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박사의 실험실
2006년, 8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외환위기 속에 아무런 미래준비도 하지 않은 채 벌벌 불안에 떨던 어린 나를 받아준 곳. 일머리 없고 많이 서툴렀지만 열심히 했다. 잘해보고 싶었지만, 일과 나의 경계를 두지 못한 채 늘 헐떡였다. 피해의식과 성취감을 오가며 일하길 8년, 심각하게 균형이 깨져버렸다, 몸도 마음도. 그만두기 전 4개월가량 600페이지 백과를 마무리하기 위해 매일 새벽에 퇴근을 했다. 회사는 마포, 집은 분당. 막판에는 너무 힘들어 이를 갈았다. 짐싸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지 않을 만큼 만정이 떨어져 일요일에 나와 책상을 싹 정리했다. 첫정이었다.
바다 건너 1000킬로미터를 걷고 오면 내 길이 보일것 같았다. Camino de Santiago. 하지만 길은 보이지 않고 걷는 초기에도 꿈에 회사가 나오고 지난 시간이 억울해 걷다가 자꾸 눈물이 났다. '그곳'만 떠나면 모든 게 환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았다. 일이 힘든 건 두 번째고, 이 길이 진짜 내가 갈 길인지 혼미했다. 길마다 있던 성당에서 낯선 언어의 미사를 함께할 때면, "하느님, 제발 제가 저의 길 위에 있게 해주세요. 제 길을 가게 해주세요."란 의미 불명의, 그러나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돌아와 청년백수가 되어 지내던 어느 날 마루에서 뒹굴다 한 칼럼을 읽었다.
최인아란 제일기획 전무의 글이었다. 책을 더 만들지 다른 일을 할지, 배가본드가 되어 밟지 못한 땅을 떠돌지 고민이 많던 내게,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한 강렬한 메시지가 꽂혔다.
"하면, 진정한 변화란 어떤 것일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제대로 변화하기 위해서라도 자기 세계가 먼저 있어야 한다고. 자기 생각과 방식으로 일하고 살다가 한계에 부딪히거나 혹은 자신을 뛰어 넘고 싶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이 진짜 변화라고. 또한 이렇게도 말해보고 싶다. 세상의 흐름을 좇아 재빨리 변신하며 살 수도 있지만,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고. 그러니 자신을 세상에 다 내주지 말고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고." _최인아, <조선일보> 2007. 10.14
"이 사람 책을 내야겠다,
이런 메시지를 주는 사람이라면 다시 책을 만들어도 후회하지 않겠다."
대기업 여성 임원-그 당신 그게 정말 희소했고 대개의 특징이 있었다-들에게 보여지던 화려함과 텐션과는 거리가 먼, 말간 눈빛의 한 사람이 신문 속에서 나를 쏘아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냥 성공하라는 이야기와는 결이 달랐다. '남들보다' 성공해라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는 '자기세계'를 가지라고, 세상의 유행을 무작정 쫒지 말고 그들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말은 소위 대기업 임원에게게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적응하며 그 ‘입장권’을 따내기 위해 제일 만만한 나를 갈아넣기에 바빴다. 머리가 안되는 걸 꾸역꾸역 몸으로 때우며. 그래 이거구나. 무조건 세상을 쫓아가려고 허덕이지 않고도 나답게 살 길이 있구나. 이제 ”세상에 나를 함부로 내어주지 말아야겠구나.”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세계가 있어야 한다는 일갈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베스트셀러를 내도 채워지지 않던 마음, 결국 내 것은 아니라는 공허감••• 이제 누구의 세계를 채워주기 위해 동동거리지만 말고, 내 이름 석자로 된 온전한 내 세계 하나쯤은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생각을 하니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박차고 나온 그곳으로 돌아갔다. 입사하여 ‘내공과 통찰’이란 기획운영안을 썼다. 이게 앞으로 내 방향이다! 최인아 전무의 글에서 두고두고 제일 좋았던 단어였다.
모든 초심과 결의는 시간 앞에 희미해지는가. 나이 앞자리가 바뀌는 시간이 흘렀다. 긴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며 고생한 후배가 하루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편집장님이 맨날 야근하는 거 솔직히 스트레스에요.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고요.”
“응? 나는 편집장이라 내가 해야할 일이 또 따로 있어서 남아서 하는 거야. 너희는 그냥 너희 일을 하면 되눈데?”
명치끝이 막힐 만큼 화가 치밀었다. 벅찬 일정이었지만 그럼에도 할수 있는 한 배려하려고 했는데.... 그러나 어리고 당돌한 후배의 투정쯤으로 치워둘 수 없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세상이 변하고 내 역할과 위치가 변하는데 10년 전 그대로 몸으로만 때우며 일하고 있었으니. 타성이란 단어가 익숙했으니. 세상이 원하게 하기는커녕 엉덩이만 무거워진 나이든 장기근속자…… 스스로 괘씸하고 창피했다.한곳에서 오래 일한 것이 더 이상 영광의 훈장이 아니라 퇴보의 증표가 된 것 같았다. 가라앉은 마음이 영 회복이 되지 않았다.
얼마 뒤 오후 지난 제일기획 사보를 읽고 있는데 갑자기 눈두덩이로 열감이 올라왔다…….. 한 페이지에 한참을 머물렀다. 그 사람, 최인아 전무의 글이었다. 아니 부사장이 된 그녀가 쓴 글이었다.
그렇지, 애썼지, 허투루 이 시간까지 온 건 아니지, 나 애썼지..애썼지. 못했을지는 몰라도 많이 애썼지….카톡 메시지에 이 말을 적어넣으며 생각했다. 애썼던 힘으로 이제 새로운 성장을 해야한다고.
오래 일하는 동안 비록 고이고 눌러붙는 시간도 많았지만 그래도 일이란 것이 자기세계를 만들어가는 소중한 과정이라는, 함부로 나를 세상에 내어주지 말라던 이야기와 세월도 어쩌지 못할 자기세계를 가졌냐고 묻던 최인아 대표의 담담하고 냉철한 질문을 잊은 적은 없다. 외부에서 보기엔 큰 변화 없이, 뚜렷한 특색 없이 쌓아온 시간일 수 있지만 희미하게나마 내가 추구하고픈 주제가 있었고, 그 주제를 향해 나의 시간과 관심을 수렴해갔던 것 같다.
흔들릴 때마다 나를 잡아준 그 지침은, 후배들에게 던지는 어줍짢은 조언의 핵심은 오래전 가슴을 뛰게했던, 단단하게 자기 세계를 만들어온 한 사람의 인사이트에 빚을 지고 있었던 거다. 최인아란 이름 석자는 방황의 아이콘인 내가 남몰래 간직한 구심점이자 내 북극성이었다.
2006년, 퇴사를 앞두고 한창 진행중이던 기획의 필자를 찾아갔다.
제일기획의 임원이셨던 그분이 대뜸 물으셨다.
"왜 그만두세요? 그만두고 뭐할 거예요?"
"아...저...저는 여행을 좀 하고 싶어요. 세계여행이요."
"그게 그렇게 해보고 싶어요?"
".....네. 여태 한번도 쉰적이 없어요. 여기 말고 좀 큰 세상을 보고 싶어요."
"참, 이상하네. 요즘 그게 유행인가봐요. 우리 회사에도 얼마전에 휴직한 여자 상무가 한 분 있어요. 그 양반도 어디 여행을 간다고, 1년씩이나..."
이런 큰 회사에 다니는, 나보다도 훌쩍 연배가 높을 그 '여자 상무'란 분도 이렇게 무언가를 찾아 회사를 쉬는거구나, 가진 것을 다 내려놓고 떠날 수도 있는 거구나.사표를 던지고 내심 불안하던 마음이 괜히 위안받는 느낌이 들었다. 잘하는 짓일까, 하는 의구심을 '대기업 다니는 한 여자 상무'님을 통해 해소했다.
그 '여자 상무'의 이름이 최인아이며, 나를 사로잡은 칼럼을 쓴 주인공이란 건 한참 뒤에 알게 되었다.
책은 든든한 후배의 손을 통해 마침내 세상에 나왔다. 7년의 시간이 흘렀다.
애착이란 이름 속에 긴 인연의 끈을 휘감고 몸과 마음이 뚠뚠해져버린 나와 달리
후배는 날렵하게, 담백하게, 우아하게 책을 만들어냈다, 마침내.
첫 북토크가 있던 날, 작은 소망을 이루고 온 밤, 이 글을 쓴다.
나처럼 많이 흔들리고, 많이 부대끼면서도 자신의 길 위에 온전히 서 있고싶었던
이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
“애쓰고 애쓴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