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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인 Nov 27. 2018

프로젝트 409: 작은 신혼집 인테리어 기록 <1>

서울 끝자락 우리의 작은 신혼집이 완성되기까지



 '부자'는 아니지만 '시간 부자'의 여유

오래 교제한 지금의 남편과 결혼에 대한 생각을 차곡차곡 나눠온 덕에, 자연스레 집과 주거에 대한 생각도 많이 정리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 취향의 차이로 인한 갈등이 적었던 건 그래서였다. 결혼식 5개월 전에 매매 계약을 하고, 3개월 전에 미리 입주를 해서 촉박하지 않게 인테리어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감사한 일이다. 우리는 결코 부자는 아니지만 결혼에 있어서  '시간 부자' 였던 덕분에 시간이 허락하는 한 하고 싶은 건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괜찮아, 우리에겐 시간이 있어"




이왕 할 거면 제대로,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는 우리 집 만들기.

결혼을 준비하며 많은 돈을 쓰게 되지만, 주거와 관련된 비용은 스케일이 남다르다. 다른 건 카드값 할부로 어떻게 할 수 있다고 해도 집은 '억' 소리가 나고 인테리어도 몇 천만 원 수준. 우리가 계약한 집은 지어진 지 9년째이고, 신혼부부가 오랫동안 아주 깨끗하게 살았던 집. 주위에서는 아주 오래된 아파트도 아닌데 돈을 아끼라며 도배와 장판만 하면 된다고 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이왕 많은 비용을 들여 사는 집이라면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는 집으로 만들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공간에 대한 애착이 많았지만 부모님의 집이었기에, 기숙사였기에, 세입자였기에 어쭙잖게 꾸몄을 때의 충족되지 않는 아쉬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체 인테리어를 감행했다.


인테리어 사장님도 인정한 깨끗하게 관리가 잘 된 집이었지만, 어딘가 올드한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순서대로 거실 화장실, 안방 화장실, 그리고 부엌과 거실 사이. 나중에 저 벽은 과감히 철거를 진행한다.






첫 번째 우리 집을 위한 세 가지 원칙

한정된 예산에서 최대한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완성하기 위한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나만의 취향과 기준이 분명하다는 것엔 장점이 많다. 내 머릿속에 상상 속 이미지가 다 있으니 디자이너가 있는 비싼 인테리어 업체는 필요치 않았다. 또, 가구나 살림을 채울 때도 어딘가에서 한 번에 사지 않고 취향에 맞는 각각의 가구를 구입해서 조화롭게 배치했다.


1. 취향은 만족시키되, 유행을 타지 않는 집을 만들 것

첫 번째 원칙은 가장 중요했다.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는 집을 만들고 싶었다. 기본에 충실한 간결한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의 삶의 방식도 한몫했다. 어떤 스타일이든 유행하는 것은 질리기 마련인데 집은 옷처럼 쉽게 갈아치울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4~5년 전의 인테리어 유행은 지금과는 또 다르다. 수많은 인테리어 사진을 보며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지만 냉정히 유행으로 판단한, '질릴 수 있는' 요소들은 모두 과감히 포기했다. (헤링본 장판, 그레이톤 인테리어, 웨인스 코팅, 대리석 식탁 등.. )


정말 하얀 우리 집

그래서 전체적인 집의 톤을 화이트'로 결정했다. 하얀 도화지처럼 집의 바탕을 세팅해두면 어떤 가구나 소품, 패브릭을 배치하느냐에 따라 쉽게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흰색은 내가 가장 좋아하면서도 절대 질리지 않는 컬러기도 하다. 밤보다는 낮을, 밝은 공간을 좋아하는 우리의 취향을 만족하면서도 유행을 타지 않아 좋다.





2. 미적인 것과 실용성의 균형 잡기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어쩌면 일생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집'.  자꾸자꾸 머무르고 싶은 나만의 안식처여야 한다. 예쁜 것도 좋지만 살면서 관리가 너무 어렵거나 불편한 부분은 과감히 배제했다.


단적인 예가 '바닥재'인데, 미국이나 유럽의 아파트에서 쓰는 어두운 색 나무 마루가 너무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는 거실이 좁은 20평대 아파트에는 집이 답답해 보이기 십상이고, 또 원목 마루의 틈에 끼는 오래된 먼지를 닦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걸 직접 경험해서 알고 있었다. 타일 바닥도 굉장히 매력적이었는데 물건을 너무 잘 떨어뜨리고 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는 적합하지 않았다. 결국 가장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밝은 장판으로 결정했는데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었다. (논현동의 LG하우시스 장판 집에서 수백 개의 장판을 보고 직접 골랐을 때, 요즘 장판은 감쪽같이 마루처럼 나온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또 다른 예로는 욕실. 호텔에서만 볼 수 있는 건식 욕실의 로망이 있었는데, 예쁘긴 하지만 시원한 물청소가 불가능한 건식 욕실은 매일 사는 집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상부장을 없애는 주방 트렌드에 동참하고 싶었지만 수납을 생각해 상부장은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로망이었던 어두운 원목 마루. 1) 관리의 어려움 2) 좁아 보임 의 문제로 포기! (출처:pinterest)


물론 미적인 것을 고집한 것도 많다. 굳이 물이 튀는 싱크 수전을 독일에서 직구한 것이나, 공간 활용에 좋지 않은 원형 테이블을 선택한 것, 또 더러워지기 쉬운 주방을 무광 화이트로 선택한 것 등 오로지 나의 취향대로 밀고 나간 것도 적지 않다. 하지만 내가 감수할 수 있는 불편함이기에 더없이 만족한다.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이 되면 기꺼이 '미'를 선택하고, 정말 자신이 없는 부분은 과감히 포기하는 것 - 즉 미적인 것과 실용성의 균형을 잘 잡자는 두 번째 원칙은 여러 선택의 순간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3. 살면서 천천히 채워갈 것 

앞의 두 가지 원칙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인데 -  예쁜 것을 보면 사고 싶고, 남이 가진 것을 보면 우리 집에도 두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섣불리 이것저것 먼저 구입하기보다는 '살면서 천천히 채워가자'는 원칙을 세웠다. 5년을 교제했지만 아직 우리는 한 번도 같이 살아본 적이 없고 서로의 생활 패턴이 어떤 방식으로 굳어 갈지 아직 모르니까.


결혼식 이전 나 혼자 사는 3개월 동안은 꼭 필요한 '침대'와 '옷장'만 먼저 두었다. 그 이후에 소파가 들어왔고, 테이블은 한참 후에나 도착했다. 서재방은 결혼 후 한 달이 지나서야 완성되었다. 마지막 원칙은 선택의 폭을 넓히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괜히 조급한 마음에 가구 단지에서 몽땅 구입한 가구가 아니라 마음에 드는 각각의 다른 회사에서 찾은 가구들이라 하나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다. 단적인 예로 침실은 프레임과 매트리스, 그리고 협탁이 모두 다른 브랜드지만 세트인 것처럼 어우러진다.




동네에 위치한 총 네 개의 인테리어 업체를 만나기 전에 준비해간 레퍼런스 자료.



인테리어의 방향 정하기 : 셀인 같은 턴키

인테리어 공부는 네이버 '셀인(셀프 인테리어)' 카페의 도움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인테리어는 '턴키'와 '셀프'로 나뉘는데 '턴키' 란 흔히 볼 수 있는 OO인테리어 업체에 각 공정 (도배, 장판, 주방, 전기, 욕실, 타일, 필름, 목공 등)의 총책임을 맡겨 진행하는 일반적인 프로세스다. '셀인' 은 각 공정의 담당자를 직접 찾아 스케쥴링하고 의뢰하는, 한마디로 '개별 공정 인테리어' 다. 셀프 인테리어의 최대 장점은 각 공정별 입소문 난 실력자들을 섭외해 인테리어 업체가 챙겨가는 중간 마진 없이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퀄리티의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각 공정 담당자를 찾는 것부터 스케쥴링까지, 공사의 큰 그림을 그리며 개별 담당자에 요청을 해야 하므로 사고가 나지 않기 위해서는 인테리어 업체처럼 현장에 2주간 거의 상주해야 한다.


나 역시 셀인으로 하고 싶었지만, 둘 다 직장인이라는 어려움으로 턴키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셀인 같은 턴키'로 진행한다는 마음을 먹고 시작했다. 인테리어 업체에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 셀인 카페에서 인터넷 자료를 찾으며 준비했다. 용어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생소한 건축 용어를 익히고, 각 공정별 적정 단가 수준도 파악했다. 밤낮으로 인테리어 사례를 보며 어느 정도 공부가 되었겠다 싶었을 때 구체적인 레퍼런스와 요청 사항을 담은 요청서를 제작했다.




프로젝트 409: 혜인 그리고 준원의 집

애초에 온라인에서 포트폴리오를 계속 업데이트하는 유명한 업체는 배제했고, 신속한 대응이 가능한 동네 업체 4곳에서 미팅을 했다. 24평의 아파트를 샷시 빼고 올 수리하는 기준으로 1,500만 원부터 2,500만 원 사이의 견적을 받았다. "이런 건 뭣하러 해, 그냥 이렇게 해~"라는 막가파식 업체부터, 너무 비싼 자재만을 제안하는 디자이너 업체는 배제하고 가장 신뢰감을 주는 마침 집에서 가장 가까운 업체로 결정했다.



철거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방문한 집. 잘 가라 노란 벽지야 -


인테리어의 첫 시작은 철거. 먼지가 풀풀 날리던 공사 기간 2주 내내, 근심과 걱정이 가득했다. "과연 우리 집 예쁘게 될까.."



공사가 시작되고 나서 첫 주는 퇴근 후 매일매일 공사 현장을 방문했다. 혹시나 도움이 될까 싶어 생수도 이만큼 사두고, 오전의 공사 현장에서 문제가 있었던 건 바로바로 인테리어 업체 사장님께 알렸다. 이렇게 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던 것이, 화장실 욕실 바닥 타일이 완전 삐뚤빼뚤하게 붙여져 있던 큰 사고가 발생했었는데 그 날 알리지 않았더라면 복구가 어려울 뻔했다.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을 수 없었던 혼돈의 첫 주가 지나가고, 나머지 일주일 동안은 남편이 여름휴가를 헌납하고 공사 현장을 지켰다. 아무리 턴키로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셀프 인테리어로 하는 것 같은 책임감을 가지고 현장을 자주 가보는 건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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