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박사의 인생전환 실험실
일주일에 한번은, 물컥물컥 눈물이 나는 것 같다.
매일 일찍 일어나, 참선을 하고, 안 듣던 경제 라디오도 듣고, 든든히 밥도 지어서 먹으며
도서관으로 가는데.. 최대한 만남은 줄이고, 지금의 내 목표에 집중하려고 하는데,
그러다 문득,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 퇴보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갇힌 것인지 종잡기 힘든 순간이 왈칵 다가오는 것이다.
꾹꾹 눌러둔 불안과 우울이 스프링처럼 막을 새도 없이 튀어오르고 만다.
그럴 때, 지인 누구는 조직에서 용케 잘 버티며 작은 사업을 시작했다고 하고
다른 지인은 고액 연봉 맞벌이답게 내 전재산보다 더 많은 현금이 통장에 있다고 하고,
또다른 누구는 오랫동안 해온 주식투자에 점점 돈을 불리고 있다고 하고
어떤 누구는 자식농사도 잘 짓고, 재테크도 잘하고, 여하튼 삶의 어느 한톨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다고 하고,
또 누구는 내가 박차고 나온 그곳에서 여전히 잘 버티며 자기 삶도 잘 살고 있다고,
그리고 누구는 세상 바람에 흔들림 없이 삶의 중심을 단단히 해가고 있다는...
참 '좋은' 소식을 접할 때면,
사실 그런 것들이 내 삶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그저 남의 일일 뿐인데
애써 유지해오던 마음의 평정이 심하게 흔들리고, 현타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다.
이제,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중에 가장 가난한 사람이 되어버린 건가.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린 건가,
이 나이를 먹고도 인생과 세상살이에 대해 대책도 없이 뛰쳐나온 헐랭이인가.
머리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외면하지만, 이미 가슴 어디쯤은 쑤셔오는 것이다.
나는 참 열심히 살았다, 고 생각했다.
언젠가 한 사주쟁이의 첫마디가, 혀를 내두르며
"아이고, 참 열심히도 산다."
칭찬인 줄 알고 헤벌쭉 웃는 나를, 그는 딱하게 바라보며 뒤이어 말했다.
"실컷 남 좋은 일만 해주네. 쯧쯧. 이래 실속이 없어가지고 어쩌려고 그래."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쯤 생각했던 그 말들이, 조직을 나온 지금에야 절실하게 메아리친다.
모든 열심에, 내가 어딨고, 남이 어딨겠나, 오직 열정만이 길이다! 외치며 살았는데
그 일방통행 같은 지도가, 어떤 지점에서는 잘못된 방향이었을 것이란 생각을 하니
되돌릴 수도 없는 귀한 청춘의 순간들이 너무 아깝고, 분노마저 올라왔다.
더 화가 나는 건 이 분노의 화살을 쏠 대상이 아무리 둘러보아도 어느 곳에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열심이란 구호 아래, 가장 먼저, 가장 오래, 가장 혹독하게 방치하고 희생했던 사람.
그렇게 하도록 끊임없이 속삭였던 사람. 그건 바로 나였다.
많은 시간을 일에 몰빵하며 내 삶을 회피한 대가는, 가혹하다.
나는 마치 오랫동안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나온 자처럼,
대책없는 자유가 두렵고, 세상일에 서툴기만한 그런 상태다.
삶의 문제 앞에, 낮밤으로 갈고닦은 경력과 지식들은 그닥 힘을 쓰지 못한다.
이제사 받아든 삶의 중간정산표가 너무 초라하다.
열심의 배신인지, 무지와 회피의 대가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상태.
그런 어느 날, 봄바람에 마음이 여지없이 흔들리던 날,
중장년 아저씨들로 만석이던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잘못 살았다면 (사실 그렇다고 함부로 치부해서도 안되지만)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하지?
그렇다면 내가 이제 해야할 일은, 더 이상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한 노력들 아닐까.
남을 위해서 하는 열심 말고, 나를 위한 열심.
서투른 것은 시간을 들여 익히고, 무지했던 것은
조금씩 더 관심을 갖고 궁리하는 것.
젊은 날, 그렇게 '동경'하던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삶. (과정은 어쨌든 간에 결과는 같은 것이니)
빅터 프랑클의 말처럼, 우리가 삶을 통제할 순 없어도 일어나는 일에 대한 나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면...나는 어떤 반응을 선택할 것인가.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의 선택이 우리의 삶의 질을 결정한다."
그 대답의 시작에는,
먼저 내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볼 것인가, 어떤 사람으로 재정의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포함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함부로 평가절하하지도, 미화하지도 말고, 담담하게 되돌아보는 시간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무섭게 흔들리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으며, 나는 이렇게 속삭였다.
"나는, 실업자가 아니고, 인생의 전환기에 있는 사람이다.
나는 떠밀린 사람이 아니고, 선택한 사람이다.
나는 멈추어있는 사람이 아니고, 방향을 바꾸는 사람이다.
나는, 전환자이다.
새로운 삶으로 건너가려고 애쓰는.
나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transition에서 어쩌면, transformation의 단계로까지 나아가야 할지 모르는,
I am a Transformer.
그 길을 아주 느리게, 걸어가고 있다."
꽃비가 그치고, 또다시 바람이 불면,
나는 전환이고 뭐고 젠장, 이러며 다시 가슴을 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이 글을 나에게 읽어주겠다.
닿지 않는 내일과 되돌아갈 수없는 어제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오늘 하루를 충만히 살아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