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이어주는 건 아마도(#하루키 #상실감 #우울)

by 혜인

발에 밟히는 풀내음이 짙다. 어제 하루키를 만난 후에, 그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아는 상태로 질문하고 싶어서 밤을 새워 노르웨이의 숲을 다 읽었다. 이렇게 열심히 영어 독해를 한 것은 대학 입시 이후로 처음이었다. 역시 사람은 마음의 동물인지 책을 읽어내겠다는 마음을 먹으니 기적처럼 끈기와 이해가 따라왔다.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들의 감정선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내리락 더 내리락하다 보니 마음이 아래로 향했다. 그제야 왜 그가 내 가족의 죽음에 이 소설이 어울린다고 했는지 와닿았다. 영혼의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글이었다. 새벽 이슬이 아직 마르지 않아서 살짝 젖은 해먹에 누워 있으니, 해먹의 습도마저 나를 공감해 주는 느낌이었다. 숲 속 나무들이 서로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아도 뿌리들은 서로 깊게 얽혀 있듯이 상실감이라는 보편적 감정이 작품 속 주인공 영혼의 뿌리를 타고 내게까지 와서 공명한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같은 시간에 하루키는 숲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서로 눈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 그가 지나가고 그에게 첫 질문으로 무엇을 물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하나의 질문, 이미 누군가 했을 것 같은 질문이나 그가 자문자답해서 수필로 적을만한 질문이 아니었으면 한다. 머릿속에 질문을 하나씩 떠올린다.

'어떤 책을 최근에 읽었나요?'(너무 뻔해서 취소),

'하루키에게 소설이란?'(그가 완전한 노장이 되었을 때 묻고 싶으니 취소),

'하루키에게 행복이란?'(본인의 수필집에 쓸 것 같아서 취소).

내가 아니면 어느 누구에게도 못 들어봤을 만한 참신한 질문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시간은 금방 흘렀다. 벌써 저 멀리서 그가 달려오고 있다.




그는 내게 누가 먼저 질문을 할지 물었다. 질문이 튀어나와 버렸다.

"작가님은 마음이 가장 아래로 내려갈 때 어떻게 빠져나오나요?"

하루키는 혹시 자기 소설이 나를 우울하게 한 건 아닌 지 걱정했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오히려 주인공들의 아픔을 보며 내 마음속 슬픔을 잘 어루만져줄 수 있었다는 말과 함께. 그는 이야기 속에 마음을 하강하는 것들이 섞여야 진짜 이야기가 된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래서 창작자로서 작품 속 음의 기운을 창조할 때는 독자보다도 더 침잠한다고 했다. 그래서 달리는 걸음 한 걸음마다 이 기운을 털어낸다고 했다. 또 그는 과거에 재즈클럽을 운영했을 정도로 재즈를 좋아해서 리듬이 있는 재즈를 듣기도 한다고 전했다. 나는 이 질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남들은 전혀 상상도 못 할, 작가님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방법도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아직 찾지 못해서 앞으로 찾아내고 싶은 미래의 방법이긴 한데 자기와 비슷한 존재를 찾아서 서로의 처지를 공감하면 좋을 것 같다고. 그가 미래에는 꼭 공감의 친구를 만나기를 바라며 이번엔 그의 질문을 듣기로 했다.


"독자님은 '노르웨이의 숲'에서 어떤 주인공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어제 내게 책을 다 읽게 한 것은 아마 이 상황을 예측한 내 영혼이었을까. 나는 그에게 내게 소설 속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준 것은 와타나베라고 말하고 그 이유를 말했다. 와타나베를 보면 생각나는 지인이 있어서라고. 고전 소설과 음악에 깊이 빠지는 사람들은 다른이 보다 섬세한 감각 센서를 가진 존재라는 내 표현에 그는 동감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와타나베가 또 다른 하루키의 인격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소중한 이의 상실 이후에 매사에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그를 이해한다고 했다. 마치 선인장처럼 거리를 두는 행위는 오히려 또 다른 상실이 찾아왔을 때 나의 상실의 아픔을 줄여줄 거라는 아픈 기대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왜 이렇게 상실의 아픔이 있는 존재에게 또 다른 상실들이 이어지는지에 대해서 하루키에게 약간 투정을 부렸다. 그러자 그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사실 같은 고통을 계속 겪으며 인간은 추락하기도 하지만 결국 밑바닥을 박차고 솟아오를 수도 있다고 믿는다는 자신만의 깊은 뜻을 전해주었다. 마치 걸음마를 할 때 계속 넘어지고 생채기가 반복되다가 잘 걷게 되고 마침내 뛰게 되는 인간처럼.

그는 내게 와타나베 같은 친구가 또 있냐며 신기해했다. 나는 친구보다는 내가 평소에 관찰한 사람들 중 한 명에 가깝다고 했다. 만일 와타나베가 옆에 있었다면 이 책 속 상황에 대해 무슨 말을 할 것 같냐는 그의 질문에 나는 대답했다. 나를 상실의 아픔에서 애써 꺼내지 말라는 말을 할 것 같다고. 그에게 현실 감각을 되찾아야 한다는 말이 지금의 그에겐 폭력으로 들릴 것 같다고. 의 기운을 충분히 누리도록 해주라고. 그러면 언젠가 자신이 감각한 모든 것들, 기억한 모든 것들을 용기 내어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올 거라고. 우리의 다그치지 않고 묵묵히 곁에 있어 준 기다림이 그에겐 음의 기운을 지우고 용기를 줄 거라고. 그러자 와타나베로서의 하루키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접속해 주어 고맙다고 했다. 또 내게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신경을 써주고,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주는 사람이자 사람들 속에 있으면 요새 말로 인싸일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의 작품에 하루키가 말한 특징의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게 나라고 착각하겠다는 말과 함께 이왕이면 사랑스럽게 묘사해 달라며 소박한 욕심 어린 청탁을 했다. 그는 수락했다.



우리를 이어주는 건 아마도... 우리 영혼 가장 깊숙한 곳이 서로 맞닿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야기다. 우리가 이야기 속의 또 다른 우리를 만날 때, 언젠가 내 안에 기거했을, 또는 언젠가 우연히 스쳤을 또 다른 우리를 만날 때, 영혼의 뿌리가 마음의 땅을 뚫고 내려가 자라며 서로 만나고 얽히고 끝내는 안을 것이다. 하나가 될 것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나무가 아닌 무경계의 숲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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