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쓸쓸한 추억.
몇 해 전 봄날 나는 큰 맘을 먹고 엄마와 함께
뮤지컬을 보기로 했다. 다행히 극장은 부모님이 살고 있는 동네에 접해 있었고 시간은 일요일 마지막 공연.
비가 왔던가, 가을이었던가, 봄이었던가.
서늘한 기운이 감돌던 때였을 것이다.
나는 공연을 보고나면 서울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토요일에 가 일요일에 돌아오는 늘 같은 일정이었다. 역시나 검은색 한의원 가방에 엄니는 내 일주일치의 양식을 만들어 넣어주시느라 정신이 없었고, 나는 공연시간에 맞춰 갈 생각에 마음이 초조했다.
조금 간당간당한가 싶었는데, 그날따라 공연장으로 가는 버스가
금세 오질 않았고 오랫만에 가보는 공연장은 정류장에서 본 공연장까지의 거리가 상당했다.
나는 내 봇짐 같은 가방을, 엄니는 식량가방을 들고
버스에서 내려 부리나케 뛰다시피 걸었는데..
공연이 곧인데, 뒤를 돌아봐도 엄니는 저만치에 있고
나는 불현듯 짜증이 났다. "얼른 와! 아참! 그렇게 내가 일찍 가자고 했는데!"
입과 눈에 짜증을 덕지덕지 붙인 채 좌석에 앉아 씩씩대고 툴툴거리느라 엄니가 얼마나 숨이 찼는지 들리지도 않았다.
화려한 무대의상과 음악에 방금 전의 짜증도 사라지고.
공연장을 나와 서울행 버스를 타러 가는길.
엄니 손에 들려있던 식량가방을 드는데, 보기완 달리 얼마나 무겁던지 어깨가 쑥 내려갈 지경이었다.
버스에 올라서는 그냥 계속 창밖을 멍하게 바라봤다.
그래도 차창으로, 검은 가방을 들고 허겁지겁 내 뒤를 쫒던
한 사람의 모습이 자꾸 어른 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