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들은 라함의 집으로 식사를 하러 떠나고, 수아와 여람, 밧세, 그리고 4지파의 딸들 보와 브니아는 신전
을 나와 조용히 마당을 가로질러 걷는다. 서로들 알고
있는 사이지만, 따로 만난 적은 없어, 이렇게 남겨지니
좀 전에 어른들과 따로 식사를 하게 되어 들떴던 마음
들이 지금은 서로 어색하기만 하다.
그래서, 다들 말없이 서성이고 있는데, “우리도 가도
돼?”라고 누구에게 물어보는 것인지도 모르게 애매하
게 보가 묻는다. 하지만, 가도 되냐고 묻는 이도, 가도
된다고 누가 말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이들 모두는 더 할 말이 없다. 두 자매는 이미 그 들 셋이 친한 것을
알고 있고, 셋은 이 두 자매가 그들과 있는 것이 편할까
생각하는 것이다.
밧세가 겨우 대답한다. “응. 아까 그렇게 하기로 했잖
아. 왜? 너네는 못 가?”
생각해 보면 그의 어머니가 준비한 식사이니, 그가
식사의 주체자가 된 것이고, 그렇다면 여기 있는
이들을 다 데리고 가야 하는 것이 맞지만, 가자라고
말하기가 좀 망설여진다.
예전에 어떻게 사엘에게는, “이제부터 우린 친구니까,
다 같이 잘 지내는 거야.”라고 말했는지 모르겠다.
10대 때의 용기와 패기였을까.
브니아가 말한다. “언니는, 우리도 가도 되나 해서
다시 물어 본거지.”
수아를 마음에 두고 있는 브니아는 말을 마치고, 그의
얼굴을 보더니, 살짝 상기된 듯 수줍게 보인다.
수아는, 지파 여자애들 중에, 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
이 누가 있냐며, 친구들 앞에서 자랑도 하고 떠벌리기
도 했지만, 막상 그를 좋아한다고 하는 사람이 앞에
있으니, 어색하고 쑥스러워, 그는 그냥 집에 가겠다고
말하고 싶다.
밧세는 하갈이 준비한 식사를 이들과 해야 하고, 여기
서 다들 집에 가버리거나, 여람과 수아랑만 따로 모이
면, 그 소식을 들은 어른들이 언짢아하실 것 같아,
“여기 이러고 있지 말고 다들 같이 가자.” 라고 말한다.
이렇게 까지 말했는데, 여기서 나는 안 갈래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선택이니, 그는 할 일을
다 한 것이라 생각하다.
밧세의 말에 다들, 발걸음을 옮긴다
그때 카야가 이들에게 다가와, ”다들 가시게요?“ 라고 묻자, 밧세는, ”응. 지금 다 같이 우리 집에 가려고.
사엘. 아. 제사장님은?” 하고 묻는다.
“신전에서 뒤정리를 하고 계십니다. 곧 뒤 따라가실
거예요. 타실 것을 준비해 드릴까요?”
다들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그런데 라단은? 안 보이네? 집에 갔어?” 라고 여람이 묻자, “저도 못 봤습니다. 더 찾아보고 밧세님 댁으로 가시라 알려 드리겠습니다.” 라고 카야가 대답한다.
수아가 말한다. “알았어. 그럼 우리 먼저 가 있을게.”
다들 타고 온 말들을 타고 떠난다. 여람은 떠날 때까
주변에 라단이 있는지 확인해 보지만 그는 어디에도
보이질 않는다. 늘 신경 쓰이는 놈이다.
카야가 사람들을 보내고, 신전으로 오니, 문 앞에 라단
이 서서 열린 문으로 사엘을 보며 서있다.
카야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 말한다. “안 가시고 여기
계셨습니까?”
“응. 제사장님 모시고 같이 가려고,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할 일이 아직 많으신가 봐. 그래서 여기 서서
바라보고 있는 중이야.”
라단은 사엘을 존칭 해서 부르는 것도, 그녀를 바라보
고 있는 것도 좋은지, 입가에 미소까지 짓고 있다.
카야는 그런 라단의 모습을 보면서, 같은 남자가 봐도
그는 매력적인 얼굴이고, 마음 또한 섬세해, 어떤 사람
이라도 그에게 반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저보다는 나으시네요.”
“응?”
“전 거의 닫힌 문 앞에 서 있거든요. 라단님은 열린
문 앞에 계시니, 제사장님도 보실 수 있고요.”
“아. 그래서. 그 말 들으니 마음이 좀 괜찮네. 그래도
나는 볼 수는 있으니까."
멀리 있는 사엘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따스하고 사랑이 넘쳐 보인다.
카야는 하란이 이 청년을 만나 본다면, 딸이 만나도
될 정도로 맘에 들까, 안심이 될까, 이만한 청년이면
괜찮다고 생각할까 잠시 상상해 본다.
“제가 잠시 들어갔다 나오겠습니다. 제사장님께 전해 드릴 말도 있고요.”
카야는 제단 앞을 향해 앉아 있는 사엘에게 다가가
말한다. “모두들 떠나셨고, 수장님들 모두 라함 수장님
댁으로 가셨습니다. 자제분들은 모두 밧세님집으로
가셨습니다.”
“알았어.”
“제사장님도 가 보셔야죠. 어느 장소든.”
“글쎄. 둘다 안 가는게 나은 것도 같아서. 그냥 지금은.”
“라단 님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왜? 밧세네 가서 식사하라고 전해.”
“글쎄요.”
“가서 전하라는데 무슨 글쎄요?”
“안 가실 거예요.”
카야의 말에 사엘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카야는 사엘에게 다 알면서 하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을 잇는다. “저라도 그럴 겁니다. 라단님이 저랑
좀 비슷한 부분이 있어요. 누구에게만큼은요.”
“알았어. 무슨 말하는지. 그런데 이건 상황이 다르니까
그러지.”
“상황이 달라도, 누구에게만큼은 늘 같아요. 적어도
저나 라단님에게는요. 그러니 너무 오래 계시지 말고
나오세요. 오늘 일도 너무 많이 하셨어요.”
“알았어. 하던 것만 마저 하고 금방 나갈게.”
카야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온다.
“곧 나오신 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집 안팎으로 정리
할게 남아서, 좀 둘러보고 와야 하는데...”
캬야가 말끝을 흐리자, 라단은, “내가 여기 있을게."
라고 선뜻 말한다.
카야는 일 핑계를 대고 잠시 자리를 떠나는 것이다.
이 둘에게 함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이다. 사엘이 다른 수장의 자제들을 대하는 태도와, 라단을
대하는 행동과 바라보는 눈빛이 다른 것을 안다.
라단도 마찬가지이다. 둘은 서로에게 관심이 있고,
우정을 넘어 서로 좋아한다.
그래서 카야는 나중에 둘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 둘이 함께 있게 해주고 싶다.
잠시 후, 사엘이 신전을 나오자 문 앞에 서있는 라단이
보인다.
둘은 잠시 서로를 말없이 쳐다본다.
사엘이 먼저 말을 한다. “배고프다 그렇지?”
사엘의 말에 라단이 피식 웃으며 말한다.
“역시, 너 다워. 이 와중에 배가 먼저 고프고.”
그녀가 살갑고 상냥하게,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라단은 가끔, 사엘이 기다리고
있는 그의 손을 잡아 준다던가 같은 그런 기대를 해
보곤 했다.
카야가 라단이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주고 나서부터
사엘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열여섯 살 때부터 함께
한 친구이고, 그녀를 기다린 친구가 이 친구 하나 만은
아니지만, 그는 그녀를 늘 설레게 한다.
문 앞에 서 있는 라단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인다.
살짝 곱슬이 있는 목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모임
때는 묶고 있더니, 지금은 풀고 있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반사된, 몸의 형체, 바람에 살짝 나부끼는 머리
카락, 오뚝한 콧날의 윤곽, 그녀를 바라보는 눈망울,
사엘은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고, 잠시 그를 바라봤고
떨리는 마음을 감추기 위해 겨우 꺼낸 말이,
배고프다 였다.
“넌 밧세네 안 가?”
“글쎄요. 제사장님은요?”
라단이 그녀를 제사장이라 부르자, 사엘이 피식 웃으
며 말한다.
“글쎄요. 5지파 수장님의 자제분 라단님."
둘이 서로 웃으며, 마당으로 나오자, 카야가 다가와
묻는다. “어디로 가실지 정하셨어요?”
둘이 동시에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유모님이 국수를 만들어 놓으셨던데, 좀 드실래요?
너무 배고프시죠?”
둘은 고개를 위아래로 흔든다.
“그럼 손님방으로 가세요. 제가 그곳으로 준비하라
하겠습니다.”
둘은 카야의 말에 마당을 가로질러, 사엘의 방이 있는
마당으로 향한다.
사엘이 손가락으로 집을 가리키며 말한다.
“저기가 내 방이 있는 집인데, 한쪽은 내 방이고, 다른
한쪽은 찾아온 손님을 만나는 방이야. 물론 그동안
방문한 사람은 없었지만, 네가 오면 첫 번째 방문객일걸.“
“오. 영광입니다."
"그만해."
사엘이 정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라단은 다시
한번 씨익 웃더니, "알았어. 그만 할게. 그럼 친구, 네
방도 구경 해도 돼? 그것도 내가 처음이야?”
“예전에 리만투어에서 쓰러졌을 때, 수아랑 여람이랑
밧세가 날 데리고 와서 방에 눕혔다고 했거든. 그런데
그건 방문으로 치면 안 되는 건가?”
“응. 안 되는 것 같아. 그럼 오늘은 내가 다 처음인
거네. 늘 여람이나, 밧세, 수아 보다 나중이었는데.”
“손님 방은 네가 처음 맞아. 그리고 내 방 구경은 다음
에.”
“알았어. 너 편한 대로 해.”
사엘은, 라단에게 그녀의 방도 보여 주고 싶지만,
그녀의 방은 잠을 자는 것 이외도, 하루를 시작할 때
하루를 마감할 때, 기도 하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곳이고, 신을 만나는 곳이고, 경전을 읽는 곳이고, 생각하고 꿈을 꾸는 곳이다. 라단이 왔다 간다면, 그의 생각
을 많이 하게 될 것 같아서이다.
사엘은 라단의 팔을 잡아끌며 말한다.
“빨리 가자. 유모가 만든 국수 얼마나 맛있는데.”
손님방으로 들어가 탁자 앞 의자에 앉자, 유모랑 하디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수를 들고 들어 온다.
사엘은 긴장된 하루를 보내고, 사랑하는 친구와 마주
앉아 따뜻한 국수 국물을 한 수저 떠먹는 순간 평온
하고 행복한 기분이 든다.
“맛있지?”
사엘의 말에 라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라단은 행복하다. 그의 생각에, 행복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맞는 것도 같다. 머리가 아닌
마음에 느껴지는, 사랑한다고 느끼는 친구와 함께
하는 식사, 둘만의 공간, 마주 보며 짓는 웃음, 평범하
고 일상적인 것 같지만, 소중하고 애틋함 속에 행복한 느낌도 함께 깃드는 듯하다.
호록 호록 국수 먹는 소리가 방안에 경쾌하게 들린다.
어느덧 깜깜한 밤이 되었지만, 라단은 집에 갈 생각이
없고, 사엘은 라단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둘에게 긴 하루였지만, 피곤하지 않고, 지금은 잠자리
에 들고 싶지 않다.
“피곤하지 않아?”
“괜찮아. 모임 끝날 무렵에는 좀 피곤했었는데, 밥
먹고 나니까 또 힘이 나네. 역시 우리 유모 국수가 보약이야.”
사엘은 안 피곤해. 너랑 더 같이 있고 싶어라고 말하면
될 것을, 피곤하지 않다고 길고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그럼 리만투어에 가서 좀 걸을까? 너무 늦었나?"
라단이 묻자, 사엘은 아니라며, 밤바다의 파도 소리가
듣고 싶다고 말한다.
둘은 밤바다를 보며, 잠시 모래 사장을 걷는다.
걸으면서 라단이 나무 자기를 주웠고, 잠시 후, 모래
위에 앉자, 작은 모닥불을 피운다.
“안 추워?”
“괜찮아. 시원하고 좋아.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아.”
라단은 사엘 옆으로 더 붙어 앉아, 그의 온기를 나누어
주고, 둘은 잠시 그렇게 앉아, 파도 소리를 듣는다.
한참 후, 사엘이 그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른다.
“라단아”
“응?”
“라단아?”
라단은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뒤적이며 “왜?“ 라고 대답한다.
그는 그저 모닥불과 모닥불을 뒤적이는 나무 막대기에
만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일부러 외면
하는 것이다. 사엘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사엘이 모닥불을 뒤적이고 있는 라단의 손을 잡자,
그는 잡고 있던 막대기를 놓고, 사엘을 바라본다.
모닥불 불빛 사이로, 서로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인다.
“말해. 너의 말이라면 어떤 말이든 나는 들을 준비가
돼 있잖아."
라단을 바라보던 사엘은 그의 말에 오히려 얼굴을
돌려 모닥불을 응시한다. 둘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른다. 멀리 바닷가에서 바람 한점 일지 않는 밤바다
의 파도 소리가 잔잔하고, 고요하게 들려온다.
사엘은, 나지막이 한숨을 쉬고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까만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히 떠 있다. 라단과 자주
나란히 누워 바라보던 밤바다의 하늘이다. 앞으로
이들에게 이런 시간들이 얼마나 자주 있을지 모르겠고
서로 이러고 있어도 괜찮은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은 지파의 중심인 제사장이 되었고, 한 명은
수장의 아들이다. 사엘이 누군가와 특별히 가까이
지내거나, 마음에 두는 것 모두가, 사람들의 관심거리
가 될 것이다. 게다가 제단의 불은 돌아오고, 사람들은
경전의 신을 찾기 시작했지만, 타락과 불명예스러운
일들로 신임과 명성을 잃은 제사장 가문이기에,
제사장으로서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것도 중요한
시기이다. 20대 여자로, 이제 시작한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는 것이니, 사엘은 행동과 말 모두 신경쓰이고
조심스럽다. 하지만 라단을 안 만나고, 친구들을 안
만나며 지내는 것은 더 힘들게 느껴진다. 제사장이라
는 직분이 있어도 사람인 그녀에게는 사랑도 우정도
나눌수 있는 사람도 필요 하다.
사엘 대신 라단이 입을 연다. “네가 말 하지 않아도
알아."
라단은 사엘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라단의 마음에,
앞으로 이렇게 제사장의 어깨에 손을 얹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오늘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하고
싶다. “네가 많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짊어져야 할 부분을 잘 감당할 수 있으면 좋겠고, 난
네가 아주 잘할 거라 믿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만약.”
라단이 하던 말을 잠시 말을 멈추자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말한다. “만약? 뭐?”
사엘이 묻자, 라단은 깊이 한숨을 쉰 후,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간다.
“만약, 우리가 지금처럼 이렇게 함께 있지 못해도.“
“너는 괜찮아?”
라단이 아무 말없이, 다시 모닥불을 응시하자, 사엘이 말을 잇는다. “나는 못할 거 같아.”
좋아한다. 함께 하고 싶다는 말대신 못할 거 같다는
말에, 그녀의 마음을 담은 고백을 그에게 전한다.
그가 알아 들어도, 알아듣지 못해도 상관없다.
“나도. 못하지. 네가 내 유일한 친구이고… 음.. 친구인
데.”
라단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인데 라는 말은 마음에 담고 다른 말을 입 밖으로 내 뱉는다. “못 할거
같아도 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에게는 기회를 주고,
하고 싶은 일을 맘대로 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일들이 있잖아.“
라단은 그가 그녀와 함께 하는 날 보다, 지금 그녀가 감당해야 하는 직분을 격려해 주고 싶다.
“너는 네가 가야 되는 길을 가면 돼. 그 옆에는 내가
이렇게 함께 있을 거니까.”
라단은 너의 곁에 있을 거라는 말에 그의 마음을 전해 본다.
사엘은 라단을 가만히 응시한다.
둘 사이에 정적이 흐른다.
사엘의 마음에 이 만큼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해도, 어디를 가도, 그가 그녀의 옆에 이렇게
함께 있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별들이 총총히 떠 있는 밤하늘, 잔잔히 들려오는
파도 소리, 불꽃을 내는 모닥불, 나란히 앉아 서로
온기를 나누는 이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기를 둘은
바래본다.
“안아도 돼?”
라단이 놀라며 묻는다. “뭘 해?”
“널 안아도 되냐고?”
“왜 그래?”
라단이 사엘 옆에서 조금 떨어져 앉으며 말한다. 두근거리는 그의 심장소리가 그녀에게 들릴까 여서이다.
늘 라단이 먼저 사엘을 안아 줬었다.
오늘은 사엘이 그를 먼저 안아 주고 싶다.
“안아도 된다고 나 대답 안 했다.”라고 말하며, 그는
사엘을 살짝 밀쳐 내지만, 사엘은 그를 더욱 꼭 끌어
안는다. 라단도 뿌리치는 것을 멈추고 사엘의 품에
안겨 본다. 처음 안겨보는 그녀의 품이 따뜻하고 포근
하다. 그도 사엘의 허리를 잡아당겨 끌어안는다.
사엘의 심장이 떨리고 두근 거린다. 라단은 사엘의
얼굴을 보며, 손으로 그녀의 빨개진 볼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네가 안아도 되냐고 하더니, 볼은 왜 빨개졌어?”
사엘은 라단을 밀쳐내며 말한다. “뭐가 빨개졌다고
그래. 추운가 보지. 아니 더운가?”
라단은 그녀의 입에 입을 맞춘다. 사엘이 뭐야 라고
말하려는데, 라단의 입술이 사엘의 입술을 막는다.
라단은 그녀를 처음 만난 그때부터 그가 그녀를
운명처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다. 라단의 손은 늘
그녀를 향해 내밀어져 있었고, 팔은 그녀를 늘 포근히
감싸주고 있었으며, 눈은 늘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고귀는 그녀가 말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었고, 마음은 늘
그녀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심장은 그녀로 인해
숨을 쉬었다. 그래도 늘 그립고, 보고 싶은 그녀였다.
라단은 안다. 그는 그녀로 인해 존재한다는 것을.
라단은 사엘의 이마에, 눈에, 볼에 입맞춤을 한다.
사엘은 라단에 대한 그녀의 감정이 모두 그를 향한
사랑이었음을 알았다. 사엘은 그녀가 가는 모든 길에
그와 함께 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지금처럼 이렇게.
라단과 사엘이 손을 마주 잡고, 모래 위에 나란히 누워
바라보던 까만 밤하늘이 청색으로 바뀐다.
길었던 리만투어의 밤이 지나고, 곧 있으면 동이
틀 것이다.
사엘은 라단 쪽으로 몸을 돌려 누우며 말한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도, 나란히 누워 있었는데.”
라단도 사엘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한다. "너는 바로
누워있었고, 나는 지금처럼 이렇게 너를 보며 옆으로
누워 있었는데 “
“그랬어? 마주 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너는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너를 보고 있었고
네가 바다를 보고 있을 때도, 나는 너를 보고 있었고
네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도, 나는 너를 보며 생각하고
있었고.”
“언제부터야?”
“뭐가?”
“그런 느끼한 말들을 생각하고 말한 게?”
“한참 됐어.”
“그런데 왜 말 안 했어? 나 오글거리는 거 좋아하는데.”
“그러게. 네가 오글거리는 이런 말들을 좋아하는
건 나도 오늘 알았네. 진작 알았으면 매일 해줄걸.”
“그럼 지금 해봐.”
“난 네가 너무 좋아서, 내 심장은 맨날 두근거려.”
“또?”
“네가 너무 멋있어서 숨 막혀.”
“또?”
“보고 있어도 보고 싶어.”
“나도.”
주변이 서서히 밝아온다. 라단이 먼저 일어서고, 사엘
을 일으켜 주고는 그녀를 뒤에서 감싸 안는다.
바다 지평선 너머, 하늘이 붉은색으로 길게 늘어지면
서, 마치 바닷속에서 해가 떠 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해가 올라오며 비추는 바다 물결이 황금색으로
반짝 거려 눈이 부신다.
라단이 사엘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아름답지?”
“응.”
“따스하지?"
"응."
"네가 가는 길이 저 태양 처럼 늘 아름다울 거야.
그리고 내가 너의 뒤에 이렇게 늘 있을거야. 널 항상
따스하고 포근하게 해줄게."
사엘이 몸을 돌려 라단을 바라보고는 그를 안으며
말한다. “나도 널 이렇게 늘 안아 줄거야. 네 곁에 항상
있을 거야."
둘이 마주 보고 웃는다.
앞으로는 이렇게 같이 있지 못할것 같다고, 그렇게
해야 할것 같다고, 말 하려던 날이, 우정과 사랑의 경계
가 무너진 날이 되었다. 이제부터는 서로의 마음이
어떤지, 그래도 되는지, 조심 할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만 둘의 상황을 생각하지 않을 순 없다.
직분도, 해야 하는 일도 없이, 둘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만 생각하고, 서로를 향한 사랑만을 표현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둘은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라도 서로의 마음을 알았으니, 앞으로 함께 할
날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카야는 멀리서, 둘을 지켜 봤고, 그가 지켜야 할 사람
한 명 더 늘었다는 생각이 든다.
"경전의 신이여. 늘 그러 하셨듯이 사엘을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를 또한 늘 그렇듯이 지켜 주세요.
그리고 그녀가 사랑하는 이도 지켜 주세요. 둘의 날들
이 서로 아름다울 수 있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