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일기장을 들춰보고
몇 달 전, 이사를 앞둔 부모님 집에 갔다가 초등학생 때 쓴 일기장을 들춰봤다. 캐릭터가 그려진 얇은 노트. 색색의 볼펜으로 빼곡히 채워진 페이지는 눈이 아플 정도로 화려했다. 양배추, 사과, 리본, 사탕… 날마다 다른 도형을 테두리 삼아 그려 넣고, 그 안에 일기를 썼다. 그것도 모자라 남는 칸마다 작은 낙서 같은 그림과 단어, 문장으로 가득 채워 두었다. 마치 여백의 미라는 건 모르는 아이처럼. 맨 아래 귀퉁이에는 빠짐없이 전신의 여자 한 명을 그려 두었다. 되고 싶은 여성의 모습이었을까? 옷도 헤어스타일도 매일 다른 게 재밌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그 너덜너덜한 노트 속엔, 내가 만든 혼자만의 세계가 고스란히 있었다.
옷장에 무채색 옷만 가득한 30대 중반이 된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알록달록하고 특이한 걸 참 좋아했던 어린 시절이 되살아났다. 줄곧 튀고 싶었고, 특이한 물건을 사 모으길 좋아했으며, 그것이 낙서였을지라도 매일 무언가를 창조해 냈다. 손재주가 좋은 엄마는 줄곧 “넌 미술 쪽은 영 아니다”라고 말해 왔고, 대신 미술 숙제를 해주기도 했다. 중학생이 되어 치른 첫 미술 수행평가에서였나, 연필 데생을 하고 B를 받았던 것을 계기로 나는 좋아하던 ‘그리는 일’에서 손을 완전히 떼게 되었다. 미술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그쪽으로 진로를 정한 아이들의 것이었다. 난 다른 길을 가야 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때 내 낙서 속에는 나름의 독특한 매력이 느껴진다. 소질은 없지만 개성은 있달까. 그게 지금 에서야 보여서 못내 아쉽다.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그렸다면 어땠을까. 자질구레한 것들을, 남과 다른 것들을 쭉 좋아했다면 어땠을까. 두들링으로 인스타그램을 휩쓴 사람들도, 그래비티 예술가도 있지 않은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것들이 내 취향이라 믿으며, 이따끔 유행을 좇으며, 적당히 대세에 편승하는 지금보다는 더 나만의 색깔을 가진 어른이 되었으려나.
잃어버린 내 모습이 있었다면 지금과 그대로인 모습도 있었다. 일기장의 형식이 아닌 내용을 보면 그렇다. 꽤 잦은 빈도로 시험과 숙제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했고, 훌라후프를 20개도 돌리지 못하는 저주받은 운동 신경 앞에 좌절했다. 그로부터 계속 공부와 회사 일, 그리고 좋지 않은 체력으로 인해 고통받을 거라는 걸 그 초등학생은 알고 있었을까.
일기장은 나의 창작 도구였던 동시에 신문고였다.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것들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또 정당하게 건의하면 바뀌리라고 생각하는 마음 - 지금도 내가 사회에 대해 갖는 최소한의 순진한 믿음이다. 그때 나를 불편하게 했던 건 갖 열한 살 무렵의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많은 과제와 시험이었고, 또한 성실히 임하지 않는 또래 친구들이었던 것 같다. ‘To. 선생님께’ 아래에는 시험을 좀 줄여달라고 건의하거나, 그룹 과제를 하기로 해놓고 집으로 도망가버린 친구들의 이름을 고자질하기도 했다.
나를 움직이는 내면의 가장 강한 원동력인 분노가 이렇게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니. 사회가 이렇게 만든 줄 알았는데 어쩌면 처음부터 작은 것에도 불편하도록 타고난 사람이었던 건 아닐까.
일기장 속의 알록달록한 세계, 10년 남짓 살아온 세상에 대한 불평 불만, 그리고 어떻게든 더 나은 쪽으로 주변을 바꿔보려고 했던 애씀의 흔적, 그건 그 자체로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다. 내 말을 들어주세요, 나는 좋은 학생이에요, 나를 버리지 마세요... 지금보다 훨씬 힘주어 쓴 글씨에는 인간 본면의 욕망이 좀 더 솔직하게 보였다. 지금도 내 심장 한 켠에 있지만 애써 모른체하고, 밀어내려고 하는 그 당연한 마음이.
엄마는 일기장을 가져가라고 했지만, 나는 있던 그 자리에 두고 왔다.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는 건 웃음이 나면서도 서글프기도 해서, 자주 하고 싶지는 않은 그런 일이라서.
와사비라이팅클럽 5기를 통해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