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0번의 산책

하루에 4번, 개와 함께 걸어요

by 혜인


매일 4번, 개와 걸어요

개를 키운다고 말하면 꼭 듣게 되는 질문이 있다.

“산책 매일 하세요?”

“네, 하루에 네 번씩 해요.”

“네 번이나요?”

대부분은 놀란다.


반려견 ‘토리’와 함께한 후, 하루 네 번 함께 걷고 있다. 4에 365일을 곱한 뒤, 함께한 5년을 다시 곱하면 약 7,300번. 가끔 펫시터나 엄마에게 맡긴 날을 빼더라도 족히 7,000번의 산책을 한 셈이다.

‘개 산책시키는 사람’ - 장난삼아 인스타그램에 직업으로 설정해 둔 단어 그대로 살고 있다.


하루 네 번의 산책 일정은 대략 이렇다.

아침 기상 후 (30분)

점심시간 (15분)

해가 질 녘 (15분)

자기 전 (30분)


시간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해가 긴 여름에는 첫 산책이 좀 더 빨라지고, 밤에 더 길게 걷다 온다. 겨울엔 해가 뜬 다음 느지막이 나가고, 최대한 두, 세 번째 산책 시간을 늘린다. 비가 많이 올 때면 토리가 잘 걷지 않기 때문에 별수 없이 짧게 돌아온다. 주말엔 좀 더 여유롭게 오래 산책한다. 어찌 됐든 하루에 1시간 30분은 채우려고 한다.

개에 대해 좀 아는 사람이라면 눈치를 챘을 텐데, 토리는 집 안에서는 절대 대소변을 보지 않는다. 분명 처음 집에 왔을 땐 배변 패드에 잘도 쉬를 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실외 배변 강아지가 됐다. 일주일 정도 산책을 하지 않고 놔두면 집에서도 한다는데, 그렇게 참는 고통을 줄 자신이 없어서 대신 내가 고생하기로 한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네 번씩 꼬박 나가며.

집에서 출발하는 대여섯 가지의 경로를 겹치지 않게 잘 섞어본다. 매번 다른 코스로 가려고 노력한다. 가령 아침 첫 산책 땐 전날 밤에 돌았던 쪽과는 반대의 길을 택한다. 산책은 토리의 유일한 적극적인 활동 시간이고, 최대한 새로운 냄새를 맡게 해주고 싶어서다. 물론 나의 배려를 모르는 토리가 제 멋대로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럼 가자고 하는 쪽으로 기꺼이 따라가 준다.



산책해서 좋겠다고요?

동물과 함께 산다면 그건 고양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길고양이에게 ‘간택’ 당해 어느 날 집사가 되기만을 막연히 상상했다. 그런 내가 토리와 함께하게 된 데에는 남편의 ‘산책하는 삶’에 대한 로망이 크게 작용했다. 잔디밭에서 개와 한가롭게 걷는 장면을 떠올리면 건강해 보이고 좋았다. 당시 우리는 이미 산책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꼭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게 일상이었다. 여기에 같이 걷는 개 한 마리가 추가되는 것뿐이라고, 그렇게 가볍게 생각했다.

개와의 산책은 다르다는 걸 모른 채, 개와 걷는 삶이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놓을 거라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산책하니까 운동 되고 좋겠다.”

산책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다. 산책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개다. 개를 위한 산책이지, 우리의 산책에 개가 동행하는 개념이 아니다. 인간이 걷기 위해 산책한다면, 개는 냄새를 맡기 위해 걷는다. 풀 냄새, 흙냄새, 다른 동물들의 대소변 냄새... 온갖 냄새를 맡느라 몇 걸음 걷고 멈추고, 몇 걸음 걷고 멈춘다. 이렇다 보니 나 혼자 파워워킹할 때처럼 빠르게 걸을 수 없다. 30분을 함께 걸어도 스마트폰의 걸음 수엔 2,500보 정도만 찍혀있을 뿐이다. 하루에 네 번을 나가도 겨우 1만 보를 채운다. 집에만 있는 것보단 낫겠지만, 운동으로 보긴 어려운 활동량이다. 어쨌든 산책을 한다고 체중 감량이 되거나 아주 건강해지긴 어렵다는 얘기다.


“나가면 좋겠다, 리프레시도 되고”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산책은 야외 활동이고 날씨에 많은 것이 좌우된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엔 정말 좋다. 하지만 그런 날은 일 년에 몇 번 없다. 궂은 날씨에 하루에 네 번 산책을 챙기는 일은 환기보단 극기 훈련에 가깝다. 잠깐만 나가도 땀이 주륵주륵 나가는 여름엔 그늘로 피해서 걷는다 해도 매번 샤워를 안 할수 없다. 겨울엔 주섬주섬 옷을 껴입고 벗는 번거로움이 추가되고, 질척질척한 눈을 헤치며 걷는 일 자체가 고될 때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괴로운 건 장마철인데, 앞서 말한 것처럼 토리는 비가 오면 도통 걷지 않는다. 비에 냄새가 씻겨내 려갔는지 냄새도 맡지 않는다. 용변만 빨리 보고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축축한 땅 위에 배변을 한다는 건 도무지 싫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애써 우비를 입히고 나왔는데 억지로 끌고 다니다 아무 성과도 없이 돌아갈 때가 많다. 내가 누구 때문에 나왔는데!



산책할 줄 모르는 줄 몰랐지

개를 매일 산책시켜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산책할 줄 모르는 개가 있다는 건 몰랐다. 함께 걸으면 절로 산책이 되는 줄 알았다. ‘산책 훈련’이라는 단어가 따로 있듯, 산책은 보호자와 발을 맞추는 과정이라는 걸, 개도 사람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몰랐다.

토리는 집에서 키우다 버려진 유기견이었다. 홍제천을 혼자 돌아다니다 보호소에 구조됐고, 안락사를 당하기 전 우리 집에 왔다. ‘앉아’ ‘손’ 같은 기본 훈련도 되어 있었고, 분리불안도 없는데다 첫날부터 내 무릎에 앉을 정도로 사람을 좋아했다. 대신 딱 하나, 산책이 문제였다. 이미 성견이었지만 단 한 번도 산책을 해보지 않은 개였다.

생전 처음으로 경험하는 바깥세상, 그 자극이 얼마나 큰지 토리는 문밖을 나서자마자 이리저리 제멋대로 튀어 나갔다. 몹시 흥분해 우리의 목소리에 아예 반응하지 않았고, 줄을 아무리 힘껏 당겨봐도 소용이 없었다. 아예 통제가 되지 않았다. 줄을 놓치면 끝장이란 생각이 들어 손목에 목줄을 칭칭 감고 5분, 10분 겨우 산책을 하고 기진맥진해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3일 째였나. 위험 천만한 일이 벌어졌다. 이쪽으로 가야 하는데, 토리는 제 멋대로로 가겠다고 버티던 상황이었다. 리드줄이 팽팽하게 당겨진 상태에서 토리는 몸을 뒤로 뺐고, 하네스를 그대로 벗어버렸다. 그리곤 차도로 돌진해 달리던 오토바이에 부딪혔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죽을힘을 다해 뛰어갔지만 흥분한 개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추격전을 벌인 끝에 잠시 멈춘 토리를 먹을 것으로 유인해 가까스로 잡았다. 오토바이에 부딪힌 건 다행히 코 옆 피부가 조금 까지는데서 그쳤다.

생각만으로도 아찔한 그날 이후, 훈련사가 있는 유치원에 가서 수차례 교육을 받고, 집에선 매일 4번씩 ‘훈련’같은 산책을 했다. 7,000번의 산책 중 아마 3,000번쯤은 토리가 줄을 당기고, 내 손목은 얼얼하고, 나는 토리에게 소리치고, 주저 앉고 울던 시간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제는 산책을 꽤나 잘하는 의젓한 개가 되었지만, 여전히 토리와 함께 걷는 건 긴장의 연속이다. 토리는 다른 강아지를 보면 흥분하고 짖기 때문에 사방에 다른 개가 있는지 주시해야 한다.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나 “멈머!”하며 다가오는 아기가 있으면 줄을 짧게 잡는다.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오는 오토바이와 자전거도 잘 피해야 한다. 밟으면 안되는 깨진 병이 있는지, 먹다 흘린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 먹진 않을지도 유심히 살핀다. 산책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리드줄을 잡고 내려다보는 세상

그렇다고 산책이 싫기만 한 건 아니다.

자전거를 타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자전거 안장 높이에서만 볼 수 있는 세상이 있다. 바람을 가르는 느낌, 평소보다 가까운 가로수, 걷는 것보다는 빠르게, 차를 탄 것보다는 느리게 흘러가는 풍경.... 리드줄을 잡고 걷는 일도 마찬가지다. 개와 산책할 때만 경험할 수 있는 세계가 있다.

개와 걷는 순간 시선은 전방, 그리고 아래로 향한다. 이렇게 땅을 자세히 보고 걸은 적이 있었던가. 덕분에 누구보다 먼저 봄이 오리란 것을 눈치챈다. 영하의 온도에도 화단에 이끼가 푸릇푸릇하게 올라오기 때문이다. 좀 더 따뜻해지면 자취를 감추었던 개미들이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낸다. 여름비가 내리고 나면 어김없이 지렁이가 나오고, 매미가 벗어놓은 껍질을 요리조리 피해서 걷는다. 가을이면 땅에 떨어진 나뭇잎의 모양이 하나하나 다른 것에 감탄하게 되고, 누군가가 수고스럽게 낙엽을 쓸어 담는다는 것도 알게 된다. 토리가 보여주는 길 위의 진짜 세상을, 나는 어린 아이가 된 기분으로 새로이 배운다.

시선은 다른 생명으로 확장된다. 토리가 다른 동물들을 경계하기 때문에, 피하려다보니 오히려 주의를 기울이게 됐다. 언젠가 토리가 갑자기 수풀 속으로 달려들어 고양이에게 긁힌 적이 있다. 길냥이들을 유심히 보다 보니 한 마리 한 마리의 성격도 알게되고, 그들을 정성껏 돌보는 이들의 애씀도 온 마음으로 응원하게 됐다. 멀찍이 바라볼 뿐이지만 너구리, 오소리도 하는 행동이 개나 고양이와 크게 다르지 않더라. 먹이를 찾아 위험한 도심으로 온 게 안쓰럽게 느껴진다. 동네의 새들도 마찬가지다. 참새, 비둘기, 까치, 물까치, 까마귀.. 이유 없이 새를 무서워하고 싫어하곤 했는데 자꾸 보니 귀엽다. 특히 까치들이 가만히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걸 자주 느낀다. 토리가 아니었다면 그 많은 동물들이 길 위에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고 살았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지에서도 가능한 매일 달리기를 한다고 했다. 달리기를 해야만 그 도시를 비로소 몸으로 체험하는 느낌이라며.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한다. 토리와 함께 걸어야만 진정으로 그곳을 경험한 것 같다. 더 느린 걸음으로, 더 낮은 시선으로, 더 열심히 주위를 살피게 되니까. 한 번은 이제 더 이상 안 가본 곳이 없겠다고 생각한 우리 동네에서도, 토리가 이끄는 바람에 처음 보는 샛길을 발견하곤 했다.

그러니까 개는, 비유적인 표현 뿐 아니라 정말로 우리를 새로운 장소로 이끈다.

토리를 돌보고, 산책시키기 위해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로 옮겼다. 산업군도 다르고, 토리가 아니었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새로운 일터에서 나는 인생의 많은 변화를 맞이했다. 집에서 일하는 나를 일에 매몰되지 않도록 해준 것도 결국 토리다. 내 몸을 하루에 네 번은 나가서 걷게 해주었으니까. 구구절절한 말로 산책에 대해 투덜거렸지만, 나는 안다. 내가 토리를 산책 시킨 것이 아니라 토리가 나를 일으켜 다른 세계로 안내했다는 것을 말이다.

앞으로 몇 번의 산책이 더해질지 모르겠지만 이 고된 노동을 기꺼이 오래 하고 싶다. 맛있는 것, 쓰다듬어주는 시간, 그리고 풀에 얼굴을 묻고 킁킁대는 것이 하루 행복의 전부인 나의 개를 위해.





와사비라이팅클럽 5기를 통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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