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네 Aug 09. 2021

'여름'을 먹는 계절

혼자 먹는 수박을 함께 먹는 재미를 느낀 날


수박주스를 집에서 처음 만들어 먹어보았다. 아삭아삭 식감이 나는 수박을 좋아하는데, 이번에 산 수박은 속 안이 이미 뻘겋게 익어 물컹한 맛이 영 느낌이 좋지 않았다. 며칠 지나면 푹 익혀버려 커다란 수박을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문득 '수박주스로 만들어먹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이 번뜩였다.


주방 찬장을 살펴보며 사용하지 않는 유리 믹서기에 갈아보았다. 처음 용도는 아이의 이유식을 만들기 위해 사놓은 믹서기임에도 시간이 흐르면 물건의 용도는 자연스레 바뀐다. 본체의 모습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살짝 변형을 줘도 본연의 맛에 문제없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판매하는 수박주스보다는 덜 달겠지만,  '건강한 맛'을 만들고 있다고 믿으며 불편한 소음과 진동을 잠시 이겨보았다.  


'지잉~~~~~~.'


5분여간 소음에서 탁탁 믹서기를 털어내니 향긋한 수박향이 코끝에 스며든다. 달큼한 맛이 혀를 맴돈다. 생각했던 맛보다 성공적이다. 원체 달짝지근하고 짜운 맛을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싱겁고도 밍밍한 맛을 선호하기에 내 입맛에는 이 수박주스는 꽤 달콤했다. 오로지 수박 과육만을 갈았음에도 달큰한 맛을 내다니.  


아이에게 건네니 연신 손가락을 치세우며 '엄마, 맛있다'며 활짝 웃으며 코를 찡긋거린다. 아이는 아기용 유리잔에 연이어 2잔을 마셨다. 내가 건네준 음식을 맛있게 먹는 기쁨이란... 특히 내 손으로 뭔가를 직접 만들었다는 그 뿌듯함과 음식을 대접받는 상대가 기분 좋게 반응해주면 그만한 행복이 따로 없다.


땀과 습기가 가득한 무더운 여름을 이겨내기 어렵지만, 여름이 기다려지는 건 좋아하는 과일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독 여름의 대표 과일인 수박, 참외, 복숭아, 포도 등을 즐겨먹는 나와 반면 함께 사는 반려인은 껍질을 까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자두나 작은 복숭아를 선호한다. 그나마 여름을 힘께 즐기며 먹을 수 있는 곡물인 옥수수를 좋아하는 게 있어 다행이지만.. 좋아하는 과일이 같다는 건, 그 누구보다도 가족의 구성원 중 나와 식성이 맞다는 건, 내 의사를 존중해주는 편이 있어 의지가 된다. 내가 좋아하는 과일을 마음껏 고를 수 있다는 기쁨에 여름이 더 좋아지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난 뒤 나의 입맛과 비슷하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모나 성격이나 그보다 더 우선인 게 매일 3끼를 챙기는 의식주의 '식(食)'이 아닐지. 특히 여름의 대표 과일인 수박을 골라도 버리지 않고 함께 나눠먹을 수 있는 든든한 가족이 생겨서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올해는 수박화채를 어린이집에서 배워왔다며, 가위(케이크를 자르는 플라스틱 칼)를 달라고 했다. 건네니 곧잘 수박을 잘게 썰며 흐뭇하게 웃음 짓는다. 유독 다른 해보다 더 많은 수박을 고르고 있는 2021년, 식성 하나로 한 가족으로 스며드는 정을 배운다. 가족이란 같이 살고 한 그릇을 두고 같이 먹는 것. 아이 통해 수박을 먹을 수 있는 여름이 더 기다려진다.



내가 좋아하는 과일을
마음껏 고를 수 있다는 기쁨에
여름이 더 좋아지기도 했다.

 더 많은 수박을 고르고 있는 2021년,
식성 하나로 한 가족으로
스며드는 정을 배운다.
아이 통해 수박을 먹을 수 있는
여름이 더 기다려진다.



올해 여름의 수확! 홈메이드표 수박주스 만들기
2019년 수박의 첫 맛을 잊지 못하는.. 잘라놓은 수박접시에 먼저 다가서서 수박을 움켜쥐며 먹는 아이.
2020년 제대로 도구를 이용하여 수박의 맛을 즐기는.
세번째 여름, 2021년 싹둑싹둑 제 손으로 수박을 자르겠다는 아이. 먹는 것을 떠나 오감으로 느끼고 싶은 마음

(Copyright 2021. 소네. All rights reserve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