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인 Aug 29. 2021

불편한 이야기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

N번방 추적기,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를 읽고



N번방 사건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것은 언론사 공모전을 준비하던 두 대학생이었다. 단순 제보가 아닌 몇 달에 걸친 끔찍하고 끈질긴 추적이었다. 두 대학생은 학업과 취업을 병행하며 매일 5시간이 넘도록 충격적인 성착취 현장의 증거를 수집해 N번방 공론화와 수사를 이끌어냈다.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는 꿈꾸던 기자 대신,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아웃 리처 활동가로 활동 중인 ‘추적단 불꽃’의 이야기다.


N번방 사건은 너무나 상식과 먼 사건이어서 처음에는 큰 충격을 받지만, 마치 무서운 영화 한 편을 어쩌다 한 번 본 것처럼 잊어버리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N번방은 혼자서 우뚝 동떨어진 개별의 사건이 아니며, 엄연히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대한민국에서 카페보다 많다는 불법 성매매 업소,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성차별, 가족이나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성범죄가 N번방과 무관하다 말할 수 있을까. 지금도 오픈마켓에 버젓이 팔리고 있는 초소형 몰래카메라는 우리를 어떤 장소에선가 촬영하고 있을 것이다. 불꽃은 여자로 살아오며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는 크고 작은 경험들이 N번방 사건과 관련이 있음을 분명히 짚는다.


불꽃은 추적 중 N번방에 참여하고 있는 지인을 발견했고, 그로 인한  공포와 충격이 곧 두려움, 슬픔, 분노로 바뀌었다고 서술한다. 또한 지인 능욕은 텔레그램 범죄의 흔한 사례다. N번방 참여자 숫자는 디지털 성범죄의 가해자가 우리 주변의 누군가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가해자에게 특별한 악마 따위의 서사를 부여해주는 것이 옳지 않은 이유이자, 모든 남자를 가해자로 취급하지 말라는 말이 대응할 가치도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불꽃의 행동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더 이상의 N번방 피해자가 나오지 않는 날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불편한 이야기를 계속 꺼내는 것은 생각한다. 회사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심지어 SNS에서도 불편하다는 이유로 터부시 되는 이야기지만 젠더갈등이 극에 달한 지금 건전한 사회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이야기 중 하나라 생각한다. 법안 제정이나 공론화가 되어야 하는 이슈에 대한 청원 동의에도, 10초면 힘을 보탤 수 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대해 끔찍한 증거를 긴 시간 모으고 취재하는 일도 상흔이 남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었으나, 뒤늦은 언론의 관심과 인터뷰 속에서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기자들의 질문과 태도’가 무엇보다 힘들었다고 불꽃은 말한다. 이는 왜 대한민국의 디지털 성범죄가 N번방에까지 이르렀는가를 돌아보게 한다. 구닥다리 법과 2차 피해를 야기하는 언론 보도는 가해자 쪽에 치우친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우리가 계속해서 자꾸 불편한 사실을 직면하고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다.






작가의 이전글 부유하듯 방황하는 청춘을 되돌아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