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데리고 사는 법
나는 왜 우울할까? 어떻게 하면 나를 잘 데리고 살 수 있을까?
갑자기 내 몸 가득 차오르는 우울은 나의 모든 삶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먼저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귀찮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말하고 싶지 않고, 움직이고 싶지 않으며, 사람 만나는 것까지도 피하며 철저히 나를 혼자 두게 된다. 나의 우울은 언제부터 시작했을까.
과거에서부터 시작했는가, 갑자기 어떠한 사건 때문에 시작되었는가, 아님 잘 모르겠는가?
아마 우울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채찍질하며, 어서 괜찮아질 방법을 찾아내, 내가 빨리 정상적으로 다시 생활할 수 있도록 돌아가려 한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이미 잘하고 있어요.
괜찮아요.
힘들었을 텐데 이렇게 노력하는 모습 너무 대단해요.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를 알아가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고, 어둡고, 괴롭고, 고통스럽다. 나를 찾아가는 걸 포기하세요 가 아니라, 잠깐만 나를 다독다독 해주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대학을 가기 위해서
누군가는 취업을 하기 위해서
또 누군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목적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살아가야 한다는 이유룰 찾는다. 그렇다면 가장 근본적인 이유, 나는 왜 살고 있는가?
대학을 가기 위해서 살았던가? 대학에 진학하고 나면?
취업을 하기 위해서 살았던가? 그렇게 치열하게 취업하고 나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살았던가? 그렇다면 이제 가족들이 각자의 역할과 삶을 찾아 떠나고 나면?
다 좋다.
당신이 잘못되었다 가 아니라, 그 보다도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당신'은?
아무도 당신을 함부로 대하거나 막대할 수 없다
설령 그것이 당신 '자신'이라도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끝까지 안고 품고 같이 가야 하는 인생의 동반자는 대학도 취업도, 가족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걸 다시 한번 더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상황이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 생각해볼 겨를도 없고 다 귀찮다 생각할 수 있지만, 내 마음 한 곳에서 울고 있는 괴로워하는 응석 부리고 기대고 싶은 나의 어린아이를 살포시 껴안아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필이면 왜 지금 이 우울이 찾아온 것일까
이 우울은 왜 나를 떠나지 못할까
실제 우울해할 만한 일이 발생했다 쳐도, 나는 왜 이 우울이 나를 함부로 대하도록 내버려 둘까
왜 의미 있는 삶, 행복한 삶에 집착하게 됐을까
잘 살아보고 잘 해왔으며, 잘 살아가고 싶었던 것뿐인데 말이다.
보통은 문제를 들여다보는 것을 회피하거나 억압하는 사이에 우물쭈물하며 나에게 올라오던 우울이 목까지 차오르지 않도록 천천히 노력을 들여서 우울을 다뤄야 한다. 그때 나에게 다가온 우울은 좀 더 그럴듯하고 더 작고 더 약하고 덜 뾰족하고 덜 당혹스러운 감정으로 변질되어 그동안의 노력이 별거 아니라는 듯 진상 손님으로 변해 계속해서 나를 괴롭힐 수 있다.
우울한 감정은 괴롭고 힘들다.
하지만 우울이 왔을 때,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너도 잠깐 쉬었다가 가 괜찮아하면서 어떤 게 많이 힘들었니? 하고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거다. 그렇게 나의 힘든 부분들은 (원인을 비교적 명확하게) 확인하고 직면하게 되면, 그 관성에 기반한 마음의 습관들을 멈출 지점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온다.
지금은 우울해할 수도 있는데 꼭 우울해해야 하는 건 아니야
내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꼭 죽고 싶은 것은 아니야
이건 또 마음의 관이 하는 일, 마음이 본심을 가장하는 일 등 이런 주제에 매일 너무 오랜 시간 천착하면 더 우울해질 수 있다. 짧지만 집중력 있고 단호하게 위의 질문에 대한 대략적인 답을 하나씩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울한 감정에 지쳐있는 모든 이를 위해.
조금이라도 그들에 곁에 그대로 지금처럼 있어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