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Eighteen 달빛 속의 생각

by Hye Jang

“사울진 있는가?”

아침마다 서울진집을 찾는 넬이, 어쩐 일로 오늘 아침에는 오지 않더니, 늦은 밤이 되어서야, 사울진의

집의 서재로 들어서며 말한다.


사울진과 웃날은 오랜만에 둘이 산에 가서 약초를 따다가 손질하고 있는 중이다.

사울진이 서재로 들어오는 넬을 보며, 그에게 다가가더니, 진하게 풍겨오는 술 냄새에, “아니, 이게 무슨 냄새인가? 어디서 술을 이렇게 많이 마셨어?”라고 묻는다.


사울진이 말한 것처럼 넬은 술을 많이 마신 모양인지, 표정도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들떠보이기도 하고

단정치 못한 행색에 걸음걸이 또한 똑바로 걷지 못한다.


사울진은 넬을 부축해 그를 의자에 앉히자, 넬은 실없이 헤죽 헤죽 웃으며 말한다.

“이리들 와서 앉아보게. 내가 정말 중요한 것을 알아냈어.”


사울진은 넬 옆 의자에 앉으며,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은데, 집에 가서 먼저 쉬고 낼 이야기 하게. 중요해도 자네 만큼 중요하겠는가.”


사울진의 말에 넬이 허리를 뒤로 젖히며 큰 소리로 웃으며 말한다.

“역시 날 위하는 건 사울진 자네밖에 없다니까. 그래서 나도 자네를 위해 알아 온 것이 있지.”

“그래 그러면 이 정도까지 취해가면서 알아온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게.”


사울진이 눈짓을 하자, 웃날도 만지던 약초를 놓고는 의자에 와 앉는다.


사울진은 웃날과 어디든 함께 다니고, 그를 늘 그의 곁에 앉힌다. 노예시장에서 사 왔으니, 주인과 노예이고

지금은 수장과 무사의 관계지만, 사울진에게 있어 웃날은 가족이고 형제이기 때문이다. 웃날은 처음에는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주인에 대한 예우를 하고 싶다고했지만 사울진의 마음을 알았기에 늘 그의 곁에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고 앉아 있는다.

웃날에게 있어, 사울진은 그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살아 숨 쉬게 해주는 그의 심장과도 같은 존재이다.


“내가 지금 마데라에서 오는 길인데.”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마데라에서 있었던 일인가?”

“그렇지. 내가 오늘 아침에 마데라에 갔는데, 라함 수장네 식자재를 모두 관리하는 식모를 우연히 만나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그 집 식모가 성질이 어찌나 불같고, 화도 많고 불평도 많은 사람 인지. 내가 그전부터 만나면 이야기도 들어주고, 또 가끔은 약속도 해서 만나기도 하면서 그럭저럭 친하게 지냈는데, 이번에는 아주 우연히 마데라에서 보게 된 거지. 그래서 내가 귤즙도 한 잔 사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주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어찌나 화가 많고 불평이 많던지. 그래서 귤즙에서 술로 바꾸어 마시다 보니, 이렇게 취해 가지고.”


넬이 허허하고 웃자, 사울진이 말한다. “화가 많고 불평이 많은 식모랑 술을 먹다가 이렇게 취한 거군.”


넬은 술 때문인지, 자기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울진 때문에 신이 낫는지, 한층 더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서 오늘도 내가 물었지 무슨 일 있었느냐? 또 뭐가 그렇게 화가 났느냐 하니까, 술술술 이야기를

어찌나 잘 늘어놓던지. 사람이 말이야, 참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해. 그런데 이야기할 때가 없는 거지. 그래서

누군가가 조금만 관심 있게 들어주고, 맞장구 몇 번 쳐주면, 아주 그때부터 자기 이야기부터, 누구 험담, 같이 일하는 사람들 이야기까지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특히 그 식모는 세상 세상 불평불만이 얼마나 많은지, 오늘도 준비할 음식은 많고, 시키는 일꾼들은 일을 잘 안 하고, 그래서 하루 쉬겠다고 하고 마데라에 나온 거더군.”


사울진이 넬의 말에 “그렇군.” 하고 말하고는 손질하던 약초를 마저 다듬으려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넬이말한다. “이제부터 중요하니 잘 들어 보게.”


넬은 누구 하고나 쉽게 어울리고 친해지고 말하는 것을 좋아해 여러 지파 곳곳에 친구들도 많고, 가가 호호

소식들도 알아오는 소식통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인간적이고, 스스럼없이 대해 좋아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그의 행동과 말이 경박스럽고 가볍다고, 수장 답지 못하다며 무시한다. 카야는 그의 꾀가, 간교하고

영악하다 경계하지만, 사울진은 넬이 그저 자기와 달리 밝고 친근해서 좋다. 게다가 사울진이 지파를 세우고 지금까지 유지해 오는 데에, 넬이 전해주는 소식들이 도움이 되었다. 가끔은, 여러 곳의 이야기들을 너무 많이 듣고, 사울진에게 쓸데없는 그저 그런 소문들의 이야기들까지 늘어놓을 때도 있지만, 사울진은 늘 그의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다. 그런데 그가 중요한 이야기 라면서, 라함 수장네 식모가 한 험담 이야기인 듯하여, 다듬던 약초를 마저 다듬으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넬이 말한다.


“음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더라고.”


음식 이야기는 좀 의아해 사울진은 의자에 다시 앉으며 묻는다. “음식?”


넬이 사울진이 앉아 있는 탁자 쪽으로 몸을 좀 더 가까이하며 말한다.

“얼마 전부터 라함이 음식에 포도, 또는 포도와 관련된 것은 음식에 일절 넣지 말라고 했다는 거야. 그래서

포도로 맛을 내야 하는 것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그동안 포도를 넣어 만든 것과 담가놓았던 포도주까지

다 버리라고 했다더군. 그래서 가뜩이나 매일 할 일도 많은데 일이 더 많아졌다며 화가 나있더라고.”


잠자코 듣고 있던 웃날이 넬의 말이 의아해 묻는다. “포도요? 그런데 포도가 왜? 그게 중요한 일입니까?”


넬이 웃날의 말에 대답 대신 다시 질문을 한다.

“생각해 보게. 우리가 평소에 포도가 들어간 음식을 많이 먹는가? 포도는 기껏해야 그냥 생으로 먹거나, 귤즙

처럼 즙을 내서 마시거나, 담가서 발효해서 술로 만들어 먹지, 음식에는 그리 많이 쓰이지 않지 않는가?

간혹 고기 요리를 할 때 향을 내기 위해 그 즙을 조금 넣기는 하지만, 그렇게 모든 음식에 포도가 흔하게 쓰리는 것은 아닌데, 왜? 무엇 때문에? 포도가 들어간 음식은 다 버리고, 앞으로도 음식에 포도를 넣는 것도

조심하라고 까지 했을까? 사울진 자네 생각은 어때? 포도 말이야?”


넬의 말에 사울진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치면서 생각에 잠기며 중얼 거린다. “포도라.”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사울진이 탁자를 치던 손가락을 멈추며 넬에게 묻는다.

“넬. 자네도 어딘가에서 듣거나 읽은 기억이 있지 아니한가?”


넬과 사울진이 동시에 말하다. “부름 받은 자는 포도주를 마시지 말지니.”


사울진이 말을 이어 나간다. “부름 받은 자가 마시면, 반드시 해를 당할 지니라.”


넬이 다음 말을 이어 나간다. “너희 몸을 늘 경계하고 조심하라.”


여전히 사울진과 넬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웃날에게 넬이 설명해 준다.

“역사서에 말이야.”

“네.”

“그리고 제사장이 읽는 경전에.”

“네.”

“이런 말이 적혀 있네. 신에게 부름 받은 자는 포도주를 마시지 말아라. 마시면 해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대대로 제사장 가문은 어떤 형태로든 포도를 먹지 않네. 그리고 포도를 먹었던 제사장 중에 신의 벌을 받아 눈이 멀거나, 몸을 움직이지 못하거나, 혹은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제사장도 있다고 쓰여있지. 그런데,

지금 신의 부름을 받은 이가 제사장뿐만이 아니라, 잠깐, 그럼 수아도 신의 부름을 받은 자라는 말인가?

사울진 자네 생각은 어떤가? 포도가 그런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갑자기 집에 멀쩡이 있는 포도들을 왜 없앴겠는가. 경전의 신이 왕으로 부른 자라면, 수아도 포도를 먹으면 해를 당할까 봐 그러는 것 아닌가?”


넬은 그가 말하고도 놀랐는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가 다시 의자에 앉는다.


사울진이 곰곰이 생각하듯 잠시 침묵하더니 말한다.

“심증은 있었지만.”

“심증? 자넨 뭘 더 알고 있었던 거야?”


사울진은 몇 주 전, 심어 놓은 사환에게서 흥미로운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그렇다고 염두에 두던 것을 확신

할 수는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동안 2년 넘게 모임에서 만나면서, 나름대로

함께 일을 해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아가 왕으로 지명을 받았을 수도 있다는 것.“

“그렇지?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지? 라함 수장이 갑자기 왜 집안의 포도를 다 없애라 했단 말인가.”


넬이 꾀를 낼 때 보이는 눈이 가늘어지면서 내는 특유의 표정이 있다. 어떻게 보면 영특해 보이고, 어떻게

보면 정말 간교해 보이는 표정이다.

“한번 먹여 보는 게 어떤가?”


사울진도 잠깐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사람의 생사를 가지고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넬이 친구지만 가끔은 섬뜩할 때도 있다.

“그러다 정말 해를 당하면?”


사울진이 하던 말을 잠시 멈춘다. 그가 생각하는 것과 마음과 말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사울진의 마음을 아는 듯, 넬이 묻는다. “무엇을 망설이는 거지?”

“망설이는 것이 아니라.”

“사울진, 이런 일은 생각을 그리 깊이 하는 것이 아니네. 왜 해야 하는지 만을 생각해야지. 우리가 그동안

무엇을 하고 싶어 했는가?”


넬이 맞다. 지금은 수아의 생사가 아니라, 그들이 지금까지 무엇을? 왜? 하기 위해 여기까지 달려오고 있는지만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능력과 노력으로 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어떤 이는 처음부터 다 갖고 태어나서, 모든 걸

누리다 모든 지파의 우두머리인 왕으로 까지 지명받는데. 우리는 뭔가? 우리 힘으로 여기까지 열심히 해도,

힘은 늘 가진 자들이 갖지. 우리에게는 기회조차도 없이.”

“사울진, 바로 그거네. 그것만 생각하면 되는 거야. 그러니 누가 됐든 왕으로 부름 받은 자는 없어져야지.”

“맞는 말이긴 하지만. 뭔가 다른 방법도 있지 않을까?"

"그럼 자네는 라함과 제사장한테 가서, 설명하고 그러니 수아가 왕이 된다 지명하지 말고, 다른 이에게도 기회를 달라 그렇게 할 생각인가?”

“그건 아니지만.”

“자네가 뭐라 말했는지 기억 하는가? 그들과 함께 하는 듯, 모두 다 평등한 듯 하지만, 결국은 그들 중심으

로 돌아가면서, 우리는 배제당할 거라 늘 말하지 않았는가? 지금은 아무 일 없으니, 문제 될 일도 없고, 모두

다 함께 하는 듯이 보이겠지. 그런데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될 거 같나? 제사장이 부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게.”


사엘이 제사장으로 부름 받을 때, 넬과 사울진의 지파는 카야의 병사들의 통제를 받았다. 그리고 이 일을 다른 지파 수장들은 미리 알고 준비했었다. 친구라 하면서, 여람, 수아, 밧세는 다 아는 사실을 라단은 모르고 있었다. 친구라고 함께 어울리는 아들이 그들과는 다른 취급을 받는 것에 화가 났었다. 그래서 더욱더 힘을 만들고 지파의 우두머리가 되어, 아들에게 힘을 실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나름대로

지파 들끼리 서로 합심하여, 해 나가는 것이 사울진은 꽤 괜찮다는 마음도 들어서 지금까지 별 무리 없이 함께 한 것이다.


예전에 살던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마을 전체를 다 불태우면서, 이런 방법으로는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는가. 가진 능력대로 열심히 하면서, 무력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으면서, 모든 것을 이루고 싶다. 지금은 저주 받은 보셋이 아니라, 그가 만든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울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임도 잘 나가고, 늘 그렇듯 의심도 하지만, 기대도 하면서 열심히 지금까지 해 왔는데, 결국 왕으로 지명받은 자는 따로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모든 일이 허무하게도 느껴진다.


게다가 가장 오래된, 처음부터 세워진 그래서 모든 지파 중의 가장 으뜸으로, 태초부터 지금까지 대대 손손

힘이든 명망이든 다 가지고 다 누린, 1지파 라함의 아들 수아라는 것도 사실 놀랍지도 않다. 결국 예상한

대로, 늘 의심한 대로, 그들은 함께 잘 사는 명분을 내세워, 지파들의 힘과 생각을 제어하고 결국은 제사장과 라함이 한 통속이 되어 이 모든 것을 계획한 것이 아닌가.


역시나 노력과 능력은 상관없이 세상은 이미 정해진 대로, 있는 자는 더 많이 갖고, 그들의 기득권과 명망은

더 뿌리 깊이 존재하며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에 진절머리가 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죽이는 것은

망설여진다. 차라리 2년 전, 제사장이 부름 받았을 때 모두 없애 버렸다면, 덜 망설여졌을지도 모르겠다.


넬이 조용하고 나지막이 사울진에게 말한다. “사울진. 우리가 함께 하면서도, 제사장 주변에 사람을 심어 놓

고, 게다가 내가 가볍고 경박하다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이 지파 저 지파 다니면서, 왜 사람들의 말들을 듣고 다녔겠는가? 우리가 수아가 왕으로 지명받았다는 것을 알아내지 못했다면, 그래서, 2년 전처럼 제사장과 다른 세 지파의 통제를 받으며, 그 사이 누군가는 왕이 된다면,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우리 지파는? 우리 자식들은 어떻게 될까? 그저 우리가 당했던 대로 똑같이 살겠지. 어쩌면 왕이라는 자가 있는 세상은 더 불공평하고 더 불평등할지 몰라. 그러니 이번이 어쩌면 우리에게, 우리도 한번 가져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네.”


넬의 말에 사울진이 눈을 감고 침묵한다. 생각이 많을 때 하는 특유의 버릇인 손톱을 물어뜯거나, 손가락으로 탁자를 치는 행동도 하지 않는다.


사울진, 넬, 그리고 웃날 이들 사이에 정적만이 감돈다.


이윽고 사울진이 천천히 눈을 뜨면서 말한다.

“병사로는 안되네. 만약 세 지파와 제사장 집안이 합치면, 우리의 병사 수로는 감당이 안돼. 그리고 수아에게

포도를 먹이는 것만으로도 안 되네. 그렇다면 수아도 수아지만, 그것을 먹인 우리 까지도 무사 하진 못할

거야. 게다가 제사장이 왕으로 지명받은 자를 지키겠지. 괜히 섣불리 움직였다가 제사장 입에서 살이 터져

죽으라고 하면, 해보기도 전에 우리가 먼저 죽을 걸세. 그러니 지금 당장 무엇을 할 순 없고 당분간 지켜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넬 자네가 말한 마지막 기회라면, 그것을 잘 잡을 수 있는 날을 찾아야지.”


잠자코 있던 웃날이 입을 연다. “모임 때, 제사장님의 의중을 한번 떠보시는 것은 어떠신지요? 정말 함께

하는 세상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아닌지 이번에 알아보시면, 앞으로 어떻게 하실지 방향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웃날의 말에 사울진과 넬이 고개를 끄덕인다.


사울진이 말한다. “웃날 말대로, 내가 날을 잡아 한번 물어보지. 제사장, 라함, 모두 다 지금은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지 말이야.”


말을 마친 이들이 넬을 배웅하기 위해 서재를 나와 밖으로 나온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까만 밤 하늘에 밝게 빛나는 보름달이 이 떠있다.


이들 셋의 마음에 생각이 많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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