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Twelve 첫 의식

by Hye Jang

카야는 신전 문 앞에서 이틀 밤을 꼬박 서 있는다. 그에게는 익숙한 날들이다. 하란의 방 문밖에서 서 있던 때가 떠오른다. 사엘의 방문 밖에 서있던 지난날들도

떠오른다. 가족의 최 측근 호위 대장이자, 군사 통솔권을 가진 총지휘관 이어도 허락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있고, 유일하게 함부로 열 수 없는 문이었다. 그래도 카야는 괜찮다. 적어도 그가 서 있는 문 앞에서 만큼은 그가 제일 앞에 서 있고, 그를 넘지 않고는 아무도 이 문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방문을 열고 나오던 하란의 환한 얼굴, 슬픈 얼굴, 기쁜얼굴, 졸린 얼굴, 피곤한 얼굴, 그리고 늘 문 앞에

서있는 그를 보고 놀라던 얼굴이 떠오른다.


조용히 신전문이 열린다. 문 앞에 서 있는 카야를 보고사엘은 그녀의 엄마와는 달리 놀라지 않는다.

당연한 듯 익숙한 듯, 카야를 쳐다본다. 그가 문 앞에 함께 있었어서, 다행이라는 표정도 스친다.


“아버지는?”


그녀는 신전을 나와 제일 먼저 요의 안부를 묻는다.

죄가 있어도, 엄마에게 그렇게 했어도, 그녀가

아버지라 부르는 유일한 혈육이다.


“방에 잘 모셔다 드렸습니다. 정신은 돌아오셨고, 충격이 크신 듯 하지만, 하인들이 잘 돌봐 드리고 있습니다.후난은.”


“카야가 알아서 잘했겠지.”


둘은 말없이 신전을 나와 사엘의 방이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마당에 다다르자 둘을 본, 유모와 하디가

그들에게 달려온다.


“고생하셨어요.”


유모는 사엘의 손을 꼭 잡으며 말한다. “그새 얼굴이 다 야위 셨네. 잘하셧어요. 정말 잘 하셨어요. 우리

하란님이 계셨으면 얼마나 대견해 하시며 쓰다듬어

주셨을까.”


사엘이 잡은 유모의 손을ㄹ 그녀의 머리 위에 얹는다. “그러면 유모가 해줘. 잘했다고, 쓰다듬어줘.”


유모가 황급히 손을 빼며 말한다. “제가 감히 어떻게. 고귀하신 제사장님의 머리를."

사엘이 빼내는 유모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나 여기서는 제사장 말고, 그냥 사엘이 하고 싶어. 그러니 엄마처럼 쓰다듬어 주고, 언니 오빠처럼 나 좀 안아 주면 안 돼?”


유모가 사엘의 머리를 쓰다듬고, 얼굴도 쓰다듬으며 말한다. “그래요. 잘하셨어요. 정말 용감하게 잘하셨어요. 장하세요.”


하디가 사엘과 유모를 안으며, 멋쩍게 서있는 카야에게 말한다. “대장님은 저렇게 눈치가 없으셔. 빨리

여기 와서 같이 붙으세요.”


하디의 말에 카야가 다가와 넓은 팔로 그들 셋을 안는다.


사엘이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이제 살 거 같다.”


유모가 사엘의 눈물을 닦아 주며 말한다. “울지 마세요당연히 하셔야 할 일을 하신 거예요.”


“그렇지. 그런 거지? 그런데 자꾸 눈물이 나네.”


유모, 카야, 하디는 사엘의 눈물의 의미를 안다. 경전의 신을 위해 감당해야 하는 일이지만, 엄마 하란의 죽음의 진실을 알게 되었고, 아버지 요가 그녀 앞에서

쓰러져 다시는 못 걷는 모습을 보았다. 집안의 비극과 제사장 집안의 저주를 끊어내야 하는 일은 그녀에게도 감당하기 벅찰 만큼 어렵고, 힘들고, 가슴 아픈 일인건 사실이다.


유모가 괜찮다는 듯 사엘의 등을 토닥여 준다.


말이 없던 카야가 어렵게 말을 꺼낸다.

“제사장님, 이제 좀 쉬셔야 해요. 내일 의식을 위해

준비하실 것도 많으실 것 같고, 또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 저에게도 알려 주셔야 할 것 같고, 그러면

저는 또 준비를 해야 할 것 같고 그렇습니다.”


힘들고 슬퍼하는 사엘의 모습이 안쓰럽고 걱정되어

위로하고자 꺼낸 카야의 말이다. 늘 냉정하고, 엄격하

고, 정확한 카야이지만, 사엘 때문에 걱정이 되거나,

마음 쓸 일이 생기면, 말이 두서 없고 장황해 지는 그다


익숙하게 봤다는 듯 카야의 말과 행동에 하디가

피식 웃자, 카야도 멋쩍은지 머리를 긁적거린다.


유모가 사엘에게 말한다. “식사부터 하셔야죠? 이틀을굶으셨는데.”

“먼저 좀 씻을게. 그리고 식사는 고기가 들어가지 않게

가볍고 정갈하게 준비해 줘.”

하디는 “제가 목욕 준비를 할게요.”라고 말한다.


그들이 자리를 뜨자 사엘이 카야를 보며 말한다.

“모든 수장님들께 다시 알려. 내일 정오에 리만투어

언덕 위에서 첫 의식을 드릴 거라고. 수장님들과

가족분들은 언덕 위로 올라오시라고 하고, 마을 사람

들에게도 알려, 리만투어로 모이라고 해.”


“알겠습니다.”


카야는 그의 방으로 가서, 옷을 단정히 갈아입고,

최측근 병사 세명에게 제사장 가문의 깃발인,

하늘과 땅과 바다가 각각 그려진 것을 들게 한다.

사엘이 제사장이 되고 그에게 내리는 첫 번째 명령이다. 카야는 수장들의 집을 방문하여, 예의를 갖추어

사엘의 말을 전한다.


그동안 몸을 씻고, 정결한 식사를 마친 사엘이 그녀의

방에 앉아 있는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카야가 사엘의 방 문밖에서 말한다. “제사장님. 말씀하신 것을 수장님들께 전달하고

돌아왔습니다.”


“들어와도 돼.”


카야가 조심히 그녀의 방문을 열고 들어선다.

사엘은 그녀의 엄마 하란처럼, 의자 대신 방바닥에 방석을 놓고 앉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가 앉은 앞 책상

위에는 촛불과 경전이 놓여 있다. 조금 전 마당에서 하디와 유모와 함께 있던 사엘이 아닌, 지금은 그녀는

제사장으로서, 경건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앉아도 돼.”


카야가 사엘에게서 좀 떨어진 곳 방바닥에 앉는다.


“내일 아침 동이 트면, 병사들과 몸을 정결히 한 후,

리만투어에 있는 언덕으로 가봐. 처음으로 의식을 드렸던 제단이 있을 거야. 그곳을 깨끗하게 정돈해 줘.

그리고 리만투어에 사람들이 몰려오면, 질서 있고 안전할 수 있도록 통제하고.”


“네. 알겠습니다.”


“수장님들께는 전달했어?”


“네. 말씀하신 대로 내일 정오에 첫 의식을 드린다고

전했습니다.”


사엘이 잠시 생각하자, 카야가 그녀의 생각을 읽고 말한다. “수장님들께서 첫 의식에 대해 기다리고 기대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무엇이든 돕겠다고도 전하셨습니다. 지금은 지파들도 별 다른 동요나 움직임은 없어

보입니다.”


사엘이 조심하고 경계하는 것은,


‘제단의 불을 밝힌자, 왕을 지명 할것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 이야기 때문이다.

그녀가 제단의 불을 밝힌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왕도 지명할것이다. 사엘은 어떤 식으로, 누구에게 할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이제 겨우 그녀도 제사장이

되었다. 불을 밝힌자가 누군인지 궁금한 만큼, 지명될

왕이라는 자도 궁금할것이다. 게다가 왕 이라는 자가

무엇을 하는 자이며, 왜 있어야 하는 지는 아무도 모른

다. 그래서, 사엘은 사람들이 동요가 없는지 둘러 보는 것이다.


“그래. 내일 할 일도 많은데, 오늘은 문 밖에 서 있지

말고, 방에 가서 좀 자.”


“알겠습니다.”


카야가 일어나 방을 나선다. 사엘의 방 주변을

경호하는 카야의 정예무사 5명이 카야에게 다가온다.


“주변은?”


정예무사 하나가 대답한다. “별다른 상황은 없습니다.”


카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제단에 불이 돌아와,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는 이들이 있을 수 있으니,

주변 경호를 강화해서 지켜보도록 해. 그리고

사엘님께서 염려 하지 않으시게 조심히 움직이고."


정예 무사들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사라진다.


사엘이 방에 가서 자라고 했지만 카야는 그녀의

방 문 앞 마루에 걸터앉는다. 하란이 머물렀었고,

지금은 사엘이 머무는 이 건물은 다른 집 건물 과는

달리 옛날에 지어진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문이 없이 앞뒤로 뚫려 있는 마루와 양 옆에 손님방과

사엘방이 나란히 마주 보고 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 건물에는 부엌과, 하디, 유모가 머무는 방이 붙어

있다. 마루에 앉아 기둥에 기대니 까만 하늘이 보인다.

카야는 여기서 밤을 지새울 것이다. 정예무사들이

지킨다고는 하나, 여기 있는 것이 더 안심이 되고,

방 보다 편안하게 느껴진다. 제사장 집에 무사로

들어온 후, 방에서 잔 날보다, 이 방문 앞에서 보낸 밤

이 더 많다. 그래도 오늘은 마루에 걸터앉아 기둥에

등까지 기대니 더욱 편안하게 느껴진다. 경전을 읽는

사엘의 목소리가 방문 밖으로 흘러나온다.


하란의 목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카야는 오랜만에 맞는 고요하고, 평온한 밤이라

느껴진다.


사엘이 방문을 열고 나오니, 카야가 문 앞에 잠들어

있는 것이 보인다. 카야의 옆에 앉아 고단히 자는

그의 모습을 잠시 바라본다. 늘 밖에 있어서 그런지

까무잡잡한 피부에, 오뚝한 콧날, 다부진 입술로 반듯하게 잘생긴 그다. 키가 모든 사람들보다 늘 한 뼘쯤은

크고, 무술과 무예로 다져진 체격이다. 카야는 사람을

압도하는 힘과 기가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기둥에

기대 새근새근 잠든 모습이 순한 고양이 같다.


사엘이 나지막이 말한다. “방에 가서 자라니까. 이렇게

피곤하면서.”


카야는 사엘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세상이

만들어 놓은 가족, 친구, 동료, 제사장과 무사라는

어떠한 범주에도 들어가지 않은 그런 존재댜.

카야가 없다면 지금까지 살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사엘은 카야가 깨지 않게 조용히 일어나, 신전 으로

향한다.


어스름한 밤하늘에, 동이 트는 듯, 주변이 밝아오자,

카야가 놀라서 일어 난다. 너무 깊게 잠이 들었던 것이

다. 사엘의 방도 불이 꺼져 있다. 잘 있는지 확인하고

싶지만, 함부로 열고 들어 갈 수는 없다. 카야는

일어서서 경전의 신에게 기도 한다.


“경전의 신이여. 오늘도 이 아이를 지켜 주세요."


방으로 간 카야는 사엘의 말대로 준비하고 몇 명의

병사들과 리만투어로 간다.


예배당 안의 6개의 등잔에 불이 밝혀져 있고, 제단의

불도 환하게 일렁인다. 더 이상 나무에서 나는 눅눅한

먼지 냄새도 나지 않는다. 경건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감돈다. 사엘은 물두멍 앞에 서서, 손을 넣고 씻으면서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한 후, 제단 앞으로 걸어가 서서는

눈을 감고 기도 한다.


잠시 후, 제단뒤의 나무 벽뒤로 가자 널찍한 공간에

선반들이 있다. 예배 때 쓰는 물건들을 정리해 놓은 곳

이다. 아래쪽 선반에 제법 큰 갈색 상자가 있다. 꽤

묵직 하지만 사엘이 상자를 밀면서 제단 앞으로 가지고 나온다. 바닥에 앉아 상자의 뚜껑을 여니, 그 안에

여러 모양의 풍경들이 있다. 풍경들을 하나씩 꺼내며,

가지고 온 수건으로 먼지를 닦아낸다. 예전에 한참

의식을 드릴 때는 사환들이 있어 함께 준비했었다.

하지만 제단의 불이 사라지면서, 사환들도 점점 없어

졌고, 요 때부터는 그나마 드리던 의식마저 없어져,

사환들도 없다. 사엘은 먼지가 가득 묻은, 풍경

하나하나를 닦으면서 그녀의 마음도 가다듬어 보지만

걱정되는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신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는 하지만,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처음이고 서툴다. 그저 경전에서 읽은 대로, 들리는 대로

한다고는 하지만 늘 두렵다. 게다가 오늘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가 제사장임을 선포하고, 제단의 불이

돌아온 후, 처음으로 드리는 의식이다.


그러나 아무도 없다. 의식을 위해 연주를 하는 악사들

도 없고, 의식 준비를 돕는 사환도 없다.

그녀의 머리에 제사장이라며, 기름을 부어주는 이도

없다. 신전의 제단의 불은 돌아왔지만, 이곳 신전에서

일어난 일은, 일어나지 못하는 요와 죽은 후난만이

안다. 두렵고, 걱정되지만 사엘은 묵묵히 풍경들을

닦는다. 닦다 보니 천장에 난 창문으로 빛이 들어온다.


리만투어에 있는 제단을 정리하고 돌아온 카야가

신전으로 들어오며 말한다.

“언제 여기 오셨어요? 일어 나서 나가신 줄도 모르고.”


“그러니까. 이제 잠이라도 방에 가서 편하게 자.

얼마나 피곤했으면, 밖에서 자는데도 인기척도 못

듣고.”


“그런 적이 없었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나가시는

것도 몰랐습니다.“


“괜찮아. 숨겨놓은 무사들이 내가 나오니까 재빠르게

같이 움직이던데.”


“아셨어요?”


“알지 그럼. 그런데 숨겨 놓은 거 아니었어? 엄청 티

나게 지키던데.”


“아.”

카야가 짧게 탄식을 한다.


“걱정 마. 나만 눈치챘을 거야. 카야가 그런 위장 무사

정도는 곳곳에 배치해놨을 거라는 건 나도 예상한

거니까. 그건 그렇고, 제단은?”

“말씀하신 대로 주변을 정리해 놓았습니다.”

“그래. 그럼 나는 예복으로 갈아입고 준비할 테니.

카야는 여기 풍경들을 챙겨서 가지고 나와. 사환들이

없으니, 카야가 도와줘야 할거 같아.”

“알겠습니다”


카야를 보며 사엘이 미소를 짓는다. 든든하고

듬직하고, 무엇이든지 그녀를 위해 해 주고, 지켜 주는

그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모가 사엘의 머리카락을 한데 묶어 머리 위로 단정

히 올려 준다.

하디는 지난번 검은 예복 과는 같은 모양이지만,

투명하게 비치는 하얀색의 예복을 가져와 사엘에게

입혀 준다.


마당에는 네 명의 병사들이 풍경상자가 들어 있는

상자를 들것에 놓고 들고 서있다. 지난번 수장들 집에

함께 갔던 세명의 병사들은 제사장 집안의 깃발을

들고 서 있다.


카야가 사엘에게 묻는다. “말을 준비 할까요?”

“아니야. 걸어갈게.”


사엘이 앞장서서 걷자, 바로 뒤에 카야가 뒤따라 걷고

그 뒤에 깃발을 든 병사 세명과 풍경 상자가 있는

들것을 들은 네 명의 병사가 따른다. 전쟁으로 치면,

무기도, 말도 없는 참전이고, 사환도 없이, 병사들이

의식에 필요한 물건들을 들고 따라나서는 음악도

울리지 않는 초라하고 볼품없는 첫 의식 준비

행렬이다.


사엘이 천천히 리만투어를 향해 걸어간다. 언덕에

다다르자, 카야가 새벽에 나와 정돈해 놓아서, 그동안

흙과, 나뭇가지들로 뒤덮여 있어 보이지 않던

제단터가 보인다. 가운데에 넓게 아래층이 있고 그

위에 그보다 작게 이층이 있고 그보다 작은 위에 한 층

이 더 있는 신전 안에 있는 것과 같은 삼층 높이이지만,

직사 각형 모양의 제단터이다. 사엘이 한층 한층

올라가 삼층에 다다르자, 가운데에 돌로 둥그렇게

둘러진 것이 보인다.


제단의 불이 머무는 자리이다.

이곳은 사람들이 모이고, 지파가 처음 생겼을 때

신에게 처음 의식 드렸던 제단터이고, 그 뒤로 몇

세대 동안 이곳에서 의식을 드렸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지금 사엘이 살고 있는 곳에

신전을 지어 또 몇 세대는 그곳에서 의식을 드렸었다.

하지만 제단의 불이 사라지고, 신전에서만 겨우 의식을 하다 보니, 사람들에게 이곳 제단터는 신을 잊는

듯 함께 잊혀져 갔다.


신전의 제단의 불과, 지파들 문 앞의 등불은 돌아왔지만 이곳은 아직 불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에

서 제사장으로 지음 받아, 첫 의식을 드려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다.


사엘은 둥그렇게 둘러진 돌무더기를 한 바퀴 돌며

주변을 바라본다. 하늘과, 바다, 땅이 모두 보인다.

그래도 아무것도 없진 않다. 하늘과 바다, 땅이면

경전의 신을 위한 의식을 드리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엘이 카야에게 말한다. “풍경들을 꺼내서 나무에

매달아 줘.”


카야가 지시 하자 함께 있던 병사들이 부지런히

움직여 풍경들을 나무에 매단다.


사엘이 바다를 등지고, 돌무더기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당신의 부르심을 받은 자, 당신 앞에 나와와

당신의 음성을 듣습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도 않는다. 사엘은 그대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다.


정오쯤이 되어 지파의 수장들과 그의 가족들이

언덕으로 올라온다. 사람들도 리만투어 바닷가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정오쯤 되자 맑았던 하늘이 구름으로 뒤덮여

그늘이 생기고 바람까지 선선히 분다.

사람들이 모여 있기엔 오히려 좋은 날씨이다.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가지에 매달린 각각의

모양의 풍경들이 움직이면서 내는 여러 소리들이

마치 악사들이 연주하는 것 같다.


사엘은 잠시 바람에 흩날리는 풍경 소리와,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사엘이 조용히 제단을 향해 말한다.

“당신의 부르심을 받은 자, 당신 앞에 나와와

당신의 음성을 듣습니다.”


“내가 지명하여 부른 나의 제사장. 내가 너를 제사장

으로 기름 부으리라.”


사엘게만 들리는 음성이다. “당신의 부르심을 받은 자,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놀라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지명하여

부른 나의 제사장.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음성이 멈추고, 사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제단을

등지고, 리만투어 바다를 바라보며 선다.


산들바람에 풍경 소리가 울려 퍼진다.


라함과, 하갈, 마하셀이 사엘을 바라본다.

제단의 불을 밝힌 자, 그리고 처음 지파가 생겼을 때

처음 의식을 드렸던 장소에 모인 이들.

감격스럽고 가슴이 벅차면서도, 어린 여자,

여자 제사장, 과연 저 아이가 무엇을 어떻게 할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4지파 넬과 5지파 사울진 그리고 다른 작은 지파들의

수장 몇 명도 지켜보고 서있다. 사울진은 마음이

복잡하다. 제단에 불을 밝힌 자, 그 자가 지명하는

자가 왕이 될 것이다라는 말이 그의 머릿속에 끊임없

이 맴돌았는데, 지금 제단에 불을 밝힌 자,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자가 저기 서있다.

지파들의 행보가 앞으로 어떻게 뒤 바뀔지, 그는 또

무엇을 준비하며 살아남아야 하는지 머릿속이 생각들

로 가득하다. 그런데, 막상 제단 앞에 서 있는

불을 밝힌자라는 자는, 아들이 친구라고 부르는,

그저 어리고, 여려보이는 저 자는 아무것도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서있기만 한다.


리만투어 바닷가에 모인 이들도 웅성 웅성 이야기를

한다. 소문으로 들은 삼 일 전에 제사장 가문에 일어났

던 일들, 사엘의 이야기, 첫 여자 제사장 이야기,

그리고 전해만 내려오던 제단의 불도 좋지만,

신이 돌아오면 그동안 가물었던 곳에 비가 내려 기근

이 멈추고, 질병이 사라 졌으면 하는 바람들도 나눈다.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 사엘이 오른손을 들자,

바람이 좀 더 세차게 불기 시작한다.

풍경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며, 바람 따라 리만투어

바닷가까지 들린다.


사엘이 손을 내리고, 천천히 입을 열어 말한다.

“나의 음성이 바람에 실려 들릴 것입니다. “


바람은 부는데 풍경 소리가 잠시 멈추고, 대신

사엘의 음성이 바람에 날려 울려 퍼진다.


“귀 있는 자들은 들을 것이고, 마음이 있는 자들은

느낄 것이며, 눈이 있는 자들은 볼 것입니다. 그동안

사라졌던 제단의 불은 돌아오고, 처음 경전의 신을

위한 의식을 드렸던 이곳 제단터에서 다시 경전의

신을 위한 의식이 시작될 것입니다.”


사엘이 말을 마치고 제단 맨 아래 땅으로 내려와,

말을 잇는다.

“제단에 불이 돌아 것입니다. 경전의 신이 이곳에

머무실 것입니다.”


바람이 분다.

풍경들이 바람에 나부끼며 내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자연이 연주하는 최고로 아름답고 신성한 선율이다.

바람은 불지만, 풍경소리가 작아지면서 사엘의 소리

아닌 다른 소리가, 분명하게 울려 퍼지며 들린다.


“내가 다시 이곳에 머무르리라. “


마치 히늘에서 들리는 음성이 들리더니, 돌무더기

제단에 불꽃이 일어나, 하늘로 치솟는다.

언덕 위에 모여 있던 사람들도 불꽃을 본다.


사람들이 웅성 웅성 소리친다.

“불꽃이다. “

“제단에 불이 돌아왔다.”


산들바람이 일며 풍경소리가 다시 크게 들린후,

다시 풍경 소리가 멈추어지고,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

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지명하고 부른 자. 제사장으로 기름 부은 자.

이곳에서부터 나를 위한 의식이 시작되리라.”


사엘의 말대로 귀 있는 자들에게 들리는 음성이고,

눈이 있는 자들에게 보이는 불꽃이다.


1지파 수장 라함과 그의 부인 레첼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는다. 2지파 하갈과 3지파 마하살과 레이도 무릎을

꿇는다. 모여 있던 이들이 모두 신에 대한

경의로움으로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제단의 불 앞에, 이들 지파와 함께 하며,

의식을 주관하던 제사장 가문, 그리고. 사라졌던

제단에 불을 밝히고, 신이 직접 기름 부어 지명한

제사장이 서있다. 제사장에 대한 경의도 함께 표하는

것이다.


사엘이 천천히 입을 연다. “사라졌던 제단의 불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를 주관하시는 경전의 신이 이곳 제단에 임재하십니다. 신을 위한 경배와

찬양의 의식이 이 땅 위에 다시 울려 퍼질 것입니다.”


사람들이 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경전의 신이 돌아오셨다.”

“새로운 제사장님이시다.”


그때, 리만투어 바다 멀리서 검은 먹구름이 몰려온다.

사람들이 다시 한번 술렁이며 웅성거린다.

“저기 저 구름 좀봐.”

“먹구름이야.”


사엘이 몰려오는 먹구름을 바라보며 말한다.

“경전의 신이 하늘에서 비를 내려 지면을 적시고

땅이 소산을 풍성히 낼 것입니다. 오랜 가뭄이 멈추고,

이 땅이 회복될 것입니다. 질병이 치유될 것입니다.

이 땅이 번영과 축복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사엘이 말을 마치자, 먹구름들이 빠르게 몰려와 비를

내린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비다. 비야.”


라단이 손바닥을 펴 비를 받는다. 처음 느끼는 비가

신비롭다.

여람과 밧세 수아도 비가 내리는 하늘을 쳐다본다.

얼굴에 부딪히는 빗방울이 간지럽고, 시원하다.

모두들 비에 젖지만 누구 하나 비를 피하는 이 없이

비를 맞으며 기뻐한다.


마음이 있는 자는 느낄 것이라는 사엘의 말대로

사람들의 마음이 뭉클하다.

비를 맞는 이들의 얼굴에 눈물도 같이 흘러내린다.


잠시 내리던 비로, 우물이 채워지고, 계곡에 물이

흐르며, 말라서 갈라졌던 땅들이 촉촉해진다.

빗속에서도 제단의 불은 여전히 불타 오른다.

꺼지지 않는 불이다. 사엘이 서 있는 땅과 그녀는

젖지 않고 있다. 신이 머무는 신성한 곳이고, 제사장으

로 기름 부은 자가 서있는 곳이다.


내리던 비가 가늘게 잦아들고, 연한 파란색 하늘에

햇볕이 든다. 빗방울이 빛을 받아 반짝 거린다.

산들바람이 불며 풍경소리가 다시 울려 퍼진다.

빛을 받은 물방울들이 사엘을 비추어, 그녀를 환하게

비춘다.

빗방울이 다시 거세지자, 바닷가에 모여 있던 사람들

이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간다. 카야의 병사들과, 세명

의 수장들이 지원한 병사들이, 모여 있는 사람들을

통제하며 모두들 소동 없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리저리 바삐 움직인다.


카야와 깃발과 풍경을 옮긴 최측근 호위 무사들은

언덕 위에서 사엘의 주변을 지킨다.


빗방울이 다시 잦아들고 바닷가의 사람들이 어느 정도

떠난 후, 한참을 무릎 꿇고 앉아 있던 라함이 일어 나자

하갈과 마하살도 일어 난다.


라함이 사엘에게 다가 가자, 카야도 함께 움직이며

사엘 옆에 선다. 사엘이 카야를 보며 고개 짓을 하자,

그는 좀 더 멀찍이 선다.


라함의 발 앞에 비가 왔는 대도 젖지 않은 땅이 보인다.

신성한 곳이다.

그는 발을 더 이상 옮길 수가 없다.

그의 앞에 서 있는 자는 아들의 친구이자 어리고 여린

여자가 아닌 모든 지파 위에 혹은 모든 지파와 함께

하는 제사장이다. 이로써, 태초에 세워진 가장 오래된

지파의 수장은 신의 부름을 받은 제사장에게 경의를

표한다. 사엘도 함께 목례를 한다.


하갈과 마하살이 다가와 목례를 한다. 하갈과 눈이

마주친 사엘의 눈에 눈물이 핑 돈다. 사엘을 바라보는

하갈의 눈에도 눈시울이 젖는다. 그들 셋과 그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 자리를 뜨자, 여람과 수아, 밧세도

그들을 따라 자리를 뜬다.

사엘에게 가고 싶지만, 지금은 그저 조용히 부모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 나은듯 한 분위기이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사울진과, 넬, 그리고 그들의

가족과 자녀들도 자리를 뜬다.


라단은 걸어가다, 뒤돌아 사엘을 바라본다. 사엘은

제단 앞에 그저 가만히 서서 멀리 바다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사엘을 라단은 언제나 그렇듯

그저 바라보다 자리를 뜬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자, 카야도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나즉만한 소리로 경전의 신에게 기도 한다.

“경전의 신이여, 이 아이를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카야는 안다.

그의 기도가 얼마나 무력하고 보잘것없는지.

신의 힘이 온통 사엘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인간인

그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미약한지 안다.

그래도 카야는 그가 사랑한, 저 아이의 엄마가

그랬듯이 경전의 신에게 그녀를 위해 기도 한다.


비도 완전히 멈추고 바람도 일지 않는다.

사람들의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고, 풍경소리도

아주 작게 울리며, 파도 소리만이 들린다.


사엘도 크게 숨을 내쉰다. 제단으로 몸을 돌려,

무릎을 꿇고 바닥에 앉는다.


불꽃 속에서 사엘만이 들리는 음성이 들린다.

“제단의 불을 밝힌 자. 내가 지명한자.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로 인해 기뻐하리라.”


제단의 불꽃이 춤을 추듯 일렁거린다.

이전 11화Chapter Eleven 제단의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