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통로 안에서, 사엘을 데리러 간 이들을 기다리는
여람의 귀에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밧세에게
눈짓을 하고는 수아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며, 조심히
한쪽 모퉁이로 몸을 움직인다. 사엘을 데리러 간 이들
이 돌아오는 것일수도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 일단은 몸을 피하고 보는
것이 맞다고 판단해서 이다. 게다가 발자국 소리가 처
음에 떠난 이들보다 많게 들린다.
잠시 후, 발자국 소리가 더 가까이 들려온다.
“여람아. 밧세야.”
하갈의 목소리다. 여람은 하갈의 목소리에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며, 모퉁이를 나와 소리가 난 쪽으로 다가간
다.
“여람아. 별일 없었지? 수아랑 밧세는?”
“저기 모퉁이에 있어요. 발자국 소리가 나서 잠시 피해
있었어요. 혹시 몰라서.”
레이가 여람을 보자, 그의 앞으로 다가가 말한다. “그
래. 여람아. 우리 왔어. 제사장님도 같이 무사히 잘 왔
어.”
여람이 사엘을 보자, 묻는다. “넌 괜찮아?”
“응. 괜찮아. 너희는?”
“우리는.”
그때 밧세가 수아를 부축해 걸어 나온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누가 부축을 하고, 누가 부축을 받는지 알 수가
없어, 사엘이 걸어 나오는 이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
가 묻는다. “무슨 일이야? 누가 다치기라도 한 거야?”
밧세가 사엘을 부르자, 사엘이 놀라 "밧세야. 너 다쳤
어?” 라고 말하자, 밧세는, "아니야. 나는 괜찮아. 내가
부축하고 있는 건 수아야.”라고 대답한다.
“수아? 왜? 어디를 얼마큼? 다친 거야? 응?”
사엘의 목소리를 들은 수아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그
의 팔을 휘저으며 사엘을 잡으려고, 하자, 사엘이 수아
의 손을 먼저 잡으며 말한다. “수아야. 나야. 나 여기 있
어.”
수아가 사엘이 잡은 손을 홱 뿌리 치고, 대신 그녀의 팔
을 움켜쥔다. 보이지 않는 눈과, 나오지 않는 목소리가
괴로운 듯, 수아는 사엘을 잡고 흔들며, 몸을 버둥 거린
다. 수아의 행동에 놀란 사엘은 아무 말도 못 한 채, 수
아에게 팔이 심하게 잡혀 있는데도, 아프다고 그만하
라는 말도 못 한 채 서 있는다.
밧세는 수아를 잡으며 말한다. “수아야. 그만해. 사엘
이 놔줘. “
밧세가 잡고 말리는데도, 수아는 여전히 사엘의 팔을
움켜쥐고는 놓지 않는다. 사엘이 그를 왕이라 부르지
않았으면 그의 눈과 목소리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
이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잡혀 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
았을 것이며, 매향초 인지 뭔지에 모두 정신을 잃지 않
았을 것이라고, 이 모든 게 사엘이 너 때문이라고, 말하
며 원망하고 싶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괴로워서 그녀의 팔이 라도 움켜쥐고 온몸으로 버둥거
려 보는 것이다.
밧세와 여람이 수아를 잡고 겨우 사엘에게서 떼어 놓
놓자, 수아는 밧세와 여람이 잡은 손을 뿌리치고는 바
닥에 주저앉아, 가슴과 땅을 친다.
사엘도 놀라, 여람과 밧세를 보며 말하다. “무슨 일이
야? 수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응?”
밧세가 말한다. “할머니 집사님이 엄마 상태를 먼저 보
시고.”
“그건 알아. 하갈 수장님이 말씀해 주셨어. 그래서, 해
독초를 드시고, 이 통로로 나를 데리러 오셨다고.”
여람이 말한다. “그럼 사울진 수장님이 라함 수장님과
레첼 님을 모시고 갔다는 것도 들었어?”
“뭐라고? 모시고 가? 어딜?”
밧세가 말한다. “모시고 갔다기보다는 거의 잡혀 가셨
어.”
사엘이 놀라서, 더 상기된 목소리로 말한다. “뭐?”
하갈이 다가와 말한다. “아까 그 이야기 까진 못했어.”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좀 더 말씀해 주세요." 사엘의
목소리가, 놀람과 두려움으로 떨린다.
하갈과, 밧세, 여람은 라함 수장과 레첼과 있었던 이야
기, 통로 안에서 들은, 그들과 사울진이 나눈 이야기
그리고 수아의 방에 갔을 때, 수아는 이미 눈과 목소리
를 잃었고, 그에게 해독초를 먹었 봤으나, 소용이 없었
다는 이야기 들을 어렵고 힘든 마음으로 사엘에게 전
한다.
밧세가 사엘에게 묻는다. “넌 알지? 수아를 고칠 수 있
는 방법?
이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엘의 얼굴에 걱정과 불
안이 가득하지만,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주저앉아
있는 수아 옆에 앉아,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수아
야.” 라고 부르자, 그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
린다.
“내가 방법을 꼭 찾을 거야. 너의 눈이 돌아오고, 너의
목소리가 돌아오는 방법을.“
“그래. 사엘도 왔고, 분명 수아를 고쳐줄 방법이 있을
거야. 지금은 이 통로를 통해,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먼저니, 이젠 좀 서두르자.”
여람은 사엘을 밧세는 수아를 부축해 일으켜 세운다.
하갈이 이들 넷을 둘러보며 말한다. “나는 여기 남을
게.”
“엄마?”
“지파를 지켜야지. 지금 마을 사람들 모두 매향초 연기
때문에 환각 상태일 텐데, 저렇게 두고 갈 수는 없어.
그리고 라단도 남았잖아. 라단이 혼자서 사울진 수장
을 감당하기엔 힘들 테니 그것도 도와야지. 금방 잘 해
결 할테니 너희들만 먼저 빠져나가 있어. 응?”
마하살이 말한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남아서, 지
파 사람들을 지켜야지요. 너희들은 어떻게든 무사히,
여길 빠져나가서 있거라.”
밧세가 말한다. “그럼 다 같이 남아요. 다 같이 힘을 합
쳐서 해결하면 되잖아요. 엄마를 두고 갈 수 없어요.”
여람도 말한다. “밧세 말이 맞아요. 지금까지 모두 다
같이 모여서 했듯이 이번에도 같이 해요. 라단도 남았
다면서요.”
마하살이 말한다. “너희들이 있는 건 더 위험해. 사울
진 수장은 수아가 왕으로 지명받았다는 것을 알고, 이
모든 일들을 계획한 거야. 수아까지 저렇게 만들고, 라
함 수장님까지 잡아갔어. 게다가 라함 수장님 댁 다음
으로 온 곳이 제사장님 댁이야. 이런 상황에서, 너희들
에게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
밧세가 말한다. “그러면 다 같이 가세요. 엄마랑 마하
셀 수장님도 안전하지 않아요.”
하갈이 말한다. “사울진 수장이 우리들 까지 섣불리
건들지는 못해. 그런 일을 저지른다면, 지파 사람들
이 따르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지파 모든 사람들을
죽여야 할 텐데. 아무도 없는 땅에서, 왕이든 수장이든
뭐가 필요하겠니. 그러니 병사들과 쳐들어 오지 않고,
환각이나 일으키는 약초를 쓴 거야. 그런데 너희들에
게는 달라.”
레이가 말한다. “그래. 하갈 수장님 말씀이 맞아. 우리
에게 가장 약한 부분은 너희들이니, 너희들을 인질 마
냥 잡아가면, 우리는 다른 대책이 없이, 사울진 수장이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그러니, 일단 너희들은 안전하
게 피해 있는 것이 우리가 이 모든 일을 해결하는 방법
을 찾는데 나을 수 있어.”
모두들 잠시 침묵한다.
밧세가 부축하고 있는 수아의 팔을 놓고, 하갈을 껴안
는다.
하갈이 밧세를 마주 안고,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한
다. “우리 아들. 나는 너희 들만 안전하면 돼. 그리고
엄마 믿지? 엄마도 괜찮을 거고, 우린 곧 만날 거야. 알
았지? ”
마하살도 여람의 어깨에 말없이 손을 얹는다.
레이는 여람과 수아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여기는
걱정하지 말고. 수아도, 라함 수장님 너무 걱정하지 말
고, 여길 빠져나가서, 눈과 목소리를 찾는 것에만 먼저
집중해. 두 분은 우리가 반드시 찾아서, 안전하게 잘
모시고 있을게.”
서로들 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듯, 주춤한다.
하갈이 앞장서며 말한다.
“사울진 수장이 우리집들까지 오기 전에 여길 나가는
게 좋겠어요. 비밀 통로도 숨기고, 애들이 이곳으로
빠져나간 것도 알아채지 못하게 해야 해요. 그러니 어
서 서둘러 가죠.”
하갈, 마하살, 레이가 먼저 떠나고, 어두운 통로에 그들
의 실루엣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여람과 밧세, 사엘이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이윽고, 여람이 한숨을 길게 한번 내쉬고는 말한다.
“부모님 말씀 대로, 우리는 여길 무사히 빠져나가 안전
하게 있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큰 목적이니, 그렇
게 하자.”
평소에 그저 장난이나 치고, 여전히 어린애 같던 여람
이 듬직하게 말하고는 다시 말을 잇는다. “라함 수장님
께서 하라셀 선조님 때부터 만들어진 통로라며 보여
주신 곳이야. 그런데 밧세와 수아 그리고 나도 지파끼
리 연결된 길까지만 가 봤어. 탬말 산하고 연결되었다
고, 들었지만, 이 길이 어디까지 연결되어 밖으로 나갈
수 있는지는 몰라. 또한 길들이 중간중간 여러 개로 갈
라지고, 미로 처럼 되어 있어서, 잘 못 찾아 나가면, 같
은 자리를 맴돌 수도 있고, 지파로 연결된 길로 다시 되
돌아갈 수도 있어. 어쩌면 이렇게 헤매다, 이상한 곳으
로 나갈지도 모르고. 지도도 없는 이 길을, 안내돌에
의지해서 나아가야 해.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내가 먼
저 앞장서서 안내돌을 찾으며 나아갈게. 병사들도 나
누어서, 내 바로 뒤에 병사 두 명이 따라오면서 길을 확
보해. 그다음 따라오는 밧세와 수아를 보살펴 주고, 그
뒤에 병사 두 명이 따라오면서, 사엘과 하디와 유모의
길을 살펴 주고, 나머지 6명 군사들은 그 뒤를 따라오
는 것이 어때?”
밧세가 말한다. “좋은 생각이야. “
사엘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여람이 다시 한번 길게 숨을 내쉬고는 말한다. “그래
그럼 이제 가보자.“
새로운 길 위에서, 희망을 가지고 나아가는 길이 아닌뒤에는 무사히 모두 잘 계시기를 바라는 부모님과 마
을 사람들을 두고, 앞으로는 그저 그들도 살아남기 위
해 나아가는 이 여정에, 여람의 눈앞이 캄캄하고, 마
음과 머리도 돌덩이로 짓누르는 듯 무겁고 고통스럽
다.
놀이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할머니 집사는 비밀통로 문
을 급하게 나오는 하갈을 보자, “하갈님. 무사하셔서
다행이예요. 가신 일은 어떠셨어요? 밧세님은요? 마
을에 연기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어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라단이 해결하고 있나 봐요. 사
울진이 라함 수장님을 잡아갔어요. 수아는 눈이 멀고
목소리를 잃었고요. 사엘까지 모두 구해서, 일단 아이
들은 비밀통로로 빠져나가게 했고, 라단은 사울진 수
장을 설득한다며 남았어요. 그래서 마을의 연기도 사
라지고 있는 있는지도 몰라요. 곧 사울진 수장이 이곳
으로 오겠지요. 우리가 할 일은 비밀통로가 들키지 않
게 하는 것이고, 아이들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다음은 사울진 수장이 오면, 생각해 봐요.”
하갈의 말을 다 들은 할머니 집사는, “지금은 뭐라도
좀 드시고, 눈 좀 붙이시는 게 어떠세요?”
“네?”
“말로든 힘으로든, 누군가를 상대하려면 기운이 있어
야지요. 결국은 정신력과 체력이 우세한 사람이 이기
게 되어 있어요.”
온 마을을 뒤덮었던 연기도 곧 사라지고, 할머니 집사
의 말대로 일단 먹고 잔 날이 엿새나 흘렀지만, 사울진
은 하갈의 집에도 마하살의 집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어디서든 이렇다 할 소식이나 전갈도 없다. 지파의 마
을을 둘러보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평소와 다
름이 없다. 라단에게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마하살과
하갈은 직감적으로, 불길함과 불안함이 느껴진다.
어두운 비밀 통로를 걷다 보니,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
고, 며칠이 지났는지도 알 수가 없다. 카야가 10명의
정예무사들에게 음식과 물을 챙겨 보냈었다. 이들이
하루에 한 끼 정도만을 서로 나누어 먹으며 온 음식도
지난밤에 먹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입
구는 보이지 않고, 과연 이 길로 가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길잡이 돌을 찾아가며 앞서서 걸어가던 여람이 멈춰서
서, 한참을 주변을 서성이지만, 앞으로 걸어가지 않자,
밧세가 묻는다. “여람아? 무슨 일 있어?”
“그게.”
“잠깐만.” 밧세는 부축하고 있는 수아를 옆에 있는 무
사에게 잠시 건네고는 여람에게 다가가 묻는다. “왜?
무슨 일인데 그래?”
“길잡이 돌을 찾을 수가 없어. 보통 허리 높이 기준으
로 그 아래나 위 정도에 있었는데, 여기에는 아무리 찾
아봐도 없네.”
“같이 찾아보자. 사람들한테는 조금 쉬라고 하고.”
밧세가 뒤에 있는 무사에게 말을 전하자, 뒤따르던 이
들이 잠시 자리에 앉는다.
밧세와 여람이 손을 위로 더 뻗어 보기도 하고, 바닥에
거의 닳을 정도로 몸을 굽혀서 보지만, 길잡이 돌을 전
혀 찾을 수 없다. 여람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밧세를 보
며 다른 일들이 들으면 걱정할까 염려스러워, 나지막
한 목소리로 말한다. “설마 중간에 길을 잘 못 찾아온
건 아닐까?”
“아닐 거야.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길잡이 돌이 없다
는 것은?”
“그럼? 혹시, 입구에 다 왔다는 걸까?”
“그럴지도 모르지.”
여람과 밧세는 앉아 있는 이들에게 와서, 나가는 입구
가 있을 것 같다고 말하자, 앉아 있던 이들이 일어 서
고, 무사 중 대장이 다가와 여람에게 말한다. “여기터는 저희들이 앞장서 가겠습니다. 조금 뒤에 떨어져서
오십시오.”
대장이 짧은 휘파람을 불자, 정예무사들이 앞으로 나
와, 정열 한다.
여람이 무리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 밧세와 함께 수
아를 부축하고는, 그동안 앞서서 걷느라 잘 보지 못한
사엘의 얼굴을 보니, 그녀는 지쳐 보이지만, 별 달리 다
친 데나 아픈 곳은 없어 보여 마음이 놓인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이 전처럼 복잡하게 난 여러 갈래
길 대신 천장도 꽤 높고 넓은 길이 보인다. 차가운 공
기도 느껴지고, 익숙한 소리도 들린다.
통로를 빠져나와 바라본 하늘에 둥그런 달이 떠올라
있다. 입구를 찾아 나와서 다행인 것도 잠시, 이들이
다다른 곳은, 달빛이 비치는 밤하늘 아래, 파도가 치는
해안 절벽이다.
무사들이 주변을 재빨리 탐색한 후, 모아 온 나뭇가지
들로, 통로 안쪽에 불을 지핀다.
무사 대장이 여람에게 와서 말한다. “절벽 옆 사이로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을 발견했습니다.”
“위로?”
“네. 날이 밝으면 저희가 주변을 더 살펴보겠습니다.
혹시 이곳이 노출될까 하여, 통로 안쪽에 불을 지펴 놓
았으니, 일단 오늘밤음 여기에 머무는 것이 좋겠습니
다.”
무사 대장의 말을 들은 후, 여람은 이미 불가에 앉아 있
는 사엘과, 밧세, 수아, 그리고 유모와 하디에게 다가와
앉으며 말한다. “위로 올라가는 길이 있대. 날이 밝으
면, 올라가 보기로 했어. 오늘은 오랜만에 따뜻한 불가
에서 좀 쉬자.”
비밀 통로로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느끼는 온기 앞에
둘러앉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헝클어진 머리, 수
척하고, 퀭한 얼굴, 먼지로 새카매진 모습들을 보자, 무
슨 말이라도 해 줄 수가 없어, 말없이 서로를 바라본다
게다가 불안과, 걱정, 두려움 그리고 슬픔으로 가득한
그들의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서러움까지 밀려온다.
사엘은 초점을 잃어 허공을 맴도는 수아를 보며, 그의
얼굴에 손을 들어 대본다. 사엘의 손이 그동안의 여정
으로 힘들고 지쳐서 그런지 바르르 떨린다.
수아는 그의 얼굴 가까이에 느낌이 있자, 한 손으로 홱
친다.
밧세가 수아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걱정 마. 사엘이었어.”
사엘이라는 말에 수아의 얼굴이, 그녀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일 그러 진다.
여람은 떨리기도 했고, 수아가 홱 치는 바람에 아플 것
도 같은 사엘의 손을 두 손으로 잡으며 말 대신 괜찮다
고, 이제 통로에서 나왔으니 다 괜찮아질 거라는 의미
로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인다.
사엘은 이 모든 일을 만들어 낸 것이 그녀 탓인 듯, 미
안함과 죄책감으로 괴로운지, 여람을 잠시 쳐다본 후,
그가 잡고 있는 손을 놓고는 다리를 접어 두 팔로 감싸
쥐고, 그 사이에 얼굴을 묻는다.
그런 사엘을 보며, 여람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벽
에 몸을 기대며 비스듬히 눕는다. 통로 안에서 길잡이
돌을 잘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과 아픈 수아, 마음이 쓰
이는 사엘, 마을과 부모님 생각으로 여러 날, 제대로
눈 한번 감고 쉰 적이 없다. 그래도 길을 찾아서, 비밀
통로를 나와, 오랜만에 따뜻한 불가 옆에 앉아,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밧세와, 수아, 그리고 사엘과 함께 들었
던 파도 소리까지 들으니 피로가 밀려온다.
“여람아. 여람아” 들리는 소리에 눈을 떠서 보니, 따
스한 눈빛의 사엘이 옆에 누워 바라본다. 여람은 속으
로, ‘이건 뭐지? 내가 아직도 환각 상태 인가?’ 라고 생
각하다가, 놀라 벌떡 일어난다. 주변을 보니, 통로에서
나온 그 해안 절벽이다. 여람은 여러 번 숨을 내 쉰다.
수아를 부축하고 앉아 있는 밧세가 말한다. “여람아.
괜찮아?”
“어. 괜찮아. 이 와중에 너무 깊이 잠들었었나 봐. 꿈을
다 꾸고.” 여람은 여러 번 숨을 몰아쉬고, 손을 이마에
가져가 쓸으며 말을 잇는다. “그런데? 사엘은?”
“저기.” 밧세가 가리킨 곳을 보니, 절벽 앞에 서 있는
사엘이 보인다.
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가 서있는 곳으로 걸어가
묻는다. “잠은 좀 잤어?”
“리만투어는 아니야.”
“응?”
“리만투어 바다는 아니야. 색도, 냄새도 파도도 전혀
달라. 우리가 아마도 템말 산 너머 아주 멀리 온 거 같
아.”
그때 무사대장이 이들에게 다가와 말한다. “위로 올라
가서 살펴보니, 해안가를 따라 길이 나 있습니다. 주변
에 별 다른 위험한 흔적도 없습니다.”
여람이 사엘을 보며 말한다.
“가볼까? 가다 보면 마을이 나올 수도 있고, 이제는 먹
을 것과 물도 좀 구해야 해.”
“그래.”
또다시, 여람은 비밀 통로에서 처럼 사람들을 이끌고
걸어 가지만, 어두운 통로와 밖이라는 것 만 다를 뿐,
이곳이 어디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길
잡이 돌대신, 바닥에 길처럼 나 있는 곳을 따라 걸어 나
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