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단과 카야는 신전 건물 밖으로 서둘러 나온다.
라단이 카야를 보며 말한다. “사엘이 말한 대로 카야는
병사들을 불러 리만투어로 가. 나는 여기 남아서, 아버
지를 기다릴게.”
“무슨 방법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없어. 아버지를 만나면, 그때 뭐라도 방법이 생
각나지 않을까.”
“제가.”
“아니야. 카야는 병사들을 챙겨, 여길 빠져나가. 그리
고 사엘을 찾아. 그게 카야가 해야 할 일이야.”
라단의 말에 카야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사엘이 사랑
하는 이 남자, 라단, 카야는 사엘도 라단도 모두 지키고
싶다. 일 그려져 주름진 이마에 눈까지 찡그려 감은 카
야는 나지막이 휘파람을 휘익 휘익 분다. 그러자 여기
저기 휘파람 소리가 메아리처럼 사방에 울려 퍼진다.
카야가 다시 휘익 휘익, 다른 음으로 휘파람을 불자, 여
기저기 같은 휘파람 소리가 또다시 울려 퍼진다.
카야는 감고 있던 눈을 뜨며 말한다. “병사들이 이제,
리만투어로 모일 거예요.”
라단이 카야의 어깨에 손을 얹자, 카야도 그의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의 눈을 응시한다. 서로 무슨 생각을 하
며 바라보는지 알 것 같다. 사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생겨난 서로에 대한 우정과 존중이다.
“조심해. 그리고 반드시 사엘을 찾아서 함께 있어. 나
도, 금방 찾으러 갈게.”
라단은 주문이라도 되는 듯, 금방 찾으러 갈게 라는 말
을 신전에서부터 지금까지 여러 번 반복하며 말한다.
카야는 라단의 마음을 읽은 듯, 그의 주문 같은 말에,
그의 바램도 담아, 마음속으로, ‘경전의 신이여. 라단
도 지켜 주세요.”라고 여러 번 기도 한다.
"어서가. 아버지가 오시기 전에 떠나야 해."
라단의 재촉에 말에 올라탄 카야는 라단을 다시 한번
보며, 목례를 한 후, 발을 구르자, 말은 앞발을 올리며
소리를 내고는 힘차게 앞으로 달려 나가자, 여기저기
달리는 말발굽 소리들이 마치 천둥 치는 소리처럼 들
린다..
카야가 떠나고, 라단은 잠시 서서, 하늘을 바라본다. 지
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그저 꿈만 같다. 지독하게 무
서운 악몽이다.
잠시 후, 사울진과 그의 병사들이 제사장 집과 신전으
로 들이닥치는 소리가 들린다.
“제사장을 찾아라.” 웃날의 목소리다.
이윽고, 신전 마당 안으로 들어온 웃날이, 라단이 서 있
는 것을 보고는 놀라, 사울진에게 달려간다.
“수장님. 신전 마당 앞에 라단 님께서 계십니다.”
사울진이 놀라 묻는다. “뭐라고?”
사울진은 라단에게도 매향초를 먹이려 했었다. 일이
다 끝난 후, 해독초를 주면 되기 때문이었다. 친구들 일
이라 감정이 앞선 아들이 일을 망칠까 하여, 사울진은
그동안 이 모든 일들을 라단이 알지 못하게 했고, 오늘
그는 매향초를 먹었을 것이고, 지금쯤 그의 방에서 자
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가 이곳에 있다는 말에 사울
진은 놀란 것이다. 라단은 모임에서 새로 내온 간식과
차를 먹는 대신 먼저 일어나, 아버지 사울진의 몸 상태
를 확인하러 집에 왔었고, 사울진이 서재에서 사람들
과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사울진은 신전 마당 안으로 달려 들어가, 말에서 내려
라단을 향해 달려가며 외친다. “네가 왜 여기 있느냐?”
“아버지는 왜 여기 계십니까? 오늘 몸이 안 좋다고 하
지 않으셨습니까?"
“뭐라고?”
“너는 어째서 어째서 깨어 있지?”
“제가 깨어 있는 것이 잘못되었습니까?”
“제사장은? 제사장은 어디 있느냐? 사엘은 어딨지?”
“왜 여기 계시는지 여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모임은
이미 다 끝났습니다. 그런데 제사장님은 왜 찾으십니
까?”
그때 웃날이 달려오며 말한다. “여기에는 계시지 않는
거 같습니다. 카야의 병사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웃날의 말에 사울진이 말에 올라타며 말한다. “리만투
어로 가봐. 제사장이라도 반드시 잡아야 한다.”라고
말한 사울진은 라단을 보며 말을 잇는다. “이것이 내가
여기 온 이유이고, 제사장을 찾는 이유이다.”
사울진과 웃날이 말을 돌려 나가자, 라단을 잡고 있으
라는 사울진의 명령에 대여섯 명 정도 되는 병사들이
달려 들어온다.
그들을 보자, 라단이 말한다. “나는 너희들을 해칠 마
음이 없어. 여기서 내 명령을 따르면 모두 살려 둘 것이
고, 그렇지 않으면, 모두 죽을 것이다. 내가 누구로 보
이느냐? 너희들이 싸울 상대로 보이느냐?”
라단의 강하고 우렁찬 목소리에 병사들이 잠시 주춤한
다. 수장의 아들과 싸울 수도 없고, 지키고 있으라고
한 수장의 말을 거역할 수도 없다.
“너희들이 나를 잡고 있지 않아도, 나는 여기서 아버지
를 기다릴 것이다. 할 일이 남았거든. 그러니 지금부터
내가 명령하는 것을 하면 돼. 어찌하겠느냐?”
라단의 말에 병사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듯, 서로들을 바라보며 주춤하자, 라단은 한 병사에게
다가가 그의 등에 차고 있는 화살을 뽑아, 다른 병사의
손에 들려 있는 횃불에서 화살촉에 불을 붙이고는 신
전 기둥을 향해 날리고는 소리친다. “불을 질러라. 신
전을 태워 버려. 이곳은 저주받았다.”
라단은 카야와 함께, 제단의 그릇을 깨트려, 비밀 통로
입구를 막았지만, 혹시 그곳이 들킬까 염려되어 신전
전체를 불태우는 것이다.
병사들은, 라단이 저주받은 곳이라는 말에 분주히 움
직이며, 신전 곳곳에 불을 붙이자, 나무로 만들어진 건
물이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인다.
리만투어로 달려간 카야와 병사들이 바다를 바라본다.
뒤에 사울진의 병사들이 달려오는 것도 보인다. 카야
가 리만투어 바다 앞에 서 있는 병사들 앞을 좌 우로 달
리고는 휘파람을 노래 가락처럼 길게 불기 시작한다.
휘파람 소리의 의미는, “걱정하지 말고 따르라.”라는
것이다.
카야가 병사들에게 정말 위험한 순간이 찾아왔을 때,
불 것이라며, 알려준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뒤에는 사
울진의 병사들이 달려오고, 앞은 그저 막막한 바다이
다. 이곳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은 카야에겐 사엘의 말
대로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병사들에게는 납득하기 어
려 울 수 있다. 그래서 걱정하지 말고 따르라는 휘파람
을 부는 것이다.
휘파람을 불며, 카야가 리만투어 바닷가로 말을 몰아
힘차게 달려들어 가자, 병사들도 카야가 부른 휘파람
을 그대로 따라 부르며 리만투어 바다를 향해 말을 몰
아 달려들어간다. 이들을 본 사울진이 말을 멈추고 한
손을 들어 올리자, 궁수들이 앞으로 나와 화살을 날린
다. 수십 개의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바다를 향해 달
려가는 카야와 그의 병사들에게 날아가자, 순간 바다
의 파도가 하늘만큼 높게 일며, 카야의 병사들을 덮친
다. 그리고 파도가 일며 만들어낸 바람에, 날아가던 화
살들이 바닷가에도 미치지 못하고, 모래사장으로 후드
득 떨어져 꽂힌다.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간 카야와 그의 병사들이 육지에
서 처럼 말을 타고 바닷속을 달린다. 카야도 병사들도
모두 이 상황에 놀랐지만, 앞으로 전진하듯, 바닷속을
달린다. 한참 후 그렇게 달리는데, 카야의 눈에 멀리 환
한 빛이 보인다. 모두들 그 빛을 향해 더욱 힘차게 말
을 몰아 달린다. 빛에 가까워진 듯 하자, 카야는 무언가
에 쾅하고 부딪히며, 몸이 뱅글뱅글 돌며, 눈앞이 멍
해진다.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며, 멍해진 시야를
바로 보려고 하자, 눈앞에 다시 빛이 보이면서, 알 수
없는 형체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인다.
다시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자, 실루엣이 선명하
게 보인다. 그를 품에 안고 있는 하란이다. 모든 것이
정지된 듯, 파도도 일지 않고, 주변이 고요하다. 이렇게
가까이 그녀를 마주 보고 있었던 때는, 그녀가 그의 품
에서 죽어갈 때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녀가 그를 감싸
안고 있다. 카야는 그가 죽었나라고 생각하면서, 그녀
의 품에 안겨 죽어도 좋다는 생각을 한다.
하란이 카야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엷은 미소를 짓는
다.
가슴이 턱 막히며, 숨을 쉴 수가 없다. 흐억 소리를 내
며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주변을 보니, 알 수 없는 해
안가이다. 여기저기서 같은 흐억 소리를 내며, 병사들
도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인다. 말들도 언제 바다에서
나왔는지, 젖은 몸을 세차게 흔들며 털에 묻은 바닷물
을 털어 낸다. 눈을 돌려 바다를 향해 바라보자, 방금
전 보았던 하란의 여전히 아름답고, 고귀하고, 온화한
그녀의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그의 몸에 남은
그녀의 따스함도 느껴진다.
그녀의 목소리도 여전히 귓가에 남아 들린다. "사엘이
를 지켜줘. 그 아이를 꼭 지켜줘.”
겉 옷 안쪽 주머니에서, 사엘이 주고 간 단추를 꺼내 보
며, 혼잣말을 한다. “네. 하란님. 사엘은 제가 꼭 지킵
니다. 그것이 내가 당신을 여전히 사랑한다는 증표 이
자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니까요.”
카야가 자리에서 일어나 병사들을 향해, 짧은 휘파람
을 불자, 여기저기서 휘파람 소리가 되돌아 들린다. 모
두들 괜찮은 지를 확인한 카야는 단추를 손에 꼭 쥐고
는 말에 올라탄다.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그저
사엘을 찾아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만 한다.
리만투어의 파도와 순식간에 바다로 사라진 카야와 그
의 병사들에 놀라 있는 사울진에게 웃날이 말한다.
“수장님. 저기 좀 보세요.”
사울진은 웃날이 말한 대로, 고개를 돌려 제사장집을
보니, 불길이 치솟고 있다. 이를 본 사울진이 제사장 집
으로 향해 달려간다. 웃날이 몇 병사들에게 리만투어
바다 주변을 살펴보라 지시하고는, 남은 병사들을 데
리고, 사울진을 따른다.
불길에 휩싸인 신전을 바라보고 서 있는 라단을 향해
사울진이 말에서 내려 달려가, 그의 등을 주먹으로 친
다. 사울진은 지금까지 한 번도 라단을 혼내 본 적이 없
다. 라단이 혼이 날 정도의 일을 한 적도 없었고, 사울
진에게 라단은 늘 마음이 쓰이는, 불쌍하고 가여운 아
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아들이 행여 상처를 받을
까, 어디 가서 무시라도 당할까 하여, 온실 속의 화초처
럼 애지 중지 키운 아들이고, 그 아들이 행복하고 당당
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을 뿐이었다. 그
런 사울진이 지금은 라단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그 아
들의 등을 주먹으로 내리치는 것이다.
“어떻게 된 것이냐? 무슨 일을 저지른 거야? 제사장을
어디로 빼돌렸어? 왜? 왜 일을 망치는 것이야?” 사울
진이 말을 잇지 못하고 때리던 주먹 대신, 라단의 등을
감싸 안으며 말을 잇는다. “아비의 뜻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야? 이게 다. 다 너를 위한 일인데.”
라단이 나지막이 사울진을 부른다. “아버지. 제가 왕
이 되겠습니다.”
“뭐라고?”
“제가 왕이 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가 오늘
하시려고 한 일이 이것 아닙니까? 저를 왕으로 만드는
것이요.”
“그래. 이제야, 아비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아느냐?
그렇게 잘 아는 녀석이 오늘 일을 다 망쳐 놓고는, 왕이
된다니?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사람들은 누가 왕으로 지음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리
고 왕으로 지음 받은 이 가 수아든 저든 그 누구든 상관
없어요. 그들이 바라는 왕은 그저 그들이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면 되는 자니, 그런 왕이 되면 되지
않겠습니까?”
“제사장은? 제사장의 지음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
“신전도 불에 타 버리고, 제사장도 없으니, 왕으로 지
음을 받을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이곳은 저주받았어
요.”
“뭐라고? 저주?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냐?”
사울진은 라단의 말에 당황스러워졌다.
“아버지. 제가 왕이 된 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
러니 이제부터 제 등뒤에 계세요. 제가 이곳, 모든 지파
의 가장 높은 자, 왕이 될 것입니다.”
라단의 말에 사울진이 한 발짝 뒤로 물러 선다.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아들의 강하고 위엄 있고, 게다가 소름
까지 돋을 정도로 낮고 어두운 음성이다. 그리고 방금
전 주먹으로 치던 아들의 등이, 넘을 수 없을 만큼 넓고
높아 보인다.
그 둘 사이에 침묵이 흐른다.
잠시 후, 라단은 천천히 몸을 돌려, 사울진을 마주 보며
선다. 사울진이 한 번도 보지 못한 라단의 모습이다. 그
는 늘 나약한 거 같았고, 정 만 많은 데다, 꿈이나 야망
은 없는 아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마주 서 있는 아들 라
단은, 나약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강인한 모습과, 매
서운 눈빛, 그리고 너무 높고 커서, 바라보기 조차 어려
운 모습으로 서있다. 무엇보다도, 그에게서 나오는 위
엄과, 사람을 압도하는 힘, 그리고 무게에 눌려 더 바라
보기도 어렵다.
사울진은 그에게 아버지이나, 또한 군주와 신하로서,
예를 갖추어 라단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를 본 웃날이 병사들에게 소리친다.
“왕이시다. 모두 예를 갖추어라.”
웃날과, 모든 병사들이 무릎을 꿇는다.
이들을 보며, 라단이 말한다 “들어라. 왕이 너희들에게
처음 내리는 명령이다. 온 지파에 나는 연기들을 없애
라.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해독초를 주거라. 해독초
를 주면서, 해독초를 만든 라단님, 온 지파의 마을을 구
한 라단님 이라고 소문을 내. 그들은 그들을 구해 준 나
를 칭송하고 따르게 될 것이다.”
사울진은 그가 생각해 내지 못한 일들을 라단이 하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아버지.”
“네”
“가셔서 해독초를 병사들에게 주세요. 그리고 해독초
를 받은 병사들 외에, 다른 병사들은 모두 물리세요.”
사울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알았다는 뜻으로, 라단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사들을 데리고 신전 마당
을 나선다. 그들이 모두 떠나자, 라단의 다리가 휘청
거린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복면을 쓴 두 사내가
휘청 거리는 라단의 몸을 부축한다.
“누구냐? 죽이러 온 것이냐? 그렇다면 빨리 죽여라.
나에게 오늘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쉬운 날이다”
사내 둘이 복면을 벗으며 말한다.
“저는 이앙입니다.”
“저는 호입니다.”
라단이 그들의 얼굴을 둘러보자, 이앙이 말한다. “카
야 대장님께서 라단님 곁에서 호위 무사가 되어 지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라단이 그들의 팔을 뿌리치며 몸을 곱게 세우고 말한
다. “너희들이 카야가 보낸 자들인지 어떻게 믿지? 아
버지가 심은 자들이라면 꺼져라. 수작 부리지 말고.”
이앙과 호는 휘파람을 불기 시작한다.
카야가 조금 전 그의 앞에서 불던, 소리와 음이 독특한
그 휘파람 소리이다.
라단이 그들의 얼굴을 다시 둘러보자, 호가 말한다.
“카야대장님은 저희들의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목숨을 다해 그분의 명령을 따랐습니다. 그
분의 마지막 명령은 라단님을 저희 목숨 보다 더 중히
지켜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라단은, 그 사이 카야가 그를 위해 심복까지 남기고 떠
날 줄은 몰랐다.
말을 마친 호가 무릎을 꿇자, 이앙도 무릎을 꿇으며 말
한다. “그리고, 무슨 명령이든 목숨을 걸고 따르겠습니
다.”
모두 떠난 자리에, 이 둘이라도 곁에 있으니, 라단은 갑
자기 그들에게 의지하는 마음까지 든다.
불길에 휩싸였던 신전의 불이 껴져 갖자, 리만투어에
서 바람이 불어온다. 타고 남은 재들이 소용돌이를 치
며, 하늘로 향해 날아오르자, 리만투어는 잿빛 회색의
구름들로 뒤덮인다.
라단의 머릿속과 마음이 복잡하다. 아버지를 막을 수
있는 일은, 지금 그가 왕이 되겠다고 말하는 것이라 생
각했다. 그래야 마을의 연기도 멈추고, 그들을 뒤쫓는
일도 멈출 것이다. 그래서, 왕이 되겠다 한 것인데, 이
제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저 앞이 캄캄하다. 사엘
과 친구들은 잘 빠져나가고 있는지 걱정된다. 회색빛
하늘과 바다만큼 라단의 마음도 어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