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 직감과 통찰력은 어떻게 기르는 것일까?
몇 개월 간 신규 매장 오픈 준비로 몰입하다가 오랜만에 가진 휴일.
그간 읽고 싶었던 책들 중 가볍게 읽을만한 야마구치 슈의 ‘How to 미의식 직감, 윤리 그리고 꿰뚫어 보는 눈‘을 먼저 꺼내 들었다. 책에는 데이터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사이언스형‘과 과거 경험에 근거하여 판단하는 ‘크래프트형’ 그리고 윤리와 감각을 중요시하는 ’아트형‘으로 일하는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며 이들이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예시 상황으로 설명하는 만화 형태의 책이었다.
책에서는 앞으로 더욱 불안정하고 복잡한 시대에서 논리와 이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아트형’이 주가 되고, ‘사이언스형’과 ‘크래프트형’이 아트형을 지원하며 협력하는 형태로 가야만이 정보로 범람하는 경쟁 사회 속에서 압도적인 차별화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사이언스형, 크래프트형으로도 일정 수준의 경쟁력은 될 수 있으나, 말 그대로 경쟁 자체를 벗어나는 차별화를 추구하기를 원한다면)
그렇다면 ‘아트형 인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가?’ 하는 방법으로는 미의식, 즉 직감과 통찰력을 쌓는 ‘진선미’를 길러야 한다고 한다. 구체적인 방법의 예시로는 일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다르게 해석할 줄 아는 힘, 즉 나만의 시선을 기르는 일련의 활동과 연습을 많이 한다면 후천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전시를 다닌다거나, 문화 활동을 많이 한다거나 하는 예시도 그림에 있었지만 나는 다른 관점으로 미의식의 중요한 전제 조건이 하나 더 필요해 보였다. ‘진선미’를 기르는 정량적인 연습 또한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 있는 기회로 정성적인 형태로 체화하는 ’나만의 세계관‘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특히 브랜드를 기획하거나 창업하는 사람들에게는 단 하나의 미를 발견하더라도 나만의 철학과 방식으로 씹고, 만지고, 깊숙이 소화 시키는 '자발적 고독의 시간'이 미의식을 완성시키는 중요한 단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미의식은 어쩌면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았던 어릴 적에는 이미 가득했을지도 모른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너무도 가난했던 환경이 지금의 미의식 기르는 방법을 후천적으로 형성시켰던 것 같다. 방과 후 학원으로 떠나는 친구들을 등지고 학교 운동장 철봉에 거꾸로 매달리며 외로이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학교 스쿨버스를 놓칠 때면 3시간이 넘는 하굣길을 굽이굽이 산 넘고 논밭 넘어 혼자 흥얼거리며 다니던 시간, 농사일로 해가 저물 때야 경운기 타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부모님을 기다리며 혼자 소꿉놀이 하던 시간들을 통해 스스로와 대화할 수 있는 고독의 미의식이 충만할 수 있었다.
어릴 때야 환경의 제약이 많아 스스로 처리하는 창의력과 감성을 기를 수 있었다면, 어른이 되어버린 이후에는 고독의 제약을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으면 외부 시선의 유혹들이 가득해 대부분 10분도 넘기지 못한 채 스스로 사고하기를 쉽게 멈추어 버린다. 유식한 사람들은 어느 시대 때보다 넘칠 수 있어도, 총명했던 위인들의 시선과 작품이 과거에 훨씬 머물러 있는 흔적들로 방증되기도 한다.
처음 브랜드를 시작할 때도, 지금에도 여전히 절박함과 처절함으로 가득한 고독에서만이 차별화가 나온다고 믿기에 오히려 브랜드를 운영하면서도 필승 전략법이라 하는 것들을 찾아다니기를 포기했다. (사실 다니고 싶어도 시간이 없다) 대신 어른이 되어서도 지금의 자아를 만들게 한 고독의 습관은 자발적으로라도 확보한다. 낮에 시간 내기 어렵다면 모두가 잠든 새벽에라도 일어나서 외로운 적막 속에서 스스로와 대화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 잠시의 간지러운 외로움을 조금만 더 견디다 보면 내면에서 누군가 툭 하고 말을 거는데, 그때부터 미의식이 자라나는 시간이다. 그때 떠오르는 형상들을 글로 기록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낙서라도 하여 흔적을 꼭 남겨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세 자취를 감춰버리는 부끄러움 많은 아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