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품 준비 과정부터 브랜드 에셋 정립하는 방법까지
iF 디자인 어워드를 준비하기까지
2022년 4월 12일. 슈퍼말차가 2022 iF Design Award에서 2개 부문 Winner 최종 수상 소식이 있던 날이다. 총 49개국에서 10,776개 제품이 출품되었고, 이번 연도의 어워드가 출품작수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여느 때와 같이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침 출근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사내 메신저인 잔디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약 1년 전 출품했던 iF Design Award에 최종 Winner가 되었다는 소식에 팀원들 먼저 이모티콘을 보내며 축하하는 메시지가 연이어 울린 것이었다. 보낸 메시지 답장으로는 ‘정말로 최종 맞나요? 우리 맞나요?’하는 이상한 질문을 하며 상당히 침착하게 답변을 보냈지만 사실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눈물을 훔쳤다. 기뻐서가 아니라 코로나 기간 동안 잊고 지냈던 디자이너로서의 서러움이었다.
사업 초창기 블렌딩티 제품 디자인으로 2018년도에 또 다른 국제 디자인 어워드인 레드닷에 출품한 적이 있었으나, 시원하게 고배를 마셨던 적이 있어 어워드에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이번 iF 디자인 어워드 출품을 다시 준비하면서도 생각보다 에너지와 비용(출품비)이 꽤 들었기 때문에, 이번에 안되면 어워드에 더 이상 낭비하지 말자고 다짐한 때였다.
특히 스몰 브랜드나 인하우스 브랜드의 경우, 디자인 어워드를 준비한다는 것은 부수적인 투자에 가깝다. 사실 출품비 자금 여유 문제라기보다는 내부 리소스에 여유가 없어서 별도로 어워드 준비하는 데에 인력을 투자하기 어려운 이유가 크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는 어워드 출시 준비에 앞서 홍보팀에서 전담 TF를 꾸리거나 에이전시에서는 기존 진행했던 클라이언트 작업 프로포절 자체가 아카이빙을 위한 프로세스로 진행되기 때문에 큰 품을 들이지 않고 진행하기가 수월한 편이다. 그러나 스몰 브랜드는 둘 다 허용되지 않는다.
브랜드 네이밍을 짓고, 로고를 만드는 순간부터 멋들어지게 디자인 에셋 가이드를 만들어 두기는 커녕, 당장 명함 인쇄하고 세일즈를 하러 나가야 한다. 처음 시간을 들여서 가이드를 만들어 두면 더 편하지 않을까 싶지만 파일 자체를 열 시간도 없어서 ‘웹 컬러는 R0 G181 B0, 팬톤칩 컬러는 7481c, 폰트는 Avenir Condensed Bold’로 입에서 나오는 디자인이 더 빨랐다. 초기에는 그렇게 디자인이 가능했다. 왜냐하면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원 플레이어 디자이너이자 창업자였기에….
디자이너의 정체성은 이미 잃은 지 오래였다. 맥북 화면에는 매일 긴급하게 쳐내듯 쌓인 디자인 작업 파일들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수두룩했고, INFJ인 나에게 그 바탕화면이 스스로에게 주는 모욕감은 사실 상당했었다…. 맥북을 펼칠 때마다 ‘그래서 나 언제까지 방치할 건데?!’ 하는 서러운 눈빛으로 온갖 파일과 폴더, 문서들이 떼거지로 모여 노조를 펼치고 있는 모습으로 느껴졌다. 장기전으로 이어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회사 운영 자금은 최대한 긴축해야만 했고 때에 따라 매장 오픈부터, 디자인, 운영 기획, 실제 음료 제조까지 모든 것에 올인원 근무 인력으로 투입되었어야 했다. 품위 있는 디자이너이기 이전에 회사의 생존을 책임져야 하는 창업자였고, 스스로 선택한 디자인 장기 파업 시즌이었다.
다행히 매장들도 자리를 잡아가면서 신입 디자이너를 채용할 수 있게 되었고, 우리 회사의 막내 수현님이 한동안 내가 정리하지 못한 작업물들을 회사 공유 폴더로 아카이빙 하는데 많은 서포트를 했다. 그간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수현님이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에 우리도 출품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에 다시 용기 내어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어워드 출품 준비를 한다고 해서 새롭게 촬영을 하거나, 제작할 부분은 따로 없었지만, 정해져 있는 일정에 따라 잘만 준수하면 출품 자체가 어려운 과정은 아니었다. 심기일전으로 준비를 결정하면서 우리는 어워드 레퍼런스 스터디부터 다시 시작했다.
한국 iF 디자인 어워드 블로그로 공부하기
레퍼런스 스터디를 하면서 느꼈던 것은 국제 디자인 어워드라 그런지, 국내에 출품 준비 과정이 쉽게 공유되거나, 팁을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지 않았다. 다행히도 iF 한국지사에서 운영하는 네이버 블로그가 있어 공모 절차 방식이라거나, 이전 수상 소식을 참고할 수 있다. 그 외에는 ifdesign.com 공식 사이트에서도 전년도 어워드 수상작품들을 확인할 수 있다.
연도별마다 준수해야 하는 조금씩 다를 수 있어서 이전 수상 레퍼런스는 이미지 위주로만 참고하고, 절차는 꼭 공식 사이트에서 영어 원문으로 공유되는 가이드를 보며 준비하는 것이 좋다.
2021년도 6월 말부터 얼리버드 등록(First period)이 시작되었고, 일반 등록(Second Period) 기간보다 일찍 출품하면 EUR 100 정도 더 저렴해서 EUR 250(약 34만 원) 등록비를 지불했다. 또한 Special Offer로 2개 부문으로 동시 지원이 가능해 우리는 '커뮤니케이션 디자인'과 '패키징' 부문으로 신청했다.
심사에 가장 중요한 5가지 핵심 가치
출품작 설명글과 함께 가장 오래 고민한 부분은 출품작 이미지보다는 오히려 5가지 심사 기준에 맞게 정확한 브랜드 가치를 설명할 수 있는 짧은 답변들이었다. 이미지나 자료에서 얻을 수 없는 핵심 가치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야 한다. 특히 우리 프로젝트를 통해 사회에 어떤 점을 기여하게 되는지, 브랜드가 대상이나 목적에 얼마나 부합되고, 어떤 혁신을 이루었는지 등의 존재 이유를 질문에 맞게 아주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응축해서 답을 해야 한다.
이번 iF 디자인 어워드 출품을 준비하면서 2018년도 때부터 브랜드를 기획했던 초심으로 돌아가 기본을 재정립할 수 있었던 시간이 되었다. 브랜드가 여러 사람의 손을 타며 입체적으로 성장하다 보면 가장 순수했던 존재의 본질이 흔들릴 때가 있다. 슈퍼말차도 4년 차 브랜드가 되어가니 상황에 따라 제품의 의도가 변형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입을 통해 존재 가치가 다르게 해석될 때도 있다. 이 또한 자연스러운 브랜딩의 과정이겠지만,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정신줄 붙잡고 '처음'을 상기시켜줘야 한다. 불완전함으로 뭉쳐 놓은 처음의 고집으로.
위 5가지의 기준은 곧 슈퍼말차 브랜드의 에셋 가이드가 되었고, 때때로 방향이 흐려질 때마다 스스로 위 질문을 던지고 답을 다시 채워 나가는 과정을 반복한다. '왜 슈퍼말차이고, 왜 슈퍼말차여야만 하는가?' 아래는 위 핵심 가치를 토대로 브랜드 디자인에 어떻게 반영했는지 서술한 설명글이다.
브랜드 방향성과 메세지
슈퍼말차는 밀레니얼 세대들을 위한 캐주얼 말차 전문 차 브랜드이다. 말차는 중국 당나라 시대로부터 시작되어 약 1,300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유서 깊은 동양의 차 문화이나, 기성세대가 정립한 전통적인 이미지로 인해 대중화되지 못하고 소수를 위한 차 문화에서 그치게 되었다. 우리는 말차의 문화를 새로운 세대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서 기존 기업들이 만들어내는 고전적인 이미지 연출의 세습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계승 방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슈퍼말차의 브랜드 미션은 매우 단순하고 명확했다. 온고지신 [溫故知新].
‘옛 것을 익히고, 새로운 세대로의 삶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재조합하는 것'. 말차의 전통을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 아닌 대중들에게 쉽게 학습될 수 있도록 새 시대로의 언어로 전달하는 방법으로 ‘기능적 직관성’을 중요 키워드로 설정했다.
‘내가 왜 마셔야 하는지’를 S.U.P.E.R 각 다섯 가지 약자로 축약해 네이밍과 슬로건 그리고 모든 시각물에 타이포그래피로 디자인하여, 제품을 어렵게 살펴보지 않아도 정보 전달이 명확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말차 본연의 그린 컬러를 패키지 시스템에 적극 반영해 ‘건강하고 진취적인’ 페르소나를 새롭게 만들어 기존 말차가 갖고 있는 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고 슈퍼푸드로의 기능적 힘을 전달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패키징 디자인 2개 부문 동시 수상
출품을 준비하면서 이전 어워드 수상작들과 비교했을 때 슈퍼말차가 압도적인 디자인 혁신이 있다거나, 사회에 비영리적인 메시지를 주는 기업도 아니었다. 그런데 신청한 2개 부문을 다 받았고, 심사역의 점수도 각 항목당 평균 점수보다 높은 편이었다.
객관적인 항목 점수만 확인할 수 있어서 심사위원분들의 주관 평가를 들어볼 수 있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왜 점수가 높았을까 개인적으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스몰 브랜드가 이렇게까지 한다고?' 하는 도전 정신을 격려해준 게 아니었을까 싶다. 가끔 슈퍼말차에 대해 '말차에 진심인 사람들이 만든 브랜드'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사실 나도 우리 멤버들도 자칭 말차 덕후는 아니다. 차도 좋아하지만, 커피도 좋아한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대중성을 고려하게 되고, 소수의 문화가 아닌 누구나 접근 가능한 문화로 끌어올리고 싶어 한다. 그런 이유로 우리가 만든 미션이 스몰 브랜드에게는 터무니없는 빅 드림인 것이다.
디자이너는 개인의 바람이 아니라, 세상이 바라는(UX) 것을 그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스토리에 공감이 덧붙여지면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존재 이유가 이어진다. 이번 iF 디자인 어워드 수상은 차 문화에 진심인 스몰 브랜드의 바람이 글로벌 심사위원단들의 마음에도 닿았던 공감의 격려였던 것 같다.
Hyejin Sung
Co-founder & Creative Director, HIT THE T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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