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속적이고 자발적인 마감노동자로 사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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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고 자유롭고 가벼운 삶의 리듬을 몸에 배게 하려고 한국에서 빠져나와 유럽에서 잠시 살고 있지만 먼저 박힌 한국적 습관이 만만하게 빠질 리 없다. 게다가 한국에서 스물두 살부터 10년간 다닌 회사는 잡지사였으니.
잡지계에서 에디터들끼리 흔히 주고받는 말이 있다. '어떻게든 마감은 된다' 새벽 2-3시까지 이어지는 야근을 사나흘째 하다가 이 놈의 마감이라는 게 시커멓고 광활한 우주 같이 느껴져서 한숨을 푸욱 내쉬며 옆자리 선배에게 "선배, 마감이 끝나긴 할까요?" 물으면 어떻게든 된다는 저 말을 대답으로 자주 들었다. 편집장들도 저 말을 애용했다. 무리해서 거창하게 벌려놓은 특집 기획안 앞에서 혹은 마감이 중반에 이르렀는데도 원고 송고 상황표는 여전히 하얀 빈칸만 잔뜩 일 때, 두려움을 잊기 위한 자기암시처럼 "어떻게든 마감은 돼!" 호기롭게 말하곤 했다. 떨려도 호언하는 건 편집장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어떻게든 마감은 된다는 말을 별 생각 없이 자주 썼는데 찬찬히 뜯어놓고 생각해보면 이것처럼 무서운 말도 없다. 마감은 스스로 작동하는 자동화 장치가 아니고 사람이 하는 일이다. '어떻게든 된다'는 건 '어떻게든 하라'는 말이다. 신입 때 들었던 선배들의 무용담-마감 기간에 교통사고가 나서 병실에서 원고를 썼다는 이야기, 출산 전날 새벽 4시까지 원고 쓰고 애 낳으러 갔다는 이야기, 15년 기른 반려견이 세상을 떠났다는 전화를 받고 가보지는 못한 채 울면서 원고 쓰던 선배의 모습 등-도 모두 어떻게든 되게 하려고 그랬던 거다.
마감은 냉정하다.
2
유럽 거주 첫 해였던 2013년에는 신속성, 효율성, 결과물이 중요한 회사라는 곳에서 10년을 보내며 내 안에 깊게 배인 '마감독'과 완벽주의자 기질을 빼내고 체질 개선하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불어를 못해서 어리바리 바보짓하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한 달 수입이 0원인 상태를 느껴보는 것, 페이스북에서 바쁘게 사는 지인들을 보면서 나만 뒤쳐졌다고 느끼지 않는 것, 새로운 경험 앞에서 본전 계산하지 않는 훈련 등등 흔들리지 않는 심지를 가꿔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3개월 정도 마감을 전혀 하지 않고 잘 놀았다. 잘 먹고 잘 쉬고 여행도 잘 다녔는데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려니 허전했다. 처음에는 덜 빠진 마감독 때문인 줄 알았다.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자기 착취 기제가 발현되는 거라고, 이렇게 마음 편히 노는 것도 못 하는 너를 어쩌면 좋냐고 스스로를 중증 워커홀릭 취급했다.
잘 놀아보려고 다짐한 백수 6개월 차에 하도 허전해서 블로그를 만들었다.
3
모르는 게 많아서 질문이 많은 자발적 마감노동자. 블로그 프로필에 적은 자기소개처럼 나는 질문하는 것이 좋다. 한국에서 10년간 밥벌이를 하게 해 준 것도 그 질문 욕구였다.
처음에 일상 블로그처럼 가볍게 시작한 내 블로그는 자연스럽게 질문 보관소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혼자 커리큘럼을 짜서 공부한 것들을 기록하는 공간이 되었다.
명화를 보면서 떠오른 궁금증, 생각해보고 싶은 화두를 질문의 형태로 던져놓고 혼자 공부하며 깨달은 점들과 해소된 고민을 글로 풀어놓은 <명화가 내게 묻다> 시리즈, 유럽에 이사 와서 새로 좋아하게 된 예술 분야인 그림책에 담긴 지혜와 위로를 처방전 행태로 작성한 <그림책 처방> 시리즈, 마지막으로 몹시 사랑하는 그림책 작가들을 직접 만나서 창의성에 대한 질문을 실컷 던져보려고 기획한 <유럽 그림책 작가 인터뷰> 시리즈 모두 질문 욕구에서 시작된 일이고 변형된 형태의 인터뷰다.
올해 초부터 블로그를 통해서 꾸준히 책 출간 제의를 받았다. 세 가지 시리즈 모두 골고루 제안이 들어왔다. 그것에 고무된 나머지 내가 명화와 그림책 분야의 책을 낼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점검은 까맣게 잊었다.
출간 제안을 했던 편집자 중 한 분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출장 온 김에 얼굴을 보자고 제안해서 엊그제 5시간 가까이 수다를 떨었다.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 즐거운 만남이었고 글을 더 잘 쓰고 싶다는 긍정적인 자극도 많이 받았다. 좋았던 그 대화 가운데 유독 이 말이 기억에 남았다.
"첫 책을 여행 에세이 분야로 내셨고, 명화나 그림책 분야에 학위가 있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독자들 입장에서는 프로필이 약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거예요. 그 부분을 보완할 아이디어를 내보려고 해요."
이 얘기를 듣고서야 깨달았다. 아, 맞아. 나는 전문가가 아니지, 참. 블로그에 1년간 명화와 그림책 에세이를 쓰고 잡지에 그림책 작가 인터뷰 연재를 하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였다. 나는 미술사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아동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닌, 그저 '좋아하는 걸 글로 쓴 애호가'일뿐이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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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 학위를 밟아보지 그래?"
유럽에 있는 동안 학위를 만들어오라는 충고는 예전부터 종종 들었다. 학위가 전부가 아니지만 한국 사회는 아직까지는 타이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니 졸업장을 받아오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라는 충고였다.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걷고 싶은 길은 선대 학자들의 유산에 돌멩이 하나를 더 얹어 후대 학자들에게 물려주는 연구자의 길이 아니다. 나는 고졸 학력의 우리 부모님, 이제 열 살이 된 조카, 단골 반찬 가게 사장님이 즐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난 통속적인 게 좋은 사람이다.
그간 한 귀로 흘려 듣던 '학위를 만들어 귀국하라'는 충고를 귀담아 들었어야 했나, 아무래도 책이라는 건 전문가가 써야 하는 게 맞지, 혼자 마구잡이로 공부한 걸 책으로 내는 건 경솔한 짓일지도 몰라... 처음으로 이런 마음이 들었다.
한국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해 물었다. 남편은 나와 정반대로 한 가지 분야만 십몇년 째 공부하며 박사 후 과정을 마친 학자.
"나 대학원에 가야 할까?"
불현듯 머릿속에 들어선 고민을 털어놓으니 남편이 한 마디로 대답했다.
"대학원 가면 전문성이 생기나?"
푸하하 웃으며 '맞아, 그치? 학교 가도 별볼일 없지? 난 논문은 아무래도 재미없어서 못 읽겠단 말야' 하며 너스레를 떨고 전화를 끊었다.
호기심을 따라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공부할 목록을 짜서 읽고 쓰는 지금의 방식이 아직은 좋다. 전문성까지는 잘 모르겠고, 우선 내가 재미있으니 이것으로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