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Twenty 추억이 되어

by Hye Jang

모임 후, 사울진의 서재에 넬과 웃날이 함께 있다. 사울진은 오늘 제사장의 태도와 대답이 거슬린다. 왕이라는 자를 지켜 주기 위해서 그랬다 해도, 왕이라는 자를 지키기 위해선, 그것을 막아서는 이들도 모두 없애

버릴수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사장은 사울진의 질

문에, 솔직히 말했어야 했다. 왕으로 지명받은 이가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지금까지 모임에서 했던

것처럼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의견을 들었어야 했다.

경전의 신의 방법대로 할 것이다 라며 신 뒤로 숨어

버렸다. 그렇다면, 경전의 신이 알려 주는 날, 제사장은

또 병사들을 움직여, 마을을 통제할 것이다.


또힌 수아가 던진 왕이 필요하냐 필요하지 않느냐

라는 질문은 무슨 의미인가? 그런데 그의 대답은 경전

의 신이 부른 대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부름 받음을

마치 당연한 듯 말했다. 그리고, 여기 이곳을 넘어 이제

는 저 멀리 알지도 모르는 나라들까지 이야기하며,

모인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일으키고, 그래서 이 땅을

지키려면, 왕이라는 자가 하나로 모아야 된다고 말했다. 결국 하나로 모아 그들의 힘과 기득권을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이다. 함께라는 것은 다 겉으로만

좋게 보이는 말 뿐이었고 결국 제사장 그리고, 그 세

지파 모두 늘 그렇듯 한 통속인 것이었다. 경전의 신의

부름과 음성은 제사장만 들을 수 있으니 그들은 제사

장과 경전의 신을 앞세워, 처음부터 수아를 왕으로

세울 계획이었던 것이다.


사울진은 그들이 짜놓은 판 위에서 몇 년 동안 그들을

믿고, 모임에 참석하며,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그들에

게 놀아난 그의 어리석음에 울화가 치민다. 그리고 아

들 라단도 순진하고 어리석게 누가 왕으로 부름을 받

은 지도 모른 채, 그저 친구들과 함께 하고픈 마음에

왕이 필요하다며, 수아의 말에 동의까지 했다. 그들이

친구라고 부르며, 아들 라단까지도 속이고 이용하는

것에도 분노가 치민다.


사울진은 이제는 망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울진이 웃날에게 묻는다. “매향초가 얼마나 있지?”


“작은 항아리 정도 있습니다.”


“매향초가 더 많이 필요할 거야.”


“제가 산에 다녀오겠습니다.”


“포도도 준비하게.”


넬이 묻는다. “수아에게 포도를 먹이려고?”


“응. 방법은 다 생각해 두었네."


넬이 다시 묻는다. “결정한 것인가?”


사울진이 넬의 물음에 대답대신, 그의 얼굴을 바라보

며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인다.


그것을 본 웃날이 말한다. “알겠습니다. 수장님 지시하

신 것을 빠른 시일 내에 준비하겠습니다.”


사울진이 넬과 웃날을 보며 묻는다 “왜 묻지 않지?”


넬이 말한다. “무엇을 말인가?”


“무엇 때문에 결정하게 됐느냐 왜 묻지 않는 것이냐고

묻는 걸세.”


넬이 말한다. “나도 자네와 늘 같은 생각이니, 물을 이

유가 없지. “


사울진의 얼굴이 단오하고 차갑게 변하며 말한다. “다

음 모임 때로 정하지. 이젠 더 지체할 이유도, 시간도

없어.”


웃날이 말한다. “병사들을 다시 제정비 하겠습니다.”


사울진이 말한다. “모든 것은 소리 없이 준비해, 그날

한 번에, 한방으로 터지게 해야 할 거야. 라단이 모르게

하게. 그리고, 카야를 조심하고. 어디에 위장 병사를 숨

겨 두고는, 우리의 계획을 알아챌지 모르니.”


넬이 묻는다. “생각해 놓은 계획은 있는가?”


“있지. 이 싸움은 힘으로는 이길 수 없네. 그래서 어쩌

면 우리가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울진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고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친다.


웃날과 넬도 생각이 많다.


수장들은 모두 떠났지만, 여람, 밧세, 수아, 라단은

신전 안에 머물러 있다.


한참을 그렇게 기다리던 밧세가 말한다. “오늘 너무 길

어진 회의에 머리도 아픈데, 오랜만에 리만투어에 다

같이 갈까? 바람이라도 쐴 겸.”


여람이 말한다. “그래 리만투어에 가서 저 멀리멀리 있

는 곳엔 어떤 세상들이 있는지도 좀 보자.”


수아가 말한다. “그게 보이겠니?”


여람이 말한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밧세가 말한다. “너네들 점점 더 닮아 가는 것 같아.”


수아와 여람이 동시에 말한다. “아니거든.”


라단이 말한다. “제사장님은 괜찮으세요? 다 같이

리만투어에 가는 것도 나쁘진 않은 거 같은데.”


라단의 말에 여람의 마음이 언짢아진다. 도대체 저

녀석은 이 와중에, 사엘의 마음을 먼저 묻고 챙기다니

정말 따라갈 수가 없는 녀석이라 생각한다.


사엘이 말한다. “오랜만에 같이 가면 좋죠. 먼저들

가 계세요. 여기 정리만 하고 뒤따라 갈게요.”


“꼭 오기예요. 늘 먼저 가라 하고 안 올 때가 많으시더

라고요.” 밧세의 콧소리가 섞인 과장된 애교스러운

말투에 수아가 흠칫 놀라, 그를 바라보며, 말한다.

“뭐야? 그 말투는? 더 안 올 거 같은데."


여람도 밧세의 말투를 따라 하며 말한다.

“꼭 오기예요. 여기 이 세명 하고만 바닷가라니, 정말

끔찍해요.”


밧세와 수아가 동시에 말한다. “에이.”


밧세와 수아가 신전을 나가고, 라단과 여람은 사엘에

게 꼭 오라는 표정과 손짓을 하며 신전을 나간다.


그들이 모두 가도, 사엘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제단

을 향해 앉는다. 사환들은 조용히 뒤정리를 하고, 수장

들의 배웅을 마친 카야가 신전으로 들어와, 언제나

그렇듯 제단 앞에 앉은 사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말한다. “수장님들은 모두 댁으로 가셨고, 자제분들은

리만투어로 가셨습니다.”


“카야. 사울진 수장의 주변을 잘 지켜봐. 오늘 그가

한 말들이 마음에 걸려.”


“네.”


카야가 사환들이 모두 나가자 사엘에게 나지막이 말한다. “사환들도 지켜보셔야 할거 같습니다.”


“왜?”


“사엘 님 주변에 너무 가까이 있어서요."


“그거야. 사환들이니까 내 주변에 가까이 있는 거 아니

야?”


“네. 압니다. 그래도 상황이 상황인 만큼 모든 것에

경계를 해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환들이라

제가 또 함부로 경계하고, 지켜볼 수는 없는 일이라서 말씀드렸습니다.“


“알았어. 그건 카야가 알아서 해.”


“네 알겠습니다.”


그동안 사엘과 함께 의식을 주관하는 사환들이라 카야

가 함부로 감시를 하거나, 경계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엘이 허락했으니, 카야는 그들을 주시할 것이다.

뭔지 모르지만 느낌이 좋지 않다.


사엘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카야도 함께 일어나며 묻는다. “리만투어에 가시려고요?”


“응. 오랜만에.”


“하디에게 말해 먹을 것을 좀 가져다 드릴까요?”


“좋지. 여람이 보고 모닥불도 피우라고 해야겠다.”


“가세요.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아니야 혼자 갈게. 바로 요 앞인데.”

카야가 말없이 사엘을 바라보자, 그녀가 말한다. “알았

어. 같이 가.”


신전을 나온 카야는 하인에게 하디에게 전할 말을

지시 하고는 사엘을 말에 태운다.


이들은 이미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앉아 있다.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어?” 사엘이 묻자,

여람이 말한다.

“이야기는 뭐. 그저 불이랑 바다나 보고 있었지.”


“왜? 너네들답지 않게. 엄청 수다 떨고 있을 줄 알았더

니.”


밧세가 모래 위에 누우며 말한다. “오늘 말 너무 많이

했잖아. 수다 떨 힘도 없다”


라단이 일어나 사엘의 팔을 잡아당겨, 그의 옆에 앉히

며 말한다. “파도 소리도 좋고, 모닥불도 좋아서 잠시

이러고 있었어.”


둘의 모습을 보고 여람도 모래 위에 누우며 볼멘소리

로 말한다. “내 말이 그거야. 파도도 좋고 불도 좋아서

보고 있었다고.”


수아도 모래 위에 누워 어둑어둑한 밤하늘을 보며

말한다. “왠지 요즘은 한 주, 한 달은 참 빨리 가는 것

같은데, 하루하루는 참 긴 거 같아. 특히 오늘은 더 길

게 간 거 같고.”


사엘은 라단을 보며 말한다. “너도 읽었다며? 정말 그

래? 저기 바다 너머 멀리멀리 있는 세상은?”


라단 대신 수아가 대답한다. “잔인하고, 비통하지.

자식을 읽고 부모를 잃고, 친구를 잃고, 이웃을 잃고

터전을 잃고, 그저 힘 있는 자들의 싸움에서 무고한

마을 사람들만 죽어나가. 그러면서 그 위에 새로운

땅과 마을을 세우겠다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유 없이 흘려진 피 위에 과연 어떤 새로운 나라가

만들어져 가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드는 책이야.”


사엘이 어두운 리만투어를 바라본다. 리만투어는 사엘

에게 있어, 엄마처럼 포근하고, 아프고 힘들 때 찾아오

는 휴식처 이자, 친구들을 만나는 정겨운 곳이며, 부르

심을 받은 특별한 곳이다. 고개를 돌려 보니, 멀리 바닷

가 언덕에, 첫 의식을 드리고 밝혀진 제단의 불도 보인

다.


리만투어 넘어 어느 나라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누군

가가 다른 나라나 마을들을 빼앗듯이 이곳에도 올 수

있다는 것이 도저히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정말

글쟁이가 지어낸 상상 속의 이야기 같다.


사엘을 보고 있던 라단은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그녀의 어깨를 손으로 가볍게 토닥이며 말한다. “책에 그렇

게 쓰였다고. 누군가 저기 멀리 있는 세상은 그럴 것이

다 라며 지어낸 이야기들 일수도 있어. 우리들 한테도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것은 그저 책을 읽고 상상해

낸 것 일수도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때 하디와 카야, 몇 명의 하인들이 먹을 것을 가지고

온다. 그것을 본 여람이 벌떡 일어나 음식 하나를 받아

들어, 라단과 사엘 사이에 비집고 앉으며 말한다.

“라단아. 너 이거 좋아하는 음식 아니야? 많이 먹어.”


여람의 행동에 라단이 당황해하며, “그래. 잘 먹을게.”

라고 말한다.


사엘이 그릇에 담긴 음식을 보자, “이거 내가 엄청 좋

아하는 건데.” 라며 흥분하여 소리 까지 높여 말한다.


여람이 웃으며, 사엘에게 그릇을 건네며 말한다.

“사엘이도 많이 먹어.”


하디가 음식들을 내놓으며 말한다. “오랜만에 이렇게

다들 리만투어에 모여, 모닥불 앞에 계시니 너무 보기

좋으세요. 음식은 넉넉하게 많이 준비했으니 많이들

드세요.”


카야가 따듯한 물을 사엘에게 건네자, 라단이 말한다.

“따슨 물 먼저 먹어야지.”


사엘과 라단 사이에 앉은 여람이 말한다. “따슨 물?”


사엘이 웃으며 말한다. “그런 게 있단다. 친구야.”


사엘의 말에 뭔가 아는 듯 라단도 미소를 짓는다.


여람은 음식을 핑계로 라단과 사엘 사이에 겨우 비집

고 앉았는데 뭔가 둘 사이에그는 없는 것 같아 또 마음

이 언짢아 지려고 하지만, 그래도 사엘이 친구야 라고

말해 줘서 좋다. 무엇이든, 사엘 옆에 이렇게라도 있으

면 좋지라고 생각하면서, 한 번쯤은 사엘이 그도 같이

바라봐 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도 있다. 언젠가는 그

럴 날도 있겠지 라고 생각하며, 하디가 만들어 온 음식

을 한입 떠먹는다.


수아는 요즘 생각이 많다. 도대체 이 생각을 멈추고 싶

은데 멈추어지지가 않는다. 사엘을 바라보며 그녀도

얼마나 오랫동안 생각 하고 고민하며 보냈을까 생각해

본다.


맛있게 먹던 밧세가 말한다. “우리 예전에 꼬챙이에

음식 끼어서 구워 먹고 그랬는데. 수아가 한 땀 한 땀

얼마나 열심히 끼운 거라며 생색냈는지.“


“생색이 아니라, 진짜 한 땀 한 땀 열심히 끼운 거거든.”


여람이 말한다. “그때 정말 재밌었는데.”


사엘도 말한다. “맞아. 그때 정말 재밌었어. 수아는 뭐

든 하면 생색내고, 자랑하고, 여람이 너는 수아랑 맨날

티격 태격 하고, 밧세는 너네 둘 사이에 끼어서 이리저

리 바쁘고.”


여람과 수아가 동시에 말한다. “아니거든.”


사엘이 여람이 너머로, 라단을 보며 말한다. “라단아

수아 재, 처음에 나 보고 뭐라고 했는지 알아?”


수아가 말한다. “쪼끔만 여자애.”


사엘이 수아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맞아. 그런데

와. 지금 들어도 엄청 기분 나쁘네.”


수아가 사엘을 쳐다보며 말한다. “지금도 그리 큰 건

아니거든.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혼자 감당하려고

애쓰지마. 내일은 내가 알아서 해.”


수아의 맥락 없이 전개된 말에 밧세와 여람이 의아하게 그를 바라본다. 부르심을 받은 후, 수아는 유독 그에

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사엘을 느꼈다. 왕도 감당

해야 한다는 제사장의 직분으로 그를 지켜주기 위해,

무엇이든 하기 위해, 조용히 잠자코 기다리면서도,

바삐 움직이는 그녀의 행동과 마음도 느꼈다. 그런 그

녀가 수아는 고맙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제사장 직분, 신의 부름을 감당하는 자, 지파를 모으고

이끌어 나가는 것, 그녀의 비극적인 집안일까지 그동

안 사엘은 혼자서 너무 많은 것을 감당 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부르심을 받은 왕까지 감당하려고 한다. 수아

의 눈에 그녀의 어깨에 짊어진 것들이 너무 무거워

보여서 한 말이다.


사엘은 수아가 어떤 의미로 말하는지 알지만, 그를 손

가락으로 다시 가리키며 말한다. “재봐라. 아직도 나

쪼그맣다고 놀리는 거지?”


수아가 사엘을 보고, 입을 비죽거리며 말한다.

“언제 내가 쪼그맣다고 놀렸냐. 지금도 그리 큰 건 아

니다 라고 말했지. 하여간 맨날 못 알아듣고, 성질부터

부리지.”


밧세는 사엘과 수아를 번갈아 보며 웃더니, “내가 늘

말했잖아. 수아가 사엘이 엄청 좋아한다니까.” 라고 말한다.


여람은 밧세의 말에도 마음이 안 좋아져서,“ 좋아하기

는. 아직까지도 놀리는 구만.” 이라고 말하고는 왜 그가

사엘을 좋아하는지는 아무도 눈치 못채는지 이해가 안

된다. 여기서 그가 좋아 한다라고 말해 버릴까 잠시 생

각하지만 그 말 조차도 이 친구들은 안 믿을것 같다.


수아가 말한다. “놀리기는. 좋아하는 거라니까.”


사엘이 말한다. “너 내가 말했지. 좋아하는 건 더 싫다

고. 그냥 놀려.”


밧세와 수아가 먹다 말고 웃음이 터진다. 그들을 보던

사엘도 웃음이 터진다. 이를 본 여람도 웃음이 터져 나

온다. 입안에 음식이 다들 튀어나 오지 않게 막으며

웃는 모습을 서로 쳐다보자, 더 웃음이 난다. 다들 어느

말에서 웃음이 났는지는 모르지만 그때처럼, 아무 말

이나 주고받으며, 아무 생각 없이 웃었던, 열여섯 살 때

로 돌아가 리만투어에 앉아 있는 것 같다.


라단은 사엘의 입가에 묻은 음식을 손으로 닦아 주는

여람과 여전히 웃으며 그의 손을 쳐내는 사엘,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는 수아와 밧세를 본다.

그때 웃고 있었던 이들과 함께 하지 않았서서, 이들의

웃음과 농담을 따라가지 못해 씁쓸 하지만, 지금은

웃는 이들과 함께 있어서 좋다는 생각도 든다.

훗날엔 오늘을 이야기하며 같이 웃을 수 있을 테니 말

이다.


오랜만에, 리만투어에 모인 이들의 이야기와 웃음소리

가 가득하다.


오늘만은 모든 것을 잊고 내려놓으라는 듯 파도 소리

마저 경쾌하게 들리는 밤이다.


이들은, 무슨 일이 있더라고, 지금처럼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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