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에서 만난 하루키(#무라카미하루키 #노르웨이의숲)
쉼이 필요해서 한 달간 머무르기로 한 숲 속 게스트 하우스. 이곳에서 온 지 사흘 째인 나는 오늘도 칸트처럼 항상 같은 시각, 같은 곳에 출몰하는 러너를 마주친다. 어김없이 그는 일정한 속도로 숲을 달린다. 같은 동양인이고 나보다 나이도 있어 보이는데 저렇게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하는 모습이 대단한 것 같다. 나는 숨쉬기 운동이라도 열심히 해야지. 숲 속 공기를 깊이 들이마셔 본다.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뿌듯하다.
이곳 게스트 하우스가 참 마음에 드는 이유 중 하나는 숲 속에 있어서 공기가 맑다는 것, 숙소 바로 앞에 책 읽기에 안성맞춤인 푹신한 해먹이 있다는 점이다. 여행 오며 딱 한 권의 책을 들고 왔다.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노르웨이의 숲'. 서점에서 '한 권으로 끝내는 여행 문장[영어 편]' 책을 고른 후 숲 속 게스트하우스와 어울리는 책을 고르다가 영어원서 코너에서 고른 책이다. 미국까지 여행온 김에 폼을 내며 원서를 골랐다. 사흘 째인데 아직도 30쪽을 못 넘어가고 있다. 그렇다. 책 읽기보다는 숲과 잘 어울리는 표지가 근사한 책을 든 채 멍 때리며 나무를 바라보는 시간을 즐기고 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내가 책 읽기를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는 때는 바로... 지금이다. 아까 숲을 지나간 러너가 유턴해서 이곳을 아까보다 조금 느려진 속도로 다시 뛰어올 때. 그분 덕에 시계가 필요 없으니 참 편하다. 숙소로 들어가는 채비를 하는 순간,
"Hello. Excuse me."
러너가 날 불렀다. 혹시 내가 자신을 피해서 들어간다고 생각했나? 아니면 무언가를 흘렸나? 하고 뒤를 들어보니 그가 내 책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행자 같은데 이 책을 읽어주어 고맙다고. 혹시 일본인인지. 그때까지도 난 상황파악을 못했다. 매일 달리기에 은퇴한 운동선수쯤으로 생각했던 그가 바로 이 소설의 저자 하루키였다.
그는 원래 달리기 중에는 매일 만나고 스치는 사람에게도 말을 걸지 않는다고 했다. 또 독자에게도 따로 말 걸지 않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사흘째 자신의 책을 곰곰이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읽어가는 나를 보고 궁금증이 생겼다고 했다. 차마 멍 때렸다고 말하진 못해서 거짓말 대신 배시시 웃기를 택했다. 다행히 그의 화제는 바로 내게 하는 다른 질문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얼마나 더 머무를 예정이고, 왜 여행을 오게 되었느냐고. 한 달 동안 머무를 예정이라 전했다. 지금은 사흘째라는 것도. 청년시절에는 마을 청년회장까지 맡을 정도로 에너지 넘치던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난 사건 때문에 왔다고, 생전 처음 겪는 가까운 죽음의 목격 이후에 잠시 쉬고 싶어서 큰맘 먹고 왔다고 했다. 그는 내게 소설책과 내 머리에 핀 대신 꽂은 펜을 줘보라고 했다. 그러더니 책의 제일 앞 장에 영어로 '당신이 느끼는 상실이 언젠가는 아름답고 그리운 재즈가 되길'이라고 적어주었다. 그리고 이 책을 여행길에 가져온 이유를 알겠다고 했다. 나는 모를 그 이유를 그가 미리 아는 게 겸연쩍었지만 일단 작가가 내 상황에 잘 어울리는 상황이라고 하니 다행과 고마움을 담아 웃었다. 그리고 그는 하나 더 물었다. 여기서 머무는 동안 달릴 생각 없냐고.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운동은 딱 하나, 숨쉬기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 마음속 또 다른 나의 충동 어린 말이 튀어나왔다.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면, 함께 달리며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는 달릴 때는 달리기에 집중해야 하니, 마지막 날에는 함께 달리고, 한 달간 자신의 달리기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하루에 한 가지 질문씩 인터뷰를 해도 되는지 물었다. 나는 그가 인터뷰를 받고 싶다는 말을 잘못했나 싶어서 다시 물었는데 세계적인 작가인 그가 평범한 나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게 맞았다. 혹시 소설의 재료가 되는 거냐고 했더니 그럴 수도 있고 만일 그게 실례가 된다면 소설 속에 등장한 캐릭터가 나인걸 나조차 알 수 없게 해 주겠다고 했다. 호기심 많은 나는 조건을 걸고 수락했다. 그도 내 엉뚱한 인터뷰에 응해주는 조건을 걸고. 그렇게 합치면 시간 상으로 한나절쯤 될 양방향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소설가와 소설의 재료가 될 두 인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