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누군가를 만나다(#생텍쥐베리 #지중해)

by 혜인

아무도 믿지 않는 나만의 비밀이 하나 있다. 그 비밀은 바로 햇빛이 쨍쨍 내리쬐던 7월 31일 여름날 일어난 일이다. 이탈리아 남부 지중해에서 난 잊지 못할 누군가를 만났다. 모처럼 친구와 함께 떠난 이탈리아 여행이었다. 우리는 아말피에서 포지타노를 거쳐 카프리섬으로 함께 가려 했다. 그런데 나와 함께 갔던 친구가 우리의 여행을 도와주는 가이드분과 묘한 기류를 형성하더니 내게 카프리섬에 가지 않고 포지타노에 기다려주면 안 되겠냐는 제안을 했다. 가이드분과 친구가 서로에게 "떼소로미요!"라고 하는 걸 보니 그들은 내가 유럽 쪽 언어를 조금도 구사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은 듯했다. 서로 연인도 아닌데 "내 보물!"이라고 할 정도면 친구의 제안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마침 우리가 묵었던 포지타노 숙소는 연박이 가능했고 나는 포지타노의 풍경이 꽤 마음에 들었다. 이곳에서 더 머물 수 있다면 숙소까지 낑낑 대며 트렁크를 들고 온 수고도 더 보상받는 기분일 것이었다. 나도 언젠가 연인과 카프리섬을 갈 테다는 마음으로 친구의 제안을 선심 쓰듯 받아들였다. 그렇게 내게 포지타노에서 여유로운 하루가 주어졌다.


숙소에서 바라보는 지중해 해안은 예술이었다. 푸른 지중해 바다와 하늘의 만남은 마치 세계의 끝에 온 느낌을 주었다. 작고 아름다운 숙소와 가게들은 구름처럼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이곳의 주택들은 바다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평화롭게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해안을 따라 피어나는 레몬 나무와 잎사귀가 달린 나무들은 쨍쨍한 햇빛을 반기며 노래하고 나 역시 숙소의 그늘에서 커피 한 잔을 즐기며 멍하니 바다만 쳐다봐도 행복했다. 마치 시간과 공간이 미묘하게 얽힌 평화롭고 신비로운 곳이었다. 커피만 마시니 목이 살짝 텁텁하여 물을 가져오려던 찰나, 나는 무언가 반짝이는 섬광이 바다로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태어나서 실제로 별똥별을 본 적은 없지만 분명히 한 여름 낮인데 하늘에서 유성 비슷한 것이 떨어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 김에 슬리퍼를 신으로 갈아 신고 해안가로 내려갔다.

해안가로 가니 한낮의 태양 빛이 너무 쨍쨍해서인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선크림도 잘 바르지 않은 나는 용기 있게 내가 본 유성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날 찾는 건가요?" 나는 깜짝 놀랐다. 그는 비행 조종복을 입고 있었고 바다에서 갓 빠져나왔는지 물에 빠진 생쥐꼴이었다. 불어를 구사하는 그는 내게 너무나 익숙한 사람이었다. " Êtes-vous Antoine Marie Roger De Saint Exupery?" 나는 물었다. 그 역시도 놀랐다. 전혀 예상하지 않은 곳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이라니. 일단 그는 내게 아무도 없는 곳, 아무도 자신을 볼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가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나를 몰랐지만 나는 그를 알았고, 이 세상에서 절대 범죄를 저지를 수 없는 작가가 한 명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일 것을 알았기에 내 숙소로 그를 데리고 왔다. 나와 생텍쥐베리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일단 그에게 우유와 올리브칩을 내어주었다. 그는 허겁지겁 먹으며 허기를 채웠다. 나는 그에게 왜 무리한 비행을 시도했는지 물었다. 그는 자신은 사람들 사이에서 신비롭고 낭만적인 은퇴를 원한다고 말하며 이를 위해서 지중해 바다로 계획적으로 뛰어든 것이라고 했다. 아마 자신의 비행기는 해류로 인해 이곳과는 거리가 있는 지중해 어디쯤에서 발견될 것이라고도 했다. 모험으로 끝을 맺은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게 언제나 용기를 가지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면서.

그러면서 그는 내가 그의 모국어를 알아듣는 것에 대해서 이제야 놀랐다. 그는 내게 이쪽 분야의 직업을 가졌냐고 물었다. 나는 샹송을 좋아하다 보니 저절로 프랑스어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작가님 작품도 원어로 읽으며 프랑스어가 더 좋아졌다고 전했다. 그러자 그는 어떤 작품을 읽었는지 물었고 나는 "어린 왕자"와 "야간 비행"을 읽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왕자 속 비행사가 어린 왕자를 처음 만났을 때 느낀 충격처럼 아무도 자신을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나를 만나게 된 것이 놀랍다며 웃었다. 이렇게 그와 나의 우주, 비행, 꿈으로 가득한 낭만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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