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크게 넘어져 다쳤다.
6월 첫째 주, 딱 두 달 전의 일이다. 엄마가 신호를 안 놓치려고 뛰다가 횡단보도에서 넘어졌다. 옷이 다 피로 젖을 정도의 출혈이 있었고 아래턱을 몇 바늘 꿰맸다. 그렇게 피부가 찢어진 걸로 끝인줄 알았는데 며칠간 씹을 수가 없어 엑스레이를 찍었고 턱뼈에도 금이 갔다는 걸 알게 되었다. 턱깁스를 하고 중간에 항생제 부작용으로 쇼크까지. 정말 여러 일이 많았는데 미숫가루, 수프, 주스 따위로 연명한 긴 시간이 드디어 끝났다. 어제는 콩국수도 장어덮밥도 같이 맛있게 먹을 수 있어 기뻤다.
나였다면 온갖 유난을 떨며 지나 보냈을 사고-통증-회복의 시간을 엄마는 역시 엄마답게 보냈다. 사고 당일 외엔 사무실 문을 절대 닫지 않았고, 이 더위에 본인은 먹지도 못할 딸의 반찬을 해다 주고, 여전히 모든 집안 살림을 혼자 도맡아 했다. 아침저녁 두 번 걷기 운동도 놓지 않은 것 같았다. 하루에 채운 걸음 수에 따라 몇십 원씩 주는 어플로 꾸준히 포인트를 모아 뭘 또 구매했다고 자랑하는 걸 보니.
어제는 엄마 휴가라 오랜만에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문득 엄마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내게 개인적으로 하나의 발전이다. 예전 같았으면 바보 같이 다쳤다고, 또 그러고도 맘껏 쉬지 못하고 가족들에게 희생만 했다는 생각에 답답함, 분노의 감정이 지배적이었을 거다. (물론 이 생각도 한편에 여전히 있지만) 줄곧 엄마를 작고 약한 존재로 인식해왔는데, 이번 사고를 돌아보며 엄마가 나보다도 강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얼마 전 읽은 비비언 고닉의 책 <사나운 애착>, 이 제목은 소름돋을 정도로 명확하게 엄마와 딸의 관계를 설명한다. 떠올리면 눈물과 동시에 화가 치밀어 오르고, 사랑하지만 또한 상처를 주고받으며, 이상하게도 담백해지지 못하는 절절한 사이. 이걸 알기에 자식을 낳는다 해도 딸은 정말 피하고 싶다.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다는 강한 열망이 동력이 되어 나를 움직여왔지만, 동시에 어떤 상황에선 어쩔 수 없이 엄마를 꼭 닮은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번에 심리상담을 받으며 엄마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됐다. 엄마가 어떻게 태어났고 자랐고 등등을 쭉 선생님께 읊다 보니 엄마가 아닌 인간 이예린이 보였다. 엄마와 딸 관계 속에 복잡하게 엉켜있는 여러 감정들을 조금은 덜어내고 이해의 레벨에서 엄마를 대하려고 노력해 봤다. 그랬더니 좀 덜 짜증나고, 좀 더 담백해지는 것 같기도. 엄마도 엄마의 엄마로부터 의도치 않게 받은 것들이 어쩔 수 없이 엄마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이번엔 턱 부상에 그쳤지만 점점 더 다양한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날 서글프게 한다. 스물 여섯에 나를 낳아 곧 환갑인 엄마를 보면 인생이란 참 녹록지 않구나 싶고. 여전히 엄마를 대상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많지만, 어제처럼 즐거운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것 외에 또 무얼 할 수 있겠나 생각한다. 선생님 말마따나 부모와 자식은 이러려고 만나진 관계일 테니.
2024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