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백: 100%의 순간

15년 전, 수능의 기억을 돌아보기

by 혜인

애니메이션 <룩백>은 ‘만화’로 이어진 두 소녀의 이야기다. 58분의 짧은 러닝타임 중 가장 많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주인공이 틀어박혀 만화를 그리는 모습이다. 두 소녀는 자리에 앉아 연필을, 펜을, 나중에는 전자펜을 끝없이 움직인다. 그림으로 채워진 종이는 쌓이고, 쌓이다 못해 흩날린다. 그동안 창밖의 계절은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겨울로 여러 차례 바뀐다. 그런 경이로운 몰입의 장면이 계속된다. 세상이 어떻게 되든 계속 그리는 모습이, 그런 만화적인 100%의 순간이.


주인공이 항상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에게 만화는 오히려 애증의 대상이다.


“난 사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하루 종일 그려도 완성이 안 되고, 지루하잖아. 그냥 읽는 것만으로도 좋지.”


처음엔 좋아했지만, 이윽고 좌절하고, 다시 영혼의 단짝을 만나 함께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마감 때문에 그리고, 눈덩이처럼 굴려온 습관의 무게 때문에 그냥 그리기도 한다. 어쨌든, 그냥 계속 그린다.




내게도 그런 100%의 시간이 있었던가.


100%의 대상, 이유 없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몰입하게 하는 것 - 그나마 수험 공부가 아니었을까. 공부를 좋아한 적은 없지만, 어쨌든 한 번도 놓아 본 적이 없었다. 이해하고 외워야 할 것은 너무 많았고, 아무리 해도 모두 내 머릿속에 다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을 정리하고, 또 조금씩 집어넣고, 확인해 보던 과정. 독서실에서 앉아 있었던 이른 새벽과 늦은 밤의 시간, 나는 몰랐지만 주변의 풍경은 사시사철 변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수험 생활을 마친 이후 그런 만화적인 순간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 끝이 수능 실패였기 때문이다.


나는 수능을 망쳤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자면, 늘 자신만만했던 1교시 언어영역에서 3년 내내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점수를 받았다. 너무 긴장을 했던 탓일까, 긴장을 풀려고 가져간 청심환 반 알이 문제 해결 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을까. 아니면 너무 과한 자신감이 독이었는지도 모른다. 등급은 ‘미끄러졌고’, 내가 당연히 갈 것이라 믿었던 대학들보다 한 칸 아래에 위치한, 썩 내키지 않던 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이후로 더 이상 무언가에 100%는 나를 담그지 않게 되었다. ‘열심히’로부터의 배반은 너무 큰 상처로 남았다. 어떤 일에서든 나는 5%의 정도는 발을 뺄 공간을 남겨 두고 임한다. 누군가 “넌 참 열심이다”라며 건네는 칭찬 앞에서도 나는 줄행랑을 친다. “솔직히 열심히는 안 했어요.” 그냥 적당히 고맙다고 하면 될 것을, 나만 알고 있는 그 5% 때문에 방어하듯 내빼고야 만다.


모든 걸 다 걸어서는 안 돼,

러면 상처받게 될 거야.


내가 남겨 두는 5%는 혹여나 일이 잘못되었을 때, 핑계를 돌릴 수 있는 나의 안전장치다.


하나에 전부를, 온 마음을 걸지 않는 대신 이것저것 다양한 영역에 발을 걸치게 됐다. 가령 지금 내 일상은 일, 요가, 글쓰기의 삼각형으로 이루어져있다. 회사원이라는 직업 외에도 꽤나 진지한 취미로서 요가와 글쓰기 작업을 한다. 각 영역에 삼 분의 일씩 마음을 나눈다.


삼각형의 균형이 잘 잡힐 때는 이것 저것 하는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느끼면서도, 어딘가 어정쩡한 사람이 된 느낌도 있다. 욕먹지 않을 정도의 성과를 내는 회사원이지만 일로부터 얻는 보람은 적다. 요가 지도자과정을 이수했지만 수련 시간은 부족하고, 누군가를 가르칠 엄두는 나지 않는다. 출간을 했지만 하루에 한 시간도 쓰지 않는 나를 ‘쓰는 사람’ 이라고 할 수 있을지 자주 고민한다. 무엇 하나 제대로 진심을 다하지 않아서겠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룬지 15년이 지났다. 원하던 대학에 가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이상 나를 괴롭히지는 않는다. 처음엔 방황했고, 첫 1학기를 학교 밖으로 도피했지만 결국에는 학교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한국 사회에서 출신 대학 이름이 갖는 위력이 크다는 것을 알지만, 19살 때 생각했던 것만큼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아니까. 무엇보다 내게는 다른 것도 있다. 등급화할 수 없고 점수를 매길 수 없는 것들이 내 삶을 채우고 있으니까.

그런데도 그 경험이 지금껏 나를 100%의 사람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서, 아직도 그렇게 나를 조종하는 것 같아서, 그것 하나만큼은 좀 서글프다.


오늘도 ‘열심히’라는 말로부터 도망친다. 중요한 건 결과일 뿐이다. 최선을 다했다고 느끼기 직전, 이만하면 됐다며 업무를 대강 마무리한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15년 전에 내가 진짜로 열심히 했던 건 맞을까?


잘 모르겠다. 분명 자만하긴 했던 것 같다. 언어 영역은 늘 점수가 잘 나와서 공부를 덜 했었으니까. 시험 당일 담대하게 임하지도 못했다. 그것까지 연습했을 수 있었을텐데. 어쩌면 모두 나의 노력 부족 때문이다. 애초에 100%를 다한 적 없던 나에게 수능 실패는 당연한 결과였을지 모른다.


그래도 그 시간은 인생에서 유일하게 최선을 다했다고 믿었던 때다.


언젠가는 다시한 번 무언가에 온 마음을 다 줄 수 있을까. 먼 훗날 구멍이 있었다고 깨닫게 될 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100%에 머무를 수 있을까. 나의 인생을 걸 만큼, 사계절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몰두할 애증의 대상을 또 만날 수 있을까.


100%의 순간을 살고 싶다. 그런 만화적인 순간의 주인공이 다시한 번 되고 싶다. 더는 도망가지 않고, 뒤로 숨지 않고 답하고 싶다.


“맞아, 난 늘 무엇에든 온 마음을 다하곤 해.“




와사비라이팅클럽 5기를 통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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