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 브랜드가 빅 기업을 만났을 때, 오뚜기 첫 미팅 회의록
어느 날, 황 대표님이 정기적으로 나가는 비즈니스 스터디 모임에서 오뚜기 영업 상품부서 부장님과 연이 닿아 다음에 우리 매장에서 만나기로 하였다고 한다. 스터디가 있는 날이면 오뚜기의 마케팅 사례 이야기와 함께 새로 나왔다는 신제품 참치 캔(?)을 하나씩 챙겨 오곤 하였는데, 부장님이 너무 좋으신 분 같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를 하고는 했다.
점점 그 모임이 부러워지던 찰나에 팀원분들과 함께 사무실에서 만나게 되었고, 어렵게 오시는데 뭐라도 준비해서 보여드릴까 싶어 고민한 것이 기존 오뚜기 캐릭터가 슈퍼말차를 먹고 힘을 얻어 슈퍼 오뚜기(?)가 된다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스토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빨간색 오뚜기를 초록색 헐크(;)로 변신시켜 슈퍼 오뚜기를 표현해 프로포절을 웅장하게 설명을 드렸다. 마치 뽀빠이가 시금치 먹고 에너지를 뿜어내는 것처럼 나도 오뚜기 케이스 스터디와 함께 열변을 뿜었다.
그러나 비장했던 나의 헐크 아이디어가 무색하리만큼 오뚜기 팀원들이 우리 브랜드를 공부해서 여러 후보의 아이디어를 준비해오셨다고 한다. 나는 당연히 대기업이니 작은 브랜드인 우리가 먼저 제안을 하고, 설득을 하고, 주어지는 조건에 무조건 맞춰야 한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저희가 여러 방안으로 준비해봤는데요, 마음에 드시는 아이디어 있으면 편히 의견 주세요” 하시고는 팀원들이 순차적으로 돌아가며 PT를 하기 시작했다.
오뚜기는 달랐다. 오뚜기의 대단한 히스토리로 페이지가 시작하는 것이 아닌 슈퍼말차 스터디만 페이지의 절반이었고, 우리 브랜드 메시지 분석에 따라 기업 가치가 나아가고자 함에 맞게 6가지의 방향성을 제안해주셨다. 협업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소비자에게 가치를 전달할 것인지 아이디어 후보마다 마치 광고사 비딩을 하듯 샘플 제품까지 꺼내가며 보여주셨다. 속으로 ‘아 이래도 되나, 이게 맞나…’ 싶어 한참을 듣고 있는 입장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어느새 여러 아이디어가 나온 하나의 캔버스에 서로의 살이 붙고, 너나 할 것 없이 위선 없이 그저 즐거운 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마치 대학 시절 광고 동아리 활동하던 때로 돌아간 듯했다.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밤을 새워도 즐거웠던, 특히 나이나 직급보다 기발한 아이디어의 가치가 더 중요했던 공모전 준비가 많았기에 더욱 그러했다. 아이디어에 따라 피드백을 드리니 내 앞에 마주하고 계시던 막내가 환하게 웃음을 짓고, 어떤 선배는 아이디어가 채택되지 못했다고 아쉬워도 하며 주고받는 분위기가 그저 정겨운 공동체 마을과 같았다.
나도 아이디어에 살을 보태어 즉각적으로 여러 티를 블렌딩 해서 다 같이 마셔도 보고, 말도 안 되는 제품 네이밍 후보에 꺄르륵 웃으며 어느새 서로가 같은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약 1시간 만의 회의로 진행 일정과 모든 방향성이 순식간에 모아졌다.
협업이란 이런 거구나. 공동의 목적 이전에 공동의 존중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서로의 브랜드를 헤아리고자 하는 마음이 우선이었다. 이번 만남을 통해 최종적으로 진행이 되지 않는다 해도 이미 협업을 치루고 난 이후의 진한 여운이었다. 그간 여러 브랜드와 협업을 여러 차례 진행하면서 순조롭게 풀린 사례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해 결국 진행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그때는 무엇이 달랐던 걸까? 이번 오뚜기 미팅을 통해 배워보면 한쪽으로 치우친 존중이 아니었나 싶다. 한쪽에서 절박한 마음이 충분하다고 해서 스타트를 끊을 수는 있어도, 결국 준비 과정에서 밸런스가 깨지면서 협업의 참(오가닉한) 의미가 퇴색되어 버린다. 우리가 작으니까, 우리가 덜 유명하니까 하는 치우친 시각을 나부터도 버리고자 한다. 그리고 이번 오뚜기 미팅을 통해 스몰 브랜드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어느 한 브랜드의 팬이 되는 이유는 마치 참치 캔처럼 작게 시작한다. 그런데 너무도 작고 단단해서 쉽사리 깨지지도 않는다. 부장님께서 이끄시는 팀원들 모두 속은 참치처럼 부드러웠지만, 오뚜기를 대표하는 태도는 깡통처럼 단단했다. '오뚜기 회장님께서도 인복이 많으시구나!' 혼자서 생각했다. 인상이 깊어, 진행 결과와 관계없이 여운의 기록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을만큼. 결론은 황 대표님이 쏘아 올린 오뚜기 올리브 바질 참치캔은 참으로 맛있었다는 이야기.
Hyejin Sung
Co-founder & Creative Director, HIT THE T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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