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마케터로 일했던 시간을 돌아보며
화장품을 막 좋아해 본 적도 없고, 외모를 꾸미는 일에 딱 평균 정도의 관심을 가진 내가 화장품 마케터가 된 경위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녹록지 않은 취업 시장에 뛰어든 인문계 여대생들이 대부분 그랬듯, 무작위로 수십 개의 원서를 썼고, 그중 나를 합격시켜 준 두세 개의 회사 중 하나를 선택했을 뿐이다. 그렇게 ‘여자가 일하기 좋다’고 알려진, ‘여성을 위한’ 화장품을 만들고 파는 기업에서 나의 커리어가 시작됐다.
기초부터 색조까지, 또 저가부터 고가까지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가진 대기업에서 나는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기초 화장품 브랜드로 발령이 났다. 매달 연구소, 디자이너, 세일즈팀과 협의해 신제품을 출시했고, 매달 수십만 명의 고객의 집으로 월간 인쇄물을 보내 제품 소식을 알렸다. 인플루언서들에게 제품을 협찬하고, 간간이 팝업스토어를 열거나 톱 셀러브리티와 화보를 찍었다. “한 병으로 완성하는 안티에이징” 따위의 광고 카피를 쓰기도 했다.
백화점 1층에 진열되고, TV 광고에 나오는 제품이 내 손에서 탄생한다는 희열은 오래가지 않았다. 5년 정도 지나자 이 모든 일이 지겨워졌다. 외국계 글로벌 기업의 경쟁 브랜드로 한 차례 이직을 했지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은 여전했다. 사무노동자로 느끼는 답답한 회사 생활 자체, 금요일만 바라보며 사는 쳇바퀴 같은 일상도 그랬지만,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건 화장품 산업 자체에 대한 염증이었다. 화장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거슬렸고, 아이폰이나 테슬라의 모델 S처럼 대단히 혁신적이지도 않은 신제품을 매달 끝없이 만들어서 매출 목표를 달성하는 사업의 구조에도 환멸이 났다. 무엇보다 내가 만들고 파는 이 제품, 화장품이라는 재화가 여성을 더 옭아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미와 젊음은 절대 선(善)’이라는 견고한 믿음 아래 움직이는 화장품 산업에서, 나이 들고 추한 것은 죄악이자 고쳐야 할 대상이 된다. 이상적인 미의 기준은 영원히 잡을 수 없는 대상이며, 노화란 우리가 결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인데도, 화려한 이미지와 카피 속에 그 진실은 잠시 감추어진다. 십만 원이 넘는 세럼 한 병의 내용물 가격은 2만 원도 채 되지 않는다. 비슷비슷한 성분의 제품들을 팔기 위해서는 평범한 일상에 경각심을 울려야 한다. 30대부터 ‘얼리’ 안티에이징이 필요하며, ‘푹 잔 듯한 피부’가 경쟁력을 결정하며, ‘세안 후 10초’ 안에 제품을 쓰지 않으면 수분의 대부분이 날아간다고 말해야 한다. 모두 내가 고객을 대상으로 했던 커뮤니케이션이다.
심지어는 진짜 사람을 두고 이런 말도 서슴지 않았다. “얘는 좀 저렴해 보여서 안 될 것 같아.” “앞니가 너무 많이 튀어나왔어.” “성형 티가 아직 안 빠졌네” “너무 말라서 빈해 보인다.” 사담이나 농담이 아니라 실제 업무 환경에서 주고받았던 대화다. 화보를 촬영할 모델을 선정할 때, 그 화보를 어떻게 보정할지를 논의할 때, 또 제품을 협찬할 인플루언서를 가릴 때에도 얼굴을 조각조각 뜯어 평가해야만 했다. 더 까다롭고 디테일하게 판단을 내릴수록, 일 잘하는 화장품 마케터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글의 앞머리에 밝혔듯, 내가 화장품 회사를 선택했던 이유는 “여자가 일하기 좋다”는 이미지 때문이었다. 직장 내 성희롱이 거의 일어나지 않고, 육아 휴직을 많이들 쓰는 문화, 여성이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처럼 보였다. 반면 화장품 회사라서 겪는 이중고도 있었다. 그곳의 여성들은 업무 능력이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했고, 외모도 잘 가꾸어야만 했다.
잘 꾸미는 여성들이 모인 화장품 회사의 사무실에서는 늘 좋은 향기가 났다. 요즘 유행하는 트렌드, 오늘 입은 옷, 지금 세일하는 브랜드 같은 주제가 잡담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생존 욕구와 인정 욕구 앞에 나의 새로운 관심사도 패션과 뷰티가 되어야만 했다. 옷과 명품 가방을 무척 많이 샀다. 가끔 속 빈 강정이 된 것 같았지만, 그보단 화장품 마케터다워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 시기의 집약적인 쇼핑 경험 덕분에 향후 몇 년간은 입을 옷이 풍족할 정도였다.
강남역 11번 출구 이후 탈코르셋 실천 운동이 활발하던 때였다. 화장품 회사에 다니며 내가 했던 유일한 ‘탈코’는 패디큐어를 바르지 않는 것이었다. 마음은 진짜 그렇지 않았는데, 회사 로비에 가면 내 맨발톱이 왠지 부끄러웠다.
나와 동료들은 능력이 없던 팀장을 단지 능력으로만 평가하지 않았다. 그녀의 서투른 메이크업 실력과 촌스러운 헤어스타일을 흉봤다. “퍼스널 컬러도 모르나 봐.” “봤어? 립스틱이 맨날 치아에 묻어 있는 거.” 실제로 팀장이 리더로서 부족한 점이 있었던 것도 맞지만, 우리는 그녀가 ‘화장품 브랜드’의 팀장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을 더 많이 씹어대곤 했다. 팀장이 이후 메이크업 브랜드로 부서 이동을 하게 됐을 때에도 “앞으로 그 브랜드 망하는 거 아니냐. 저런 사람이 어떻게 메이크업 브랜드 리더냐”며 함께 고개를 저었던 것이 떠오른다. 그런 대화를 나누고 나면 괜히 불안해진 마음을 또 쇼핑으로 채웠다.
"당신은 소중하니까요.(Because you’re worth it)"
내가 두 번째로 다녔던 회사에서 오래전 히트를 친 전설적인 슬로건이다.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 나를 위한 주체적인 미의 추구를 강조했던 1970년대로선 획기적인 문구로, 오늘날까지도 많은 뷰티·패션 철학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지금도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다국적 모델들의 당당한 표정, 치명적인 포즈의 이미지가 그렇다. 하지만 이 멋져 보이는 커뮤니케이션에 담긴 속뜻은 ‘이 제품을 구매해야만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어’다. 진짜 소중하다면 아무것도 안 사도 여전히 소중할 텐데 말이다. 피부가 좋지 않아도, 멋진 옷을 입지 않아도.
화장품 회사를 떠난 지 어언 5년이 지났다. 더는 백화점 1층이나 올리브영에 가서 어떤 신제품이 나왔는지 불을 켜고 살펴보지 않는다. 회사에서 넘치도록 받곤 했던 제품들은 2년 정도 지나자 동이 났다. 화장품이 떨어지면 구매하지만, 그마저도 쓰던 제품을 반복해 재구매할 뿐이다. 화장품이라는 화려한 재화가 휴지와 같은 생필품이 된 셈이다. 이상한 일이지만 어느새 소비로부터도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예전보다 나와 타인의 옷과 외모에 덜 신경을 쓴다. 화장도 안 하고, 아무렇게나 편한 옷을 입고 다니는 나를 그때 직장 동료들이 보면 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멋진 화장품 마케터로 남지는 못했지만, 나는 지금의 내가 왠지 더 좋다. 난 소중하니까.
*와사비라이팅클럽 6기를 통해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