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한 조각, 귀 기울여볼까요

겨울의 긴 ‘터널’을 지나며 삶의 모든 ‘애정’을 돌아보기

by greensian


2주 전만 해도 자비 없는 동장군의 맹렬한 북극 한파로 세탁기가 꽁꽁 얼어붙어 마음껏 빨래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여겼다. 날이 풀려 매일같이 세탁기를 돌리는 행복(?)을 누리는 가운데 오늘은 미세먼지 없는 날씨를 간절히 바란다. 영상 6도를 웃도는 2월의 하늘은 아무런 표정 없는 온통 회색. 눈도, 마음도, 기관지도 답답해지는 꽉 막힌 회색빛에 봄은 과연 오는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한껏 기온이 올라 두툼한 코트 재질과 패딩 점퍼가 괜히 부담스러워 얇은 겉옷을 기웃거리고 포근히 목을 감싸주던 목도리도 벗어 던지는 충동에 사로잡혔다가는 덜컥 몸살감기 걸리기 딱 좋은 날. 겨울은 뿌리 깊고 봄은 아직 멀었는데 이 짙은 회갈색 겨울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조바심에 시달릴 때, “기다려, 아직이야.”라고 말을 걸어온 그림이 있다.



표지 그림 _데이비드 호크니 ‘겨울 터널 가까이’, 2월 - 3월, 2006

A Closer Winter Tunnel, February-March, 2006


그림 출처 : The David Hockney Foundation



한 자리에서 자연을 매일같이 바라보고 탐미하면서 작품으로 남긴 데이비드 호크니의 ‘겨울 터널 가까이 2월 - 3월’. 저 너머 푸른 대지와 대조적으로 갈빛, 진회색빛 나뭇가지들은 허공에 모든 몸을 맡기고 있다. 한 자리를 지키는 일은 별거 아니라는 듯 우직하게 서서, 잔가지들은 마치 촉수처럼 있는 힘껏 잿빛 하늘을 향해 쭉 뻗어 있다. 곧 어느 날의 하이 파이브를 기다리는 걸까. 조금 뒷면 삐죽삐죽 연둣빛 새순이 움틀 때가 온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이건 체념이 아니라 굳은 믿음이자 결연한 희망에 더 가깝다. 이 그림이 깊고 진한 겨울에서 벗어나 서둘러 봄을 만나고 싶다는 강렬한 나의 바람을 잠재웠다. 아직은 더, 조금만 더 차분히 기다려야 한다고.


눈이 쌓인 겨울의 터널 3월 / 늦봄의 터널 5월


7월 초의 터널 / 11월 초의 터널


호크니는 그림을 그리던 몇몇 장소로 나를 데려갔다. 그중에는 그가 ‘터널’이라는 별명을 붙인 곳도 있었다. 그곳은 양쪽으로 나무들과 덤불이 늘어서 있는 길에서 시작되는데 가지들이 가운데를 향해 굽어 있어 위로 무성한 나뭇잎으로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지붕이 있었다. 거기에는 장관을 이루는 풍경도 없고, 아름다운 장소를 찾는 관광객들을 확실하게 매료시킬 만한 요소도 없었다. 열심히 관찰한 사람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바라보기 그리고 열심히 바라보기는 호크니의 삶과 예술에서 핵심적인 행위이고, 또한 그의 가장 큰 두 가지 기쁨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다시 그림이다 :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p. 27 중에서



그가 그토록 나무를 주연 삼아 화폭에 담은 이유는 ‘나무들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생명력의 가장 큰 징후’라서다. 그는 겨울을 지켜보고 나서야 비로소 여름의 풍요로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무성한 잎으로 찬란하고 무한한 생기를 내뿜는 여름의 나무는 그리기가 특히나 더 어렵다. 나무의 형태나 부피를 헤아리기가 쉽지 않아서다. 그러니 그 어떠한 꾸밈과 장식의 기교가 없이 온전히 있는 그대로의 맨살을 드러내고 있는 겨울이야말로 나무의 생김새를, 형태를, 그 깊이를 더 잘 알아볼 수 있던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눈길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연 일부를 흠모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라보고 싶다는 그 욕망을 우리는 쉽고 가볍게 실현한다. 자연의 한 조각을 담은, 화분이라는 형태로 말이다. 꽃피는 봄날이면 화훼농가 앞에 한 아름 진열된 예쁘고 아름다운 봄꽃들과 초록의 매력을 맘껏 발산 중인 ‘초록이들’에 마음을 뺏긴 날들이 얼마나 많은가. 누군가의 기쁜 날, 진중하게 골라 선물로 다가간 묵직한 대형 화분들이 소리소문없이 생기를 잃고 먼지를 뒤집어쓰고 메말라가던 풍경도 숱하게 지켜봤다. 인간의 손에 붙들려, 혹은 타자의 부름에 힘입어 식물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해진 공간으로 옮겨진 무수한 화분들. 그 화분에 담긴 식물이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당신의 베란다를 차지하게 되었냐고요? 좋은 질문입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당신을 관찰해 왔습니다. 쉽지만은 않았죠.

당신은 우리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의 생김새와 키 냄새와 색깔을 꼼꼼히 살펴봅니다. (...) 하지만 우리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죠. 뭐 괜찮습니다. 이름이 좀 길고 어렵긴 하니까요.

권정민 그림책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 중에서


권정민 작가의 그림책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는 전지적 ‘식물’ 시점에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책에 나오는 식물의 독백에 귀를 기울이면 입장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식물인 ‘우리’와 인간 ‘당신’의 입장과 처지를 뒤집어볼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직면하며 ‘뜨끔!’해진다. 첫 만남의 강렬함과 호기심을 꾸준히 이어가지 못하고 사그라드는 초심, 식어가는 마음, 무관심 속에 방치된 채 잊혀 가는 존재의 쓸쓸함을 식물 시선으로 직관하는 순간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다. 뿌리뽑힌 나무와 자갈을 잔뜩 싣고 운반하는 트럭을 보고 ‘인간은 누구의 허락을 받고 자연을 마구 긁어내는 걸까? 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작가는 그 주제 의식을 그림책에 담았다.


불편함을 느끼기. 입장바꾸기는 뇌의 저항을 이겨내야 하는 어려운 일이고, 부단한 연습이 필요해요. 그렇게 자리를 바꾸면 새로운 시선이 열려요. 자리를 바꾸다 보면 원래 알던 것도 다르게 느껴지고요.

_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p.296 (권정민 그림책 작가 편) 중에서



베란다 한쪽에 자리한 우리 집 식물에 자연스레 시선이 간다. 그렇다면 나는, 무관심에 지치고 아파하며 절규하는 식물의 소리를 들었던가. 부모님이 선물해 주신 동백꽃(몇 달 전 가지치기도 부모님 도움을 받았다지), 여름철이면 매혹적인 향기를 내뿜는 오렌지 재스민(너도 부모님이 숱을 쳐줬지), 굵고 커다란 씨앗이 신기해서 흙 속에 묻어 봤던 아보카도(점점 키다리 식물이 되어가네), 여름 휴가를 다녀온 사이 작열하는 태양에 결국 쓰러지고 만 사철나무 천리포(미안하다 정말, 무려 6년이나 함께 했는데….), 그리고 한때나마 함께 했던 시절 인연과 같았던 화분들. 어리숙한 주인을 만나 더 깊고 길게 연을 이어가지 못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이렇게나마 고백한다. 저마다의 수수한 매력과 초록의 생기로 그 자리를 채워주고 있는 현재의 초록이들을 잘 품어줘야지.



예언과도 같은 ‘유언’한 마디가 실제가 된 이야기를 다룬 소설 <빨간 열매(이유리 소설집)>를 읽었을 때의 강렬한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지나가듯 툭 던졌던 아빠의 유언, 그 말을 시크하게 넘겨짚은 딸, 그런데도 기묘하게 전개되는 줄거리에 나도 모르게 푹 빠져들었다. 이야기의 도입부부터 남달랐던 문장.



아버지는 자기를 화장하고 나면 남은 유골을 화분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었다. 그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p.9)
흙과 뼛가루를 섞어 화분, 이라고 이제는 부르지만, 원래는 유골함이었던 그것에 나무를 심는 일이 끝났고 보통 식물을 새로 심고 나면 그러듯이 물을 듬뿍 준 뒤에 베란다에 비스듬히 서서 화분 밑으로 스르르 흘러나오는 흙탕물을 바라보았다. (p.15)
이후로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동안 처음에 보잘것없던 나무는 혼자 무럭무럭 자라 우듬지에서 반드르한 연둣빛 가죽 같은 새잎이 올라오고 줄기도 굵어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내가 거실에 앉아 빨래를 개고 있을 때 갑자기 베란다에서 아버지가 말했다.
물. (p.15)

_ 이유리 소설집 [브로콜리 펀치] ‘빨간 열매’
p. 9–15 중 일부


말도 안 된다고 지나쳤던 아버지의 유언은 자신도 모르게 양재동 화훼단지로 발걸음을 향하는 계기가 되고, 결국 화분의 모습으로 살아 있는 존재로 거듭난다. 화분은 쑥쑥 자라 잎이 무성한 나무 한 그루로 손색없는 모양새를 갖추었다. 그가 필요로 하는 건, 물과 빛이 전부. 생전의 아버지를 돌보는 것보다 편리했다고 소설 속의 ‘나’는 고백한다. 식물의 성장에 필수 요건인 빛과 물만 있다면 식물로서의 생을 이어갈 수 있으니까.


‘화분=아빠’라는 등식이 성립되었으므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돌봐주면서 화분의 말에 귀 기울이다 보니 화분은 어느새 ‘나’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 “물”이라고 툭 내뱉은 화분의 말 한마디에 머리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모든 감각 세포들이 쭈뼛 솟는 자극. 말을 걸어오는 행위를 넘어서서 주인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유도하는 소통 방식이 참신하고 신선했다.


빛과 물이면 된다. 빛과 물, 관심. 이걸 못해서 그 많은 초록이들이 안녕- 말 한마디 없이 저 별로 사라지곤 했던 거야.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이 당연한 이치를 왜 그땐 저버렸을까. 메마르다 못해 바싹 비틀어버린 건 결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쩌면 하루하루 관심의 대상에서 사라져버린 숱한 날동안 예견된 결말이었다.

빛과 물, 꾸준하고 지속적인 관심. 애정을 기울이는 것만이 사랑이고, 구원이라고. 데이비드 호크니도 말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라고. 잘 지내려면 오랫동안, 그리고 깊이, 열심히 바라보기가 필수다. 비단 자연을 품는 얘기만은 아니다. 오롯이 그 시간을 선뜻 내어주기. 삶의 모든 애정은 그렇게 기울이는 것임을 자연의 한 조각에서 배우고 새긴다.






<다시, 그림이다> :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마틴 게이퍼드 지음, 주은정 역, 디자인하우스(2012)


소설 <브로콜리 펀치>

이유리 소설집

문학과지성사(2021)


그림책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

권정민, 문학동네(2019)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최혜진 글, 사진 해란, 한겨레출판(2021)