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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jinsung Apr 24. 2022

사악한 성수동에서 카페로 살아남기

슈퍼말차 성수를 오픈하기까지 험난했던 준비 과정 기록

코로나 때문에 몇 년 간 정신없이 흘러온 시간들이 잠시 멈추며,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들과 온라인 커뮤니티를 나누는 곳에 일부 매장 오픈 과정을 공유한 적이 있었는데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께서 창업 준비 과정에 도움을 받으셨다고 하여 브런치를 통해 더욱 많은 분들과도 기록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이전보다 창업하기 더욱 어려워진 시기에 대단한 노하우는 없지만 저희가 미리 겪었던 어려움은 덜어지고, 함께 버티고 이겨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담아 남깁니다.


지금은 5개의 직영 매장을 운영한 지 3년 차 넘어가지만, 기록을 하기 전까지 핸드폰에 저장된 수많은 준비 과정 사진들을 곱씹어 볼 틈새도 없이 코로나 위기를 대처하기에 급급했던 지난날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매 년마다 오르는 임대비 사악한 성수동에서 커피도 빵도 아닌 말차로 버티고 있다고 하니, 치킨집보다 카페 폐업률이 더 높다는 요즘 세상에 운도 좋다는 얘기도 종종 듣고는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반대로 세상의 모든 운이 다해도, 망할 수 있는 것이 카페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욱이 창업을 시작할 때부터 브랜드 제품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매장에 대해서 정말 많은 준비를 했다는 사실은 일부러 드러내지 않으면, 자본이나 운으로 다했다고 볼 수밖에 없기도 한 것이 사실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물 밑에서는 치열하게 발길질을 해도, 손님 앞에서는 여유 있는 미소와 완벽한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 게 서비스업의 숙명이겠지요.


2019년 10월 1일 D-day (가오픈날)

슈퍼말차는 코로나가 불어닥치기 전, 가을 하늘 화창했던 2019년 10월 1일 성수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습니다. 그전에는 오프라인 팝업스토어로 현대백화점에서 몇 번 단기 매장 운영을 해본 적은 있었지만, 임대 매장은 처음이라 부동산 발품부터 계약, 인테리어, 직원 교육 등등 그간 경험해보지 못했던 수십 가지의 선택과 결정이 난무하는 대혼란의 시기였습니다.


2년여 간 발품팔며 서울 곳곳을 누비던 시절


처음부터 성수동, 서울숲 쪽만 고려한 건 아니었어요. 오픈 준비 전부터 아니, 회사를 설립하면서부터 무조건 오프라인 매장은 언젠가는 해야겠다 염두했었기에 2년여 동안 지역별 임대비와 상권별 인프라를 둘러보고 다녔고, 당장 계약을 알아보지 않더라도 정말 계약할 마음으로 부동산에 얘기해서 임대 나와있는 곳 아니어도, 좋은 물건 나오면 꼭 연락 달라며 예비 카페를 그리며 다녔습니다. 주요 후보 지역으로는 도산공원, 연희동, 한남동, 성수동 이렇게 끌렸던 것 같아요. 특히 말차를 트렌디하게 변화 주고 싶었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이 오가기에 교통편이나 주위 인프라(데이트 장소, 맛집 등이 있는 곳)의 조건을 우선으로 두고 찾아오기 어렵지 않은 지역으로 설정하고자 했어요.


성수동 연무장길 부근에 가계약까지 고려하고 있던 마당 있는 주택 건물을 준비하던 상황에 부동산 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계약을 진행하려고 구청에 임대 관련 서류를 확인을 해보니 해당 건물이 불법건축물이 있어서 영업허가가 나와있지 않는 상황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간 가죽공방으로 운영하시던 기존 임차인분에게는 문제가 안되었는지, 저희같이 휴게음식이나 일반음식점으로 등록하려고 하면 등재된 실제 평수가 동일해야 했습니다. 휴게음식으로 내려고 하면 임대 인분께서 재신고를 하셨어야만 했고, 그러면 그간 20여 년 넘게 내고 있지 않으시던 세금 등 복잡한 과정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결국 계약은 안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부동산에서는 다른 곳들도 보여주셨지만, 그리 매력적이지 않아 다시 원점으로 고민하고 있던 차에 밥 먹으러 우연히 '소년 식당'을 가게 되었는데 그 옆 건물에 팝업으로 갤러리 전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방 브랜드가 한달 여 간 팝업스토어 진행했던 지금의 슈퍼말차 성수


전면 유리창이 시원하게 내어있는 공간에, 앞쪽 주차 공간과 앞쪽 테라스 공간이 매력적이었고, 특히 지하로 연결되던 전시공간이 있어 마침 사무실도 함께 필요했던 상황에 2개 층을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는 점이 가장 좋았어요. 마침 가방 브랜드가 팝업 전시로 진행하던 터라, 전시 기간이 한정되어있었기에 임대가 나올 가능성이 있겠다 싶어 부동산을 끼지 않고 다이렉트 건물 임대 정보를 알아내어 속전속결로 계약 가능성의 여부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 다양한 시간대별 모니터링 답사는 필수


임대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저희는 출근길과 퇴근길을 성수로 왔다 갔다 하며 매일 낮부터 밤늦게까지 해당 주변 상권과 골목에 지나다니는 유입이 어떤지, 시간대별 소비자 타깃은 어떤지 골목에 쭈그려 앉아 모니터링 답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숲을 지나다니는 젊은 층의 데이트 수요와 주변 직장인들이 모여있는 코워킹 스페이스 건물들이 밀집해있었고, 특히 저녁에는 '갈비골목' 특수 문화 상권으로 연중연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습니다. 상권의 기준을 둘 때 말차는 커피보다 대중적이지 않은 음료였기에 편리한 접근성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고(2호선 뚝섬역과 분당선 서울숲역 중간), 사람들이 모여있는 내부 공간이 비추었을 때,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기에 고층 위치나, 너무 숨겨진 골목 상권은 지양하고자 염두했습니다.


슈퍼말차 성수 3D 시뮬레이션


몇 년 새 임대비가 급격히 올라버린 성수동이었기에 사악한 보증금과 월세가 계약 직전까지도 고민이었어요. 매출과 지출을 엑셀로 돌려봤을 때 우리가 하루 평균 내야 하는 일 매출이 과연 될 수 있을까- 임대매장은 처음이었기에 자신이 없었어요. 그러나 연간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35평이 내야 하는 매출이 나와야만 했고, 나오지 않는다면 오히려 매장 자체를 오픈하지 말아야 하는 엄격한 기준치가 있었기에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가슴에 비수를 꽂으며 임대 계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인테리어 톤 앤 매너 레퍼런스 참고 이미지


자, 이제 계약까지 마쳤으니 멋진 분들이 올 수 있게 멋진 공간으로 꾸며야겠죠? 계약 진행과 동시에 그전부터 프로젝트로 연을 맺고 있던 스튜디오언라벨 스튜디오를 통해 어떤 무드와 공간의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주기적으로 만나 미팅을 진행했어요. 생각보다 낮은 층고였기에 답답하지 않을 수 있도록 모노톤을 배경색으로 설정했고, 슈퍼말차의 브랜드 컬러인 비비드한 녹색이 포인트 컬러로 돋보일 수 있도록 모든 공간의 자재와 테이블, 의자까지 색을 없애기로 과감하게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대신 모든 자재의 매터리얼이 밀도감을 높여줄 수 있도록 자연 소재의 화강암, 콘크리트, 스테인리스를 주요로 사용해 무게감을 잡아 주었어요.


내부 공간 3D 랜더링 모습


극단적인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콘셉트와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방법은 선택과 집중인 것 같습니다. '슈퍼말차'를 아시는 분들이라면 워낙 캐주얼하고 스포티한 느낌이 강한 서체와 컬러가 인상 깊었기 때문에 플래그십 스토어의 역할을 하는 슈퍼말차 성수점은 절제되면서도 이 공간이 브랜드 중심의 역할을 하길 바랐고, 가변적인 콘텐츠와 제품, 음료들이 사진을 찍었을 때 돋보이길 바랐기 때문에 의도된 기획이 설계로까지 고스란히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해요 :) 물론 돌 소재들 관리가 워낙 까다로워 음료 한번 쏟으면 스며들기 전에 바로 닦아야 하는 수고로움은 있지만 패션의 멋을 위해 추위 정도 포기하는 마음으로 관리하고 있답니다.ㅎㅎ


설계 시공 현장 모습의 기록들


거의 매일마다 시공 현장에 들러 진행 과정은 어떤지, 특히 여름 장마철도 껴있어서 오히려 누수되는 곳은 없는지 체크할 수 있었어요.(시공 단계 때 비 오는 날을 꼭 유의해서 살펴보시면 좋아요) 약 한 달 반 기간 동안 공사가 진행되었고, 지하 1층 사무실 공간도 함께 인테리어가 진행되었기에 대규모 공사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공사 기간 동안 저는 음료 레시피와 베이커리, MD 등을 결정해야 했어요.


처음 의뢰해 본 외부 컨설팅 레시피 개발


세 차례의 팝업스토어 동안 제품 기획과 개발을 직접 다 해왔기 때문에, 기본 음료의 레시피가 있었지만, 성수점을 오픈을 준비하며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면 어떨까 하여 카페 음료 개발을 전문으로 하시는 컨설팅 회사에 의뢰를 하기도 했습니다. 약 16여 종의 다양한 말차 음료 레시피를 잡아가며 수많은 테이스팅도 진행했지만, 슈퍼말차의 브랜드 가치가 추구하는 이미지와는 약간 상이한 느낌이 들었어요. 컨설팅 비용이 아까워 그대로 메뉴화 할까도 싶었지만, 오픈하기 마지막 전 주까지 못내 찝찝한 마음이 들어 어려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설탕, 시럽이나 인공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으면 재료 원가, 즉 음료 단가가 너무 올라간다는 우려에도 이 부분은 마지막까지 타협이 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화려한 데코레이션(과일이나 단맛)이 덜하더라도 슈퍼말차가 추구하는 '설탕 x, 밀크 파우더 x, 인공감미료 x' 3가지 원칙을 그대로 고수하자고 내부에 설득했고, 결론적으로는 팝업스토어 때 개발한 기존 레시피에서 몇 가지 음료 레시피를 제가 다시 개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새벽이 되어도 집에 갈 수 없었던 레시피 개발의 나날들...


기존 슈퍼말차, 코코말차, 차이말차는 제품 자체에 블렌딩이 되어있기 때문에 진하기와 용량만 조절하면 되었는데, 새롭게 개발한 그랜드 말차는 새벽에 잉태하는 심정으로 탄생한 시그니처 음료가 되었답니다. 원재료에 제한이 많았다 보니 (설탕 금지, 시럽 금지, 믹스 파우더 금지...) 스스로 만든 덫에 걸린 듯한 심정이었습니다.. 여담으로 레시피 개발이 한창일 때, 하필 결혼식 준비도 해야 하던 때라 제가 어두워진 사무실에서 음료 테스트만 줄곧 하고 있으니 밤 12시에 함께 테스트 음료를 마시며 프러포즈 반지를 끼어준 기억이 나네요 ^^;


외부인이 처음 맛본 그랜드 말차! 지인들은 그랜드 말차 마시러 멀리서 오고 계신답니다.


평소에도 재료 본연의 맛이 느껴지는 음식들을 좋아하다 보니, 개발자 성향에 맞게 브랜드도, 레시피 성격도 표현되는 것 같아요. 그랜드 말차는 기존 우유가 사용되는 슈퍼 말차 라테와 달리 베이스가 다르고, 크림도 호박 조청이 들어가 쫀득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이 나요. 한국적인 맛에 어울리게 '할머니가 만든 식혜 레시피'를 모티프로 하여 Grand-ma cha라는 귀여운 이름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오프닝 데이 중 다도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드디어 10월 1일, 로드샵 매장을 오픈하면서 오랜 시간 기획했던 말차 클래스도 준비하여 선보이고, 패밀리데이를 잡아서 매장 오픈에 많은 도움을 받았던 지인들 뿐만 아니라, 전 직원들의 가족들과 친구들을 초청해 음료도 내어 드리고 앞으로 더욱 잘하겠다는 다짐과 인사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모든 카페 사장님들이 그러하셨듯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어떻게 시작을 하고, 지금은 3년 차가 되어 성수 플래그십 스토어를 포함해 5개 곳의 매장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카페란 곳이 아름다운 음악과 맛있는 음료로 서비스가 제공되는 곳이기에 과정이 많이 정제되고 미화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저는 로고만 봐도 시트지 붙이며 고생했던 과정들이 떠오르지만요. ㅎㅎ


수많은 인공 성분 사이에서 이겨내기


특히나 IMF보다 더 경기가 어렵다는 요즘 시기에 카페를 운영하시는 모든 사장님들과 직원들의 노고에 누구보다 경의의 마음을 갖고 있어요. 특히 슈퍼말차도 저희 제품을 쓰시는 파트너분들이 전국 곳곳에 계시다 보니, 어려운 경기임에도 재료에 쉽게 타협하지 않으시고, 철칙을 유지하시는 사장님들이 계세요. 저도 그 과정에서 유혹에 흔들리기도, 스스로 무너질뻔한 순간들도 많았기에 어떤 마음으로 저희 브랜드 제품을 쓰시는지 천 번 만 번 이해를 하게 됩니다.


좋은 재료일수록 그 가치에 무엇을 더하지 않더라도, 비싼 것이 사실이에요. 그러나 유기농 말차의 등급이 높을수록 여린 잎이 수확되는 양이 워낙 귀하고 가치가 비싼 것을 저는 알고 있고, 인정하기 때문에 이 가치가 설득될 수 있도록 알리는 것이 슈퍼말차의 소명이라 생각합니다.


기록을 마무리하며, 뜬 눈으로 오랜 밤을 지새우시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나아가고자 고군분투하시는 모든 스몰 브랜드 창업자와 카페 사업자 분들을 마음 다해 응원하며 진심으로 모두가 다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Hyejin Sung

Co-founder & Creative Director, HIT THE TEA


HIT THE T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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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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