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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수행했던 일, '본다'는 행위에 대해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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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여러 자리에서 누누이 언급한 것처럼 그림을 보는 일에 대한 나의 애정은 빈센트 반 고흐와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반 고흐 형제가 함께 잠들어 있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 공동묘지에서 형언하기 어려운 초월적 경험을 하고 난 뒤부터 미술관이라는 장소가 특별해졌다. 그림 속에 그려진 대상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는 있지만 그림의 표면 아래에 흐르고 있는 의미 혹은 메시지를 곧장 문자 언어로 번역할 수 없는 사각형의 이미지 앞에 서서, 그것이 확보해 준 적당히 안전한 모호함 안을 거닐며, 나는 자주 생생하게 살아나는 기분을 느꼈다.
돌고래들은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음역대의 주파수로 소통한다고 한다. 어떤 그림들은 강력한 끌림으로 나의 눈길과 발길을 사로잡았지만, 돌고래의 주파수처럼 기존에 내가 가진 인지 체계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신호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암호를 단숨에 해독할 수 없는 그림일수록 더 매혹적이었다. '끌리는 그림 속에는 분명히 어떤 이해로 통하는 문이 숨어 있어'라는 막연한 직감을 믿고 열심히 걷고, 열심히 보고, 열심히 수집하고, 열심히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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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그림은 내 안에 분명 존재하고 있었으나 말로 옮기기 어려웠던(혹은 옮기고 나면 누추해지는) 미묘한 감정을 정확하게 눈 앞에 펼쳐주었다. 예를 들어 어릴 적 외할머니의 시골집 마루에서, 호 불면 입김이 나오는 찬 밤공기를 들이마시면서 위를 올려다보았을 때 끝도 없이 펼쳐졌던 새까만 공간이 내 마음 안에 불러일으킨 느낌, 멀리서 컹컹 개 짖는 소리가 까만 공간에 보이지 않는 물결을 만들어 냈을 때 내 마음 안에서 벌어졌던 일을 옮겨낼 수 있는 단어를 나는 갖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때로 그림은 속삭인다. 네가 그때 느낀 것이 무엇인지 내가 알고 있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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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는 언어로 포섭되지 않는 신비의 영역이 있다. 그림이 남겨놓은 인상, 그림이 불러일으킨 감정, 그림이 연상시킨 기억을 글로 옮기려고 애쓰다 보면 일상적 자아 활동으로는 거의 볼 일이 없는 의식의 수면 아래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림을 보고 일어난 내 안의 감정 반응은 우리를 살아있게 하면서도 동시에 위협하는 세계를 대하는 나의 반응이기도 했다. 어떤 그림은 불쾌하고 역겨웠고, 어떤 그림은 서글프고 애잔했다. 그림 속 대상은 분명 실재가 아니었지만, 그림을 보는 동안 내 안에서 일어난 반응은 모두 실재였다.
미술관에서 내가 특히 어떤 종류의 그림에 끌리는지, 그림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떤 기억을 떠올리는지 '자각'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했다. 미술관 밖, 실재 세계를 내가 어떤 자세로 대면하고 있는지 가감 없이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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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나 사이에 벌어졌던 개인적 체험을 <명화가 내게 묻다><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두 권의 책으로 담았다. 두 책 모두 '오직 최혜진이라는 한 개인의 내면에서 벌어진 일을 기록한 보고서'라고 생각하면서 썼다. 그림이 불러일으킨 감정과 기억을 글로 옮길 때 굉장한 해방감 혹은 정신적 고양을 느끼는 일이 잦았지만, 그림이 어떻게 나에게 그런 일들을 해주었는지 논리적으로 검증하거나 설명하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는 이론을 만드는 학자가 아니니까.
지난해부터 창비학당에서 '그림에게 묻고 쓰기'라는 수업을 진행하면서 타인에게도 동일한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목격한다. 그림은 실재가 아니지만, 그림 바깥의 실재 세계를 살아오면서 우리 몸에 쌓인 기억과 감정의 패턴을 호출했다. 패턴은 사람마다 고유했다. 설령 같은 그림을 볼 때도 각자의 내면에서는 다른 연상 작용이 벌어졌다.
언뜻 보면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미지와 기억, 이 두 가지 재료로 글을 쓰는 동안 누구에게나 심리적 작용이 매우 다이내믹하게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나니까 미친 듯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그림은 왜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걸까. 그림을 본다는 것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가. 정말 그림은 '아는 만큼 보이는' 걸까? 왜 우리는 같은 얼굴을 보면서 다른 감정을 읽어내는가? 화가가 그린 모델이 누구인지 모르면서도, 심지어 화가가 누구인지 모르면서도 그림 속에서 특정 감정을 느껴버리는 일은 어떻게 벌어지는 걸까?
그렇게 호기심을 좇아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있다. 미술사학, 심리학, 철학, 인지과학, 뇌과학 책을 읽으면서 지적 쾌감을 느끼기도 하고, 내가 직관적으로 해 버렸던 '묻고 쓰기'라는 감상 방법의 학문적, 이론적 바탕도 이해하고 있다. 이 시간이 결국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나의 '걸신 모드'가 ON으로 켜졌다는 것. 처음 그림책에 빠졌을 때처럼, 처음 빌헬름 하메르스회이 그림을 보았을 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