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자리를 뜨는 동안, 사엘은 제단의 불을 마주하고 앉아있다.
환하게 일렁이는 불꽃 속에서, 경전의 신의 음성이 사엘에게만 들린다.
“내가 지명하여 부른 자, 내가 너로 인해 기뻐하리라.”
불꽃이 기쁨을 표현하듯 일렁인다.
하늘의 먹구름도 가시고, 비도 잦아들었다.
사람들은, 비로 채워진 땅들을 일구러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소란스러웠던, 리만투어가 조용하다.
잠시 후, 사엘이 제단 앞에서 일어 나자 카야가 황급히 사엘에게 다가가지만, 그녀가 서 있는 땅 위에 발을
디디지 못하고, 그녀의 팔도 평소 대로 잡지 못한다.
이를 본 사엘이 카야에게 말한다.
“카야는 내 주변의 어디든 들어와도 되고, 내 옆에 제일 가까이 서 있어도 돼.”
카야는 그의 마음을 알고 말해주는 사엘에게 알겠다는 듯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인다.
“사람들은?”
“모두 갔습니다. 리만투어는 원래 대로 아무도 있지 않습니다. 병사들도 모두 돌려보냈습니다.”
“그래. 그럼 우리도 갈까?”
사엘이 발걸음을 옮기고, 언덕길을 내려올 때 카야는 그녀의 팔을 잡아준다.
리만투어는 무슨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듯, 파도가 잔잔히 밀려오고 밀려간다.
사엘은 해안가 쪽으로 가까이 걷는다. 사엘은 그녀의 발에 닿는 바닷물이 시원하고 상쾌하게 느껴진다.
카야가 눈짓을 하자, 다른 최측근 무사들도 자리를 뜬다. 그제야, 그도 잡고 있던 사엘의 팔을 놓고, 그녀
뒤에서 그녀를 따라 걷는다. 카야도 그의 발에 닿는 바닷물의 상쾌함과 시원함을 잠시 느껴본다.
몇 발짝 더 걷던 사엘이 잠시 멈춰 서서는, 바다를 바라보며 말한다.
“그래서, 내 엄마를 여기다 뿌려 드렸어?”
하란은 카야에게 그녀의 시신을 화장해 리만투어에 뿌려 달라 했었다.
제사장 부인의 죽음은 억울하고 초라할 뿐이었다. 카야는 그녀의 시신을 예를 갖추어 화장하고 싶었다.
정성스럽게 단을 만들어, 그녀가 좋아하는 꽃으로 장식한 후, 그녀를 단에 눕힌 후, 불을 붙이고는 리만투어 바다로 떠내려 보냈다. 불꽃이 일며, 멀리 바다를 향해 가던 관은 모든 것이 탔는지, 불꽃이 일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 물방울들이 파도처럼 튀어 오르다 사라졌었다.
“그래서 여기 오면 마음이 평온했나 봐. 바닷속에 있으면 엄마 품처럼 포근하다고 느꼈었거든.”
바다를 바라보던 사엘이 카야를 보며 말을 잇는다.
“고마워. 우리 엄마 곁에 끝까지 있어줘서. 그리고 지금도, 내 곁에도 있어줘서.”
“처음이었어요.”
“처음?”
“뱃속의 아기를 느낀 거요”
“아기?”
“태어나시기 바로 전에, 하라난님이 여기 계셨어요. 바다에 발을 담그니 아기가 움직인다면서, 배를 만져
봐도 된다고 허락하셔서, 그분의 배에 손을 대 보았어요. 아기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어요. 지금도 이 손에
느껴 질만큼 정말 경이로왔어요. 하란님도 이곳을 정말 좋아하셨었는데, 뱃속의 아기 님도 이곳에 오면
많이 움직이신다면서 배를 잡고 환하게 웃으셨어요.”
말을 하는 카야의 눈에도, 그의 말을 듣는 사엘의 눈에도 눈물이 맺힌다.
사엘이 눈물을 닦으며, 예복을 벗고, 올려져 있던 머리도 풀어 내린다.
카야는 예복을 받으며 말한다. “들어갔다 오세요.”
다른 날 같으면 말렸던 카야가 오늘은 오히려 들어갔다 오라고 한다. 그동안 제사장으로의 부름,
제사장 집안에 일어났던 일들, 첫 예배등 그녀는 이 모든 것을 감당하는 것이, 무겁고, 힘들고, 두려웠을
것이다. 사엘이 엄마처럼 느꼈었다던 이 바다에서, 바다에 뿌려진 하란이 그녀를 위로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다.
사엘이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시원한 바닷물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담그니,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이 날아가는 듯 몸과 마음이 가볍게 느껴진다. 사엘은 그렇게 한참을 바닷속으로 들어갔다가, 물 위로 나왔다가 하며
이리저리 몸을 움직인다.
바닷속으로 다시 들어간 사엘이 숨을 내 쉬자 바닷물이 정지한다. 주변이 고요하다.
그때 멀리서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
엄마.
엄마.
소리가 바닷속에 메아리친다.
멀리 사람의 실루엣이 보인다. 사엘이 사람의 실루엣이 있는 쪽으로 헤엄쳐 다가간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의 얼굴이지만, 엄마 일 것이라 생각한다.
“엄마”
엄마.
엄마.
소리가 바닷속에 다시 메아리친다.
할 말이 너무 많지만 사엘도 엄마라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너무 부르고 싶었고, 너무 그리운 엄마다.
하란의 모습이 보인다. 사엘이 더 가까이 다가간다.
사엘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사랑해 내 딸, 늘 보고 싶어. 곁에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해.”
“엄마”
사엘이 흐느껴 울며 말한다.
“엄마. 엄마 미안해. 엄마가 그렇게 되신 것도 나 때문이고, 아버지가 못 걸으시는 것도 다 나 때문이야.”
경전의 신의 부름을 받고 한 일이라지만, 인간적으로는 가족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
버릴 수는 없다.
“아니야. 사엘아. 너 잘못이 아니야. 귀하고 고귀한 내 딸. 엄마는 알고 있었어. 네가 경전의 신의 부름 받은
자라는 것을. 넌 제사장 가문을 다시 일으키고, 경전의 신에게 드릴 의식을 다시 연 자야. 너의 부르심을
스스로 잘 찾았고, 지금껏 외롭고, 힘든 시간을 잘 버텨 주어서 고마워. 내 딸. 사엘이. 기특하다. 기특해.”
“엄마.”
“그래. 엄마딸 정말 대단해.”
사엘의 눈에 하란의 웃는 얼굴이 보인다.
엄마의 괜찮다는 말, 주어진 일을 잘했다는 칭찬이 사엘의 마음에 위로가 되어, 그녀도 미소를 지어 보인다.
“우리 딸, 엄마는 늘 네 곁에 있고, 늘 너를 위해 기도 할 거야.”
“엄마. 보고 싶었어.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하란이 손을 내밀어, 사엘의 얼굴을 만지며 말한다.
“엄만 여기 리만투어에 늘 머물며 너를 보고 있을 거야. 그러니 외로워하지 말고, 슬퍼하지 마. “
“엄마. 엄마 사랑해.”
하란이 사엘을 안으며 말한다.
“엄마도 너를 매 순간 사랑해.”
정지했던 바다가 다시 움직이고, 파도가 치면서 사엘을 수면 위로 올린다. 사엘이 바다 위를 걸어서 해변가로 나온다.
해변가 앞에 라단이 서있다. 그는 집으로 갔다가 사엘을 보러 곧바로 리만투어로 다시 온 것이다. 라단은 사엘이 바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해안가 근처로 가 사엘의 모습이 보이나 찾았지만, 바다는 원래대로 파도만 칠뿐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바다에 뛰어들어 그녀를 찾으러 들어가야 하나 하고 있는데,
사엘이 바다 위를 걸어서 나온다.
그녀는 울었고, 젖었고, 슬퍼 보인다.
라단은 사엘에게 다가가 말없이 그녀의 눈물을 닦아 준다. 머리카락의 물기도 짜주고, 그의 겉옷을 벗어 사엘에게 덮어 준다. 안아 주고 싶지만, 안아도 되는지 모르겠다. 그의 앞에 서 있는 건 사엘인데, 사엘은 제사장이고, 제사장이라면, 사엘에게 예전에 했던 것처럼 못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망설여진다.
하지만 곧, 라단은 사엘을 안아준다. 경전의 신에게 벌을 받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그저 슬프게 서 있는 그녀를 안아줘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싶다. 사엘은 라단이 안아주는 팔 안에서 울었다. 엄마의 죽음이 슬퍼서, 엄마를 만나 좋아서, 사랑한다라는 말을 들어서, 괜찮다는 말을 들어서,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실체가 아닌, 리만투어 안에서의 환영이라, 엄마가 다시 그리워 운다.
한참 울던 사엘이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들어 라단을 보며 말한다. “너도 다 젖었어.”
라단의 옷 앞부분이 사엘의 젖은 몸과, 눈물과 콧물로 흥건히 젖어 있다.
라단이 피식 웃으며 말한다. “괜찮아. 제사장을 안았다고 벌 받는 것보다 옷 젖는 게 나은 거 같은데.”
“그럼 말리셔야죠.”
불을 때려고 주변에서 나뭇가지들을 모아 온 카야가 말한다.
그때 여람이 와서 “불은 오랜만에 내가 붙일게.”라고 말한다
그 옆에 밧세와 수아도 서 있는다.
사엘이 이들을 보자, 놀라며 말한다. “어떻게 온 거야?”
수아가 말한다. “어떻게 오긴, 당연히 오지. 그럼 너도 안 보고 우리가 그냥 갔을까 봐.”
밧세는 손에 들고 있는 바구니를 사엘에게 보여 주며 말한다. ”엄마랑, 할머니 집사님이 준비해 주신 거야.”
불을 피운 여람이 말한다. “어서 와서 앉아.”
그들을 보는 사엘의 눈에서 눈물이 또 흘러내린다.
수아가 사엘의 팔을 살짝 잡아당겨, 모닥불 가까이 앉히며 말한다. “하루 종일 그러고 서서는, 거기다
다 젖어가지고. 울 때 룰 더 라도, 일단 여기 앉아서 몸부터 좀 말리고, 그다음에 울어.”
사엘이 눈물을 닦으며 말한다. “우는데 무슨 계획처럼 순서가 있어?”
밧세가 말한다. “그러니까. 그 감정이라는 게 무슨 계획대로 되냐? 암튼 수아 재는”
여람이 말한다. “말해서 뭐 해. 일단 앉아서 말리고, 그다음에 울으라니.”
수아가 밧세와 여람을 밀며 말한다. “그게 뭐? 젖었으니까 몸부터 먼저 말리라고 한 거고, 그다음에 울어도
된다는 게 뭐? 그럼 그냥 젖은 대로, 오들오들 떨면서 울어?”
여람과 밧세는 수아를 보며 동시에 말한다. “그 말이 아니잖아.”
사엘이 한번 더 코를 훌쩍이고는 말한다. “밧세야. 그거 가져온 거나 꺼내봐.”
밧세가 바구니를 사엘에게 건네며 말한다. “역시. 모든 상황은 우리 사엘이가 딱 마무리를 잘하지.”
바구니를 열어본 사엘이 놀라 말한다. “이게 다 뭐야?”
“집사님이랑 엄마가, 네가 좋아하는 걸로 미리 준비해 놓으셨더라고. 빨리 갖다 주고 오라고 하셔서 부랴 부랴 들고 왔지. 너 그동안 밥도 잘 안 먹었지? 신경 쓰고 준비한다고?”
여람도 음식들을 담아 온 용기들을 같이 꺼내며 말한다. “그래. 가뜩이나 말랐는데, 더 말라져 가지고.
우리 엄마가 그러셨는데, 사람은 뭘 해도 밥은 먹고 잠은 자면서 해야 한다고 하셨어. 지금이라도 좀 마음
편하게 앉아서 먹고, 오늘은 잠도 푹 자고. 응?”
수아가 말한다. “그런데, 아까 사엘이가 일단 모닥불 앞에 앉는다. 그다음에 운다 그거 아니었어? 그러면
일단 먼저 먹고 울어? 아니면 먹기 전에 울어?”
밧세와 여람이 수아의 등을 찰싹찰싹 때리며 동시에 말한다. “좀.”
수아가 일어나 피하며 말한다. “왜 그래? 뭔가 먼저대?”
밧세와 여람도 일어나 수아를 쫓아가며 또 동시에 말한다. “그만 좀.”
여람이 말한다. “눈물이 이제부터 울어하고 시작하면 나오냐. 하여간 감성이라곤 없어 가지고.”
밧세도 말한다. “생각도 없지. 감성도 없지.”
밧세와 여람이 달려가고, 수아가 뒤쫓아 간다.
그들은 20대나 됐으면서도, 리만투어에 와서는 어린아이들처럼 서로 뛰고, 잡으며 웃는 이들이다.
그런 그들을 보며 사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는다. 저들의 행동을 사엘은 안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녀를 위로해 주고 있는 것이다.
사엘이 웃는 것을 라단은 바라본다. 여람과 수아 밧세가 서로 장난치는 모습도 바라본다.
이들 사이 어디에도 자신이 끼어들 수는 없는 것 같다. 유치하고, 황당하고, 맥락 없지만, 친근하고 허물없는 저들의 행동에 사엘은 웃는다. 그들만의 끈끈하게, 담백하게 온기 있게 우러나오는 진짜 찐 우정이다.
라단을 보며 사엘이 말한다. “라단아. 너도 여기 더 가까이 와서 앉아. 너도 다 젖었잖아. 일단 말리고.”
사엘이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잇는다. “수아 재 진짜 너무 웃기지 않아? 일단 말리고, 그다음에 울으라니.
울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라단은 불 앞이 아닌, 사엘 옆에 좀 더 가까이 앉는다.
그는 사엘을 울게 놔두었는데, 이들 셋은 금세 사엘을 웃게 만들어 그들이 부럽기까지 하다. 그래도 사엘의 마음이 좀 진정되고 웃어서 다행이고 그것을 지켜볼 수 있어서 괜찮다는 마음도 든다.
카야가 사엘에게 다가와, 귀에 대고 말한다. “저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사엘이 고개를 끄덕이자, 카야가 잠시 떠나고, 수아, 밧세, 여람도 모닥불로 다가와 앉는다.
밧세는 그릇에 국을 담아 사엘에게 건네며 말한다. “따뜻할 때 좀 먹어봐."
사엘이 그릇을 받아 수저 대신 입을 대고 호로록 마신다. “아. 정말 맛있다. 고마워. 하갈 수장님과
할머니 집사님께도 정말 감사하다고 전해줘.”
사엘이 수저로 음식을 떠먹는다.
수아가 말한다. “그런데 너 정말 대단했어. 나 정말 놀랐잖아.”
사엘이 음식을 씹느라, 입을 오물 거리며 말한다. “뭐에 놀랐는데? 또 어이가 없었어?”
수아가 사엘의 말을 기억하는 듯 웃으며 말한다. “그때는 어이가 없었지. 그런데 이번은 아니야. 진짜 너무
대단해서 놀랐어. 역사서에 길이길이 남을 만큼이고,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만큼 대단했어.”
여람도 말한다. “맞아. 정말. 대단했어."
사엘이 다 먹은 음식 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한다. “아. 진짜 잘 먹었어. 배가 안 고픈 줄 알았는데, 엄청 고팠
나 봐. 다 먹었네.”
사엘이 빈 그릇을 들어서 보여 준다.
여람이 말한다. “이제 너 같다. 아까 봤을 때는 다가가지도 못하겠더라고. 주변이 너무 환하게 빛이 나고,
정말 딴 사람 같았어.”
수아가 사엘에게 묻는다. “그래서 다음 계획은 있어? 앞으로 뭘 하려고 그래?”
사엘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모르겠어. 나도 그냥 매일매일 경전에서 읽은 대로, 듣는 대로 해서.”
밧세가 손을 뻗어 절레절레 흔들며 말한다. “야. 이제 겨우 사엘이로 돌아와서 맘 편하게 앉아 있는데, 계획이 있어도 지금은 생각하지 마. 지금은 좀 그냥 쉬게 두자. 응?”
사엘이 밧세의 어깨에 머리를 살짝 기대며 말한다. “고마워. 밥도 맛이고 말도 맞고.”
내 침묵하던 라단이 사엘이 덮고 있던 옷을 다시 잘 덮어 주며 말한다. “그래. 내일 일은 내일 계획하고,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있어도 괜찮아.”
사엘이 머리를 밧세의 어깨에서 들어 라단의 어깨에 기대며 말한다. “고마워. 괜찮다는 말 너무 좋다."
라단이 사엘의 어깨를 감싼다.
뭐라고 더 말하고 싶은 여람이 입술을 움직이지만, 생각이 나지 않는다. 라단과 사엘이 함께 저러고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또 언짢아진다. 리만투어에 올 때까지는 그녀를 본다는 생각 만으로 기뻐서 왔는데, 라단보다 늦게 와서, 둘이 있는 모습을 봐야 했고, 지금도 사엘 옆에 라단이 앉아 있는 것을 봐야 한다.
그래도 사엘을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것도 꽤 괜찮다 생각했는데, 나란히 앉아 라단의 어깨에 머리까지 기댄
사엘을 보니, 마음이 안 좋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드는 이 놈의 언짢아지는 마음이 마음을 더 언짢게
한다. 사엘과 라단 사이에 뭔가 친구인 듯 아닌 듯 들어갈 자리가 없어 보인다. 우정 이라며 같이 오래오래
있고 싶어 마음을 꾹 꾹 누르며 사엘 옆에 맴돌고 있는데, 저렇게 사엘 옆으로 훅훅 들어가는 라단이
미우면서도, 부럽기까지 하다.
여람의 이런저런 생각들과 아랑곳없이, 모닥불을 가운데 놓고, 오랜만에 만난 이들은 같이 웃으며, 이야기
하며, 어깨를 토닥이며 그동안의 밀린 이야기들을 나눈다.
한참을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 사이에서 사엘이 말한다. “계획은 있는 대로 알려 줄게.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수아가 말한다. “그래. 같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말해. 힘껏 도울게.”
여람도 말한다. “그래. 너 오늘도 카야랑 둘이서만 준비했지? 우리가 있는데, 네가 말만 하면 언제든지
올 텐데 말이야.”
언제든지 온다는 말속에 여람은 사엘을 향한 마음을 조금 담아 본다.
밧세도 말한다. “엄마가 너 많이 보고 싶어 하셔.”
사엘이 웃으며 말한다. “나도. 하갈 수장님 많이 보고 싶어. 조만간 수장님들 모셔서 다 같이 만나려고 해.
너네도 같이”
라단은 뭐라고 말하기가 망설여진다. 그도 같이 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지만, 아버지 사울진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을 거 같아서다. 이들과 진짜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라단의 마음을 알았는지 사엘이 말한다. “중요 한건, 지파 별로 나누어져 있지만, 제사장은 지파의 구분 없이 모든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고 읽었어. 그래서 다 같이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야. 첫 의식은
드렸으니, 다음을 준비해야지.”
수아가 말한다. “그래. 나도 동의해. 지파로 나누어져 있지만, 제단 아래선 우린 모두 하나의 공동체잖아.
그동안 제단의 불이 꺼져 있었고, 수장님들 생각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뭐 해보는 거야. 사엘이 네가
방금 말했잖아.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밧세가 손등을 내밀며 말한다. “모두들 손 얹을까. 여러 지파이지만 제단 아래서는 모두 하나라는 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의미로다가. 사엘이 넌 맨 위에 얹어. 의미 있게.”
다들 이게 뭐냐며, 말하면서도, 손등에 손을 얹는다.
사엘이 맨 위 손등 위에 손을 얹으려 하자, 수아가 손을 빼더니 제일 위로 올리며 말한다. "사엘이 다음 나."
그러자 여람도 손을 빼 제일 위로 올리더니, "뭐야? 내가 사엘이 다음 할 거야. 사엘아 빨리 내 손부터 잡아."
수아가 여람의 손을 치며 말한다. "왜 이래 내가 먼저 올렸잖아."
밧세는 수아와 여람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너네는 왜 이런 걸로 경쟁해?"
사엘이 그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난 너네들이 날 이렇게 좋아하는 줄 몰랐어."
수아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뭐래. 암튼 난 여람이 다음은 싫어."
"야. 나도 싫거든."
밧세는 수아와 여람의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사엘의 손을 두 손으로 재빠르게 잡으며 말한다. "너네들 그만 좀 해. 아오. 지겨워. 암튼 키도 젤 크고 가장 성숙한 내가 제일 위에 올릴 거야. 난 사엘이 손도 이미 잡았다."
수아와 여람이 밧세에게 달려들어, 사엘을 잡고 있는 손을 놓게 하려고 엎치락 뒤치락 싸운다.
사엘이 손을 뿌리치고, 한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한다. "야. 우리 이거 언제 해? 나보고 쉬라며? 언제 하고 언제 가서 쉬어?"
셋이 움찔하며 사엘을 쳐다보더니, 수아가 손을 내밀며 말한다.
"그러니까. 빨리 내 손 잡아."
여람이 수아의 손을 친다는 것이 얼떨결에 잡아, "아. 뭐야. 내 손을 왜 잡아?"
"네가 잡았잖아."
사엘이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그만. 그만. 우리 손은 서로 잡지 말자. 각자 자기 손을 마주 잡는 거야. 이렇게."
사엘은 그녀의 마주 잡은 손을 그들에게 보여 주며 말을 잇는다. "이렇게 자기 손을 마주 잡는 거야. 기도 하는 손처럼. 알았지?"
여람과 수아는 만족하지 못하는 얼굴이지만, 그래도, 마주 잡은 자신의 손안에, 바램과 희망을 담아보고,
사엘을 위한 마음도 담아 본다. 밧세와 라단도, 마주 잡은 손안에, 그들의 기도를 담아 본다.
그들의 바램 처럼, 하나가 되고 싶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은,
이들의 계획과 미래가 아름다워 보인다.
멀리서 이들을 보는 카야도, 경전의 신에게 기도 한다.
"오늘도 이 아이를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아이가 저들과 함께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하고, 저들의 만남
또한 함께 하고, 지켜주세요."
바다 수평선 멀리, 해가 지면서, 노을이 길게, 바다 수면 위를 비추고, 타닥타닥 모닥불 타는 소리에,
파도 소리까지 어우러지는 오늘도 여전히 아름다운 리만투어에, 함께 하는 아름다운 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