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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ish Jun 21. 2017

영화 '겨울왕국'이 사랑받았던 이유

'나'를 중심으로 주체적이고 주도적인 삶

나는 어린 시절부터 디즈니를 좋아했다. 디즈니에서의 공주들은 하나같이 너무나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얀 피부와 찰랑거리는 머릿결을 가진 백설공주도 좋아하고 긴 머리카락과 멋진 목소리를 갖고 있는 라푼젤도 좋아하고 물레방아 가시에 찔려 오랜 시간 딥  슬립을 하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오로라도 좋아한다. 이외에도 디즈니에 나오는 많은 공주들은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받고 있다. 


공주 스토리의 내용과 다른 새로운 공주가 나타났고, 그 인기는 상상을 초월하게 되어 다른 공주들보다 더 큰 인기와 사랑을 얻게 되었다. 오늘은 그 주인공인 겨울왕국의 '엘사와 안나'의 이야기로 글을 적어 내려가려 한다.




겨울왕국의 '엘사'와 '안나'의 주체적인 삶 


왼쪽 엘사,  오른쪽 안나 (영화'겨울왕국')

오늘은 let it go를 부르며 왕국을 떠나 자신을 찾아가는 엘사와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 하며 언니를 부르는 안나가 사랑받는 이유와 '나를 중심'으로 한 주체적이고 주도적인 삶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다들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겨울왕국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풀어내자면 이렇다. 


아렌델 왕국의 예쁜 자매가 있었다. 그중 엘사는 어릴 적부터 무엇이든 얼려버릴 수 있는 신비한 마법의 힘을 가지고 태어났고 엘사의 마법으로 안 나와 즐겨 놀곤 했다. 하지만 안나가 엘사의 마법으로 인해 다치게 되자 자매의 부모님은 트롤에게 마법의 위험성을 전해 듣고 마법의 힘을 감추기 위해 외부와는 어떤 접촉도 할 수 없게 한다. 안나의 기억은 다행히 지워졌지만 엘사는 안나를 다치게 한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안 나와 거리를 두며 생활하고 있는데 세월이 흘러 부모님이 갑작스럽게 돌아가게 되어 엘사는 왕국의 후계자로서 대관식을 치르고 여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대관식 날 밤에 안나와의 말다툼 중 엘사의 비밀이 온 세상에 드러나고 통제할 수 없는 자신의 능력 때문에 사람들을 다치게 하는 것이 두려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딘가로 떠나가 되는데 그녀가 떠난 후 아렌델 왕국은 극심한 겨울로 뒤덮이고 만다. 안나는 언니가 아렌델을 다시 돌려놓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엘사를 찾아 떠나게 된다.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나 공주들을 구해주었던 '기존의 디즈니'

디즈니의 대표 공주들



<백설공주>, <라푼젤>, <인어공주> 등 아름다운 외모와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악당이나 마녀들 때문에 힘든 상황들이 닥쳐오지만 주인공의 주변에서 자진해 힘을 합쳐 도와주는 조력자들 덕분에 결국 악당을 물리친다. 그 후 공주는 백마 탄 왕자님들과 사랑의 빠져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마쳤던 것이 기존의 디즈니의 공주시리즈 내용이었다.


근데 겨울왕국은 기존의 디즈니와 다른 점이 있다. 기존의 내용처럼 전형적인 공주 스토리가 아닌 새로운 변화의 시작점에 서 있다는 것이다. 겨울왕국의 주인공인 안나와 엘사는 '위기'가 닥쳐왔을 때나 문제를 해결해 나아갈 때 그리고 마지막 순간 해피엔딩으로 끝날 때까지 모든 사건의 주체가  안나와 엘사이다.  

즉, '주체적인 나'로서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수동적이고 순종적이었던 '나'의 모습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사건을 해결해 성장해 나아가는 '주체적인 삶'을 보여주고 있다는 부분에서 기존의 공주 스토리와는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



누군가 답이라 정해 놓고 옳은 길이라 하는 길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신껏 나의 길을 개척하고 나를 찾아가는 엘사와 안나의 모습은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내 인생의 있어서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이다. 하지만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혹시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등 상대방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상대의 시선을 무시하고 나만의 생각을 고집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자칫하면 고집이 센 사람 자기 의견이 강한 사람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걱정'되고 '불안'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체적인 '나'의 기준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맞추어  행동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그렇게 나는 상대방에 기준으로 나라는 사람을 규정짓게 된다. 



왜 우리는 나의 생각보다 상대방의 기준이 중요하게 된 것일까?

우리가 자라면서 많이 듣는 말들이 있다.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라, 친구에게 양보해라, 다른 사람을 배려해라, 네가 기분 나쁘다고 친구에게 그러면 안된다와 같이 우리는 '배려'의 중요성에 대해서 많은 가르침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현재 기분, 감정 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감정을 억눌러 상대방을 이해해야 하는 상황들이 많아지게 되면서, 감정을 억누르고 행동했을 때 어른들로 하여금 '넌 참 착한 아이구나', '어쩜 이렇게 속이 깊니?' 등과 같은 칭찬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나의 감정을 누르고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게 좋은 거구나'

'지금 기분이 나쁘지만 상대를 위해 양보해야 하는구나' 


나의 감정이나 생각보다는 이미 맞다고 정해진 기준의 의해 나의 행동이 제한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나 자신에 대해 초점을 맞춰 생활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더욱더 나를 아는 것이 힘들어지게 된다. 우리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생활방식'을 만들어간다. 생활방식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다양한 상황에 의해 강화될 때 경험에 의한 익숙한 생활방식은 강력한 '신념(믿음)'으로서 자리 잡게 된다. 


우리는 자신이 기대 한대로 상황을 바라보게 되는데, 자신이 상황 속에 스스로가 의미를 부여하여 객관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으로서 현재의 상황을 바라보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진정한 감정'을 억압하고 상대방의 기분의 맞춰주기 위한 '배려'는 좋은 배려가 아니다. 세상에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은 없다.  배려를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는 나의 선택인 것이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이다. 상대를 배려해주기 전에 가장 먼저 '나의 감정'을 다독거려주고 이해하고 배려할 때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된다. 



혹시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정말 답도 없고 막막해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 혼이 쏙 빠져나가는 상황 말이다.  아마 우리가 이런 상황이라면 가장 괴롭고 힘든 사람은 상대가 아니라 바로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 나'이기 때문에 그 누구의 조언이나 충고 모두 다 소용이 없다고 느낀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 한 달이 되고 1년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몇 년 전 나를 돌아보면 '아 그때 그랬었는데, 이렇게 하면 좋았을 텐데, 덕분에 많이 성장했었지' 하고 생각한다. 우리는 불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누구라도 본인이 불행한 상황 속에 갇혀 버리게 되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나의 신념에 맞게 해석하여 불행의 의미를 더욱 강조한다.



나의 시선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연습

어쩌면 가장 당연한 말일지도 모르는 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 줘라. 어쩌면 우리는 타인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잣대에 대해서 너무나도 관대하게 평가하고 있으면서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잣대에 있어서 까다롭고 모진 게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 당장은 죽을 것 같고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겠지만 정말 이 또한 지나가리. 불행한 상황 속에 그저 갇혀 앉아 울고 있는 한 없이 여린 어린아이가 아닌 최선을 다해 울다가 다 울고 나면 툭툭 털고 일어나 불행하다 느꼈던 그 상황 속에서 빠져나와 갇혀 있는 동안 볼 수 없었던 불행의 다른 모습과도 반갑하게 하이파이브하며 쿨하게 웃어넘기는 여유가 생기길. 


더 이상 불행의 의미가 좌절, 실패, 어둠이 아닌 경험이 되고  경험의 발판이 되어 깨달음과 성숙의 의미를 찾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인가를 잘하지 못하면 뭐 어떤가?  뭐 좀 뛰어나지 못하면 어떤가? 재능이 없으면 뭐 어떤가? 그래도 존재하고 있는, 숨 쉬고 있는 나라는 존재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소중한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는 그런 하루가 되시길


오늘 하루도 수고한 나에게 고맙다. 수고했다. 사랑한다. 진심으로 나를 안아주고 위로해주는 시간을 가지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 그렇게 한참 동안 나를 위로해준 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생기거든 엘사처럼 당당히 자신의 길을 다른 사람의 눈치 보지 않고 주체적이고 주도적인 나만의 삶을 다시 시작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엘사처럼 let it go~ let it go~하며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당신을 오늘도 나는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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