 퍼즐을 유추하기 어렵다. 퍼즐조각을 쌓으면 한 폭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기록이 바로 퍼즐과 같다. 나만의 기록을 쌓다보면 나라는 그림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록하는 것은 대단하지 않을 수 있지만 모인 기록은 대단하라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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