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새해맞이 여행, 여수의 밤과 아침을 되새기며
아이들의 겨울방학이 한 달 하고도 보름이 지나가고 있는 시점. 처음엔 더디게 기어가는 것 같던 시간도 매일의 흐름 속에 켜켜이 쌓이고 보니 어느덧 전체 방학 기간의 1/4 조각만이 남아 있다. 더 일찍 ‘쉼’이라는 카드를 쓸 수도 있었으나, 겉으로 드러내기 피곤한 핑계와 침묵을 이유로 적확한 타이밍을 찾지 못해 버려진 아쉬운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을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서로의 합과 뜻과연이 닿지 않았을 뿐. 다음에라도 기회는 언제든 부활시킬 수 있으니 생생하게 살아내지 못한 실패한 계획들을 뒤로 하고, 지난 과거보다는 시선의 방향을 다시는 오지 않을 지금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 바꿔본다. 왜냐고 묻는다면, 떠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시간이 허락하고 아무 일정 없는 가능성의 요일들이 숨 쉬고 있으니, 이 귀한 기회를 져버릴 수 없지. 목적지로 향하는 장거리 운전은 괜찮지만, 도착해서도 운전만 오래 하고 싶지 않다는 남편의 말에 제주는 후보에서 제외되었다. 그럼 지난봄, 고흥 캠핑에서 스치듯 땅을 밟아 본 경유지라서 아쉬움이 남았던 여수는 어떨까. 남도의 쪽빛 바다, 식도락 여행하기엔 제격인 여수로 떠나보자고.
고속도로 교통체증이 싫어서 밤을 꼬박 새워 운전하고 도착한 곳에서 일출을 맞는 게 우리 식구의 여행 루틴이었다. 이번엔 여유 부리며 오전 느지막이 출발해서, 오후의 시끌벅적한 휴게소 분위기도 누려보고 평소보다 게으름을 좀 피웠더니 5시가 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숙소에서 노곤한 몸을 잠시 뉘었다 나오면 금방 해 떨어질 때라니. 게으름과 맞바꾼 대가가 크다. 하루가 순식간에 삭제된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이동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쓴 것 같은 후회감이 급류처럼 밀려든다. 여행 전 다소 부산스러워도 바지런을 떠는 게 그래도 낫다 싶다. 가진 건 시간이 전부인데, 손금 사이로 소리 없이 새어 나간 시간이 왜 이리 아까운 건지,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인데 효율을 따지는 나란...
그래도 일몰은 놓칠 수 없지. 노곤하다며 뜨끈한 온돌방에 애벌레처럼 늘어져 있는 식구들을 일으켜 오늘의 해가 퇴장하는 광경으로 네 식구가 합류한다. 연회색 구름 장막을 걷어내고 짙은 오렌지빛 석양이 파고드는 순간. 하늘과 얼굴을 마주한 바닷물에도 같은 빛이 은은하게 피어오르고, 반대편 바다 저 너머 건물들에서 켜진 불빛들이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떠나온 것이 맞구나. 매일같이 일상을 비비적대던 집이 아니라, 너른 바다 앞으로 펼쳐진 노을을 보니 이제야 새삼 여행지에 잘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든다.
이따만한
대보름달
앞산 위에 걸렸는데
오늘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마터면 쓸 뻔했다
_ 김용만 시인, 창비시선 529
[기역은 가시 히읗은 황토] ‘일기’ 중에서
오늘의 지는 해를 마주하지 않았다면, 이동하는 것 말고는 ‘오늘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마터면 일기에 쓸 뻔했다’. 1월의 시모임에서 만난 시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던 찰나. 여행지로 향하고 무사히 잘 도착한 날 일기의 전부는 ’여수밤바다‘가 아니라 여수일몰이다. 눈과 귀와 온 몸에 가득 담은, 해가 저무는 평화로운 고요.
무탈했던 하루가 지나고 뜻밖에 만난 자연 풍광에 넋을 잃고 바라볼 때, 그 순간이 크나큰 위안으로 찾아온다. 오늘의 노을이 더 감동으로 느껴지는 건, 온 식구가 오직 한 번뿐인 지금을 함께 하고 있어서겠지. 특히나 요즘 들어 뒷모습을 더 자주 보여주는 아이들과 함께 보는 노을은 흔치 않은 일이니까. 서로 얼굴을 마주 보지 않아도 같은 곳을 보고 있으니 혼자일 때보다 마음이 담뿍하게 차오른다. 더욱이 완전히 낯선 여행지는 아니라서 드는 친숙함도 반 스푼 더해져 딱 알맞은 충일감이 일었다.
여행 이튿날 아침,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어제저녁, 온갖 산해진미를 품었던 위가 온전할 리가 없다. 당장 밖으로 나가서 달리기라도 해야 이 더부룩함이 조금이나마 가실 텐데. 까마득한 꿈나라에서 헤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남자 셋은 그냥 두고 나 홀로라도 나설거야. 일단 패딩을 챙겨 입고 숙소 탑 층으로 향한다. 지는 해가 남긴 여운을 떠올리며, 새 아침이 시작되는 날, 떠오르는 해를 만나러 가야지.
문명의 이기 덕분에 단 몇 초만에 꼭대기 층에 올라섰다. 굽이굽이 능선을 자랑하는 산 너머로 오렌지, 분홍, 옅은 노랑, 파란빛의 그라데이션이 몽환적인 아침. 어느 한 가족이 먼저 나와 일출을 보러 대기 중이다. 아마도 식구들을 리드하는 가장은 어찌나 준비성이 철저하신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커피잔도 챙겨 오셨다. 일출을 바라보며 맛보는 하루의 첫 커피라니. 아, 준비성에서 지고 말았다. 내일은 나도 따끈한 아메리카노를 꼭 챙겨 나와야지 다짐한다.
일출 예보 시간보다 좀 늦어지는 것 같아 반대편 너머를 감상하고 있는데 “나왔다!” 소리가 들린다. 뒤를 돌아보니 더할 나위 없이 또렷하고 선명한 붉은 기운이 둥글게 빼꼼 솟아오르고 있다. 모두가 가만히 숨을 고르고 존재 하나만으로 압도하는 자연의 풍광에 기가 눌렸다. 숨죽인 채 일출을 바라보며 새 아침의 고요와 희망에 온 감각이 잔뜩 부풀어 오른다.
겨울 아침, 나는 5시나 그 전에 계단을 내려온다. 하늘은 검지만 오래가진 않는다. 나는 커피를 끓이고 창문마다 다니며 블라인드를 올리고 밖을 내다본다. 분홍, 귤색, 라벤더색 빛이 동쪽 수평선을 따라 돌진하다가 안개처럼 하늘로 기어올라 어둠의 안쪽 모퉁이에서 바르르 몸을 떤다. 우주의 은밀한 곳! 색깔들이 물속으로 흘러들고 모든 것이 푸르게 변한다.
_ 메리 올리버 [완벽한 날들] p.122중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꽤 길고도 어둑한 시간을 알기에, 난 이 문장을 볼 때마다 하루의 여명이 시작되는 동안의 다채로운 자연의 빛깔을 떠올린다. 그래서 어떤 여행지를 가든, 자연을 마주하고 있는 곳이라면 해 뜨는 시간에 무조건 깨어 있으려고 노력한다.
2월 들어 첫째 주에 입춘이 지났고, 곧 눈이 녹아 비가 되고 물이 된다는 절기인 우수에 접어들었으니, 요즘은 7시 10분 전후를 기점으로 일출이 시작된다. 점점 짙어지고 강렬한 기운을 내뿜으며 세상을 밝히는 태양을 보고 있노라니 눈이 부시다. 아들이라도 깨워 같이 올걸, 순간 아쉬움이 고개를 들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잠잠하고 고요하게 아침의 기운을 있는 그대로 흠뻑 맞이한다. 이대로도 충만하고 충분히 아름다우니. (감격스러운 일출 감상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면서 되뇌어본다. 내일은 아침의 소란을 잠시 참고, 깨워서 같이 나와볼까. 엄마의 욕망이 고개를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오늘 여행하면서 내일의 일출 감상에 동행하지 않겠냐고 설득을 해 봐야지. 둘 중 한 녀석이라도 함께한다면 성공! )
향일암 계단을 힘든 기색 없이 성큼성큼 올라가는 열다섯, 열한 살의 아이들. 밝은 미소의 동자승과 하이 파이브 하며 쉬엄쉬엄 올라가도 좋을 것을. 아이들은 쉴 틈도 없이 무조건 직진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남편은 주차장에서 쉬고, 아이들은 나를 따라 목적지까지 꽤 긴 거리를 걸었는데도 한 번도 투덜대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해야지. 바위와 바위 사이 틈을 조심스레 지나고 나니 펼쳐지는 풍경 앞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분명 엄마는 결혼 전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는데 절에는 왜 온 것이며, 소원초에 너무 많은 소원을 적은 것 아니냐며 부처님이 이해를 못 할 것 같다는 아이들의 타박에는 그저 웃음으로 답했다. 난 너희들과 가족을 걱정하면서도 밝은 앞날을 기원하고 기도하는 그저 욕심 많은 중생인걸. 종교마다 믿음의 모양새는 다를지언정 사랑과 자비라는 같은 결을 추구하는 마음만은 다르지 않으니까. 사실 가까운 미래에(?) 실현하고픈 버킷리스트가 있는데 말이야. 이 향일암에 일출을 보러 다시 오고 싶은데, 그때 함께 해 주겠니.
(중등 아이의 탄식이 벌써 환청으로 들려오네?!)
우리는 서로 꼭 껴안은 채,
숨소리도 내지 못한 채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아요.
우리가 바로 이 자리에 와 있는 거예요.
소리 없이 하루가 시작되는
눈부신 약속의 자리에….
_ 그림책 [어떤 약속] 중에서
그림책 [어떤 약속]에는 이런 여행이 정말 가능할까 의문이 들면서도 그저 부럽고 놀랄만한 한 가족이 등장한다. 모두가 잠든 시간, 아직 아침이 밝기에는 먼, 깜깜하고 깊은 새벽을 깨우고 일어나는 한 가족이 있다. 엄마의 조용한 속삭임에 아이들은 군말 없이 옷을 입고 아빠 엄마를 따라 나선다. 그들은 밤의 숲을 지나 눈부신 약속의 자리를 지키러 산을 올라가는 길이다. 밤과 새벽을 통과하며 이들은 벅찬 새 날의 아침을 맞는다.
이 가족처럼 등산하자는 건 아니다. 절대. 그건 나도 자신이 없거든. 여행지에서 시작하는 새 아침을 밝혀주는 둥근 해를 온 식구 함께 보고 싶다는, 그저 그런 바람이 내게 있다는 거지.
여행 마지막 날 아침. 일출 동행 제안에 선뜻(!) 수락한 건 아니지만, 딱히 거절하지는 않고 고개를 끄덕인 두 녀석을 깨웠다. 아침잠이 많고 잠투정도 심한 둘째 아이의 버럭 모드에 마음이 상해 더는 시도하지 않았고, 일출 시각이 임박할 때까지 숨을 고르며 기다리다 첫째의 어깨를 다시 두드렸다. 인상을 찌푸리고 몸을 일으키고는 ‘싫다 싫어’ 얼굴을 하고 겉옷을 입는 아이의 심기를 더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 신발을 싣는 걸 보고 아무런 말 없이 탑 층으로 향했다. 돌계단을 오르자는 것도 아닌데 까치설날 지나고, 정말 우리 설날 아침의 해를 이렇게 맞이해야 하나 싶지만. 극강의 사춘기 아들이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라는 신의 가호가 있기에 잠시 일었던 넋두리는 마음속 호주머니에 깊이 묻어둔다.
하늘엔 어제 아침에는 없던 구름층이 두터이 깔려 있다. 과연 일출을 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동생처럼 떼를 부리지도 못하고 나에게 붙들린 큰아이 눈치를 살피며 해를 기다려 본다. 오늘은 두 가족이 먼저 나와서 뜨는 해를 기다리는 중. 아차. 아이를 깨우느라 따뜻한 커피를 준비하지 못했다. 아쉬움도 고이 접어 아까 그 호주머니 속에 깊이 넣어 두고 해를 기다린다. 구름에 가려 어제의 해가 떠오르던 그 자리보다는 조금 높은 곳에 이르러 둥근 해가 떠오르고 있다. 2026 새해, 설날의 첫 아침의 해. 혼자였다면 이번엔 정말 외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여전히 잘 알 수 없는 사춘기의 능선을 지나는 나날의 연속이지만 엄마의 고집스러운 집념도, 잔소리도, 넋두리도 아주 조금은 알아듣는 듯한 찰나가 있긴 하는데. 아마도 오늘의 아침이 그런 드문 날 중의 하나일까.
“새해 복 많이 받아”
어깨를 토닥이며 내가 건넬 수 있는 오늘, 지금, 이 순간의 선물은 이것뿐.
시집 [기역은 가시 히읗은 황토]
김용만 시인, 창비시선 529 (2025)
에세이 [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민승란 옮김, 마음산책(2013)
그림책 [어떤 약속]
마리 도를레앙 지음
이경혜 옮김, JEI재능교육(2019)
원제 Nous avons rendez-vous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