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박사의 실험실
목은 칼칼하고 눈도 맵고 머리까지 띵하던 지난주, 미세먼지에 포위당한 도시 한 귀퉁이에서 ‘춘래불사춘’을 몇 번이나 외쳤는지 모른다. 끈질긴 항의가 통했는지, 3월의 시작과 함께 다시 맑은 하늘과 공기가 돌아왔고 코끝으로 느껴지는 도도한 상쾌함에 ‘그래 3월이구나’ 하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봄은 이렇게 슬그머니 저 혼자 미지근해진 채 흐리고 텁텁한 것이어선 안 되는 것이니까.
초등학교에 아이를 입학시켜 놓고 노심초사하는 친구의 모습에서도, 개강파티 한다며 자랑질하는 동생의 모습에서도, 신입생들을 마주하고 교단에 선 친구의 모습에서도 우여곡절을 뚫고 무사히 도착해 준 3월은 다시 확인된다.
겨울과 봄, 끝과 시작, 차가움과 따뜻함…. 변화와 경계 위에 있는 3월은 두 얼굴의 계절이다. 사람으로 치면 3월은 여자인데, 온순하고 순박한 여인이 아니라 샘도 많고 앙탈스러운, 열정이 끓어 넘치는 매력녀이다. 자기 것을 쉽게 내주지 않고 변화무쌍한 밀당의 고수이다.
한겨울에도 보일러를 틀지 않을 만큼 추위에 강한 나이지만 이맘때 추위엔 유난히 취약하다. 낯선 강의실에서 스멀스멀 파고들던 한기, 옷을 여미어도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시샘 가득하던 한기가 매섭다. 한낮에 서럽게 눈발이 날리다가도 금세 꽃망울을 맺어놓기도 한다.
경계에 선 계절이기에, 3월은 사람의 마음도 그렇게 잘 흔들어놓는다. 지금이야 구력이 붙어 진폭이 줄었지만 흥성흥성 마음이 들뜨다가도 심히 아련해지는 때가 바로 이 계절이다. 학교 졸업 후 갓 회사에 입사해 수습생 딱지를 달고 정신없이 보내던 무렵이었다. 외환위기 여파로 친구들이 죄다 휴학을 해버려, 그해 봄 직장인이 된 사람은 달랑 나 하나였다. 엄혹한 시기에 일할 수 있는 게 어디냐는 안도감도 잠시, 겨우 3개월짜리 신입사원 ‘주제에’ 이미 인생의 봄에서 빠져나온 듯 서운함과 그리움에 시달렸다. 3월의 어느 밤, 회사를 찾아온 ‘학생’ 친구와 저녁을 먹고 홍대 뒷골목을 걸었다. 봄꽃이 막 망울을 터뜨리며 풍기는 묘한 향기와 아직 가시지 않은 겨울이 그렇게 아련했다. 지금도 3월 저녁이 되면 그때의 후각과 촉각이 살아나며 괜스레 마음이 짠해지는 모노드라마를 찍곤 한다.
그대, 3월이다. 살아 있기에 봄이 오는 것이다. 아지랑이처럼 흔들리고 봄꽃처럼 웃음이 헤퍼져도 좋다. 깊은 대지에서 힘껏 수액을 빨아올리는 나무처럼, 겨우내 굳어 있던 몸과 마음에 봄의 생명력을 마음껏 들이마셔라. 그대의 3월앓이는 무죄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81105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