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 추억 찾기
인생에서 최초로 기억나는 때가 언제야?
나는 신생아 때. 정말이야.거짓말 아니라니까!
오전 아홉 시, 아침 햇살이 무지개색 스테인드글래스로 쏟아져 들어와 제단 위를 내리쬐고, 갓 태어난 나는 아버지의 팔에 안겨 허공에 떠 있다. 하얀 성의 차림인 나이 지긋한 목사님이 솜처럼 부드러운 내 머리카락에 성수를 세 차례 뿌린다. 그때 오르간 소리를 덮을 만큼 나는 자지러지게 울고..
'연애시대, 노자와 히사시'
나의 최초의 기억은 신생아 때까지는 아니고, 유치원에 다닐 때다. 흰색 스타킹에 귀여운 타이가 달린 원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 사슴반에 등원하던 기억. 생일파티에 쪼르르 세워져 있던 요구르트, 스티커 백장을 모아서 받았던 핑킹가위, 오빠가 수두에 걸려 나도 전염되어 소풍을 못 갔던 일, 몇몇 아이들과 선생님의 얼굴이 기억난다. 지금은 아마 환갑이 가까운 나이가 되셨겠다.
언젠가 부모님은 어린 시절 앨범의 사진을 보면서 이날엔 혼잡한 곳에서 나를 잃어버려 고생했고, 이때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과거를 추억했다. 내게도 저렇게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그때 본 사진 중 몇 장은 아직도 기억날 정도로 선명하다. 하지만 가끔은 헷갈린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정말 머릿속에 있던 기억인지, 사진을 보고 새로 저장한 기억인지. 어쩌면 우리는 기억을 추억으로 만들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우리의 기억 시스템은 불완전하다. 왜곡되기도 하고 섞이기도 하고 완전히 다른 기억이 대신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어도 어떤 상황에 의해서 기억을 떠올릴 수는 있다. 컴퓨터는 셀 수 없이 많은 정보를 빠르게 검색해내지만 우리의 뇌 속의 뉴런은 컴퓨터의 메모리 칩보다 수백만 배 느리다. 그래서 우리는 맥락에 의존적인 기억을 병렬 탐색으로 느린 속도를 보상한다. 기억을 찾기 위해서 머릿속에서 특정 위치를 탐색하는 것이 아닌, 기억을 찾기 위한 질문을 던져 머릿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꺼낸다. 당신이 다녔던 초등학교의 이름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순식간에 대답을 말하겠지만, 그 기억에 대한 정보가 뇌 속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지는 모른다는 이야기다.
시간이 지나도 떠오를 수 있는 기억이 되려면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변환해야 한다. 이것에는 우리 뇌 속의 해마가 작용하는데, 새 문서를 컴퓨터의 하드 드라이브에 저장하는 일과 비슷하다. 해마는 특히 감정이 실린 기억을 좋아하고 맥락 의존적 기억의 중심 역할을 한다.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과 긴밀히 관련된 일을 더 쉽게 기억하는 것이다. 테마파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비눗방울을 만난다면, 어릴 때 즐겁게 불었던 비눗방울에 대한 추억이 갑자기 기억날 수도 있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 갔을 때 그 동네에 살았던 기억이 더 잘 떠오르는 이유도 맥락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기억은 잊어버리는 것이 아닌 그 기억에 대한 감정을 잠시 내려놓은 것이다. 언제 어떤 상황이 계기가 되어 당신의 뇌 속에 있는 기억을 꺼낼지도 모른다. 행복한 추억을 많이 기억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에게 행복한 일만 일어났으면.
(참고 자료)
클루지 - 개리 마커스
우울할 땐 뇌과학 - 앨릭스 코브
어른이 처음이라서 그래 - 하주원
연애시대 - 노자와 히사시
월요일, 글밥 작가님은 '정류장'과 '정거장'사이에 선을 긋습니다. 모호한 경계에 선을 긋고 틈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 6인이 쓰는 <선 긋는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