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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인 Sep 13. 2021

붙잡고 싶은 여름을 보내며



‘붙잡고 싶은 여름을 보내며’라고 제목을 달았지만, 정말인지 여름답지 못한 여름이었다. 맑은 날이 많았지만 물놀이를 한 번도 못했고, 여행도 여름휴가도 없었다. 좋아하는 여름옷들 대신 운동복만 내내 입었다.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작년까지는 칩거 생활에 굉장히 만족했는데 올해는 집에만 있는 시간이 좀 힘들기도 했다. 새로운 사람들, 장소로부터 얻는 신선한 자극이 좀 필요했다.


여름에는 이사를 갈 줄 알았는데 어떤 연유인지 아직 머물러있다. 타인이 불쑥 찾아오는 일이 잦아져 부지런히 집을 정리했다. 늘 말끔할 순 없지만 금방이라도 깨끗해질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목표한 대로 안되니 전전긍긍하기도, 힘이 빠지기도 했지만.. 흐름에 조금은 더 맡겨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유가 있겠지 때가 있겠지. 나랑 어울리지 않는 이 사고방식은 이번 여름 요가 수련을 통해 배운 것이다.


요가에 있어서는 나름 큰 전환점이 있었다. 새로운 두 분의 선생님을 올여름에 만났고, 그렇게 하타 요가를 시작했다. 두 번의 이직과 이런저런 이유로 한동안 한 곳에 정착하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찾아온 정기적인 배움의 기회가 참 귀하게 느껴지고, 좋다.


진짜로 아사나에 대한 집착을 많이 내려놓았고, 이건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다. 성취하고자 하는 에고는 요가를 하면서도 여실히 나타나곤 했기에 더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한 요가를 해왔다. 지금은 그저 수련 시간에 똑바로 존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물론 너무 어렵다.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어설프게 애썼던 지난날의 시간이 아쉽지만,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도 있는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이래저래 요가에 대한 마음이 진지해졌는데 그럴수록 내 안의 모순에 대한 고민은 더 커져 걱정이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은 요가와 상관없어 보이는 생활을 해야 하는 괴리감. 두 세계를 어떻게 가깝게 만들지 앞으로의 방향을 정리해보고 있다. 우선 내게 필요한 건 치열함과 지속인 것 같다. 일단은 이런 미완의 상태로, 다음 계절로 고민을 넘겨본다.


 여름에  새로 시작한 것이 운전이다. 재작년 사고를  이후 한동안 운전을 놓았는데, 요가 수련을 가려고 운전대를 다시 잡았다. 결코 운전을 좋아할 일은 없다고 믿었지만 놀랍게도 요새 차를 모는 일이 즐거울 때가 있다. 익숙한 길에 한해서지만, 차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따라 부르면 좋다. 기후 문제를 생각하면 운전을 되도록 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필요할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유익한 일인 것 같기도.


머리를 여러 번 잘랐고 점점 짧아졌다. 이제는 내 의지로 한 머리 중 가장 짧은 길이다. 몇 년 전부터 할까 말까 망설이기만 했는데, 고민했던 시간이 아까울 만큼 정말 별 게 없다. 짧은 머리든 긴 머리든 그냥 나는 나 일 뿐이다. 해보기 전엔 알 수 없었기에 잘 잘랐다는 생각이 든다.


짧아져버린 낮의 길이, 애매해진 옷차림. 여름 답지 못한 여름이었을지라도 떠나보내는 것이 너무 슬프다. 길고 긴 시간을 보내고 또 만나, 나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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