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 절벽을 따라 걷던 길이, 산속으로 이어지자, 대장
무사가 여람에게, “산속으로 들어왔으니, 주변을 먼저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여기 잠시만 계세요.” 라고 말한다.
모두들 가던 길을 잠시 멈추자, 여람이 밧세에게 다가
가 묻는다. “괜찮아? 부축하기 힘들지?”
“괜찮아. 수아. 이 녀석 맨날 멋대로고 시끄럽더니, 조
용히 고분고분 말 잘 들으면서 따라오니까 오히려 수
월해.”
밧세는 앞도 보지 못하고, 말도 못 하는 수아가 오는 내
내 너무 걱정되지만, 서로에게 힘을 주듯 농담이라도
건네 보는 것이다.
여람은 사엘에게도 다가가 묻는다. “괜찮아?”
“응. 나는 괜찮은데, 유모가 다리가 많이 아픈지 절뚝
거려.”
“그래? 내가 한번 볼게."
여람이 유모에게 다가가, 무릎을 굽혀 보려 하자, 유모
는 한걸음 뒤로 물러 서며 말한다. “아무렇지 않아요.
나이 들어서 걸으려니까, 그냥, 좀 그런 거예요. 여람님
일어나세요. 제가 뭐라고 무릎까지 굽히시고, 전 괜찮
습니다.”
“사엘의 유모님이면, 어머니나 다름없으세요. 앉아보
세요.”
“당치 않으신 말씀이세요. 제가 어떻게 감히, 우리 제사장님의.”
하디와 사엘이 유모를 잡고 그녀가 바닥에 앉을 수 있
도록 도우며, 사엘이 말한다. “여람이 말이 맞아. 유모
는 나에게 엄마나 다름없어. 그리고 여람이가 어릴 때
부터 장난도 많고, 덤벙 대서 잘 넘어지고 다쳤어. 그
래서 발 아픈 거 잘 알아."
“어릴 때 덤벙 대고 잘 넘어진 건 나 아니고, 너.”
“나라고? 에이. 무슨 소리야. 너랑 수아겠지."
사엘이 그렇게 말하고는 그들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는
지 피식 웃음을 짓는다. 그런 사엘을 보고 여람도 웃음
이 난다. 그들에겐 이런 농담이라도 지금 서로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것 같다. 여람이 유모의 무릎과 발목을
천으로 감아 고정해 주고는 대장이 오는지 주변을 둘
러본다.
이윽고 무사 둘과 주변을 살피러 갔던 무사 대장이 돌
아와서는, “조금만 가면, 작은 계속이 있습니다. 주변
도 조용합니다. 오늘은 그곳에서 머무시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라고 말한다.
계곡을 본 이들은, 물속으로 뛰어들어 오래 동안 쌓인
먼지들을 씻어 낸다. 그 새 다 씻은 무사들은 주변에서
몇 마리의 새를 잡아와, 불을 지펴 굽는다. 오랜만에 씻
고, 따뜻한 불가에서 먹는 고기이다. 밧세가 새의 살코
기를 발라, 호호 불어 가며, 수아를 살뜰히 챙겨 먹이고
사엘 앞에 여람과, 유모 하디가 발라 놓은 고기도 가득
하다.
“뭐야. 내 앞에만 이렇게 가득하고. 나 그만 챙기고, 세
사람도 어서 많이 먹어요.”
사엘이 앞에 놓인 고기를 나누어 주며 말한다. 오랜만
에 배부르게 넉넉히 먹은 날이다. 여람이 무사들과 대
장 무사까지 돌아보며, 고맙다 인사를 건네고는 불 가
에 앉아 있는 사엘 옆에 와 앉는다. 여람의 마음에 순간
이런 상황이 좋은 건 아니지만, 어느새, 사엘 옆에 앉고
그녀를 챙기는 사람이 그 라서, 좋다는 생각도 들어 미
소까지 지어진다. 여람은, 이런 상황에 이런 생각을 하는 그가 어이도 없어, 짓던 미소 대신 밤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는 사엘을 바라보다가 묻는다. “뭘 그렇게 봐?”
“저기 별들 보이지?”
“응”
“그리고 저기 반짝이는 거 보여?” 사엘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저거? 말하는 거야?” 여람도 사엘이 가리키는 방향으
로 손을 들어 가리키며 말한다.
“응.”
“그런데 왜?”
“카야가 우리를 찾아서 곧 올 거야.”
어느새 다들 잠이 들었는지, 여람은 타닥타닥, 피워 놓
은 불에서 소리가 나자, 일어나서, 불씨를 뒤적거리며,
나뭇가지를 더 넣고는 주변을 둘러보니 안개로 자욱하
다. 주변에서 사박사박 나뭇잎 밟는 소리가 들린다. ‘무
사들인가’라고 생각하지만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아 누
군지 알 수가 없다.
“누구야?”
여람이 말하는 순간 앞으로 무언가 날아와 그를 덮치
고, 그는 정신을 잃는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여람이 눈을 뜨니, 모두들
손이 묶인 채,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 모두들 천으
로 입을 묶어서 말을 할 수가 없다. 다들 매달린 채 발
버둥을 치며, 서로들 괜찮은지 둘러본다.
“너희들은 누구냐?”
다들 매달린 채로 고개를 들 수 없어 볼 수가 없지만,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나무 위 나뭇가
지 사이로 사람들이 서 있다.
“너희들은 어디서 온 자들이냐?”
그들 중 하나가 다시 말하자, 여람은 발버둥을 치며,
뭐라고 말하지만 그저 웅얼 웅얼 소리 밖에 나오지 않
는다.
누군가가 옆에 있는 자에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더니,
한 사람이 나뭇가지에서 가볍게 땅으로 뛰어 내려서는
매달려 있는 사엘에게 다가간다. 그것을 본 여람과, 유
모, 하디가 더욱 크게 웅얼 웅얼 소리를 내며 발버둥을
친다.
사엘에게 다가간 자가 칼을 뽑아 든다. 여람과, 유모,
하디, 밧세가 더욱 발버둥을 치며 소리를 내 보지만 소
용이 없다. 그자가 사엘에게 칼을 휘두르니, 사엘의 입
에 묶여 있던 천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사엘을 보던 이
들이 안도의 숨을 겨우 내쉬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네가 말해 보거라. 너희들은 누구냐?”
사엘이 거꾸로 매달린 채, 말을 건넨 자의 눈을 응시하
며 묻는다. “그러는 너희들은 누구냐? 누군데, 사람들
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잡아다가 매달아 놓는 거지? 보
시다시피, 우리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때, 또 다른 자가 나무 위에서 땅으로 사뿐히 내려와
사엘 앞에 서서 말한다. “더러워 보이지만, 꽤 좋은 옷
감의 옷을 입은 자들과, 무장을 하고 칼을 쓰는 무사들.
글쎄 내 눈에는 평범해 보이지 않아서.”
사엘은 이 자의 말이 그들을 봤을 때, 그렇게 생각할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들이 이곳에 해를 가
하러 온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우리
는 리만투어 라는 곳에서 왔어. 우리 마을에 갑작스러
운 일이 생겨 여기까지 오게 됐어. 이곳이 우리 마을에
서 어디로, 얼마큼 떨어진 곳인지도 몰라. 잠시 있다가,
마을로 다시 돌아갈 방법을 찾아서 갈 거야. 그러니.”
사엘에게 평범치 않다 말한 자가, “리만투어에서 왔다
고?” 라고 묻는다.
“그곳을 알아?”
“내가 알리가 없지. 그런데 마을에 무슨 갑작스러운 일
이 생겼지?”
사엘이 묻는 자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본다. 비록 거꾸
로 매달려 잘 볼 수는 없지만, 묻는 자의 눈이 해치거나
나쁜 일을 저지를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알지
못하는 곳이라고 말하면서, 마을의 일을 묻는 것이 이
상하다. 사엘은 그들에 대해 좀 더 말해 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 마을엔 여러 지파가 있는데, 여기
있는 자들은 지파 수장들의 자녀와, 호위 무사들이고,
나는 제사장이야.”
사엘의 말을 들은 자가 손을 들어 손짓을 하자, 여러
사람들이 나무 위 가지 위에서 땅으로 나르듯이 내려
와 칼을 뽑아 든다.
사엘은 이 것이 아니었나 싶어 눈을 감는다.
눈을 떠보니, 숲 속 대신 천장이 보인다. ”여긴 어디지?
또 환각상태 인가?’
“사엘님. 정신이 좀 드세요?”
“하디?”
“네.”
사엘이 일어나 앉으며 말한다. “여기가 어디야?”
“모르겠어요. 저도, 사람들이 나무 위에서 내려와 칼을
뽑아 든 것까지만 보고, 기억이 나지 않아요. 일어나 보
니, 사엘님과 유모님이 같이 누워 계셨고.”
그때 방 문이 열리면서, 두 사람이 밥상을 들고 들어 오
고, 그 뒤에 한 사람이 더 따라 들어오며 말한다. “정신
은 들었어?”
사엘이 말하다. “여기가 어디야? 도대체 너희들은 누
구고? 우리가 여기 왜 있지?”
“밥부터 먹어.”
그 자는 묻는 말에는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어딨어?”
“글쎄. 지금쯤 너처럼 밥상을 받았겠지.”
“너희들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밥에도 뭐가 있는 줄 알
고 먹어?”
“죽일 거였으면, 매달지도 않았어.”
사엘은 이 자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들이
왜 이러는지 알아야 할거 같아 묻는다
“그럼? 왜 이러는 거지?”
“살려줘도 문제야?”
“그건 아니지만.”
“너네 들이 입은 옷이 낯설지가 않아서. 그래서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일단은 데려온 거야.”
“그래서?”
“제사장이라고?”
묻는 말에는 역시나 대답하지 않는 자는 가지고 있던
것을 사엘 앞에 던진다. 사엘은 바닥에 던져진 책을 집
어 들어, 훑어보고는 다시 그 자에게 묻는다. “이게 뭐
야?”
“제사장 이라며? 읽어보면 알겠지.”
밥상을 놓은 자들과, 알 수 없는 말만 늘어놓은 자는
방을 나간다.
유모가 숟가락을 들며 말한다.
“일단 제가 한 숟가락씩 먹어 볼 테니.”
사엘이 유모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뭐야? 그런 거 하
지 마. 같이 먹고살던가. 같이 먹고 죽던가 해야지.”
어느새, 하디가 한 숟가락씩 먹고는 말한다. “맛있는데
요.”
사엘도 숟가락을 들고는 말한다. “그래. 아까 그 자 말
대로, 죽일 거면 벌써 죽였겠지. 밥까지 먹이면서 죽이
겠어. 먹자. 일단 먹고 생각해 보자.”
식사를 마친 사엘은 책을 들어 읽는다. 모임 때, 라함
수장이 들고 와서 함께 나누며 읽었던 역사서와 같은
모양의 책이다. 내용도 그때 읽었던 책의 한 부분인 것
도 같다.
사엘은 그녀가 매달려 있을 때 말을 나눈 자, 그리고 책
을 던져 주고 간 자가 궁금해진다. 둘은 같은 자이다.
아래위로 검은색으로 자객처럼 입었지만, 말아 올린
머리와, 목소리로 나이가 좀 든 여자다. 게다가 함께 있
는 자들도 모두 여자로 보이고, 나이대는 모두 달라 보
였다. 게다가 이 자가 왜 1지파의 역사서의 한 부분이
적힌 책을 갖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분명 리만투어도
모른다고 했지만, 아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리만
투어에서 살았던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엘은
여러 생각들을 하며 책장을 넘겨본다.
그때 사엘이 “어” 하고 소리를 내자, 유모와 하디가 놀
라 사엘을 보며 묻는다.
“왜요?”
“무슨 일이세요?”
사엘이 유모와 하디를 둘러보며 말한다. “수아를 고칠
방법을 찾은 거 같아.”
밧세가 대야에 담긴 물로 천을 적셔 수아의 얼굴을 조
심스레 닦아 준다. 6살 때부터 보아온 그의 얼굴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은 없었던 것처럼, 그의 눈, 코,
입이 낯설다. 그리고 그의 얼굴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수아의 입술 주변을 닦던 밧세는 생각을 떨쳐 버
리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몸도 좀 닦아
줄게."라고 말하자, 수아는 아무렇지 않게 윗옷을 벗는
다. 밧세는 그가 혹시 다친 곳은 없는지 살펴보며, 그의
몸을 살살 닦아주며, 그의 넓은 가슴, 단단한 복근, 벌
어진 어깨를, 손으로 쓰다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
에게 수아는 어릴 때부터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던 친구이고, 그를 향한 감정은 둘도 없이 가깝고 친
한 우정이었다. 그런데 그때 그 환각 이후로, 그는 수아
에 대한 그의 마음이 열정과 열망이 담긴 애정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수아가 그의 이런 모습과 마음을 안다
면, 미친놈 이라며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다. 밧세는 그
의 마음을 떨쳐 내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그때, 방문이 열리고, 두 명의 사람이 밥상을 들고 들어
오자, 밧세가 한쪽에 놓여 있는 새 윗옷을 들어 수아에
게 입혀 준다.
“엄마가 독 같은 것은 안 들어 있으니 , 안심하고 먹으
라고 하셨어.”
“엄마?”
밧세가 묻지만 그들은 대답 없이 방문을 닫고 나간다.
이상한 사람들이고, 이상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
른 이들은 어떻게 됐는지도 궁금하다. 밥상을 본 밧세
는, 그래도 혹시 몰라 그가 먼저 먹어 보고, 수아에게
한 숟갈 떠 먹여 준다. 한 입 받아먹은 수아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밧세가 묻는다. “왜? 이상해?”
수아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더 먹겠
다며 입을 벌린다. 밧세는 다시 한 숟가락을 떠서 먹여
주자, 수아가 속으로 생각한다. ‘이 음식, 아버지가 좋
아하는 그 음식이다, 우거짓국. 그런데 이 국이 왜 여기
서?’
다음날, 사엘이 있는 방에 어제 책을 주고 간 자가 들어
오며 묻는다. “읽어 봤어?”
“응. 그런데 이 책이 왜 당신에게?”
“나와.”
이 자는 묻는 말에는 또 대답하지 않고, 다른 말을 던진
다.
“응?”
“나와. 눈멀고 목소리를 잃은 네 친구방으로 데려다
줄 테니. 네가 진짜 제사장이라면 해봐. 그러면 나도 믿
어 볼게.“
“뭘?”
그 자는 대답 없이, 사엘만 데리고 방에서 나오려 하자,
유모와 하디가 막아선다. 사엘이 괜찮을 거라고 말하
고는 방을 나선다. 이들이 데려간 곳으로 가 방문을 여
니, 밧세와 수아가 앉아 있는다.
“사엘아.”
“밧세야. 수아야. 괜찮아?”
“우린 괜찮아. 다른 이들은?”
“몰라. 나는 하디와 유모랑 있었어. 여람이는?”
“저기 서 있는 자랑 나갔었는데. 아직 안 오네. 괜찮겠
지?”
“그래야지. 그런데.”
“응?”
“저 자가 이 책을 줬는데.”
사엘이 들고 온 책을 밧세에게 건네자, 그도 사엘처럼
책장을 넘기며 읽어 보고는 놀라 말한다. “이거? 라함
수장님께서 갖고 게시던 역사서 중의 일부 같은데?”
“맞아.”
“그런데 이 책이 왜 여기?”
“저자가 줬어.”
문 앞에 서있는 자를 밧세가 쳐다보지만, 그 자는 아무
런 말도 반응도 없다.
“그런데 밧세야. 여기.”
“응.”
“여기 쓰여 있는 대로 하면, 수아를 고칠 수도 있을 거
같아. 제사장이 눈먼 자와 말 못 하는 자를 고쳤다는 내
용이 있어.”
“그럼 해 봐야지.”
“그런데 좀 두려워.”
“왜?”
“더 잘 못 될까 봐.”
“사엘아.”
“응?”
밧세는 사엘의 어깨를 양손으로 잡고는 말한다. “제사
장님. 당신은 신의 부름을 받은 자이고, 불 꺼진 제단
에 불을 밝혔고, 지금까지 제사장으로 지파들을 이끌
어 오셨어요. 뭐가 문제예요? 수아를 고칠 수 있는 분
은 제사장님 당신밖에 없어요.”
“할 수 있겠지?”
“할 수 있어.”
사엘이 수아를 바라본다.
밧세가 수아에게 묻는다. “수아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
지? 제사장님이 널 고쳐 줄 수 있을 거라 믿지?”
수아는 사엘에 대한 분노도 있지만, 그래도 사엘이, 제
사장으로서 그를 고칠 수 있다고는 믿는다. 원망과 분
노는 접어 두고 눈도 고치고 목소리도 나와야, 마을로
돌아갈 방법도 생각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먼저이다.
수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밧세가 말한다. “봐. 수아도 그렇게 믿잖아. 제사장님.
당신이 고칠 수 있어요.”
사엘이 문 앞에 서있는 자에게, “깨끗한 물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을 좀 가져다주겠어?”라고 말하자, 그 자
는 방문을 열고, 밖에 있는 자들에게 지시를 하니, 곧
여려 개의 그릇들을 가져온다.
“어떤 게 필요 한지 몰라서, 있는 대로 가져왔어.”
사엘은 여러 그릇 중, 깊이가 그리 깊지 않지만, 둥그란
모양에 조금 큰 그릇을 집어서는, 수아 앞에 마주 앉고
그릇은 그녀의 오른쪽에 놓아둔다. 펼쳐 놓은 책을 집
어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보고는, 몸을 그릇 쪽으로 돌
려, 눈을 감고, 입으로 무언가를 중얼 거린다. 사엘이
감고 있는 눈을 뜨고, 그릇에 두 손을 넣었다고 뻬고는
허공에 손짓을 하자, 비어있는 그릇에 어느새 물이 담
겨서는 물방울들이 튀어 오른다. 사엘은 허공으로 튀
어 오르는 물방울들을 손으로 만지듯 움직이며 중얼
거린다.
이 모습을 밧세와 문 앞에 서 있는 자가 놀라서 숨을
죽이고 바라본다.
사엘은 손을 그릇에 담고, 담긴 물로 손을 여러 번 씻더
니, 그릇에서 손을 빼고, 두 손을 모아서 수아 쪽으로
몸을 돌린 후, 모은 손을 보며, 말한다. “경전의 신이여.
당신의 부르심을 받은 자 당신에게 간구합니다. 당신
이 지명하신 자의 눈과, 목소리를 고쳐 주소서.”
사엘이 말하고는, 모은 손을 입으로 가져가, 입김을 분
다. 그러자, 사엘의 손에 잡힌 듯 연기가 모아져 있다.
사엘이 그것을 수아의 눈에 대고, 목에 가져간다. 수아
의 눈과 목 주변이 마치 천으로 감싼 듯 연기로 감싸 지
더니, 이윽고 연기가 사라진다. 사엘은 다시 그릇으로
몸을 돌린 후, 손을 담가 씻는다. 조금 전과 같이 경전
의 신을 부르고, 손에 입김을 불어 연기를 만든 후, 수
아에게 가져간다. 그렇게 하기를 일곱 번째 할 때, 사
라지던 연기가 수아의 코로 빨려 들어가더니, 수아가
가슴을 잡고 심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한다. 사엘이 수
아의 등을 쓸어내린다. 기침을 하던 수아가 헉, 소리를
내며 그릇에 빨간색의 덩어리를 토해 낸다. 눈에는 하
얀색의 막이 생겨 있다. 사엘이 손으로 막을 벗겨 내자,
비늘 벗겨지듯 떨어진다. 수아가 보이는지 늘 허공에
맴돌던 눈이 사엘을 쳐다보는 것처럼 보인다.
사엘이 묻는다. “보여?”
수아가 다시 마른기침을 여러 번 하고는 보인다는 듯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이고는 그대로 사엘 앞으로 고
꾸라진다.
사엘이 밧세에게 말한다. “수아 좀 눕혀 줄래? 해독되
면서, 기력이 다해, 정신을 잃은 거야. 좀 쉬게 해 줘야
해.”
밧세가 수아를 눕히고, 이불을 덮어 주고는 사엘을 보
며 묻는다. “너는 괜찮아?”
"응. 나는 괜찮아. 내가 잘 한 거겠지?"
"응. 잘했어. 수아가 보인다고 고개도 끄덕였잖아."
그때 어디서 이야기를 들었는지, 여람이 헐레벌떡 방
안으로 들어온다. "다들 괜찮아?"
사엘이 여람을 보며 묻는다. "응. 그런데 너는 어디 갔
다 온 거야? 너는 괜찮아?"
여람은, "나는 괜찮아. 그냥 주변을 좀 둘러보고 왔어."
라고 말하고는 사엘의 귀에 대고 주변 사람은 듣지 못
하게 속삭이듯 말을 잇는다. "그런데, 네가 말한 그 단
추가 더 가까워졌어."
여람은 이곳에 있는 자들에게 카야에 대해 알리지 않
기 위해서 이다. 이들이 그들과 맞서야 할 수도 있을 때
를 대비해서 이다.
밧세가 말한다. “여람아. 사엘도 많이 지쳤을 거야. 네
가 좀 데리고 나가서 쉬게 해 줘. 수아 옆엔 내가 있을
게.”
여람이 말한다. “그래. 그게 좋겠어. 사엘아 그렇게 해.
응?”
그들의 말에 사엘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여람이
먼저 일어나 그녀를 부축해 준다.
사엘이 문 앞에 서서 이 모든 것을 지켜 보던 자에게
묻는다. “이제 우리를 어떻게 할 셈이야? 당신이 보고
싶은 걸 봤어?”
문 앞에 서 있던 자가 말한다. “네 친구 말대로 너도 좀
쉬는 게 좋겠어. 문 밖에 있는 사람들이 돌봐줄 거야.”
“해치는 것도 아니고, 죽이는 것도 아니고, 돌봐 주겠
다. 당신이 믿고 싶은 무언가라도 봤나 보군.”
문 앞에 서 있는 자는 여전히 묻는 말에는 대답 없이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는 방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