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만투어 바다에서 나온, 카야와 병사들은 어디로 가
야 하는지도 모른 채, 하늘에 떠 있는 사엘이 건네준 단
추를 방향 삼아 말을 달리고 또 달린다. 가는 길에, 카
야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세상을 봤고, 그 세상은 그
들이 살던 마을의 지파들을 다 합쳐도 그 보다 수천, 수
만 배는 넓어 보이는 땅에, 높고 큰 건물들이 가득하고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며, 환하고 복잡한 세상이다.
카야는 이런 세상을 보며, 모임 때 라단과 수아가 이야기하던, 바다 너머 어딘가에 있다는 세상이 이곳이 아
닌가 생각하며, 이 세상 사람들의 침략과 전쟁이야기
도 떠오르자, 두려움도 느낀다.
그날 밤도 카야와 그들의 병사들은 만약에 발생할 위
험과,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산속에 숨어 밤을 보내고 있
다. 카야는 별처럼 하늘에서 빛나고 있는 단추를 올려
다보며, 사엘과 그리고 그녀와 함께 있던 이들을 생각
한다. 그들이 비밀 통로를 무사히 잘 빠져나갔는지 걱
정하며, 나지막이 기도 한다. “경전의 신이여, 사엘과
그들을 지켜 주세요.”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도록 마을에 이렇다 할 변화
도 소식도 없던 어느 날, 이른 아침 서너 명의 사울진
병사들이 마하살과 하갈의 집을 찾아와 사울진이 보
낸 전갈을 전한다.
전갈을 받은 며칠 후, 하갈, 마하살, 레이는 호위 무사
두어 명 만을 데리고 집을 나서 사울진 집으로 간다. 다
들 처음 가보는 그의 집이다.
넓은 마당에 들어서자, 하인들이 나와 이들을 안내한
다. 마당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니, 층계가 있고, 그 위
에 건물 두 개는 쌓아 올린 듯, 보기에도 높아 보이는
건물이 있다. 하인들이 층계를 먼저 올라가, 안으로 들
어가는 문을 열어 놓는다. 하갈과 마하살, 레이는 층계
를 천천히 올라가, 열려 있는 문 안으로 들어간다. 안
으로 들어가니, 높은 천장에 두 손을 마주한 크기의 연
꽃 모양 등잔이 수십 개 달려 있다. 넓은 마루 바닥 양
쪽에 둥근기둥이 여섯 개씩 세워져 있고 그 앞으로 등
잔들이 길게 줄이 세워져 놓여 있다. 이곳의 등잔들을
다 켠다면 밤에도 낮처럼 환할 것 같다. 긴 마루 바닥
끝에, 금색으로 칠해진 5개의 층계가 있고, 그 위에 두
명은 앉을 수 있는 정도의 크기의 금색으로 칠해진 의
자가 하나 놓여 있다. 의자 뒤의 벽에는 벽을 다 가득
채울 만한 크기의 하얀 천에, 검은색 동그라미 하나가
크게 그려져 있는 것이 걸려 있다. 사울진이 언제 이런
곳을 집안에 만들어 놨는지, 외관이나 내관, 모두 높고
화려함으로 가득 채워진 곳이다.
층계 앞에 사울진, 그 옆에 웃날과 넬이 서있다.
사울진이 하갈과 마하셀, 레이를 보자,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어서 오세요.”
하갈이 사울진 쪽으로 한 발작 내딛으며 말한다. “사울
진 수장님. 지금 웃음이 나와요? 어서 오라니요? 도대
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아시고 지금 이러시는 거예
요?"
하갈은 사울진에게 라함 수장은 어디 있냐며 따지고
싶지만, 그날 그들이 함께 있었다는 것을 그가 알게 돼
면, 비밀 통로도 들통나고, 그 길로 도망간 이들도 위
험에 처할까 하여, 마음을 꾹꾹 다스리며 있자니, 몸까
지 부들부들 떨린다.
하갈의 말에 사울진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꾸한다. “하갈 수장님은 역시 언제나 여
전하시네요. 그런 모습을 보니 반갑습니다.”
하갈이 어이없다는 듯, “뭐라고요?” 라며 목소리가 높
아 지자, 넬이 나서며 말한다. “자. 다들 그만하세요.
오랜만에 만나서 뭐 하시는 겁니까?”
마하살도 잔뜩 찡그린 얼굴로, “오랜만에 만나 반가워
할 상황은 아닌 듯싶습니다만, 도대체 뭘 하신 건지, 설
명부터 해 보세요."라고 말하는데, 층계 위에서 누군
가가 걸어 나와 의자에 앉는다.
하갈과 마하살 레이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라단이
앉아 있다.
하갈이 놀란 목소리로 말한다. “라단아? 라단이 너 거
기 앉아서 뭐 하는 거야?”
넬이 대답한다. “이 땅의 새 왕이십니다.”
마하살이 말한다. “왕? 지금 왕이라 하셨습니까? 누가
라단을 왕이라 지명했습니까?”
사울진이 말한다. “누구든, 평등하게, 원하는 대로 무
엇이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고 여러분들이 모임 때
나누지 않으셨습니까?”
하갈이 말한다. “그래서,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되고
싶어서, 함께 한 이들을 해하고, 마을 사람들까지 독초
로 정신을 잃게 만드신 거예요? 도대체 왕인지 뭔지
되려고? 왕이 될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하세요? “
하갈의 말에 사울진이 매서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 보
며 말한다. “말씀이 좀 심하십니다.”
하갈도 지지 않고, 사울진을 노려 보며 말한다. “말이
심해요? 사울진 수장, 당신이 우리한테 한 일에 비하
면 이런 말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라단아. 너도 뭐
라고 말 좀 해 봐? 거기 왜 앉아 있는 거야? 너도 왕이
되고 싶었던 거니? 그랬던 거야?”
라단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들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흐른다.
하갈이 말을 하려고 입을 열자, 라단이 낮고, 조용한 목
소리로 먼저 말을 시작한다. “원한다, 원하지 않는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렇게 갑자기 벌어질 수 있는 위험
함 속에서, 이 땅과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 지킬 수 있
는 자, 그런 왕이라는 자가 필요하다고 이전에 이미 이
야기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제가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마을, 그리고.”
라단은 잠시 말을 멈춘다. 그의 입에 차마 친구들이라
는 단어를 말하기가 어려워서 이다. 그가 한 일이 아니
라도, 지금까지 친구라며, 지내온 이들을 저렇게 내 몰
았는데, 그의 입에서 친구라는 단어를 말한다는 것이
염치없게 느껴진다. 라단은 입에 담고 싶은 친구들이
라는 말대신, “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 말입니다.”라고
무겁고 천천히 말한다.
라단, 그가 왕이 된 것은, 아버지 사울진이, 비밀통로를
통해 빠져나간 친구들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들을
지키 고자 한 것이고, 또 그가 왕이 된다고 해야, 사울
진을 막아서며, 마을도, 수장들도 지킬 수 있기 때문이
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하갈, 마하살, 레이에게는 황당하고 놀랍겠지만, 라단
은 이들이 그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하며 그저 그를 잠
시 믿고, 모든 일들이 해결되도록 지켜 봐 주길 바라지
만, 이들은 그의 뜻을 모르는 것처럼 보여, 라단은 마음
이 무겁다 못해,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가슴이 죄어지
듯이 아프다.
하갈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한다. “무슨 위험으로
부터 지켜 내는 건데? 여기 네 아버지 사울진 수장이
마을 사람들과 네 친구들 모두를 위험하게 만들었어.
그런데 넌 지금 네가 사람들을 구하며, 그들을 지키기
위해 왕이 된 거라고 말하는 거니?”
마하살도 이 모든 상황들이 화가 나, 얼굴이 빨갛게 달
아 올라 말한다. “사울진 수장, 네 아버지가 온 지파 전
체를 위험하게 만들었어. 그런데 그 이유가 결국은 너
나 본인이 왕이 되려고 했던 거야? 그런 거야? 네가 말
한 친구들까지도 위험하게 만들면서? ”
레이는 그동안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았고, 이들이 하
는 일들을 지켜보며, 그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줬
었다. 하지만, 아들 여람과 그들이 그렇게 떠난 그 이후
로 지금까지 걱정이 되어, 매일매일 불안한 나날을 보
내던 그녀는 그녀의 눈앞에 벌어진 이 모든 상황에 분
노가 치밀어 가쁘게 숨을 몰아 쉬며 말한다. ”라단이.
너, 언제부터야? 그동안 네 아버지와 모임에도 잘 나오
고, 여기 계신 분들도 그동안 저 두 사람과 모두 다 같
이 잘 지냈다면서요? 그런데 이게 지금, 도대체, 내가
보고 있는 게 뭐예요? 사울진 수장님. 당신이 말해 보
세요? 아니 저 왕인지 뭔지 하는 저 애가 말해야 하는
건가요?”
하갈도 말을 잇는다. “그래. 라단아. 나도 이해가 안 돼.
넌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하기로 한 거니? 내가 너
를 지금까지 몰랐던 거니? 아니지? 아니라고 해야지?
넌 지금 그렇게 있으면 안 돼.”
하갈은 라단에게 그날 남아서 해결하겠다고 하지 않았
냐고 말하고 싶지만, 이 말도 할 수가 없어, 두 손을 꽉
쥔다.
하갈과 마하살, 레이는 라단이 왕이라고 하는 것보다,
이 모든 일들, 그들의 자녀들을 위험하게 만든 사울진
과 라단에게 화가 치미는 것이다. 그들이 비밀통로로
나가긴 했지만, 무사히 나갔는지, 아직도 그 통로 안을
헤매고 있는지, 가다가 중간에 다치거나 혹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다. 친구
의 눈과 목소리를 잃게 만들고, 환각에 빠트려 라함 수
장처럼, 그들도, 그가 말하는 친구들도 잡아가려고 했
다고 까지 생각이 드니, 사울진과 라단을 가만 두고 싶
지 않다.
모인 이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듣거나 말하거나 하는
것 없이, 각자 언성을 높이며 말한다.
침묵하며 이들을 보던 라단은 길게 숨을 여러 번 숨을
들이쉬고 내 쉬고는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난다. 그는
황금색의 긴 가운을 입고 있고, 풀었던 단발머리를 하
나로 묶고 있다. 강하게 치켜 올라간 눈빛이 불과 얼마
전에 보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라단이 천천히 입을 연다. 목소리 또 한 나긋나긋하고
상냥하던 소리가 아닌, 메마르고 건조해진 높낮이 없
이 낮고 어두운 목소리다. “저는 5개로 나누어져 있던
지파를 모두 하나로 합쳐, 하나의 나라로 만들 것입니
다. 처음으로 세워진 이 나라는, 지파 모두 하나가 돼
어 함께 하자는 뜻으로 라파. 라파라는 이름으로 불릴
것입니다. 여기 벽에 걸려 있는 것이 이 나라를 상징하
는 문양입니다. 저는 이 나라를 처음으로 다스릴 왕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파 수장으로서의 그동안
의 노고를 생각하여, 저와 함께 일하는 대신들로 임명
할 것이니, 이 새 나라를 위해 앞으로 더 수고해 주시
기 바랍니다. 이 말을 전하고자 오늘 오시라고 한 것이
니다."
라단의 말에 마하살은 어이없는 듯 양손을 펴며, 말한
다. “뭐라고? 라파? 우리들을 대신으로 임명해? 지금
뭐 하자는 게야?”
사울진도 라단의 갑작스러운 말에 놀라고 당황스러워
”이들을 대신으로 임명한다고? 왜? 어째서? 수장이라
는 자리부터 없애야지. 이들이 여전히 지파를 따르
면, 나라도 만들 수 없고, 사람들이 왕이라는 자를 따르
겠느냐?”라고 말한다.
사울진은 오늘 라단이 이들을 불러, 그들에게 그가 왕
이라고 말하고, 이들을 쫓아내거나, 잡아가거나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까지 하던 대로, 그들을 놔
두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 사울진이 한 마
디 더 하려 하자, 라단은 손을 들어 사울진의 말을 제지
하고는 다시 의자에 앉으며 말한다. “제가 오늘 전할
말은 다 했으니, 다들 이만 돌아가세요.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정리가 되면, 다시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하갈이 층계 앞으로 다가가며 소리친다. “라단아. 아니
지? 이거 너 아니지? 네가 이럴 수는 없잖아?"
“오늘은 그만 돌아가세요.”
라단의 차갑고 메마른 말에 하갈은 잠시 할 말을 잃는
다.
사울진이 라단에게 말한다. “도대체 이런 자들과 무
슨 나라를 함께 만들겠다는 것이냐? 네가 세우려는 나
라에 방해만 될 거야. 수장들이 없어야, 지파 사람들도
왕이 된 너를 따를 것이다.”
하갈이 사울진에게 다가가 말한다. “짐작은 하고 있었
지만, 이제야 본심을 드러내시네요. 그럼 진작 이러시
지 그랬어요? 왜 그동안 함께 하는 척, 우리를 속이신
거예요?”
하갈이 사울진에게 더 바짝 다가가자, 웃날이 칼을 빼
들며, 막아선다.
마하살이 놀라 말한다. “뭐 하는 짓이야?”
레이도 언제 숨겨서 들고 들어 왔는지, 등에서 칼을 꺼
낸다.
하갈이 사울진과 라단을 번갈아 보며 말한다. “원하
는 게 이런 거였어? 서로 칼을 겨 누며 만들어 가는 세
상? 그럼 나부터 먼저 죽여 보세요. “
라단이 자리에서 일어나, 층계를 내려와, 웃날의 칼날
앞에 등을 대고 서서는 하갈을 마주 보며 말한다. “웃
날 칼을 치워. 그렇지 않으면, 네가 베야 할 사람은 내
가 될 것이다.”
웃날이 황급히 칼을 칼집에 넣는다.
하갈 앞에 마주 선 라단이 다시 말을 잇는다. “하갈 수
장님 이건 오해입니다. 서로 칼날을 겨누다니요. 모두
를 지키려고 하는 거예요.”
라단의 말에 하갈이 잠시 라단의 눈을 응시한다.
잠시 후, 밖에 있던 병사들이 들어오자 라단이 말한다.
“이들이 여러분들을 댁까지 모셔다 드릴 것입니다. 당
분간 온 지파 마을들도 평소와 다름없을 테니, 걱정하
지 마세요. 이 모든 일은 모두를 지키려는 것입니다."
하갈은 다시 한번 라단의 눈을 잠시 응시하더니, 말없
이 앞장서서 걸어 나가고, 마하살도 뒤따라 나간다.
레이는 칼자루에 칼을 넣고, 웃날을 노려 보며 말한다.
“네 칼날이 날카롭고 빠른지, 내 칼날이 날카롭고 빠른
지 두고 보면 알겠지.”
이들이 나가자, 사울진이 웃날을 밀치고, 라단 뒤에 서
서는 소리친다. “저들을 저렇게 보내면 안 돼. 너를 방
해할 자들이다.”
라단이 층계를 오르며 말한다. “살려 두어야, 그들의
자식들이 부모를 구하러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뭐라고? 그럼 인질로 잡고 있겠다는 것이었느냐?”
“그런데 왜 대신으로 임명합니까? 그냥 잡아 놓고 있으
면 되지 않습니까?” 넬도 라단의 결정에 꽤나 불만이
있는 듯 입을 비죽이며 말한다
라단이 의자에 앉으며, 대답한다. “무슨 명분으로 잡아
놓습니까? 수장들을 그냥 잡아 가둬 놓고, 내가 이제부
터 이곳의 왕이다 하면 사람들이 네, 하며 따를 것 같습
니까?”
라단의 말에 넬이 떠 보듯 묻는다. “그래서 무슨 방법
이라도?”
넬의 말에 라단이 그를 노려 보며 말한다. “오늘은 이
만 다들 돌아가세요.”
사울진이 말한다. “무슨 방법이라도 있어서 그러는 것
이면, 우리도 알아야 너를 돕지 않겠느냐. “
라단이 대답 없이 의자에 기대 천장에 걸린 등잔을 응
시한다.
넬은 여기 있어봤자, 서로들 마음만 상할 것이고, 지금
은, 잠시 물러나 있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해, “저는 이
만 가보겠습니다.” 하고 말하고는 먼저 자리를 뜬다.
라단은 여전히 천장의 등잔을 응시하며 말한다. “아버
지도 이만 가보세요.”
사울진도 할 수 없다는 듯 자리를 뜨려는데, 라단이 그
를 부른다. “아버지.”
사울진이 고개를 돌려 라단을 보자 라단이 말을 잇는
다. “제가 왕이 될 거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래.”
“그러니, 제 뒤에 계세요.”
라단의 말에 사울진이 헛기침을 하고는, 보현당을 나
간다.
모두들 나가자, 라단은 등잔을 바라보는 대신 눈을 감
는다.
얼마쯤 시간이 흐르고, 이왕과 호가 다가온다.
라단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그들에게 말한다. “수장님
들은?”
“모두 댁으로 안전히 들어 가시는 것을 봤습니다.”
“라함 수장님은 아직 못 찾았어?”
“네.”
“아버지를 계속 주시해. 그리고 수장님들도 안전하신
지 계속 지켜보고.”
“네.”
라단이 더 이상 말이 없자, 이왕과 호도 보현당을 나간
다.
주변에 적막감이 감돈다. 라단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
다. 길고 힘들고, 긴장되고 그리고 가슴 아픈 날들이다.
몸을 일으켜, 안주머니 안에서 사엘이 준 단추를 꺼내
본다. 단추 속에 사엘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그녀는
리만투어를 걷고 있고, 그녀의 머리카락은 바람에 나
풀거리고,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잇다. 처음으로 함
께하며 친구라 부르던 수아, 밧세, 여람의 얼굴들도 담
겨 보인다. 그들이 리만투어 모래사장 위를 뛰어다니
며, 웃는 모습이 보인다. 라단의 눈물 방울이 단추 위로
뚝 떨어지자, 그들의 모습이 바다 안갯속으로 사라진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