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온 천지가 녹음으로 뒤덮인 곳이다. 웬만한 우퍼보다 크게 진동하며 기쁜 목소리로 노래하는 곤충들의 마음도 이해가 되는 곳이다. 우리의 문답이 오고 간 지 3주째 되는 날, 이 숲 속은 곤충이 얼마나 신나는지 목청껏 울어서 따로 음악을 안 들어도 된다는 나의 말에 그는 내게 시스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시스템?' 내 머릿속 뉴런은 시스템이란 단어 뒤에 컴퓨터란 단어, 시스템 에어컨이란 단어를 찾고 나서 더 이상 팔을 뻗을 다른 뉴런을 못 찾은 채 시무룩 해졌다. 그는 당황한 내 표정을 보더니 자신이 맥락 없이 질문해서 내게 혼돈을 주어 미안하다며 부연 설명을 했다. 그는 우리는 시스템과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이 지구에 태어날 때부터, 그때가 바이러스부터인지 스트로마톨라이트부터인지, 아니면 공룡부터인지, 유인원부터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가 진화를 거듭하며 현재의 우리 모습이 되어갈 동안 구축해 온 생존과 번식에 최적화된 우리의 생체 시스템을 자신은 시스템이라고 줄여서 말한다고 했다. 나는 고교 생물 시간에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인간 세포만큼 에너지 효율이 좋은 엔진을 아직 개발하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던 때가 기억났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다시 물었다.
"독자님은 시스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는 제 시스템에 고마워요. 조금만 먹어도 배부르고, 아직 오작동하는 곳은 없는 것 같은걸요? 아참, 잠을 8시간 이상 자야 완전한 컨디션이 되고, 햇빛 없는 날과 덥고 추운 날 예민해진다는 점 빼면요!"
라는 내 말에 그는 약간 벙 찐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럼 본인 외에 다른 사람들의 시스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요즘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을 보면 시스템이 본인을 보호하는 역할은 해내지만 자신의 생존과 번식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시스템이 영혼 없이 홀로 작동해서 타인에게 해가 되는 경우도 있지 않냐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영혼이 과거부터 유전으로 이어진 시스템에 얽매여 오명을 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야기의 또 다른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순간 그가 소설을 쓰는 행위가 소설가 너머 종교인처럼 보였다. 또 '노르웨이의 숲' 이야기 속 미도리가 들려주던 야시꾸리한 대화마저 어떤 의미가 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느라 잠시 멈춘 나를 보더니 아마 나의 삶에선 시스템의 비중이 굉장히 작은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나는 아마도 초식동물의 세포를 가진 것 같다고 답했다. 송곳니도 무디다는 말과 함께... 그래도 이제 시스템이 무엇인지도 이해했고 작가님이 소설을 쓰는 이유라고도 하니 나만의 답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나도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시스템이 홀로 작동을 하더라도 영혼의 품위를 손상하지 않으며 오히려 시스템이 영혼과 접속할 수 없는 순간들조차 영혼의 뜻과 발맞추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과 훈련의 가치라고 생각해요. 인공지능이 특정 알고리즘을 학습하며 새로운 시스템을 형성하고 이것을 반복과 다양한 예제 활용을 통해서 강화하는 것처럼 우리의 시스템에 좋은 알고리즘을 넣는 것이 교육이고 이를 강화하는 것이 훈련과 연습이라고 믿어요."
하루키는 자신은 자신이 받았던 학교 교육에서 알고리즘이라는 명목으로 자신에게는 의미 없고 기계적인 학습만을 강요받았던 기억이 있다며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나는 유명한 소설가 앞에서 이야기하기는 조금 부끄럽지만 아마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일지라도 우리는 분명히 가정, 이웃, 학교 등에서 만난 주변 어른들로부터 걷는 법, 바르게 먹는 법, 보는 법, 예의를 지키는 법, 듣는 법, 연필을 잡는 법, 글을 읽는 법, 그리는 법, 말하는 법, 배려하는 법 등 지금은 너무 당연한, 어쩌면 스스로 성취했다고 믿고 있을 수많은 알고리즘들을 반복하여 배워왔고 훈련해 왔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개성을 갉아먹는 교육을 비판하는 그에게 앞으로 교육은 보다 나은 인간 이해를 바탕으로 획일적이지 않고 잠재력을 실현하는데 도움이 될 맞춤형 교육으로 나아갈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길 바란다고 위로를 전했다. 이 점에서 현재의 다인수 교실은 그곳을 제대로 경영하려는 의욕이 있는 교사에게 큰 딜레마일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대신 나는 일단 우리가 주변으로부터 기초적인 알고리즘만 잘 습득한다면 우리에겐 스스로 개성의 불씨를 꺼지지 않게 할 희망이 있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는 그게 무엇인지 무척 궁금해했다. 나는 궁금해하는 그의 표정이 더 보고 싶어서 대답을 바로 하는 대신 그에게 할 오늘의 질문으로 대신했다.
"만일 작가님이 죽고 작가님과 내면과 외면이 닮은 어린 또 다른 하루키가 태어난다면, 또 그에게 본보기가 되어줄 만한 믿음직한 어른이 한 명도 없다면, 어린 하루키는 어떻게 내면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을까요? 또 어떻게 자신에게 맞게끔 인생의 방향을 잡을 수 있을까요?"
하루키는 바로 내 말속 함의를 알아채고 말했다.
"글을 쓰기 참 잘했네요. 수필도 몇 권 더 써야겠어요. 아무래도 반골기질이 다분할 리틀 하루키들이 지금 같은 학교에서 만족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그리고 하루키는 내게 오늘 꽤 마음에 드는 별명을 하나 지어줬다. "책 예찬론자"
사실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책 한 권이 아니었다면 나와 그 사이에 이어질 수 있는 다리는 없었을 것이다. 또 그랬다면 나는 상실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지금보다 서툴렀을 것이고 뇌 속에 시스템이란 개념도 컴퓨터나 에어컨 시스템에서 머물렀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컸다고 오만하게 생각하지만, 어릴 적에는 주변의 본보기를 보고 배우고, 커가면서는 반면교사에게서도 배우고, 책과 또 다른 매체들을 통해 우리의 생각주머니를 불려 간다. 지금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느끼는 것 중에 시스템에 의한 것을 제외하면 정말 주변에서 배우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는 걸까? 이 점에서 혼자를 좋아하는 나는 혼자서도 누군가로부터 배울 수 있는 책 예찬론자가 맞다.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읽는다는 것은 책 속 진실의 폭만큼 나의 경계를 부수고 넓히는 일이다. 우리는 독서 여정을 매일 지속한다. 시야를 부수고 넓히며 서로의 경계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우주에 이를 때까지. 어쩌면 우주가 팽창하는 까닭이 바로 우리가 진실의 폭을 읽어내며 방출하는 서로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에너지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