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Nineteen 다른 생각들

by Hye Jang

또 한해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었다. 높고 파란

하늘에 가을 햇살이 내리쬐고, 여기저기 들녘에 올해

도 잘 자란 농작물들이 가득하다. 개울마다 물이 넘쳐

나, 사람들의 생활이 풍족해지고, 아픈 이들을 치료해

주는 약방에 재정과 약초들을 지원하여, 누구나 쉽게

약초를 얻고, 치료를 받게 해 주어 곳곳의 병자들도

줄어들었다. 사는 것이 넉넉하고 후해지다 보니 사람

들의 인심도 좋아지고, 곳곳에서 밝은 소리들이 들려

온다.


수아가 경전의 신으로부터 왕이라 부르심을 받고,

어느새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라함은 별 다름없

이 한 달에 한번 모이는 모임에 참석하고, 역사서를

가져와 나누고, 가끔은 모임 후 이들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그가 가진 것의 십의 일, 어떤 때는

그보다 더 많이 거두어 의식과 마을을 위해 쓰면서,

특별히 달라진 거 없이 지내고 있다. 2지파 하갈도,

3지파 마하셀도 그들의 지파들을 둘러보며 바쁘게

보내고 있고 걱정했던 것과 달리 4지파 넬과 5지파

사울진도, 모임에 참석하고 별문제 없이 함께 잘해주

는 듯 보였다. 작은 지파들도 자리를 잡아가면서 그들

이 가진 것의 십 분의 일을 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수아도 그 이 후로 사엘을 따로 찾아오는 일 없이,

가끔 여람과 밧세와 함께, 모임이 없는 날 와서 이런저

런 이야기를 나누다 갔고, 여람은 그들과 같이 오는

날 외에도 좀 더 자주 사엘을 찾아와 특별한 말도 일도

없이 그녀를 짧게 보고 가곤 했다.


라단은 리만투어에서 사엘을 만나, 서로 손을 잡고

바닷가를 함께 거닐거나, 석양을 함께 보거나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주거나 그의 이야기를 하며 지냈다.


카야는 어느 때보다 더 분주히 지파들과 사엘을 오가

며,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 사엘의 주변에 사람이 많아

질수록,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는 일도 많아지기 때문

이다. 그럼에도 카야는 사엘이 모임과 의식을 당차게

이끌어 가는 모습이 대견하고, 그녀가 친구들과 있을

때 보이는 아직도 소녀 같은 모습에 흐뭇하다.

사엘의 모습 하나하나를 모두 눈과 마음에 담아, 나중

에 하란을 만나면 그녀의 딸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답

게 매일 매일 살아가고 있는지 전부 말해 주고 싶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장들과 그들의 자녀들

신전에 모여 열띤 토론과, 회의가 한창 중이다.


천장의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이 어느새 해가 져물어

어둑어둑하다.

“오늘도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모두 정리해서 이 삼일 안에 수장님들께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때, 지파에서도 그대로 행해 주시고

다음번 모임 때 어떻게 진행이 됐는지 알려 주세요.”


사엘이 말하자, 수장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말한다.


“그럼 오늘 모임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모두들 고생하셨고, 또한 오늘도 참석해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그때, 내내 잠자코 있던 사울진이 사엘을 부른다.

일어나려던 다른 수장들이 사울진이 사엘을 부르자,

엉거주춤 자리에 다시 앉는다.


“사울진 수장님.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네.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우리가 그동안 모이면서, 역사들에 대해서도 서로

이야기하고, 배우지 않았습니까? 오늘도 그렇고요.”

“네 맞습니다. 오늘 나눈 역사 중에 궁금하신 것이

있으십니까?”

“오늘 나눈 것은 아니지만, 궁금했던 것이 있습니다.”


사울진이 대답하고 잠시 말을 멈추자, 자리에 다시

앉은 수장들이 사울진이 다음 말을 하기를 기다리며

바라본다.


잠시 후, 사울진이 입을 연다.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

는 전설 말입니다. 그동안 제단의 불이 몇백 년 동안

사라져 있었고, 다시 제단의 불이 밝혀졌지요.

지금 계신 제사장님이 밝히셨고요. 그리고 제단의

불을 밝힌자, 그 자가 왕을 지명하리라.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사울진의 말에 서로들 바라만 보며 침묵한다. 제단의

불이 밝혀진 후, 수장 들도, 사람들도 모두 그 전설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었고, 왕이라는 자가 과연 나타날

것인지, 지파가 아닌 왕이라는 자가 있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궁금하지만, 누구 하나 그것에 대해 말하거

나 묻는 이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이 모임에서 사울진

이 그 전설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신전 안이 모두의 침묵으로 정적이 흐른다.


잠시 후, 마하살이 침묵을 깨고 말한다. “우리 모두가

아는 전설이지요. 기다리기도 했고, 여전히 기다리고

도있습니다, 또한 늘 궁금한 이야기 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답을 알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물론 언제 일어나지 조차도 알지 못하지 않습니까.

제단의 불도, 제사장님 이야기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상 이나 했습니까? 그러니 왕에 대한 이야기

도 궁금하지만, 이 이야기를 꺼내진 않는 것이지요. ”


마하살의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이던 하갈이 말한다.

“네. 마하살 수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궁금하지만,

궁금 하다고 알아낼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그저 그냥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요. 또한 제단에 불을 밝힌 자가

왕을 지명한다고는 했으나 그것이 지금 인지, 아니면

더 훗날인지, 알 수 없으니, 이 또한 제사장님이 때가

되면 먼저 말씀하시지 않을까 하고 먼저 묻지 않았던

것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전 사울진 수장님이 지금

이 자리에서 이 전설에 대해 언급하시는 이유가 무엇

인지 더 궁금하네요.”


하갈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사울진이 대답한다. “제단의 불이 밝혀 진지 거의 3년이 지날 만큼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제사장님은 지금까지 아무

런 말씀도 없으시고, 이 전설에 대해 한 번도 언급하신

적도 없지요. 불을 밝힌 자, 그리고 그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그저 제사장님께 언젠가 한 번은

여쭈어 보고 싶었습니다.”


사울진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듯, 모두들 사엘을

쳐다본다. 하지만 라함은 알지만, 모르는 듯 내색하지

않으려, 애써 태연한 척 앉아 있지만, 마음이 초조하여

차를 연신 따르며 마신다. 오히려 수아는 이 이야기에

그의 이야기가 아닌듯, 담담하게 앉아 있는다.


반년 전 수아가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고 사엘은

수아의 마음과 결정이 어떤지 알 수 없이 그저 그를

기다리며, 지켜봐 왔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수아가

왕으로 지명받은 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 게다가 사람

들에게 수아가 왕으로 지명받은 자라 알려지는 것도

경전의 신이, 경전의 신의 방법으로 하실 것이다. 그래

서 지금은 무슨 말도 할 수가 없다.


사엘이 잠시 후 조심히 입을 열어 말한다. “제가 제단

의 불을 밝힌 자는 맞으나 제단의 불은 경전의 신이

밝히신 것입니다. 저는 경전의 신이 하실 일을 감당한

것이지요. 제 역할은 경전의 신과 제단을 받들고, 경전

의 신의 말을 전하는 자입니다. 이처럼 저는 누구를

왕으로 지명할 자가 아닙니다. 이 또한 경전의 신이,

경전의 신의 방법으로 지명하시고, 우리들에게 알려

주시려 할 때, 저는 경전의 신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것을 그대로 행하는 것이지요.”


마하살이 말한다. “그렇지요. 그때 우리도 신의 음성을

듣지 않았습니까?”


여람도 거들며 말한다. “들을귀 있는 자는 듣고, 느낄

수 있는 자는 느낄 것이다라는 음성이었습니다.”


하갈이 말한다. “그러니 왕으로 지명받은 이도 우리가

그렇게 다 듣지 않겠습니까?”


사울진이 말한다. “그렇지요. 하지만 제사장님도 말씀

하셨듯이, 제사장의 부름도, 경전의 불도, 경전의 신이

말씀 하신 대로 듣고 행하셨다고 하셨으니, 왕으로

지명받을 이도, 경전의 신이 제사장님에게 우리보다

먼저 알려 주시지 않을까 해서, 혹시 들으신 말씀은

없으신지, 그 전설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궁금해서

물어본 것입니다. “


사울진은 어떤 이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는 허허

소리를 내고 웃으며, 사엘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역사라는 것이 지나간 이야기들은 흥미 롭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은 궁금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저 호기심

에 물어본 것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사엘은 사울진의 말이 상당히 불편하고 거슬린다.

뭔가 다 알고 있는 듯이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아니면

사엘은 이미 일어난 일들이 꼭 드러난 것처럼 느껴져

서 그런지도 모른다.


사엘이 단호한 얼굴과 목소리로 말한다. “제가 먼저

알았다 하여 여러분에게 혹은 마을 사람들에게 꼭

알려 드려야 할까요? 제가 부르심을 받았을 때도 저는

여러분들 에게 먼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좀 전에

도 말씀 드렸 듯 그 모든 계획과 순서는 경전의 신의

뜻대로 하실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따를 뿐이고요.

그래서 사울진 수장 님께서 하신 질문과 모든 이들이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 저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사엘의 말에 사울진이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 말씀은, 제사장님도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

신다는 말씀이군요? 아신다 해도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시진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기도 하고요.”


사울진의 말에 사엘의 얼굴이 잠시 일 그러 진다.

사엘은 사울진이 정말 무엇을 알아서 넘겨짚는 것인지

원래 평상시에도 늘 복잡하고, 의미 심장하게 말하는

것인지 판단할 수가 없다.


사엘은 평정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때, 늘 모임의 대화를 주도하던 수아였지만, 이 대화

에 잠시 침묵하던 그가 입을 연다.

“시간이 좀 된다면, 여러분에게도 묻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괜찮을까요? 제사장님.”


사엘이 이들을 바라보자, 시간은 늦었지만, 나누던

이야기가 흥미로워, 좀 더 있을 수 있다는 뜻으로 고개

를 끄덕인다.


사엘은 이들이 시간이 없으니 다음에 하자 라고 하길

바랐다. 왜냐 하면, 사울진의 질문보다 수아가 할 질문

에 마음이 더 조마조마 하기 때문이다. 수아는 늘 엉뚱

하고, 모두가 생각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할 때가 있으

며 어디로 튈지 예측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생각나는

대로 스스럼없이 말해, 지금까지 밧세나 여람 그리고사엘도 그에게 생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런

데 지금은 왕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이고, 사람들은

왕으로 부르심을 받을 자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 상황

에서 수아가 던질 질문이 무엇일지 불안하다.


사울진 입가의 엷은 미소가 더 크게 번지며 말한다.

“질문이 상당히 기대가 되는군.”


“왕이라는 자가 필요합니까?“


수아의 질문에 사울진이 예상하지 못한 질문인 듯

놀란 얼굴이고, 다른 이들은 웅성 거리기 시작한다.


수아가 다시 묻는다. “다들 왕으로 부르심을 받을 자에

대해 상당히 궁금해하시는데, 그 궁금한 이유가 무엇

입니까? 왕이 정말로 필요해서 왕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사시는. 이 시대에 말로만 내려오는 그 전설이 이루어

지는지 아닌지 알고 싶어서 그러시는 것입니까?”


사람들이 옆에 앉은 이들을 보며 더 웅성거린다.


그때, 라단이 말한다. “우리가 이 모임에서 늘 나누었

던 이야기는 화합이었습니다. 지파 간의 화합, 계층

간의 화합말입니다. 여러 개로 나누어진 지파가 서로

하나가 되어 함께 만들어 가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어 가는것 이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고, 우리가

지금 이 일들을 함께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왕이

필요하다 필요하지 않다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죠.”


여람이 말한다. “저도, 우리가 거의 3년째를 함께 하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이 현재 긍정적으로 모든 지파들에

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래오래 유지되기를 바라기도 하고요. 다음

세대 그리고 그다음, 그다음 세대 까지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역사도 전통도 우리가 하는 이 모든

일들과 목적을 이어 가야 할 이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선 이런 역할을 감당할 자가 필요 하긴 하죠.”


라단이 말한다. “지금까지 역사는 1지파 에서 지켜왔고우리를 하나로 모아 이것을 함께 나누고 행하는 역할

은 제사장님이 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지파가 모두

제사장님 중심으로 모이고 있고, 여기서 나눈 이야기

가 지파 곳곳에 반영되고 있으니, 제사장님이 중심의

역할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밧세가 말한다. “지금은 그렇지만, 우리 다음세대는

달라질 수 있고, 우리 다음세대에는 누가 제사장일지

알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 점도 사실 염두는 해야 할

문제 이긴 하죠. 왕이라는 자도 있어서, 사람들의 중심

이 된다면, 있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 같아요.”


이때, 사엘 옆에 앉아 있는 라함이 사엘의 맞은편 멀리

떨어져 앉은 수아를 보며 말한다. “수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길래 이런 질문을

한 것이냐? 왕이라는 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느냐?”


라함은 이 질문이 자칫 수아를 곤경에 처하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그동안 계속 침묵하고 있는

수아의 마음을 이렇게라도 알고 싶고, 그의 질문의

의도 또한 알고 싶기에 무리하게 질문을 던져 본다.


수아가 숨을 한번 크게 내쉬고, 천천히 입을 움직여

말한다. “왕이 필요하다 필요하지 않다는 우리의 생각

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거 같습니다. 경전의 신이 누군

가를 왕으로 지명한다면, 그 이유가 반드시 있겠지요.

얼마 전 책을 읽었습니다. 저 리만투어 바다 건너 멀리

멀리 있는 곳에는 나라라는 것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집단들은 세력이 점점 커져, 옆의 마을

들을 공격하고, 서로 땅 뺏기를 한다고도 합니다. 우리

처럼 지파들이 서로 나누어져 있지만, 서로 화합하여

함께 살려는 목적보다는, 힘을 키우고, 무기를 만들고

그래서 서로 뺏고 차지하려 전쟁을 한다고 들었습니

다. 이 이야기들이 실제 인지, 어느 글쟁이가 만들어낸

이야기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이런 세상이

진짜 있고, 그들이 여기 우리가 있는 곳까지 올수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왕이라는

자가 여러 지파를 하나로 만들어 다스리는 것도 하나

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시야를

넓히고 여기가 아닌 저 멀리 다른 곳의 세상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분산된 지파들이 하나가 되어 서로 힘을

합하여, 외부 세력으로부터 이 땅을, 이 땅의 사람들

을, 지키는 역할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수아의 말에 모두들 할 말을 잃은 듯 침묵한다. 모두들

그렇게 까지 생각해 보진 않았다. 여기 이곳 리만투어

에서 늘 일어나는 일들만 생각했지, 저 바다 건너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어느 세상이 있는지,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수아의 말이 사실이라면 무섭고 두려

운 이야기이다.


사엘이 말한다. “수아님은 읽으신 책을 다음번 모임 때

가져오세요.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도 우리가 준비

를 하며, 의논해야 할지 다시 이야기 나누기로 하죠.”


밧세가 말한다. “상당히 흥미 로우면서도 한편으로

는 무섭네요. 외부인이 이 땅위에 들어 올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요.”


여람이 옆에 앉은 수아를 팔꿈치로 툭툭 치며 말한다.

“늘 이상한 책만 읽는 줄 알았더니, 이번엔 진짜 이상

한 책 읽었구나.”


라단이 말한다. “저도 이와 비슷한 책을 읽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 세상과 반대편에 사는 세상은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면서,

그들이 이곳으로도 올 수도 있다는 것보다,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우리들끼리도 서로 뺏고 차지하기 위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긴 했습니다. 다행히

지금 우리는 서로 화합하고, 함께 하고 있으니, 남의

나라 이야기로 넘겨 버릴 수 있지만, 왕이 필요 한가라

는 질문에 외부로부터 이 땅과 이 나라 사람들을 지켜

내기 위해서라는 수아의 대답이 상당히 적절한 것

같습니다.”


사울진의 얼굴이 아들인 라단의 말이 자기를 향해

한 듯하여 굳어진다. 사울진은 힘을 길러 지파를 모두

하나로 만든 다음 그 위에 가장 높은 곳에 있겠다는

결심과 야망을 한 번도 내려놓은 적이 없다. 그것이

뺏고 차지 하는 일이 될지 언정, 힘없고, 늘 부족한

5지파로, 살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수아가 왕이

라는 것을 알아채고도 지금까지 지켜 보았다. 제사장

은 여기 모인 이들을 모으고, 함께 한다고, 평등하다고

하면서, 앉는 것조차 앞뒤가 아닌 둥그렇게 앉아

모두 같은 지위와 환경의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지금까지 이 모임을 이끌어 왔다. 사울진은 정말 그런

세상에서 함께 살 수 있는지, 기대반 의심반이었다.

아니 어쩌면 정말 그런 세상에서 이 들과 함께 살고

싶음 마음이 더 커서, 함께 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넬의 말처럼 아무 일이 없을 때는 그저 좋아 보이나,

무슨 일이 생기면, 넬과 사울진, 그리고 이제 자리를

잡은 작은 지파들은 제사장과, 또 다른 힘에 의해 통제

와 제어를 받을 것이다. 오늘 제사장이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면, 설사 경전의 신이 경전의 신의 뜻에 따라

사람들에게 알린다 해도, 여기 모인 이들에게만큼은

알려 주고, 함께 때를 기다리며 준비해도 나쁘지 않았

다. 그런 것이다. 함께 한다 하면서 결국은 그들은 모두

한 편이고, 그나, 다른 지파는 경계하는 것이다. 사울

진은 이 자리에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앉은 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함께 하는 뒷면에 그들

이 가진 것을 지키고자 하는 욕심, 웃음뒤에 여전히 남

아 있는 차별, 둥그렇게 앉아 있지만 확연히 보이는

기존지파의 힘과 세력, 그리고 저 앞에 앉아 지금까지

함께 라며, 수장들을 한데 모으고 좋은 세상의 명분을

만들었지만 결국 제사장도 뿌리 깊게 내려 있는 기존

지파와의 결탁이 있는것이다.


사울진은 그가 기대하며 여기까지 온 자신의 어리석음

에 쓴웃음이 난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 들었던 불편함

과 복잡한 생각들이 사라져 괜찮다. 이제는 더 이상

지체 할 것 없이 여기 모인 이들을 모두 분산시키고,

그들이 가진 것을 뺏고, 무기력하게 만들고, 그리고

이들 위에 우두머리가 되어, 그가 원하는 세상으로

다시 만들어 갈 것이다. 그런데 아들 라단은 우리가

모두 서로 화합하고 함께 하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하며, 끝까지 이대로 함께 할 것처럼 말한다. 게다가

수아의 말까지 동조한다. 그도 읽어 봤다면, 그래,

이 뺏고 차지하는 싸움이 우리 사이에서 생기지 않다

고 믿고 싶다 하더라도 앞으로 저 멀리 있는 세상에

대해 어떻게 준비해 갈지 좀 더 우두머리답게 말해도

되는데, 영특 하고, 지식과 지혜도 많은 아들 라단이

야망과 욕심은 없어,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제사장의 힘, 신의 지명, 왕이라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다 할지라도 아들 라단을 저들 위, 가장

높은 곳에 세워 줄 것이다


신전 천장으로 이제는 완전히 깜깜해진 밤하늘이 보이

자, 사엘은 이제는 안 되겠다 싶어 말한다.

“오늘 모임은 여기서 그만하겠습니다. 시간도 너무

늦었고요. 수아님과 라단 님은 저 멀리에 있는 다른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음 모임 때 좀 더 나누어

주세요 ”


라단과 수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난다. 평소보다 길어진 회의에

저녁을 함께 하자고 할 만한 마음도 힘도 없다.


사엘이 문밖에 서있는 카야에게 눈짓을 하자, 카야가

함께 있던 무장을 하지 않은 무사들과 함께 수장들을

배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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